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6. 18. 화요일
편집부 홀짝
딴지 독자들에게 인사 드린다. 나는 얼마 전 진행되었던 대민족정론지
딴지일보의 공채를 통하여 새로운 노예수뇌부가 된 '홀짝'이야. 딴지는 역시 대민족정론지답게
졸라 까다롭고 복잡하면서도 엄청 과학적인 인재 채용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었어. 이 험난한 과정을 통과한
나는 딴지일보에 들어오는 게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못
믿겠어? 진짜야 우리 엄마는 드디어 아들이 노예가대기업 신입사원이 되었다면서 피눈물을
막 뚝뚝 흘리셨다니까?
독자제위들은 졸라 궁금할거야. 내가 과연 어떻게 이 어려운 과정을
헤치고 딴지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말야. 비결은 정말 간단해.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머리를 가졌거든
벌써부터 이게 어디서 쌩구라를 치고 있냐는 댓글을 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내 말에는 진짜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난 정말 대한민국 최고의 머리를 가지고 있거든.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 최고의 두뇌가 아니야. 최고의 머리라고. 설마 아직도 못 알아 듣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난 머리가 졸라 커
내가 딴지일보에 입사한 지 3일쯤
되었을 때였나? ‘더딴지’ 기획회의 때문에 필진님들을 한
자리에서 뵐 기회가 있었지. 회의 중 갑자기 필진들이 머리 크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저마다 본인이 ‘한 머리’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시더라고… 머리가 큰 네 명의 필진들이 자칭 ‘판타스틱4’라며… 그 순간, 신입사원
따위인 나는. 감히. 그만.
가소롭다는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어.
어디서 감히 머리 크기를…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어느 한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야 하는 법. 이점에서
나는 매우 큰 선천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 덕분에 삶이 아주 쬐끔 불편해지긴 했지만, 타고난 천재들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랄까? 뭐 그런 거라 생각하고
있어. 그럼 나의 선천적 불편함혜택이 어떤 건가에 대해서 함 얘기해 보자. 하아, 벌써부터 눈물자부심이…
혜택 하나, 키 높이 효과
머리가 큰 게 키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론 별 상관이 없는 것이
보통이지. 너희들같이 평범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상식으로는 말이야. 그니까 잘 들어바바. 내 키는 정확히 178센치야. 어느 날이었어. 키가 174센치인 친구와 나란히 길을 걷는데, 뒤에 따라오던 다른 친구가
우리를 보더니 등을 맞대고 서 보라고 하더라고. 뭔가 싶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여기서 친구가 기막히게
신비로운 현상을 발견했지. 그 사실이 뭐냐면,
174센치인 친구의 어깨 높이가 나보다 높았던 거야
말 그대로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내가 창대 했던 거지. 9회말 역전
만루 홈런 보다 더 짜릿한 역전승을 내가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난 한층 더 내 머리에 쪽팔림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 아 시바… 잠깐 눈물 좀 훔치고 오자.
혜택 둘,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이건 뭐 사실 별 거 아닌데, 남고 졸업하고 나서 대학에 입학했더니
여자애들이 그렇게 내 옆에들 못 붙어서 안달이더라?
사진 찍을 때만
이유는 생략하자. 방금 눈물 닦고 왔는데…
혜택 셋, 합법적인 쇼핑질
이번엔 나름 밝은 혜택이야. 너네 중에도 평소에 온/오프라인에서 옷 쇼핑하는 거 좋아하는 애들 많을 거야. 쇼핑이 좋아서
옷을 자꾸 사긴 하는데, 집에는 두어 번 입고 안 입는 옷들이 많아서 가슴 한 켠에 씁쓸한 마음도 들고
그럴 거구. 근데 난 철마다 옷을 사도 그런 거 전~~혀
없다? 왜냐고?
우리 집에 이런 거 졸라 많거든
난 라운드 티를 한 장에 15,000원 이상 주고 사는 짓을 세상에서
제일 병신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석 달 이상 못 입을 거를 뭐 하러 비싸게 주고 사? 라운드 티를 몇 번 이상 입으면 목이 하나 같이 위에 사진처럼 축 늘어지기에 별의 별 방법을 다 써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옷을 입고 벗었는데 그래 봤자 무쓸모더라구.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싼 옷을 자주 사서 입자! 라는 결론에 도달했지. 덕분에 난 새 옷처럼이 아니라 진짜 새 옷을
거의 매일 입고 다닐 수 있다는 얘기.
혜택 넷, 야간 자율 학습 제외
나의 유별난 머리 크기는 심지어 고3때도 합법적으로다가 야자를 쨀
수 있게 해주었지. 이유는 이래. 고3이 되니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루에도 대여섯 시간씩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지. 여기서 키워드는 ‘고개를 숙이고’야. 그때 난 깨달았지. 그렇게 장시간 내 머리를 지탱하기에는 내 목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을 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몹시 아프고 뻐근했고, 나는 주기적으로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야 했어. 물론 그때마다 나는
야자를 쨀 수 있는 합법적인 핑계를 얻을 수 있었지.
야자, 내 목이 고통 받는 시간
나는 자신 있게 단언 할 수 있어. 내 머리 사이즈가 평범했거나 내
목 근육이 비범했다면 난 분명히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을 거야. 강철 어깨를 가졌으나 팔꿈치는 유리 같이
약한 투수의 비애랄까? 확실히 말해둔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거라고!
혜택 다섯, 조직 단합 효과
벤치 클리어링이라고 들어봤지? 프로야구 경기에서 빈볼 시비 같은 게
붙으면 종종 일어나는 ‘벤치 클리어링’. 벤치 클리어링은
팀의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결과에 따라 오히려 팀의 경기력에 긍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대학 2학년 때, 나는
벤치 클리어링을 실제로 경험했었어. 과 대항 야구 대회의 예선 1차전이었지. 그때 내 포지션이 포수였는데, 내가 포수를 보기에는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지 뭐야. 그게 뭐냐면…
포수 핼맷이 맞지 않았어
머 할 수 없이 포수 마스크만 쓴 채로 시합을 뛸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이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거지. 상대편 타자가 헛스윙을 했는데, 그만 허공을 가른 배트가 포수를
보던 내 뒤통수를 강타했지 뭐야.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머리를 움켜잡고 나뒹굴었고 순식간에 경기장은
난리가 났지. 나는 잘 듣지 못했는데 하필이면 상대 팀 누군가가 한 얘기를 우리 팀이 듣게 된 거야.
‘아니
시바, 지 대가리가 큰 것 땜에 핼맷을 못 써서 다친 걸 우리더러 어쩌라고…’
그리고는 한 판 난리브루쓰가 벌어졌지. 정신을 차리고 내가 일어났을
땐 이미 양 팀 선수들이 다 엉켜서 죽이내 살리내 하고 있는 중이었어. 그 와중에 사건의 발단을 듣고
나니 내가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뭐 딱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
야야, 졸라 쪽 팔려 죽겠으니까 그만하고 들어가라 쫌
여튼 그 난장판이 끝나고 나서 우리 팀은 경기에서 이겼어. 그게 나
땜에 벌어진 벤치 클리어링으로 인해 단결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는 차마 내 입으로 말 못하겠지만 이겼으니 장땡인 거지.
그리고 우린 거짓말처럼 2차전을 지고 말았다…
혜택 여섯, 누명 탈출 효과
휴. 내 머리 사이즈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독자 여러분들이 이걸 읽을 생각을 하니 졸라 쪽팔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어. 자, 이제 다 왔다. 사실
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지금부터 소개할 내용이야.
너네 중 이런 거 차 본 적 있는 사람 손?
나는 있다. 그것두 우리 집 거실에서. 2008년 이었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출국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학교 앞에서 송별회를 하며 밤새 술을 마셨지. 그리고는 아침 8시쯤
귀가했는데, 누가 자꾸 벨을 누르는 거야. 그냥 별 거 아니겠지
하고 무시했는데, 벨을 3분 동안 계속 누르더라? 뭔가 기분이 싸해서 문을 열었더니 사복 형사 둘이서 왠 편의점 CCTV 사진을
보여주면서 나한테 묻더라고.
“혹시 사진 속 인물이 OOO씨
맞으십니까?”
“예… 맞는데요?”
“당신을 특수강도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난 사진 속 인물이 나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혹시나 내가 계산한
체크카드가 잘못된 줄 알고 내가 맞다고 대답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체크 카드가 아니라 흉기였던 거야. 졸지에
난 특수강도 용의자가 된거고.
그제서야 뭔가 잘못된 걸 깨달은 나는 그때부터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거지. 형사들은 범인이 나라고 확신한 듯, 욕까지 하면서
우리 집 쇼파에서 날 눕히고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웠어. 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 했고. 왜냐면 난 일주일 후에 캐나다로 출국해야 했으니까.
“저 아니라구요! 저 다음
주에 캐나다 가야 한단 말예여!”
“너 이 새퀴! 캐나다는
왜 가? 도피하려고 한 거 아냐?”
그때 난 생각했지. 이거 제대로 X됐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고작 편의점 털어서 도피를 캐나다로 할 리가 없는데도 말야.
동네 문방구 털어서 외제차 사는 것도 아니고 이거… 여튼 그렇게 난 사복 형사들에게 끌려 OO경찰서로 잡혀가게 되었어. 아파트 주민들 눈도 있고 해서 순순히
따라갈테니 수갑만은 풀어달라는 요청을 형사들이 들어 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근데 말이다. 차를 타고 경찰서를 향하는 데, 내가 생각해도 사진 속 범인이 나랑 너~무 똑같이 생긴 거야. 검은색 뿔테 안경에 입고 있던 점퍼까지 말야.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이 평소 내가 자주 술 마시던 동네여서 급기야 나는 내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지 뭐야. 혹시
내가 술 먹고 필름이 끊겨서 사고를 친 건 아닌지… 물론 단 한 번도 술 먹고 취해서 그런 짓을 한
적은 없지만 니들도 겪어 보면 안다.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멘탈이 어떻게 찢어지는지. 그렇게 난 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빠졌고, 그렇게 경찰서
강력반에 앉게 된 거지. 정면, 측면 간단한 사진 촬영을
하는 건 필수 코스였어.
아 시바 졸라 억울해
경찰서는 낯설었어. 강력반 안에 있는 형사들은 하나 같이 나를 벌레
보듯 쳐다봤지. 완전히 혼이 나가 있는 상태로 앉아있는 나에게 형사가 또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어. 다른 편의점에서 2차 범행을 하고 있는 범인의 사진이었지. 그리고 나는, 무릎을 탁하고 쳤다.
사진 속 범인이 내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한 무언가가 있었거든!.
“형사님! 이거 저 아닙니다!”
“또 뭔 소리야? 자꾸
개소리 할래?”
궁금하지? 내가 왜 스스로의 의심을 풀었는지?
사진 속 범인은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아무리 취했어도 야구 모자를 쓰지 않습니다. 맞는 모자가 없거든요!”
이보다 더 완벽한 알리바이가 어딨어? OO경찰서 강력반은 순간
충격에 휩싸였어. 그리고는 범행 사진과 내 얼굴(정확하게는
머리)를 번갈아 가며 들여다 보기 시작했지. 난 자유의 몸이
된 거야. 난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망을 깬 거라구. 내 머리
사이즈 하나로!
결국 난 무혐의로 풀려났어. 단순히 머리 사이즈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오바고, 당시 사건 피해자가 내 사진을 보고는 아니라고 진술했데. 한
가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내 머리 사이즈가 자칫 길어질 수 있었던 내 조사 시간을 상당히 짧게 만들었다는 거야. 어이 없는 내 말 한 마디에 형사들이 ‘아 얘는 진짜 아닌가 보다’ 생각했었다 하더라고.’ 4000여 장의 사진 대조 끝에 나를 범인으로
특정한 형사들은 멘붕에 빠졌지만, 나에게 미안해하며 다시 나를 집으로 태워다 줬지.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를 잡아갔던 형사님의 한 마디를 난 잊을 수가 없어.
“너 진짜 머리 크긴 하더라.”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어때? 이
정도면 엄청난 혜택이지? 나를 감옥에서 빼내 준 거라고 내 머리가!
그리고 지금 나는 당당히 딴지일보 사무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어. 최고의
머리를 가진 딴지일보의 신입사원이 되어서 말이지. 내가 누린 가장 큰 혜택은 딴지일보에 들어 온 거라
해도 무방해. 혹시나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탐나는 독자제위가 있다면 한 마디 할게.
나랑 머리 크기로 한 판 뜨자
만약 나보다 머리가 큰 사람이 있다면 내 자리를 비워주지. (편집장님이
허락하실지는 장담 못 하지만)
몇 년 전인가. 나는 내가 가진 선천적 재능이 너무 원망감사한
나머지 우리 어머니에게 이렇게 얘기했어.
“엄마! 엄만 왜 일케
내 머리를 크게 낳았어?”
드라마를 보면서 내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단 한 마디로 내 입을 막아버리셨지.
“야 이 새퀴야, 내가
너 자연분만 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니들도 꼭 부모님께 효도해라. 졸라!
편집부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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