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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20. 목요일

멀더요원






얼마전 처가에 갔다가 장인어른께서 경작하시는 매실밭에 가서 일을 도와드렸는데, 여태까지 식물에서 무언가를 수확하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일이었다.

한쪽에서는 매실을 따고, 한쪽에서는 수확된 매실을 상태에 따라 분류했는데, 양호한 것은 팔고 좀 안 좋은 것은 자식들에게 나눠주신다고 했다. 전에 TV에서 어떤 심마니가 '이건 자식한테도 주지 않는다.'라면서 자기가 먹는다고 하던 걸 봤었는데, 좋은 걸 남에게 팔고 후진 걸 식구들이 나눠갖는다니... 농업 생산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약간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제일 좋은 걸 나와 내 가족이 갖고 그 다음 걸 파는 게 아니었나? 처가 식구들과 얘기해보니 그동안 장인어른께서 감자, 고구마 등 농사 지을 때마다 가족들은 제일 후진 걸 먹고 있었고 다들 불만은 좀 있었지만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초딩아들에게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제일 좋은 걸 가족이 먹어야 해요. 왜냐하면 좋은 걸 다 팔고 나면, 우리 가족들은 맨날 안 좋은 거만 먹어야 하잖아요." 라고 했다.

하핫. 섀키... 마이 컸다. 제대로 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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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열심히 일해서 생산한 물건 중에서 가장 좋은 걸 내다 파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소비자에게 양질의 물건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같은 종류의 상품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품질이 좋을 수록 팔릴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곧 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잘 팔릴 상품을 위해 가족들에게 어느 정도의 희생은 늘 요구되어 왔다.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들어서 내다 팔아야 돈을 벌고 그래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로 시작되는 논리. 전형적인 '수출중심 경제체제'의 논리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국가적 차원이 아닌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아주 당연히 자리잡고 있다. 학창시절 도덕 시간부터 국민윤리 시간까지 사회에 대해 얘기할 때면 늘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하는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해 왔으나, 우리 사회는 정확히 그 상황에 들어와 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라면 가장 좋은 걸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게 더 우선일텐데, 왜 좋은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서 내가 갖기보다 남에게 팔아 돈을 버는 것에 더 강한 욕구를 갖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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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든 지배계층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저항은, 지배계층의 입장에서는 일단 기분이 나쁠 뿐만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그 권력이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아마도 꽤나 피곤하고 찝찝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저항을 실질적인 무력을 가진 권력은 무력으로, 돈을 가진 권력은 돈으로 (무력을 구매해) 제거 해왔는데, 무력을 직접 사용하는 방식은 늘 거칠고 위험하며 단기적이고 촌스러운 방식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돈으로 해결하는 나름 세련된 통제 방식이 최종적으로 선택되었다.

물론,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누군가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제어장치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권력이든 돈이든 처음에는 다소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악행이라는 것이 처음 한번이 어렵지 일단 양심을 한번 버리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점점 더 쉬워지고, 악행의 크기도 남은 양심의 크기와 반비례하여 점점 대담해지는 법이다...

마치, 일제가 패망한 8월 15일에 자신들이 곧 죽게될 것이라고 잔뜩 쫄았던 친일파들의 행동이, '목숨만 살려줬으면'에서 시작해서 '나만 친일한 것도 아닌데...'라는 변명을 거쳐 '내가 뭘 잘못했냐...',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시켰으므로 친일은 애국이다!'로 발전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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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바늘도둑은 그냥 놔두면 별 일이 없는 한 소도둑이 된다.


그들의 성공 이후,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저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자신들의 도둑질을 '노력을 통한 성공'으로 포장하였다.

시스템은 '교육'을 통해 '너희들도 시키는대로 말 잘 들으면 소도둑이 될 수 있다'라는 안전 장치를 사람들에게 심었으며, 그 시스템을 매우 빠르게 움직여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폭력이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항을 포기하였을 뿐만아니라 자신들도 그 권력의 한 부분이 되고 싶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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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출세해라. 잘 태어나든가...


그리고, 그 중 아주 일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도둑으로 성공하였고 기존의 소도둑들보다 더 험악한 '갑질'을 했는데, 사람들은 그것 역시 '소도둑으로 성공한 자의 권리'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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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는 개천에서 용 난 경우 말고, 어릴적부터 왕족이었던 분이 계신 듯


더 나아가, 시스템은 교육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한 '투쟁'을 하게 만들었고, 돈을 벌지 못한 사람은 매우 비참한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돈은 곧 생존이 되었다. 결국, 수단과 방법에 상관 없이 돈을 버는 것은 사회의 최고 목표이며, 그 돈을 이용해 무엇을 하든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돈이 무치(無恥:부끄러움이 없는)의 권력을 갖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의 시대정신은 '돈'이며 따라서 그 외의 것들은 대체로 다음 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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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사자 새끼들이 서로 장난을 치거나 작은 쥐를 갖고 놀면서 사냥에 필요한 기술을 터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동물은 놀이를 통해 배운다.

인간도 역시 놀이를 통해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성장 과정에서 남자의 경우는 '영웅', 여자의 경우는 '공주'가 되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것이 제대로 채워지지 못하는 경우 '욕구 불만'이 될 수가 있고,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끊임없이 갈망하게 된다고 한다.

사실, 이 경험은 실제 현실에서는 불가능... 아니, 거의 불가능한 경험이다.(세상에 공주가 몇명이나 된다고... 유럽이랑 중동에 좀 있고... 일본에도 있는 것 같고... 한국에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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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공주있구만 뭘...


예를 들어, 박지성처럼 축구를 잘해서 다른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싶지만 현실은 '개발'이라거나, 80년대 미국 롹밴드처럼 잘 생겨서 주변에 여자들이 바글바글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70년대 배철수'라든가... 이러한 경우, 현실세계가 아닌 가상세계에서 그 부족한 욕구를 채우려 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찌질하지만 게임의 세계에서는 영웅이 되기도 하며, 카지노에서 운이 좋으면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것은, 심한 경우 '중독'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이 경험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린시절 놀이를 통해서라도 그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 잘 놀아야 한다.


2~30년전 동네 아이들의 놀이를 생각해보자. 그 시절의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서로간의 네트워킹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아왔다. 친구, 형, 동생들로 이루어진 동네의 작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통해, 앞으로 어른이 되어 겪게 될 실제 사회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안전하게 미리 경험하였다.

아이들은 짬뽕 공 하나로 야구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파생된 각종 놀이를 했다. 쪽수가 안 맞는 경우, 미숙한 친구에게 '깍두기'라는 '사회적 배려'를 했고, 어쩌다 편을 '쫄리게 먹은' 경우에는 잘하는 친구로 선수를 교체해주는 '관용'도 베풀었으며, 더 재미있는 놀이를 위한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내거나 변경하였다.

게임이 끝나면 진 팀을 벽에 붙여 세우고 공을 던져서 맞추는 '사형'은 게임을 대하는 태도를 보다 진지하게 함과 동시에 사형 집행자의 '인간적 고뇌'를 경험하게 하기도 했다.


문방구점에서 산 각종 딱지로는 정말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글자의 수'와 '별의 수' 등을 이용한 '도박'을 통해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도 했고, 딱지의 '비행시간'과 '비행거리'를 길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였다.

종종 딱지로 인해 엄마한테 크게 혼났을 때는 옥상에서 '딱지 뿌리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권력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물질의 덧없음'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얻기도 하였으며, 더 나아가 딱지 획득 기술의 차이에 의한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는 등 현실세계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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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덧없음을 좀 빨리 깨우친 아이


실력이 좀 부족하거나 돈이 부족한 아이들은 '깜부'라는 협동조합을 결성해 딱지나 구슬 등을 빌려주거나 대신 따주는 등 돈 많고 실력 좋은 아이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시절보다 훨씬 잘 살게된 지금, 아이들의 놀이는 그때와 크게 다르다.


시대정신이 '돈'으로 설정된 시스템 속의 아이들은 앞으로 생존에 필요한 도구를 장착하느라 제대로 놀지 못한다.아이들 수도 많지 않고, 그나마도 학원에 있다. 돈 버느라 피곤한 부모들은 장난감을 사주거나, 어떤 식이든 놀이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놀이를 대신하려 한다.

어쩌다 부모가 놀아줄 때는 규칙을 부모가 만드는데, 아이들이 산에서 재밌는 놀잇감을 발견해 뭐라도 하려면 부모들은 차례대로 하라고 줄을 세운다. 그 순간 놀이는 노동이 되고, 자신의 차례가 오면 자신이 정한 규칙이 아닌 어른의 규칙에 따라 해야하므로 재미가 없어진다.

아이들간의 다툼이라도 벌어지면 부모는 '절대자'의 입장에서 모든 분쟁을 조정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스로 분쟁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아이들의 놀이가 2~30년전에 비해 매우 단순해지고 황폐해진 것이다. 이후, 놀이를 통해 인간 관계를 연습하지 못한 아이들은 '6~70년대의 똑똑하고 고분고분한 산업인력을 양성'을 목표로 하던 교육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은 교육을 받는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실제 사회를 연습하는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들게 되고, 그 인간관계에 대한 연습이 덜 된 상태로 청소년기를 넘어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오게 된다.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만 양손 가득 든 채로...

바로 그들이 놀이의 결핍, 욕구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학교에서는 '왕따 놀이'를 하고, 가상세계에서는 '일베 영웅놀이'를 하며 차츰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폭력을 가정과 학교에서 학습하고 군대와 직장에서 실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왕따 놀이'와 '일베 놀이'도 실제 사회에서 실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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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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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도둑질이 반복적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이고 그 도둑질의 성공은 내 바늘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회에 대한 관심은 돈을 버는 것과 무관할 뿐아니라 피곤하기에 사람들은 무관심을 택했고, 그러한 사회적 무관심이 누적된 결과, '부정선거'에도 분노하던 사람들이 '29만원의 학살자'에게도 주제넘는 '약자의 관용'을 베풀었으며 지금은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뉴스거리도 안되는 사회가 되었다.

또한,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결과 가족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아이들도 역시 '돈이 되는 스펙' 만들기에만 에너지를 소진하였기에 '돈 안되는' 놀이 따위에 쓸 에너지가 없다.


결국, 돈은 '사회적 무관심'과 '일베'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사회 시스템을 통제하려는 지배계층의 통제를 더욱 쉽게 해 줄 것이다. 돈을 최고로 여기는 관념이 사회적 무관심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거꾸로 사회적 무관심이 돈을 최고로 여기게 하기도 했기 때문에,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역시 사회적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지금, 그동안 내가 잘 놀았는지, 우리 애들이 잘 놀고 있는지, 다른 집 애들은 잘 노는지... 둘러보자. 놀지 못하면 일베된다...

결론적으로, 이 두서없는 긴 글은... 그냥, 잘 놀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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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우리나라에 히틀러 비슷한 애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하는 주장을 들으면서 우리는 왜 우리가 유럽인의 역사를 반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상황이 히틀러가 등장하던 시기와 많은 부분이 유사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주변 여건상 이 땅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을 합친 정도를 넘어서는 독재 상황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 어디 침략할 나라도 없고... 또, 자라면서 잘 놀거나 특별히 사고도 많이 안 쳐본 사람들이 히틀러 세력만큼 뭔가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별로 안든다.

또한, 독일인이 1차대전 패배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자신들끼리의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경험 정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군 출신이 아니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학벌 좋고 돈 많은 쪽에서 나타날 수는 있을것 같다. 그게 꼭 특정 인물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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