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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25. 화요일
이동현

 







편집부 주


본 기사는 [더딴지] 7호에 실린 기사의 전문입니다.







0 얀 마시스 다윗과 바쎄바.jpg
얀 마시스 <다윗과 바쎄바>

기독교의 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유일신 야훼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이 두꺼운 책에는 성스러운 신앙의 대상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특히 구약성서에는 예수 탄생 이전의 유대 역사와 율법, 민담과 격언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납치와 유혹, 계략과 강간, 근친상간(相姦)과 근친강간(强姦) 같이 충격적인 사건들도 상당히 많다.


육두의 달 유월을 맞아 엄숙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쳐들고 깨알 같은 색담을 찾아보기로 하자. 첫 번째 사연은 다윗 왕의 이야기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두 번째 왕이며 유대 민족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숭배 받았다. 다윗은 성경의 사무엘 상하권과 열왕기상, 역대기상에 걸쳐 등장하는 역사의 주인공이며, 성서에서 가장 감미로운 책 중 하나인 <시편>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군 다윗의 가족사에는 피비린내 나는 계략과 더러운 범죄, 이를 은폐하기 위한 음모가 가득했다. 현대의 막장 드라마는 따라갈 수 없는 장대한 규모의 대하 드라마다. 출생의 비밀만 빼면 온갖 더럽고 치사한 색담이 고루고루 담겨 있다. 다윗과 그 아들들이 주변의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며 영웅호색의 진실을 파헤쳐 보자.



다윗과 골리앗

 

다윗은 왕가의 출생이 아니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의 직업은 양치기였다. 그는 양치는 일 외에도 수금이라는 현악기 연주와 돌 던지기에도 재능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또한 소년 시절에 이미 야훼의 축복을 받아 선지자를 통해 차기 왕권을 보장받았던 숨겨진 거물이기도 했다.

 

사울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이스라엘 왕국은 불레셋(블레셋)과의 세력다툼으로 전쟁이 계속되었다. 다윗의 형들도 이 전쟁에 참전하였는데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형들에게 음식물을 전해주는 데 만족하지 않고 적군의 장수 골리앗에게 돌팔매를 휘두르기에 이른다.


규모나 실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상대끼리 경쟁하는 모습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약자에게 주인공의 자격을 부여해준다는 점에서 무척 낭만적이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싸움은 언제나 골리앗 측의 승리로 끝나지만 원조 다윗이 던진 돌은 원조 골리앗의 이마를 강타했다. 남성호르몬이 폭발한 소년 다윗은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종교개혁 이후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 날카로울 당시 이 주제는 엄청나게 환영받았다. 가톨릭 교단은 스스로를 약자 다윗의 입장으로 놓고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프로테스탄트 세력을 거인 골리앗으로 설정했다. 반대로 프로테스탄트 쪽에서는 바티칸의 권위를 거인 골리앗으로 설정하고 스스로를 약자 다윗의 입장으로 놓았다. 결과적으로 야훼가 보시기에는 양쪽 모두 약자도 강자도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1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jpg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피투성이 결혼선물

 

양치기 소년이 괴력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대단한 여파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사울은 수천을 쳤고 다윗은 수만을 쳤다’고 노래했다. 이런 말을 들은 사울 왕의 기분은 참으로 더러웠을 것이다. 사울이 미친 척 하고 다윗에게 창을 던지기도 했지만 날쌘돌이 소년은 번번이 피해내고 말았다. 그렇다고 전쟁영웅을 공식적으로 제거한다면 질투심 많은 왕이라고 비판받을 것이다.

 

결국 사울은 다윗에게 화해를 제안한다.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내 맏딸을 아내로 주겠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사울은 약속을 어기고 맏딸을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냈다. 다윗이 자신은 자격이 없다며 부마 자리를 사양하기는 했으나 피차에 찜찜한 일이었으리라.

 

사울은 다른 딸 미갈을 미끼로 다윗을 확실히 보내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황당한 조건을 내세웠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했는지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다윗에게 이야기가 들어가게 했는데 그 조건은 이랬다.(사무엘상 18장)

 

“불레셋 사람들의 포경 백 개를 잘라오라.”

 

개역한글판에는 ‘양피’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잘못 읽으면 불레셋 사람들이 기르는 양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오라는 이야기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양피는 양가죽(羊皮)이 아니라 양기가 모여 있는 남근의 껍질(陽皮)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포경수술을 전 세계에 보급시킨 유대인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남자라면 듣는 것만으로 남근이 오그라들 만큼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 자신도 포경수술을 받았을 것이 분명한 다윗은 불레셋 남자를 백 명도 아니고 이백 명이나 죽여서 그 포경을 잘라다 사울 왕에게 바쳤다. 황당하고 잔혹한 명령에 두 배로 충성한 다윗에게 딸을 주지 않을 명분은 없었다. 결국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과 결혼하게 되었다. 불레셋 남자 이백 명의 포경이 결혼 선물이 된 셈이다. 부마가 되기 위해 남의 포경을 벗겨온 남편과 살게 된 미갈은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미갈과의 결혼으로 다윗은 사울과 화해를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장인과 사위 사이가 되었고 정치적으로는 왕과 부마의 관계가 되었으니 겉으로라도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을 테지만 정신착란으로 저물어가는 사울 왕과 떠오르는 신진세력 다윗 사이의 관계는 그리 화기애애하지 못했다. 사울과 다윗 사이에는 끝없이 내분이 벌어져 다윗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2 미켈란젤로 다윗.jpg

 미켈라젤로 <다윗>


다윗은 사울의 영토를 떠나 인근 지역을 방랑하며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진 거라곤 불알 두 쪽 밖에 없는 젊은 남자가 세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결혼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사울 왕의 딸 미갈과 결혼하여 잠시나마 왕과 화해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먼저 이즈르엘(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을 아내로 얻었다. 이 결혼의 속사정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다윗과 이즈르엘 세력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정략결혼이었거나 다윗이 그 세력을 누르고 신부를 빼앗아온 약탈혼이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윗이 망명 중에 얻은 두 번째 부인 아비가일과의 결혼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 본인의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한 경우였다. 그 특이함 때문인지 성경은 이 결혼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다.(사무엘상 25장)

 

다윗이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나발이라는 남자가 양을 치는 지역에 당도하게 되었다. 나발은 수천 마리의 양과 염소를 가진 부자였는데 마침 양털을 깎는 시기가 되었다. 양털은 양이 생산하는 중요한 부산물 중 하나였으니 이 시기는 농경 문명으로 치면 수확기라 할 수 있겠다. 부자가 투자의 결과를 거둬들이는 바쁘고 풍요로운 때였다. 다윗은 자신의 수하 몇을 보내어 나발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나는 다윗이란 사람이오. 내 일행이 댁의 양을 한 마리도 훔치지 않았으니 나를 당신의 아들처럼 여기고 무엇이든 손에 닿는 대로 집어서 보내 주십시오.”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양털 깎는 시기라 하더라도, 그의 재산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산을 나눠달라고 요구한다는 건 현대인의 상식으로 봤을 때 결코 정의로운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조금 삐딱하게 보면 장사를 마치고 그날의 손익을 계산하는 수퍼마켓 사장에게 “오늘 돈 좀 벌었수? 우리가 집어가기 전에 술값 좀 보태주쇼.”라고 협박하는 동네 건달 같은 행동이다.

 

나발은 관대하게 베푸는 타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겁이 많은 타입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다윗이 보낸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다윗이 누구냐? 내가 왜 털을 깎느라고 수고하는 내 일꾼들에게 주려고 마련한 떡과 술과 고기를 어디서 굴러 왔는지도 모르는 놈들에게 주랴?”

 

현대인의 관점에선 상식적인 대답이지만 경찰도 없던 시절에는 참으로 무모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손님을 접대하고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손님들은 무장한 육백 명의 남자들이었다.

 

나발의 말을 전해들은 다윗은 곧바로 실력 행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부하 사백 명에게 칼을 차라고 이르고는 자신도 칼을 차고 적진으로 돌격할 준비를 마쳤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피를 보아야 할 차례였다. 다윗은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나발의 일족 중 사내 녀석 하나도 남겨 두지 않겠다.”

 

이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등장한다. 일꾼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아비가일은 남편 몰래 ‘떡 이백 개, 술 두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밀 열 말, 건포도 백 뭉치, 말린 무화과 과자 이백 개’를 마련해서 바리바리 나귀에 싣고 다윗을 찾아갔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발치에 엎드려서 애원하기 시작했다. 애원의 요지는 ‘내 남편은 미련하고 인색한 사람’이지만 ‘당신은 야훼의 선택을 받은 훌륭한 사람’이니까 ‘부디 피를 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다윗은 아름다운 유부녀의 찬사에 만족했을 것이다. 그녀가 가져온 먹을거리 역시 만족스러웠음이 분명했다. 다윗은 나발을 죽이느라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열흘 뒤에 나발은 어떤 이유로 죽어버렸다. 그러자 다윗은 과부가 된 아비가일에게 청혼했고 아비가일은 흔쾌히 여종들을 이끌고 다윗의 부하들을 따라나섰다. 이 결혼으로 나발의 재산과 세력이 다윗의 손으로 넘어갔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아내와 상당한 재산을 동시에 얻었으니 일석이조의 소득이었다.

 

“야훼께서는 나를 욕한 나발을 몸소 문책 하시고 내가 죄를 짓지 않도록 나발에게 벌을 주셨다.”


다윗은 야훼께 이런 찬양을 올렸다. 정의는 권력에서 나오는 법이다.

 

3 브레이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jpg  브레이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결혼과 권력


망명자 다윗이 두 아내를 거느리고 점차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가자 사울 왕은 다윗과 결혼했던 딸 미갈을 다른 남자와 재혼시켜버렸다. 사울 역시 새로운 부마를 맞아 왕국 내에서 자신의 통치권을 확고히 하려 했을 것이다.

 

다윗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은 보잘 것 없었다. 폭력은 부와 권력이 없는 남자가 신부를 얻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다윗은 이백 번의 강제 포경수술로 미갈을 얻었었다. 그리고 아비가일과 데이트를 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남편을 무력으로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경우 육백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었고 이중 최소 사백 명을 무장시킬 수 있었다. 그는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군사력만으로는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 없다. 방랑자 신세였다는 점을 보면 정치력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다윗이 과부가 된 아비가일을 덥석 물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국가의 탄생과 존립, 영토 확장 같은 중대사가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오랜 세월 인류에게 결혼은 새가 둥지를 틀듯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살가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다윗에게 결혼이란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살아남기 위해 투쟁했던 다윗에게 사랑은 사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도 부와 권력을 얻은 뒤에는 사치를 하게 된다.


4 세바스티아노 리치 밧세바와 다윗.jpg

 세바스티아노 리치 <바쎄바와 다윗>

 


불륜의 계략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와중에 이스라엘의 숙적 불레셋에 망명하기에 이르렀다. 불레셋 측에서는 명장 골리앗을 죽이고 군사 이백 명의 포경을 벗겨갔던 다윗을 받아들였다. 이스라엘의 내전이 계속되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다윗이라는 새끼 호랑이를 키운 셈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은 뒤 다윗은 본격적으로 정권교체에 나섰다. 다윗은 유다의 헤브론에 거점을 두고 사울 왕의 권력을 계승한 후손들을 공격하여 쿠데타에 성공했다.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일한 최초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에 입성하게 되었다.

 

등따시고 배부르면 딴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왕권을 움켜쥔 다윗은 전장에 나가 싸우는 고생을 겪고 싶지 않았다. 주변 국가와 전쟁이 벌어졌으나 다윗은 부하들에게 전쟁을 맡기고 예루살렘 성에 남아있었다. 전쟁터에서는 승리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그를 위협할 상대는 없었다. 성공을 이루었으니 이제 즐길 때였다. 이제 그저 즐기기 위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자를 고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생긴다.

 

다윗은 저녁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릴없이 궁전의 옥상을 거닐다가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당장 부하를 풀어보니 그 여인은 바쎄바(밧세바)라는 유부녀로 그녀의 남편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가있었다. 다윗은 남편이 부재중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쎄바를 궁으로 데려와서 정을 통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 불륜 사건은 하필이면 바쎄바가 가임기였던 시기에 벌어지고 말았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성이 생리 중일 때는 부정하다 하여 성관계를 갖지 않았는데 불륜의 씨앗이 잉태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부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어차피 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이긴 마찬가지니 말이다. 바쎄바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다윗에게 알렸다. 남편은 전쟁터에 있는데 집에 혼자 있던 아내가 임신을 해버렸으니 간통한 당사자들은 속이 타들어갔다. ‘이웃집 아내와 간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함께 사형을 당해야 한다(레위 20:10)’는 것이 당시의 법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간통을 숨기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바쎄바가 임신한 아기가 제 남편 우리야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녀석이라고 남편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왕은 자신의 신하를 불러들여 시치미를 뚝 떼고 전쟁터의 상황을 물어보고 격려도 하고 특별휴가를 내려주었다. 인심 좋게 술상도 차려서 딸려 보냈다.

 

그러나 우리야라는 남자는 어찌나 의리가 좋은 사내였는지 모처럼 이스라엘에 돌아와 아내와 밤을 보낼 기회를 마다하고 왕궁의 근위병과 함께 잠을 잤다. 상관과 동료와 부하들은 모두 전쟁터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서 편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음날 다윗은 우리야를 불러들여서 직접 술을 먹였다. 잔뜩 취하게 만들어서 바쎄바의 침상으로 밀어 넣을 속셈이었다. 하지만 다윗의 주량이 우리야 보다 약했던 까닭인지 계략이 먹히지 않았다. 이번에도 우리야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왕궁에서 근위병과 함께 잠을 잤다.

 

충직한 부하가 자신이 세운 계략에는 순순히 따르지 않자 왕은 결국 다른 사람 손에 사건의 해결을 맡겼다.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리야를 죽게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결국 우리야는 적군의 성벽 가까이로 접근하라는 위험한 지시를 받고 적의 땅에서 죽음을 맞았다. 다른 이스라엘 병사들도 그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총사령관이 전령을 보내 이 소식을 알렸을 때 다윗 왕이 보인 반응은 희극적이다. 전령이 피해 상황을 알리자 다윗은 호통을 치며 질책했다.

 

“왜 그렇게 성에 가까이 쳐들어갔느냐? 적군이 성벽에서 화살을 쏘아댈 줄 몰랐더냐?”

 

“하지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전령의 말을 듣고 다윗의 대답이 점잖게 변했다.

 

“전장에서는 누구든지 죽을 수 있는 것이니 이 일로 걱정하지 말고 힘을 다하여 성을 함락시키시오.”

 

코메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반전이지만 야훼는 웃고 있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아내를 가진 자가 남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은 누구라도 용서하기 쉽지 않다. 정의로운 신 야훼께서 이를 그냥 넘어갔을 리도 없고 말이다.

 

우리야가 죽고 과부가 된 바쎄바는 궁으로 들어가 다윗과 결혼했으나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중병에 걸려 칠일 만에 죽고 말았다. 야훼는 이것으로 우리야 몫의 복수를 마쳤다. 바쎄바가 두 번째로 낳은 아들은 솔로몬, 야훼는 그를 축복하며 사랑하는 아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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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다윗과 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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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바쎄바의 목욕>



왕궁에서 벌어진 강간사건


세상에 스무 명의 남자가 있을 때, 그 중 하나는 더러운 놈이고 다른 하나는 치사한 놈이고 또 하나는 더럽고도 치사한 놈이기 마련이다. 이 비율은 남성만으로 구성된 인간 집단에서 거의 해당된다고 본다. 다윗에게는 스무 명에 가까운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도 더럽고 치사한 놈이 하나 있었다. 적당히 중간쯤에 끼어 있었으면 그럭저럭 난봉질이나 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놈이 첫째로 태어났다는 것이 문제였다.

 

암논은 다윗의 맏아들로 서열로 보면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통일한 다윗 왕국의 왕자로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가 원한다면 어떤 여자라도 자신의 침상으로 쉽게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다말은 그술 왕국의 공주 마아가와 다윗이 결혼하여 얻은 딸이었다. 마아가가 낳은 아들 압살롬과 딸 다말 오누이는 모두 외모가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기록과 공주님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합쳐보면 다말의 미모가 어땠을지 그림이 나오겠다.

 

암논은 자신의 누이 다말을 사랑하게 되어 애를 태우다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여동생이라 해도 어머니가 다른 이복남매 사이였기에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가끔 보더라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암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데 그와 가까운 사이였던 사촌 요나답이 꼼수를 일러주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 다윗 왕을 이용하면 다말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궁에 암논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과연 다윗은 친히 문병을 왔고 아들은 아버지가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콕콕 건드렸다.

 

“아버지, 아파서 입맛이 없는데 문득 다말의 손맛이 그리워지네요. 다말이 손수 떡을 두어 개 구워주면 입맛이 살아나려나...”

 

다윗은 당장 다말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 오라비 암논에게 음식을 해주라고 명을 내렸다.

 

다말이 암논의 궁으로 가보자 그는 정말 환자인 것처럼 자리에 누워있었다. 다말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반죽을 빚어서 떡을 만들었고 암논에게 주었으나 그는 먹을 생각은 않고 주위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 암논은 사근사근한 말씨로 다말을 끌어들였다.

 

“그 떡을 가져와서 네 손으로 먹여주렴.”

 

다말이 그릇을 들고 침실로 들어가자 암논은 비로소 음험한 본색을 내비쳤다. 다말이 내미는 떡은 뿌리치고 그녀의 두 손을 움켜쥐더니 함께 떡을 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얼결에 오빠의 침대에 끌려들어간 다말은 위기 속에서 지혜를 발휘했다.

 

“제발 저를 욕보이지 마세요. 이런 바보짓 하지 말고 차라리 결혼을 시켜달라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셔요.”

 

다말은 강간당할 위기에서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결혼을 제안했으나, 암논이 이 말을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이복남매 사이의 결혼이 가능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구약의 율법에는 '제 아비의 딸이든지, 어미의 딸이든지, 제 누이를 데리고 살면서 누이의 부끄러운 곳을 벗기고 여자는 오라비의 부끄러운 곳을 벗겼으면 그들을 겨레가 보는 앞에서 없애야 한다. 이것은 파렴치한 짓이다. 제 누이의 부끄러운 곳을 벗겼으므로 죄벌을 면할 길이 없다.'(레위기 20:17)는 내용이 분명히 기록되어있고 기도문에도 역시 '아비의 딸이든 어미의 딸이든 제 누이와 자는 자에게 저주를!'(신명기 27:22) 외치는 내용이 있다.

 

친남매든 이복남매든 의붓남매든 가족 사이의 섹스는 금기라는 건 바보만 빼고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바보는 약으로도 못 고치고 떡으로도 변화되지 않는다. '보지 마'라는 문구를 보고 볼까말까 궁금증이 일어나는 정도는 보통이지만 '보X 마'라고 써 있으면 보기도 전에 흥분하며 하악대는 게 이런 바보들의 심리다.

 

결국 암논은 다말을 강간해버렸다. 강간범에게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배출하는 변기와 다르지 않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처럼 암논의 마음도 변하고 말았다. 다말을 그토록 열렬하게 사모해서 상사병이 들 지경이었으나 막상 그녀를 강간하고 나자 싫어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혹자는 다말의 섹스테크닉이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에 암논의 마음이 이와 같이 변했을 거라 해석하는데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포르노를 너무 많이 봐서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들이나 처녀가 겁탈을 당하면 갑자기 색에 도통한 요부로 변신한다고 상상한다.

 

암논이 다말에게 방에서 꺼지라고 소리치자 다말이 하소연했다.

 

“이제 와서 저를 내쫓는다는 건 방금 저에게 저지른 일보다도 나쁜 일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여동생의 절규를 귓등으로 듣고 하인을 불러서 다말을 쫓아내고 문을 잠가버리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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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스텐 <암논과 다말>


다말은 목 놓아 울면서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그녀의 절규를 들은 친오빠 압살롬이 이 사정을 짐작하고 말했다.

 

“암논이 너를 건드렸지? 그래도 그는 네 오라비니 이 일은 입 밖에 내지 말아라.”

 

의붓오빠에게 얼결에 강간당하고 황당하게 쫓겨난 것만도 서러운 일인데 친오빠가 위로는커녕 입단속을 주의시키다니 참 우울한 가족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이 일을 무마시키려던 게 아니었다. 압살롬은 맏형 암논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몰래 칼을 갈았다.

 

다윗 왕 역시 암논이 다말을 강간한 뒤 내팽개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사랑하는 맏아들 암논에게 기분 상할 말을 하지는 않았다. 세상에 어떤 법도 금쪽같은 내 새끼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건재하면 그 아들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이런 가문을 두고 ‘콩가루 집안’이라 부른다.

 


정욕남발 정권교체

 

압살롬은 친 누이동생 다말을 욕보인 암논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고 나서 압살롬은 양털 깎는 절기를 맞아서 크게 잔치를 벌이고 다른 왕자들을 초대했다. 암논은 지난 사건을 까맣게 잊었는지 압살롬의 초대에 응했다. 그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잔치를 즐기다 거하게 술에 취해버렸다. 그러자 압살롬의 부하들이 술 취한 암논을 죽여 버렸다.

 

맏아들을 잃은 다윗은 상심에 젖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피해 자신의 외가인 그술 왕국으로 가서 삼 년동안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 다윗의 분노와 슬픔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압살롬이 이스라엘로 돌아왔고 간곡한 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수려한 용모와 뛰어난 사교술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민심이 기울자 다윗의 측근 중에도 돌아서는 자가 있었다. 압살롬의 세력이 커지고 결국 쿠데타가 일어났다.

 

다윗 왕은 왕궁을 지킬 후궁을 열 명 남겨 놓고 왕실 식구들과 함께 걸어서 피난길에 올랐다. 왕자 압살롬은 왕이 빠져나간 왕궁에 입성했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후궁들과 섹스했다. 그것도 궁궐 옥상에 천막을 치고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압살롬이 직접 배우가 되어 포르노를 상연한 이유는 쿠데타로 공포에 휩싸인 국민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3S정책의 일환이 아니었다. ‘임금님께서 친아버지마저 욕을 보였다는 소식이 온 이스라엘에 퍼지면 임금님을 받드는 사람들은 의기충천할 것’이라는 측근의 권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측근은 예전에 다윗을 보필하던 자였는데 아들에게 다윗의 여인들을 권하는 정치적 참모 역을 맡았다.

 

아버지의 여자와 동침하는 행위는 아버지의 권력을 찬탈하는 행위였다. 하룻밤에 열 명의 여자와 성교하는 것으로 왕위를 굳건하게 하다니 정욕남발 정권교체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압살롬의 쿠데타는 오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다윗이 보낸 부하들을 피해 노새를 타고 숲을 빠져나가다 나무에 옷이 걸려서 우스꽝스럽게 매달린 채 창에 맞아 죽었다.

 

다윗 왕은 다시 왕좌에 올랐으나 자신의 아들이 겁간한 후궁들을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마도 아들에게 왕권을 빼앗겼던 치욕의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8 니콜로 드 시몬 압살롬의 연회.jpg  니콜로 드 시몬 <압살롬의 연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싸움이 일어날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전도서 3장 8절)

 

참 좋은 말씀인데 문제는 우리는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준다.

 

“그러니 사람이 애써 수고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과연 다윗 가문에서 벌어진 형제 사이의 살육과 정권찬탈의 음모는 그분의 뜻대로 정리되었다. 압살롬이 아무리 다음 왕이 되려고 애를 쓴다 하더라도 이는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누이동생을 탐하다 셋째 압살롬에 의해 죽었고, 왕위계승 예정자인 맏형을 죽인 김에 겸사겸사 쿠데타까지 일으킨 압살롬은 다윗의 부하에 의해 죽었다. 그들 사이에 아비가일이 낳은 두 번째 아들이 있었는데 후대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보면 아마도 일찍 죽었거나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 같다.

 

걸출한 형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자 넷째 아도니야가 왕위계승을 노리게 되었다. 순서상으로 보면 그의 차례가 맞겠지만 이미 나노단위 콩가루로 산산조각 나버린 집안에서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 통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아도니야는 다윗이 늙어 죽음을 앞두자 자신이 다음 왕이 되리라고 철썩 같이 믿고 미리 축배를 들었다.

 

그러는 동안 다윗의 마음은 솔로몬에게 기울고 있었다. 솔로몬은 다윗이 충직한 부하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해서 얻은 아내, 바쎄바의 아들이었다. 야훼의 분노로 첫 아이는 죽어버렸으니 그 뒤로 태어난 아들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웠을지 짐작할만하다. 솔로몬을 다음 왕으로 만들기 위해 바쎄바와 예언자 나단이 한 조를 이루어서 늙은 왕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다윗은 사망 직전에 솔로몬을 후계자로 임명했다.

 

솔로몬이 왕이 된 뒤에 아도니야는 잠시 몸을 낮추었다가 제법 도발적인 시도를 했다. 바쎄바를 찾아가서 다윗 왕의 임종을 지켰던 후궁 아비삭을 자신에게 달라고 청했던 것이다. 바쎄바의 입장에서는 의붓아들이 왕권에는 미련이 없으며 그저 여자 하나를 아내로 얻고 싶은 것뿐이라는 말이 그리 불쾌한 요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입장은 달랐다. 어머니가 아도니야의 부탁을 전하러 갔을 때 그는 대경실색하며 분노의 말을 외쳤다.

 

“어찌하여 어머니께서 아도니야를 위하여 아비삭을 청하십니까? 아주 나라까지 그에게 주라고 청하시지요!”

 

결국 솔로몬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여자를 넘본 형 아도니야를 쳐죽이고 말았다.

 

바쎄바가 듣기에 아도니야의 부탁은 그저 젊은 남자의 로맨스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녀 자신도 간통과 재혼의 경험이 있는지라 그런 문제에 관대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비삭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독수공방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적당한 남자를 짝 지워주는 것이 좋겠다고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자에게 섹스와 여성의 소유는 권력의 문제였다. 그는 압살롬이 아버지의 여자를 범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권력이 자기 것이 되었음을 만방에 알렸듯이, 아도니야 역시 아버지의 여자를 얻음으로 세력을 과시하려 들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아버지의 후궁을 달라고 요청했던 본심 역시 그런 목적이었을 것이다.

 

고생 끝에 왕위에 오른 아버지는 계략으로 남의 아내를 손에 넣으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 그의 맏아들은 근친강간으로 금기를 깨뜨려 자신이 무소불위의 존재라는 점을 확인하려 했다. 아버지의 왕권을 넘본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여자를 강간하는 것으로 쿠데타의 방점을 찍었다. 여성약탈의 역사가 곧 권력찬탈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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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보느뵈 <다윗> 


 

영웅호색의 진실

 

남자가 권력을 과시하는 방법 중 하나는 많은 여자를 소유하는 것이다. ‘영웅호색’은 고대사회에서 당당한 수컷의 필수조건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말이다. 우리의 주인공 다윗은 권력을 얻기 위해 여자를 얻었다. 그러나 일단 왕위에 오른 뒤에 여자는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런 식의 여성쟁탈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남성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채널 속 야생, 사자 무리의 생태를 상상해보자. 무리 중 가장 강력한 수컷은 모든 암컷들을 독점한다. 무리 안의 모든 암컷들은 오직 그만이 수태시킬 수 있다. 하렘에 여인들을 가둬놓고 자신만 출입하는 술탄 같은 행동이다. 생물학에서는 이런 수컷을 ‘하렘소유자’(harem owner)라고 부른다.

 

하렘소유자는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비참한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도 늙고 약해져 다른 젊은 수컷에게 패배하게 된다. 하렘의 지배권을 빼앗기고 무리에서 쫓겨난 늙은 수사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수사자는 굶어서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 된다. 이때쯤이면 꼭 다리도 절게 되어 사냥은 더욱 어려워진다. 급기야는 자존심을 버리고 구걸까지 한다. 최후의 순간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수사자도 드물게 있지만, 선뜻 먹을 것을 나눠주는 친절한 동물은 결코 없다. 늙은 수사자는 서서히 쓸쓸하게 죽어간다.

 

하렘소유자를 몰락시키는 젊은 수컷은 바로 그의 아들이다. 젊은 수컷은 그가 소유한 하렘에서 태어났고, 하렘의 암컷은 모두 그의 씨만 받았기 때문이다. 자연계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타도하는 일은 숙명적이고 본능적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무리에서 쫓아내고 그의 하렘을 접수한다. 아버지의 여자는 모두 아들의 여자가 된다.

 

물론 모든 종의 생물이 영웅 수컷 한 마리가 하렘을 소유하는 구조의 사회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 무리에는 하렘이 존재한다. 하지만 보노보 무리에는 하렘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들은 비교적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침팬지에 가까운지 보노보에 가까운지는 모른다. 그러나 침팬지에 가까운 여성찬탈의 역사가 다윗의 왕가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분명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다른 남자들의 포경을 잘라내어 전리품으로 차지하고 여러 여자들을 자기 왕궁에 가두었던 까닭은 그가 불세출의 정력가였기 때문일까? 그의 큰 아들 암논이 여동생을 강간한 까닭은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셋째 아들 압살롬이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후궁을 겁탈한 까닭은 통치권을 계승할 능력을 가진 위대한 수컷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영웅호색의 진실은 권력남용이다. 그리고 지배자의 욕망을 미화시키는 작업은 비천한 노예근성에서 나온다.

 


일러두기

 

본문에서는 한글로 번역된 기독교 성서의 여러 판본 가운데 <공동번역 개정판>을 선택했습니다. 유일신 하나님(하느님)을 부르는 말 역시 공동번역 성서에서 채택한 대로 ‘야훼’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 기독교회가 개역개정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일부 용어는 괄호로 병기했습니다. 현재 남한에서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하는 교회는 성공회와 정교회 등 일부 기독교회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공동번역 성서를 따른 이유는 여러 교단이 뜻을 모아 함께 한글성서를 번역했다는 의의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독교인이 아닌 독자들도 친숙하게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한글번역판이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글은 글쓴이가 이전에 출간한 졸저 <신들의 사랑법>의 원고의 내용을 일부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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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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