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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24. 월요일

아외로워





굳이 말하자면 관 때문이다.  


관때문이야.jpg 


그렇다. 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장 황보관. FC서울을 있는 대로 말아쳐먹으며 수호신들이 '관 때문이야' 를 떼창하게 했던. 그리고 경질 후에는 수호신들의 입에서 '진짜 관 때문이었어!' 라는 탄식을 내뱉게 한.


관련된 이야기는 이전에도 글을 쓴 일이 있다.


  

 


요약하자면 내가 조광래 감독을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오히려 미워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짜르는 것은 안 될 일이며, 또한 팀에 남고 싶다는 감독을 개 끌듯이 끌고가 지들이 쳐먹을 욕에 몸빵시키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라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 최강희 감독도 전북에 돌아왔다. 대표팀 월드컵 본선 진출 약속을 지켰지만 딱히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금의환향이라기엔 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이게 무슨 꼴인가. 이게 다 관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꼴이 날 줄 알았다.


주먹감자.jpg  


최강희 감독을 오래 지켜봐왔다면 그가 요즘 유럽 축빠들이 좋아하는 이른바 '티키타카'를 구현한 적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는 인물임을 모를 수가 없다. 최강희 감독의 전술은 전통적으로 발빠른 윙어를 활용한 측면 플레이고, 사실상 뻥축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전술이 먹힐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 어딘가에 최고 수준의 외국인 선수를 배치했고, 따라서 빠르고 터프한 한국식 뻥축과, 현란한 브라질 축구가 공존하며 시너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즉, 빠른 측면 자원과 타겟형 스트라이커, 현란한 테크닉으로 스트라이커를 지원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최강희 축구의 기본이다. 측면 자원들은 윙백까지도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하고, 따라서 수비진이 간격을 줄이기 위해 전진하면서 그 유명한 '닥공' 스타일이 완성됐다. 최강희식 축구에서는 공격에 너무 특화된 나머지 이른바 '잠그기' 를 시도하다가 대량 실점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발생했다. 즉 공격력은 뛰어났으나 수비는 약했다. 끊임 없이 공격해서 상대방에게 공격 기회를 안 주는 것이 전북의 가장 효과적인 수비 전술이었다.


다시 말해 최강희 감독의 걸출함은 신묘한 전술이나 용병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최강희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팬들과 댓글 놀이 하면서) 팀 분위기를 만들고, 선수들을 다잡고, 포텐이 있는 선수를 키워주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쉴드쳐주고 하는 대단히 동네 이장스러운 면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줬다. 도대체 어느 나라 어느 팀의 훌리건들이 자기네 팀 감독이 경기장에 나타났다고 급 진정하고 착석하겠는가. 최강희 감독은 서포터들의 멘탈까지 조련할 줄 아는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닥공' 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카피라이터 기질과 더불어, 언플로 상대 감독과 심리전도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한국인 감독이다.


이런 최강희 감독에게는 대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자원이 2명 있었으니, 


바로 최전방 스트라이커 이동국과 공격형 미드필더 에닝요다. 


이동국에닝요.jpg 


물론 에닝요가 3톱의 측면 자원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상 전천후 자원이니 대충 공격형미드필더라 치자. 이동국은 아주 값비싼 지르코니아 세라믹 칼 같은 공격수다. 가장 강력하지만 잘못 쓰면 이가 나갈 수도 있고, 함부로 갈아 쓸 수도 없다. 팀 전술, 팀웍 등을 섬세하게 조율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괴물이 되지만 막쓰면 망한다(전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율이 중요한 거다). 사실 이동국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감독 자질을 어느 정도 파악 할 수 있다. 최강희가 조율한 이동국은 득점왕이자 도움왕이고 올리면 스트라이커, 내리면 미드필더가 되는 전천후 몬스터였다. 


에닝요는 원래 발기술과 포텐셜은 있지만 성격 안 좋고 왼 발도 못쓰는 평범한(?) 브라질 선수였지만 최강희 감독을 만난 여느 악동들과 마찬가지로 팀에 헌신하는 엘리트가 됐다. 사실상 전북과 종신계약을 맺었으며, 오른발 킥은 전설이다. 



지난 4월 3일 ACL 우라와전 동영상이다. 1분 10초 무렵 에닝요의 골을 보자. 에닝요는 거의 오른 발만 쓰는데, 감아차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아웃 프론트로 차는 역회전 킥도 즐긴다. 김형범이 전북 시절에는 회전킥에 에닝요, 무회전킥에 김형범이 있는 환상적인 라인업이었다.



이동국과 에닝요는 최강희 축구의 핵심이다. 


최강희가 팀버튼이라면 이들은 조니뎁과 헬레나 본헴 카터다. 최강희 감독의 스타일은 자칫 밋밋한 뻥축이 되기 쉬우며, 들어갈 슛이 안 들어가고 초조해 하며 뻥축으로 일관하다 지는 것이 바로 전북이 지는 패턴(그리고 이란전 패배 패턴)이다. 이런 망테크를 방지하는 것이 바로 이동국과 에닝요다. 


이동국은 수비수 두세 명을 달고 다니면서도 어떻게든 슈팅을 날리는 공격수다. 또한 에닝요는 혼자서 미드필드진을 뒤흔들고, 여차하면 골도 넣는다. 여기에 측면 자원들이 달리고 동시에 '뻥축'이 전개되면 엄청 현란한 공격이 전개되면서 '닥공'이 된다. 


전북 잘났다는 소리 하려고 이런 글 쓰는 것이 아니다. 최강희 감독의 한계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거다. 최강희 감독은 조재진, 스테보같은 존재감 있는 스트라이커를 갈구했고, 드디어 이동국을 손에 넣은 이후에는 이동국 후계자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2006년, 전북에는 보띠가 있었다. 이후에 헤매다가 루이스와 에닝요가 영입되고 전북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에닝요 대체자 후보로 꼽힌 국내외 선수들도 많았지만 실패했다. 



그렇다. 최강희 감독의 한계는 이동국과 에닝요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촤강희이동국.jpg 


이것은 이 선수들의 연봉이나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팀버튼이 조니뎁을 주구장창 쓰는 것이, 봉준호가 송강호를 쓰는 이유가 연기력이 전부일까? 아니다. 이동국과 에닝요는 최강희 감독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며, 조광래 감독을 이마트 시간제 근로자 짜르듯 짜르고 최강희 감독을 (사실상) 강제로 데려간 황보관씨가 몰랐을까? 글쎄. 몰랐을 수도 있다. 일본 2부리그 오이타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당한 뒤, 무슨 재주인지 FC서울 감독 자리를 꿰어차더니, FC서울 역사상 유래가 없는 시즌 중 경질을 당하고 '관 때문이야'라는 조롱을 들을 수준의 인물이라면 최강희 감독의 장단점이 뭔지 생각도 안 해봤을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장 잘 나가는 감독 아무나 데려다 앉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강희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국가대표팀에서 자신만의 축구를 하려고 했다. 그 노력의 일환이 바로 '에닝요 귀화' 였다. 


에닝요기사.JPG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523028012>


최강희 감독을 '억지로' 끌고 간 축구협회는, 그 억지로 끌려 간 사람이 나름대로 잘해 보겠다고 자기 아바타를 대표팀에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단다. 최강희 감독은 장점도 단점도 확실한 감독이다. 가장 뛰어난 장점은 같이 먹고 자고 뛰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팀 장악력이다. 허준이 울고 갈 힐링 능력과, 선수, 서포터, 구단도 믿고 따르게 만드는 비전 제시다. 단점은 자칫 낡아보일 수 있는 전술과 이동국/에닝요 의존이다. 


국가대표 팀은 클럽 팀과 다르다. 경기 3일 전 소집된다. 감독이 비전을 제시할 여지도 없다. 국축빠들은 월드컵 4강을 원한다. 즉, 최강희 감독의 장점이 발휘될 여지가 없으며, 에닝요 귀화까지 불발됐으니 단점은 극대화 됐다. 


게다가 일부 선수들 마져도 국대를 똥 보듯 하는데, 대표팀에 소집된 공격수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질 않나(이렇게 대표팀 소집 기피가 가능한 것이었으면 최강희 감독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지 이뻐해주는 감독 아니라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미주알 고주알 일베짓 해대며 대표팀을 자기 결혼 기자회견장으로 착각하는 좆뉴비가 있질 않나 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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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지한테는 축구협회 임원들도 굽신거리는데 감독이라고 있는 사람은 노예로 끌려와서 강제 노역 하고 있으니 그게 똥으로 안 보일 수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관 때문이다. 아니다. 황보관 위원장은 무슨 잘못이겠는가. 그를 있게 한 축구협회가 문제지.



자, 이제 월드컵 본선은 홍명보 감독 지휘 아래 치러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바이지만 조광래 감독에서 최강희 감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정말 폐기물같았다. 축구협회가 이모양 이꼴인데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을 달성한 것을 보면 최강희 감독은 진정 위대하다. 그리고  광저우 에버그란데나 베이징 궈안 등 초인기 거대구단들을 십수개 거느리고도 저모냥인 중국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4년에 한 번씩 축구 보면서 감독 짤라라, 저 선수 짤라라 하면서 큰 소리 내는 냄비팬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스포츠의 감동과 국가주의적 감흥을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정말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축구협회가 고맙다. 계속 알아서 잘들 해라. 우리 감독만 또 빼앗아가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을란다.



6월 26일, 최강희 감독이 돌아온다. 황제의 귀환이다.

내 평생 1년 6개월 동안이나 축구 감독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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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습니다. 최강희와 이렇게 빨리 이별하게 될 줄을...






아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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