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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번씩은 이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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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목손

 

네이버 지식 in에 '그라목손을 마셨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 글이 올라와도 답변으로 채택된 글은 없었다는 무서운 제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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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목손의 성분명은 파라쿼트로 파라쿼트는 체내에 들어오면 '산소 프리 라디칼'이라는 것을 만든다. 이것이 세포 손상과 다발성 장기 손상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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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독한 용량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심장, 신장, 간, 폐 등의 여러 장기에 손상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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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폐를 딱딱하게 만들어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폐섬유화는 여러 다발성 장기부전의 증상 중 하나일 뿐이다.

 

하나 더, 마시면 100% 죽는 걸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 그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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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율은 파라쿼트의 혈중 농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5ug/ml 이상이면 거의 100% 사망한다고 봐야하고 1/10000ug/ml 이하라면 다행히 살 수 있는 수준이라 한다.

 

화학, 생화학 전공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양을 먹어야 파라쿼트 혈중 농도가 5 이상으로 올라가는 지는 정확히 설명드리지 못할 것 같다. 대신 임상적으로 봐왔던 환자들을 보면 한병을 다 마시고 오면 응급실 도착 후 몇시간 내에 사망했던 것으로, 한두 잔 정도 마신 환자들은 하루 쯤을 버텼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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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목손 중독 환자를 처치하는 플로우 차트

 

필자는 응급실 인턴 시절에 그라목손 중독 환자들을 초진하고 내과 레지던트 샘에게 알렸었고 신장내과 레지던트 시절에는 인턴에게 그라목손 중독 환자들을 인계 받아 일부는 사망 진단서를 쓰고 일부는 투석을 돌려도 봤었다. 당시는 그라목손 정량 검사가 없었고 단지 소변을 받아 시약을 넣어서 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대략 농도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추측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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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화질 좋은 사진은 찾을 수가 없어 예전에 홈피에 올린 사진을 가져왔다. 

2009년 7월 17일 그라목손을 마시고 온 환자의 실제 소변 사진이다.

 

사진과 같이 진한 남색은 강양성을 나타내고 100% 사망에 이르게 된다. 다른 질환들은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치료에 대해 설명하지만 그라목손 중독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면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변에서 강양성을 보여서 몇시간 후 사망할 것이 예견된 환자들은 응급실 한켠 침대에서 손발이 묶인채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메뉴얼에는 산소 프리 라디칼의 발생을 촉진 시키기 때문에 산소를 주지 말 것! 흡입성 폐렴 가능성을 높히기 때문에 물을 가급적 주지 말 것! 같은 내용들이 있는데 환자는 전신이 타 들어가는 고통 속에 물을 달라고 무언의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어차피 몇 시간 후에 죽을 환자인데 물을 주고 산소를 줘서 몇 시간의 삶이라도 좀더 편하게 보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물론 지금도 종종 하곤한다. 


기억나는 환자 중 하나는 그라목손 한병을 다 마시고 내원 했었고 내원 당시 이미 lab과 생체 징후가 흔들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길어야 몇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급하게 보호자를 오시도록 했고 가족의 죽음이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넊이 반쯤 나간 보호자에게 DNR(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권고했다. 


의사란 직업이 자의든 타의든 기계적으로(차가운 기계처럼) 뭔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종종 오는데 병원에 온지 얼마 안된 보호자에게 DNR이라니, 당사자가 아니면 그 기분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호자가 DNR 용지에 서명을 한지 불과 십여분 후 환자의 심전도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DNR을 받지 않았다면 이미 영혼이 떠난 몸을 붙잡고 수십분간 늑골이 부러지도록 가슴을 눌러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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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초제 그라목손. 요즘은 판매 중지, 구토제 포함, 인티몬 제제로 체내 흡수가 지연되게 만들고, 조기 투석의 시행 등으로 사망율이 낮아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가끔 응급실에 그라목손을 마시고 오는 환자들을 볼 수 있다.

 

자살 시도를 통해 정말로 자살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힘들다는 것을 어필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SOS를 보내려는 목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분들이 있지만 후자라면 절대로 그라목손은 마시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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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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