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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21. 금요일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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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 17일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 경비원 프랭크 윌즈는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출입문 하나에 이상한 테이프가 묶여 있는 것이 눈에 띈 것이다. 수상하면 수상한 것이었지만 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 다른 일을 하다가 붙여 놓을 수도 있겠지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윌즈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다. “누군가 호텔에 불법 침입한 것 같습니다.” 이 신고는 미국 현대사를 뒤흔든, 그리고 미국이 지배하던 세계사에 남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비화한다.



출동한 경찰은 다섯 명의 남자들을 현장에서 체포한다. 수사 결과 이들이 이 호텔에 처음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들은 민주당 선거 사무소가 있던 이 호텔에 얼마 전에도 침입한 바 있던 바로 그 괴한들이었다. 그들은 설치한 도청 장치를 확인하려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닉슨 대통령이 좌정하고 있던 백악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연이어 드러난 것이다.



그때부터 필사적으로 진실을 감추려는 닉슨 대통령 진영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국내에서 지켜져야 할 법률을 위반한 사람의 배후를 캐려는 사람들의 대결이 시작된다. 워싱턴 포스트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그로부터 수십 년 동안 밝혀지지 않은 제보자 '깊은 목구멍(deep throat)'의 제보를 받아 기사를 쓰고 이 막중한 사태의 진실에 접근해 간다.



점차 범인들의 배후가 가시화되던 중 1973년 1월 8일 침입범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졌는데 두 명 이외의 전원이 유죄를 인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죄를 인정했으니 보석을 허가하라"는 투의 뻔뻔스러움에 재판장이 이를 악문다. 무려 30년 형을 언도하는 동시에 그 일당들이 재판에 협력했다는 사실에 대한 재고도 요청한 것이다. 요는 “니들 못믿겠고 한 번 갈 데까지 가 보자”는 것. 이에 질린 워터게이트 침입자들은 스스로의 위증을 인정한다.



닉슨은 계속 코너로 몰렸다. 자고 일어나면 폭로, 쉬고 돌아오면 새로운 사실이 연속부절로 등장했다. 그 가운데 치명적인 것은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오간 대화는 모두 녹음되어 있다는 폭로였다.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 대통령과 그 법률 고문이 나눈 생생한 대화가 음성 테이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 검사 콕스와 상원 조사 위원회 모두 눈이 번쩍 뜨였고 앞다투어 소환장을 발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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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호텔


닉슨도 눈 뜨고 목이 달아날 수는 없었다.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하여 특별 검사를 해임하라고 명령하는데 리처드슨 법무 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사임해 버린다. 그 뒤를 이은 법무 차관도 대통령의 명령을 물리치고 장관 자리를 내던진다. 세 번째 법무부 장관이 특별 검사를 해임하긴 하지만 닉슨은 테이프 대신 그 녹취록을 제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녹취록이 누더기였고 녹취 8분 분량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닉슨에 대한 감정을 악화시켰다.



1974년 7월 24일 대법원은 문제의 테이프에 대해 닉슨의 대통령 특권을 무효화하는 동시에 특별 검사 레온 자보로스키에게 테이프를 넘겨주라는 판결을 내린다. 대법관 만장일치였다. 이후 닉슨의 운명은 명약관화였다. 탄핵이냐 사임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닉슨은 마침내 사임을 결정한다. 미국 대통령 닉슨은 그렇게 몰락한다.



미국 국민들을 가장 분노케하고 여론을 악화시킨 것은 도청 행위 그 자체 탓도 있겠지만 계속된 닉슨의 거짓말이었다. 뻔히 드러나는 사실 앞에서 뻔뻔스럽게 “I'm not a crook." 즉, 난 악당이 아니오! 라고 변명을 늘어놓는 그 얼굴 앞에서 미국인들은 진저리를 쳤고 대통령의 참모들조차 그 명령을 거부했으며 '어쨌든 기자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FBI 부국장 마크 펠트는 ‘딮 스로트’가 되기를 결심한다. 사법부는 일개 도둑들에게 30년형을 선고하여 닉슨의 하수인들을 얼어붙게 했고 대통령에게 핵심 증거를 내놓도록 강요한다. 40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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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throat' 마크 펠트



40년 뒤 한국에서는 국정원이 선거판에서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고 국정원의 장이라는 자가 선거 개입을 대놓고 지시하고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처음에는 만세를 부르다가 점차 진실이 드러나자 “이건 우리 지방청 하나 날아갈 일”이라며 서둘러 덮어 버리고 손을 씻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닉슨의 하수인 몇몇이 민주당의 선거 전략을 훔쳐 보려고 호텔에 스며든 것보다 백 여든 다섯 배는 더 무거운 범죄. 그런데 그런 현실 앞에서 법무부 장관은 그 책임자를 한사코 선거법 위반으로는 기소할 수 없다고 뭉개고, 여당 의원들은 이 참람한 범죄를 제보한 내부 고발자를 '국기 문란'으로 몰고, 수사 검사가 왕년의 운동권이었다고 지랄 옆차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 기관의 공작과 선거 개입의 근절을 책임져야 할 민주공화국의 행정부 수반은 애들이 북침인지 남친인지 모른다며 엉뚱한 거품을 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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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악당이 아니오!



닉슨이 저승에서 땅을 칠 일이다. 나는 어찌하여 미국에서 태어났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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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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