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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17. 월요일

독투불패 Re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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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땅을 긁어대는 짜증나는 소리가 낮잠을 방해했다. 오늘 보니 어느새 꼴 보기 싫은 콘크리트 덩어리가 땅 위를 기어오르고 있다. 성급한 인간들이 깊이 생각도 안 해보고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게 분명하다.

 


고작 며칠 만에 새로운 건물이 하나 생긴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모름지기 건물이란 100년을 내다보고 지어야 하는데 고작 한두 달 사이에 근본도 없는, 그러면서 일단 지어지고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건물이 일 년도 안 걸려 지어지다니. 그런 식으로 고민 없이 지어진 건물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을 것이며 누군가는 그 불편함을 기회로 곧 무너뜨릴 것이 아닌가. 결국 그렇게 자원은 낭비 되고 인간들은 누군가를 욕하고 불평하며 그 불평은 변명조차 하지 못하는 힘없는 것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요즘 들어 인간들이 콘크리트가 나쁘다고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게 콘크리트의 잘못이냔 말이다.

 


내가 이 집에 왔을 때만해도 처지가 지금 같지는 않았었는데. 하긴 그동안 세월이 흐르긴 흘렀다. 나를 좋아했던 내 진짜 주인인 큰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나를 꽤나 귀찮게 했었다. 수시로 나에게 책을 꽂고, 얹고, 빼고 그걸로 부족해서 책 위에 또 다른 책을 쌓기도 했다. 나는 늘 몸이 무거웠고 제대로 쉴 틈도 없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그때는 고등학생이었으니 당연히 교과서와 참고서가 많았지만 버리지 않고 두었던 동화책도 몇 권 있었고 약간의 철학책도 있었다. 한 쪽 구석엔 성경과 불경이 나란히 꽂히기도 했고 뜬금없는 관상이나 수상, 사주팔자 같은 점에 관한 책들도 있었다.

 


그래도 가장 많은 책들은 단연 소설과 시집이었다. 그가 틈만 나면 사 나르던 문학 책들이 참고서들보다도 내 몸을 무겁게 차지했다. 그는 그 책들을 보며 한숨짓고 웃었으며 밑줄을 그었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렵 그가 자주 읽던 시집 사이엔 어느 여학생에게 부치지 못하고 모아둔 편지도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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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히 그가 대학에 가서 문학을 전공할 걸로 믿었다. 수능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참이나 나와 내 몸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때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즈음 한 밤중에 가족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야, 니 사내 놈이 국문과 나와서 뭣 헐 거여. 글쟁이 될래? 돈 못 벌고 방구석에 처박혀서 종이 쪼가리 붙잡고 세월 보내다 폐병이나 걸리고 마누라랑 자석 굶기는 게 글쟁이여. 니는 이 집 장남인디 나이 들먼 식구덜 건사헐 생각을 혀야지 글쟁이가 뭐여 글쟁이가. 야 이눔아 정신 채려.”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에서 교과서와 참고서가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건축 공학에 관한 책들이 채워졌을 때 느꼈던 나의 당혹스러움은 놀라움을 넘어 절망에 가까웠다. 문과를 다니는 동안 수학과 과학 점수는 거의 낙제에 가까웠고 소설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녀석이 공대에 가서 건축을 전공한다니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삶이란 것이 노력해서 되는 게 있기도 하지만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런 것들은 본성에 가까운 문제라는 걸 주위에 있는 인간들 중 누구하나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자취를 하겠다고 집을 나가고 나를 물려받은 건 그의 동생이었다. 동생 녀석은 날 그다지 귀찮게 하지 않았다. 형이 보던 책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자신의 책을 채웠지만 많지 않았고 종류도 적었다. 나는 조용히 쉴 수 있었다.

 


교과서 말고는 성경책만 줄기차게 읽어 대던 동생은 졸업 후에 신학대에 갔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가족들 모두 축하해주었다. 단 한 사람, 내 주인만 빼고. 그는 가끔씩 집에 와서 가족들이 없을 때 혼자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봤다. 동생에게 성경 말고 철학이나 문학책들도 읽어보기를 권했고 둘이 있을 때는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했다.

 

너는 성경책 안에 모든 진리와 길이 있다고 믿겠지만 살다보면 말씀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어. 나는 니가 이왕에 목사가 될 거라면 선무당 같은 목사가 아니라 신자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바닥까지 내려가 본 목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말을 하면 너나 부모님은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다고 하겠지만 나는 종교로는 인간을 교화시킬 수도 구원할 수도 없다고 믿는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그는 대꾸도 시원치 않은 동생에게 주절주절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고 동생이 없을 때 한 쪽 구석에 체 게바라 평전과 만들어진 신 그리고 법정 스님의 책을 꽂아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의도가 성공하지는 못했다. 동생은 그가 넣어둔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지만 조금 읽고 나서는 오히려 신앙심이 깊어지는 쪽으로 변해갔다.


 

다시 귀찮아지기 시작한 건 그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였다. 어느 날 돌아온 그는 내 몸에서 동생의 책들은 꺼내고 자신의 책들을 넣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명절 때나 다녀가던 그가 십여 년 간 어디서 무얼 했는지 모르지만 꼴을 보아하니 그다지 잘 됐던 것 같지는 않고 들고 온 책들은 떠났던 때보다도 많아졌다. 그는 전처럼 나를 괴롭히며 몸 구석구석에 잡다한 것들을 쌓기 시작했다. 연습장에는 이상한 글들을 끼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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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호기심 때문에 죽는다. 하지만 호기심이 없는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개가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양이도 아닌 채로 살다 죽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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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어항 속에 갇힌 새처럼 산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물고기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고기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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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가족들도 포기한 듯싶다. 그렇다고 기쁘다는 뜻은 아니다.

 


며칠 전 내 주인의 어머니 그러니까 이 집의 단 하나뿐인 여자가 갑자기 집안의 모든 가구를 바꿔야한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교회의 어떤 모임에서 교육받은 바에 의하면 엠디에프 합판으로 만든 가구에서는 몸에 나쁜 성분이 뿜어져 나오고 그래서 아이들이 아토피에 걸린다는 얘기였다. 대화 중간에 친환경과 자연이라는 말이 섞여있었다.


 

0순위로 지목 된 건 바로 나였다.


그렇다. 난 그저 엠디에프 합판에 나무무늬 필름지를 붙여 만든 싸구려 가구일 뿐이다.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나는 인간에게 유해한 존재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의 소명을 저버리거나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한 건 아니다. 나는 최소한 무책임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내 몸에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책을 얹었고 나는 그것들을 버텨냈다.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휘거나 넘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기댄 책들은 항상 수직을 유지했고 구부러지지 않았다. 보라, 내가 쓸모없는 가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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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그 여자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저렴하면서도 몸에 해롭지 않은 원목 가구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무언가를 찾아냈고 식구들에게 나를 버려야겠다고 했다. 그때, 그가 말했다.


그냥 두세요. 우리 집엔 애도 없는데 누가 아토피에 걸려요. 저 며칠 안에 나갈 거예요. 그때 가져갈 테니까 저 나가고 나면 새로 하나 사세요.”

 


그날 밤 그의 일기장에 한 페이지가 더 늘었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생각한다. 담뱃잎은 깨끗이 태워지는데, 필터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도 누추하게 버려진다. 길바닥에 버려진 꽁초를 욕할 게 아니라 담배를 끊을 일이다.


 

나는 내 주인이 나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가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는 며칠 안에 나간다고 해놓고 몇 달이 지나도록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 결국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고 미움만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몸에 스티커를 붙이고 소각장으로 끌려가는 게 모든 유행 지난 가구들의 팔자겠지. 내 선배들도 다 그랬을 것이다. 자개, 호마이카, 티크... , 그런 거 아니겠나. 엠디에프 뒤에 또 무엇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것 역시 주목받고, 사랑받고, 미움받다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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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이었다. 온 신경을 건드리며 땅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친환경 어쩌구하는 문구와 함께 어린이집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친환경, 무엇이 어떻게 친환경이란 말인가. 저렇게 땅을 파헤치고 콘크리트 덩어리를 쌓은 후 나무를 몇 그루 심으면, 마감재로 나무를 쓰면, 그게 친환경이냔 말이다.

 


그날부터 공사장의 소음은 내 휴식을 방해했고 내 주인의 집중력을 빼앗아갔다. 그는 집에 돌아온 후로 종일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를 붙잡고 있지 않을 때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거나 썼다. 여러 권의 책을 들추어보며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남들은 모두 일을 할 시간에 저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책이란 읽으라고 있는 것이지 베끼라고 있는 게 아니잖나. 무슨 건설회사를 다니다 때려치웠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저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다 짤렸을 게 분명하다.

 


시끄럽다고 투덜대던 그는 근처의 도서관에 나가기 시작했고 이른 아침에 나가서 늦은 저녁에야 돌아왔다. 그가 일주일째 도서관에 나가던 오늘 저녁 그의 어머니가 동생에게 말했다.

 

도대체 니 형이란 놈은 이해를 못 허겄다. 잘 댕기던 직장 때리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왼종일 뭐허는 짓이라냐. 나이를 묵었으믄 장개 가서 처자식 거느리고 살 생각을 허야지. 저라고 있으믄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 저래갖고 결혼은 언제 허고 집은 언제 사겄냐. 꼴랑 차 한 대 있던 놈이 그것도 팔아묵더만 소설가가 되겄다나 워쩐다나 참말로 기가 맥혀서 못 살겄다. 저 노무 책장은 또 왜 못 갔다 버리게 헌다냐. 인자 낡아서 쓰도 못 허것구만 뭔 꿀단지라도 감춰놨나 왜 존 놈으로다가 새로 사다준대도 저 지랄인가 모르겄다.”

 

나둬요. 형 이상한 게 하루 이틀 일인가. 알아서 하겠지.”

 

아니다 저 귀신같은 거를 형 없을 때 니랑 내랑 갖다 버리자. 당장 주문해서 하나 맞추고 새 거 나오는 대로 저것을 갖다 버리야겄다.”

 


이제 며칠 안에 나는 버려질 것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이란 놈은 집에 들어와서 씻자마자 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다 늦게 무슨 바람이 불어서 네가 소설가가 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걸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는 이제 곧 버려지게 될 거야. 아마도 네가 집을 비운 사이에 그리 될 테지. 너는 돌아오고 나서야 네 책들이 내가 아닌 새 책장에 꽂힌 걸 보게 되겠지. 서운해하지는 마. 모든 만남에는 처음과 끝이 있는 법이니까. 네가 건축기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듯 나도 싸구려 가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나에게는 아직도 평화로운 숲의 기억이 있다. 네가 작가가 되어서 글을 쓰면 언젠가 네가 쓴 책이 내 몸에 놓이게 될 줄 알았는데 그 전에 내가 떠나게 되는구나. 네가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잊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썼으면 좋겠어. 이야기가 남는 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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