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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11. 목요일

raksumi








한국은 메르스 때문에 난리인 것 같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한국=메르스’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너네 집은 괜찮니?”, “이번 여름 한국에 가려고 하는데 어떨 것 같니?”,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거 같니?” 등 많은 질문을 해오니까요. (저는 미국에 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해서 점심시간에 가만히 남의 얘기를 듣고만 있는데, 위와 같은 질문들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메르스가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 알아보도록 합니다.


사실 언론에서 기사를 너무 선정적으로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핵심은 집지 않고 자극적이고 가식적인 기사만 만들어 낸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표적으로 ‘공기 감염’의 경우, ‘메르스가 공기 감염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 마구 나오더니 이제는 잠잠해졌습니다. 뭐가 중요한 지, 뭐를 알아야 하는지를 짚어주어야 하는 데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시사인> 기사를 좋아합니다. 깊이도 있고 사실 관계도 명확하게 짚어주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시사인> 오윤현 기자님의 신종플루에 관한 기사는 의사인 제가 봐도 깊이가 있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이번에도 괜찮은 기사가 하나 나왔는데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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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정부의 대응책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 기사를 참조하여 어떤 게 문제인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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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14번. 16번 감염자가 슈퍼 감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월 18일부터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를 여행한 1번 환자(최초 감염자, 68)는 바레인에서 카타르를 경유해 5월 4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메르스의 잠복기는 2~14일로 추정되므로 증상 없이 입국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매뉴얼은 증상이 없더라도 메르스 발생국에서 입국했다면 역학조사관이 문진하도록 했다.


매뉴얼이 검역 단계에서 ‘메르스 발생지역(위험지역)’으로 명기한 나라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7개 국가다. 같은 매뉴얼 1쪽의 발생 현황(2014년 12월 13일 기준)을 보면 10개국이 발생 국가라는 통계가 실려 있다. 매뉴얼 안에서도 오락가락이다.


1번 환자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를 거쳤지만, 최종 출발국이 바레인이어서 역학조사관 문진 대상에서 빠졌다. 앞서 메르스 발생 국가를 거쳐간 사실이 파악되지 않은 것이다. 경유 국가를 파악하지 못하고 최종 출발국만 기준으로 한다면 매뉴얼은 하나마나한 소리가 된다.


비행기를 타 본 분들은 알겠지만 출입국 신고서에 꼭 경유한 나라를 적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분이 신고서에 경유한 나라를 적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분과 함께 무사히(?) 메르스가 한국에 들어옵니다. 이게 정부의 첫 번째 실수입니다. 경유한 나라를 알아보는 것은 항공권 연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일이고, 문진을 하면 쉽게 드러나는 일인데 말입니다.


“일주일 뒤인 5월 11일 1번 환자가 발병했다. 그는 이튿날인 5월 12일 충남 아산서울의원을 찾았다. 5월 12일, 14일, 15일 외래 진료를 세 번 받고,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경기도 평택성모병원 2인실에 입원했다. 5월 17일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365서울열린의원 외래 진료를 받고 귀가했다. 중동 지역을 여행한 뒤 병원을 찾았지만 처음 네 곳 중 어느 병원도 메르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5월 18일 다시 삼성서울병원을 찾았을 때, 의료진은 1번 환자가 바레인을 방문했다는 말을 처음으로 듣고 메르스를 떠올렸다. 발병 일주일 만이었다. 이미 곳곳에 바이러스를 노출시킨 뒤였다.”


여기에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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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오전. 처음으로 1번 환자의 바레인 여행 경력을 듣고 메르스를 의심한 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질병관리본부에 검사를 요청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당시 메르스 검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본부는 검사를 거절했다.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질병관리본부는 1번 환자의 경유국에 발병 국가가 있다는 정보를 놓쳤다.

대신 12가지 호흡기 질환이 아닌지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은 12가지 검사를 다 해본 뒤, 그래도 이상이 없어서 다시 검사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 가족이 정부 고위직 친척까지 거론하며 메르스 검사를 애원하다시피 해야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보건 당국은 5월 19일 검체를 채취했고 20일 오전 확진 판정이 나왔다.”


환자 가족이 정부 고위직 친척까지 거론했다는 점이 참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질병 본부에서는 담당 의사에게 “메르스가 안 나오면 책임질 거냐?”라는 말도 했다더군요. 검사해서 음성으로 나오면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처음에 환자를 검사하려고 한 의사도 엄청 고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정말 어렵게 메르스를 진단했고, 이 분이 1번 환자가 됩니다. 이런 문제는 초기 대처가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 할 때, 질병본부가 검사를 어렵게 하고 1~2일을 지체시켜 초동 대처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두 번째 잘못입니다. 그 동안 1번 환자가 충남 아산서울의원, 경기도 평택성모병원 그리고 365서울열린의원을 거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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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사인)


5월 20일에 첫 메르스 환자가 나오고 삼성병원에서는 이 1번 환자와 접촉했던 환자들과 의료진을 격리시킵니다. 적어도 1번 환자에서만큼은 삼성병원에서 2차 감염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칭찬 할 만합니다.


그 후 보건 당국이 환자 감염 경로와 접촉자 추적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세 번째 실수를 합니다.


“5월 19일 신고가 하루 늦게 접수되면서 보건 당국이 환자 감염 경로와 접촉자 추적조사를 시작했다. 일단 의심 환자가 발생했다면 추가 감염자를 막는 게 보건 당국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감염 경로가 과학적으로 확증되지 않은 만큼 최대한 폭넓은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건 당국은 1번 환자 접촉자를 산정할 때 매뉴얼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같은 병실’로 기준을 한정했다. 이 기준에서 접촉자는 64명이었다.”


이 CDC기준이라는 게 좀 애매해서 어떻게 보면 최소 기준입니다. 하지만 병원에는 병균에 감염되기 쉬운 사람이 입원하게 마련이고, 우리나라의 병원 문화(환자들 밀도가 높고 병문안을 자주 오는)를 감안할 때 접촉자 기준을 CDC기준 보다 더 넓게 잡아야 했습니다.


“5월 28일 1번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있었을 뿐 같은 병실을 쓰지 않았던 71세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 당국의 대전제가 무너졌다. 발병 가능한 접촉자가 훨씬 더 많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보건복지부는 접촉자 전면 재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초기 대응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당국의 ‘매뉴얼 무능’을 극적으로 드러낸 장면이 있다.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에서 3번 환자를 간병한 딸이 증상을 호소하며 메르스 유전자 검사를 요구했지만 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5월 21일 KBS가 보도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KBS에 이렇게 말했다. “38℃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관찰 대상이고 자가 격리 대상이에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2차 감염을 막아야 하는 단계에서, 당국은 매뉴얼을 붙들고 의심 환자를 돌려보냈다. 딸은 5월 25일 양성 판정을 받아 네 번째 환자로 기록되었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병을 관리하자고 메뉴얼이 있는 것인데 메뉴얼만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복지부동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열이라는 것이 딱 정해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오를 수도 있는데, 의심되는 환자를 이런 식으로 다루니 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갑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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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그러던 5월 27일, 평택 성모병원에서 감염된 14번 환자가 삼성병원 응급실로 옵니다. 여기서 그는 3일 동안 있었고, 900명 가까운 사람들과 접촉을 하였습니다. 환자는 처음에 평택 굿모닝병원에서 왔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 때까지 삼성병원에서도 평택 지역에 메르스가 그렇게 퍼져있는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물론 평택 성모병원이라고 했으면 알아챌 수도 있었겠지만요. 삼성 병원장의 기자 회견을 보면, 정부 측에서 정보를 안 줘서 그랬다는 식의 뉘앙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삼성 병원장은 공교롭게도 감염학 전문의입니다. 그 때까지는 환자 개개인에게 연락해서 주의를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때라도 정부에서 정보를 공개하고 병원에다가 주의 환자에 대한 지침을 내렸다면 적어도 삼성병원 응급실에서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그 때 삼성병원 감염학 스태프들이 (1번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손부족으로 대처를 못했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사실 문진을 열심히 하면 알 수도 있었을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에서 그렇게 문진을 하다가는 병원 망하기 딱 좋습니다. 환자를 기계적으로 많이 보고 빨리 봐야 겨우 수지를 맞출 수 있으니까요. 모든 열이 있는 환자에게 “너 어디에서 왔니?”, “중동은 갔다 왔니?”, “중동에 간 사람이나 열이 나는 사람 근처에 간 적 있니?” 라고 물어보면서 문진 할 수는 없었겠죠.


한편,


“5월 26일,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썼던 3번 환자의 아들이 발열 증상이 있는 상태로 중국으로 출국했다. 보건 당국은 그의 존재도 모르고 있다가 출국 사실을 27일에야 확인했다. 3번 환자의 아들은 아버지가 확진 판정을 받은 5월 21일 집 근처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메르스 진단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는 “보건소에서 안 하니까 병원으로 가시거나 서울에 가시거나 그렇게 진단을 받으시라”는 답을 들었다. 국내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상황에서 방역망의 최전선인 보건소에 상황 공유가 안 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메르스는 사망률이 40% 밖에 안 되지만, 회사에서 잘리면 사망률이 100%여서 출장을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웃픈’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제 날짜가 꽤 지났으므로 평택 성모병원에서는 새로운 환자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6월 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된 90번 환자가 을지대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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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병이 있어 원래 삼성병원을 다니던 환자로, 삼성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환자가 격리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을지대 병원에다가 삼성병원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 90명 정도를 접촉을 했다고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환자 내원 기록은 8일부터 공개되었고, 그 전의 행적은 전적으로 환자들의 진술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을지대 병원에서 눈치를 못 챈 것 같습니다. 이 환자는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상으로 어떻게 메르스가 퍼졌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런 감염성 질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동대처이고 환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격리와 역학 조사가 힘들어 집니다. 보건 당국은 옆에서 보기에 오버스러울 정도로 초기대처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타난 메르스의 전파 양상을 알아보고 대책을 제안해보겠습니다.


아주대 임승관 교수님의 <2015년 MERS-CoV 한국 유행의 간략한 분석 및 대책 제안>을 참고로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위에서 정부의 초기 대응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초기에 잘 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이제 미국에서도 한국의 메르스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메르스 때문에 9명이 사망하고, 2,500명 정도가 격리되어 있으며, 메르스로 판명된 사람은 100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격리된 사람을 다 감시 할 수 있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듭니다. 공무원과 의사 숫자는 그대로이기 때문이죠. 거기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그 많은 사람 중 한두 명이 기관의 말을 안 듣는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행히(?) 메르스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모든 사례는 ‘병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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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의 모습

(사진- 좌린)


메르스 바이러스의 감염력(infectivity)은 높지 않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비말감염(편집자 주- 공기매개감염. 기침이나 대화 도중의 침 방울 등으로 균이 전파된다)이니까요. 다만 한국의 특수한 병원 환경(밀도 높은 환자 수, 많은 방문자 수) 때문에 바이러스가 기본 감염력을 뛰어넘어 유행할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70세가 거의 다 된 노인분이 병실에서 기침을 하실 때 마스크를 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2. 확진 환자와 역학적 인과성 없이 발생한 사례는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감염된 사람은 아직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다 인과 관계를 거쳐서 감염이 되었고 모두 감염 경로를 설명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역사회에서 감염의 사슬이 잘 형성되지 않는 겁니다. 



3. 격리 치료 병원(음압병실)에서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가 발생한 사례는 없습니다.


의료 기관과 의료진이 준비가 된 상태에서 MERS-CoV의 노출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4. 메르스가 유행한 병원들에서도 확진자를 인지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한 뒤에 새로 감염된 사례는 없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비말에 의해 전파되기 때문에 음압병실이나 특수 보호 장구가 없더라도 기본적인 비말주의(droplet precaution)만 잘 지키면 됩니다.



5. 접촉자로 분류되어 가택격리를 받다 확진되었을 때 그 가족의 감염 사례는 없습니다.


무증상 잠복기에는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을 만큼 바이러스가 체외로 배출되지 않습니다. 증상이 없을 때는 꼭 격리되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발생하면 바로 조치해야 합니다.



6. 메르스에 걸리면 반드시 증상이 나타납니다.


환자는 괴롭겠지만 병을 컨트롤하기에는 상당히 유리합니다.



정리하자면, 메르스에 걸리면 반드시 증상이 나타나고, 증상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열이며, 열이 나고 기침이 나야지 전염이 됩니다. 그러니까 접촉자의 경우 가정에서 기본적인 원칙만 준수한다면 추가 감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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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같이 교육 수준이 높고, 지금처럼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이 정도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에선 열나고 증상 있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관리를 하고, 병원 감염에 초점을 더 맞추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p.s: 글을 작성하는 중에 115번 환자가 생겼습니다. 응급실이나 같은 병실을 써서 감염된 다른 환자들과는 다르게 삼성서울병원에 외래환자로 갔다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좀 더 알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










raksumi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