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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27. 목요일

편집부 홀짝





홍콩으로부터 온 메시지


며칠 전, 딴지일보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스스로를 홍콩의 네티즌이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내 영어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낑낑대며 메시지를 모두 읽었던 이유는 그 내용이 자못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메시지.JPG

 

메시지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다가오는 7 1, 홍콩의 중국 반환 16주년을 맞아 ‘Hong Kong Dome Music Festival’이라는 행사가 홍콩에서 열릴 예정이고 이 행사의 무대에서 샤이니, 보아, 에프엑스 등의 한류 아이돌이 공연을 할 예정이다.


문제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래 매년 7 1일마다 홍콩의 반민주화를 규탄하는 시위가 있어왔다는 점이다. 15주년이었던 지난해 7 1일에도 40만 명의 인파가 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메시지를 보내온 사람은 말한다. 홍콩 인구가 불과 700만이다! 그 중 40만 명이라고!


메시지의 주인공은 ‘Hong Kong Dome Music Festival’이라는 행사에 일종의 물타기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것 같았다. 또한 홍콩의 한류 팬들은 이들 한류 스타들이 정치적 꼭두각시(political puppets)’로 이용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공연 예정인 가수들의 페이스북에 출연을 보이콧할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미 그들의 움직임이 홍콩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소개하며 뉴스 기사의 주소를 링크하여 첨부했다. 확인해보니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 했다. 다만 나는 이 매체가 홍콩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메시지를 보내온 목적은 딴지일보를 포함한 보다 많은 한국의 미디어가 이 사안에 대해서 다루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이었다. 만약 그래 준다면, 홍콩 사람들을 대신하여 감사를 전하겠다는 말로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홍콩반환.jpg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 

영국은 약속대로 중국에 홍콩을 반환했다. 이 때 중국이 약속한 것이 바로 '일국양제(一國兩制)'이. 일국양제란 말 그대로 하나의 국가 아래 두 가지 체제(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공산주의 국가 중국이 홍콩의 자본주의 질서를 그대로 품겠다는 것으로, 중국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실험이자 모험이었다. 홍콩 반환 16주년을 앞둔 지금. 그 동안 홍콩은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찰스황태자.jpg

뭔가 슬픈 표정의 찰쓰


홍콩 사망(The Death of Hongkong)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시점에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홍콩의 미래를 위의 단어로 압축하여 전망했다. 영국령 아래 동아시아의 금융, 경제 허브 역할을 담당했던 홍콩이 급속도로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었다. 그러나 예측과는 달리 홍콩은 사망하지 않았다. 적어도 경제부문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히 그렇다.


중국 대륙이라는 날개를 단 홍콩 경제

홍콩 경제는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후 세 번의 큰 위기를 겪게 된다. 2003년의 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사태,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위기들은 사실상 중국과는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이들 위기 모두에 있어 중국은 홍콩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2003년 사스 사태로 홍콩이 휘청일 때 중국은 홍콩과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체결했다. 홍콩은 이를 통해 홍콩 상품의 중국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중국 대륙의 거대한 시장을 손에 넣었다. 중국 본토인의 홍콩 방문을 허용한 것도 이 시점부터였다.


경제성장률.jpg


2007년에는 딤섬본드(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이 허용되는데, 지난해 홍콩을 통해 이루어진 대외 위안화 거래는 전체 위안화 총 거래량의 무려 80% 수준이었다. 동아시아 경제 허브로서의 홍콩 경제의 위상이 오히려 강화된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여전히 진입 장벽이 존재하는 만큼 홍콩은 이 부분에서도 혜택을 누리고 있다. 중국 본토에 진출하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홍콩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요인들 덕분에 홍콩은 아시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메가톤급 외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빠르게 다시 일어섰다. 지난해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5.0%였다.


홍콩시위대.jpg


무엇이 이들을 분노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왜 적지 않은 수의 홍콩인들이 주권 반환 기념일마다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는 문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경제적 이유 또한, 존재한다.


홍콩 경제는 비교적 준수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본토의 자금이 급속도로 유입되면서 홍콩의 부동산 시장에는 잔뜩 거품이 끼었다. 빈부격차 또한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지난해 홍콩의 지니계수는 30년래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0.537). 또한 지금까지는 홍콩이 글로벌 기업의 중국 본토 진출을 위한 통로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 대륙에 시장 경제가 빠른 속도로 정착될수록 홍콩의 입지는 작아질 것이다. 이미 상하이는 홍콩을 추월한지 오래다.


문화적 이유는 오랜 시간 서로 다른 국가의 지배 아래 살아왔던 본토인과 홍콩인 간의 성향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중국 본토인의 홍콩 방문이 자유로워 지면서 홍콩인의 반중 정서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이른바 돈 좀 있는 중국인들의 싹쓸이 쇼핑, 빠르게 번지고 있는 홍콩 원정 출산의 유행 등을 바라보는 홍콩인의 시선은 고울 턱이 없다. 오죽하면 중국 본토인이 홍콩에서 사갈 수 있는 분유를 2통으로 제한하기까지 했을까?


홍콩시위.jpg


한편, 홍콩인들의 시위 현장에서는 영국령 당시 홍콩의 국기를 들고 있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중국인들의 기분은? 이래저래 감정의 골은 깊어져 간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을 홍콩시민이라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38%로 집계됐다. 중국계 홍콩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3.5%, 중국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16.3%에 불과했다. 딱 이만큼이 그들과 중국 사이에 놓여있는 정서적 거리라 할 수 있겠다.


현재 홍콩은 행정장관이 홍콩 행정을 책임지고 있다. 문제는 이 행정장관이 홍콩시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콩의 행정장관은 각계 인사 1200명으로 이루어진 선거위원회의 간선제로 선출되고 있다.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때문에 시위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구호는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중국 정부가 2017년부터 직선제를 시행하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홍콩인들의 불만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현 행정장관인 렁춘잉에 대한 불신은 말할 것도 없다.


언론의 자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최근 조사에서 홍콩 기자의 87%가 최근 5년간 홍콩의 언론 자유가 훼손되었다고 응답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지난해, 홍콩 반환 15주년 행사 참석차 당시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홍콩에 방문했다. 이 때 홍콩의 한 취재 기자가 후진타오 주석에게 홍콩인들이 천안문 사건에 대한 재평가를 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홍콩 경찰에 의해 끌려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유는 시끄럽게 질문 했다는 것이었다. 홍콩기자협회와 범민주계 정치인들은 이러한 홍콩 경찰의 공안화에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과연 한국의 아이돌은 홍콩 공연을 보이콧 할 것인가

당연히 그럴리없다. 보이콧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들 한국의 아이돌이-엄밀히 말하면 소속사가-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공연을 취소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굳이 거기까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겠다. 홍콩의 한류 팬들은 한국의 아이돌이 정치적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만약 그러한 이유 때문에 공연을 보이콧한다면 그것 또한 정치적 사유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류 아이돌의 입장에서는 홍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한 중국 대륙의 시장을 포기하는 처사가 될 수도 있는 모험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 또한 대만을 버리고 중국의 손을 잡지 않았는가... 메시지를 보내온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공연 보이콧 문제는 아니다.


전효성.jpg 

민주주의 아이돌의 대표주자(인건 비밀로 해달라는 듯...)

 

지금, 우리는...

홍콩의 주권 반환 후 홍콩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들을 살펴보면서, 그 중에서도 부정적인 변화들을 보면서 내 머리 속에는 자꾸 우리의 현실이 겹쳐졌다. 메시지를 보내온 사람은 그의 글에서 한국의 민주화 역사를 언급했다. 물론 그것이 일종의 립서비스였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또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어디쯤에 서있는 것일까.


부동산 거품, 빈부격차, 인플레이션, 고통 받는 서민들

앞서 언급한 홍콩 경제의 그림자다. 그런데. 이거 우리랑 좀 많이 닮았다. 홍콩이라는 단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차이가 거의 없다. 돈 좀 있는 중국 본토인들의 원정 출산? 우리나라에서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도 이거 많이들 한다. 다만 홍콩은 본토에서 그들이 온다는 것, 우리는 밖으로 나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국인들의 명품 싹쓸이? 우리도 이거 많이들 한다. 차라리 홍콩은 그들이 와서 돈을 펑펑 쓰고 가기라도 하지, 우리나라 양반들은 우리 돈 들고 나가서 밖에서 쓰고 오신다.


언론 자유

앞서 언급했듯이 홍콩 기자의 87%가 지난 5년간 홍콩 언론의 자유가 훼손되었다고 답했다 한다.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홍콩은 2009 48위를 기록했지만, 2013년 홍콩의 순위는 58위까지 떨어졌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2009년 홍콩이 48위를 기록할 때, 한국의 순위는 69위였다. 2010년 홍콩은 34위였고 한국은 42위였다. 이 순위가 뒤집히기 시작한 것은 2011~2012년 통합 발표된 순위부터였다(한국 44, 홍콩 54). 그리고 2013, 홍콩은 58위를 기록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50위를 차지했다. 이거, 좋아해야 되는 거 맞지?


언론자유도.JPG

우리가 홍콩을 이겼다! 응? 뭐?


일단 좋아하고 보자. 어쨌든 2009년에는 69위였지 않은가. 이것만 봐도 레이디가카께서 암만 고군분투하셔봤자 위대하신 MB의 치적에는 미치지 못할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하긴, 아직 5년 중 반년도 안 지나긴 했구나... 하아...


여튼 자유로워진 거 맞다! 뉴데일리와 데일리안, 두 데일리 형제들이 싸지르는 기사만 봐도 우리에겐 충분한 언론의 자유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V조선 같은 종편만 봐도 그렇다. 어찌나 하루 종일 북한 관련 보도에 시사 다큐를 방송하시는지 이건 뭐 내가 조선중앙방송을 보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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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의 위엄


직선제와 간선제

간선제 하의 홍콩인들이 직선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거 하나다. 민심 반영.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에 살고 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자치 단체장도, 교육감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다. 민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국정원이라는 국가 정보기관이 인터넷 댓글을 좀 달고 이러면서 이 민심이란 걸 약간 조작하려 했을 뿐인 거다. 그렇다. 우린 충분히 홍콩의 민주주의를 걱정해 줄 정도로 민주적으로다가 살고 있다!



그런데 있잖아... 우리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맞아?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모든 혁명의 역사, 민중의 궐기로 이루어낸 기본권 쟁취의 역사는 같은 밑바탕에서 이루어졌다. 그 밑바탕은 스스로 부당함을 자각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자각으로 신분제를 무너뜨렸다. 귀족과 평민 사이에는 사실 그 어떤 태생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왕과 귀족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지배계층과의 선천적 존엄의 차이를 세뇌 시키려고 했다. 오랜 시간 그 세뇌가 먹히기도 했지만 아랫 것들이 진실을 깨달았을 때, 역사는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당연히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들을 쟁취해왔다.


예전에 읽었던 촘스키의 책에서 이런 내용을 봤던 것 같다. 워낙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촘스키가 맞는 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여튼 이렇다. 계층과 계층 사이에 아무 것도 뚫을 수 없는 판이 존재하면, 사람들은 저항한다고. 부수려고 한다고. 그런데 그 판에 아주 작은 구멍,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뚫어 놓으면 사람들이 저항하지 않는다고. 아니, 오히려 계층을 나누는 판의 존재 자체를 잊는다고...


? 어찌됐든 그 사이로 누군가 지나가기는 하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게 되면, 변화는 요원해진다.일단 개천에서 용이 나면, 개천에 있는 미물들은 개천이라는 현실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저 용이 되기를 꿈꿀 뿐이다.


공짜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지금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당연히 국민의 대표 또한 우리의 손으로 직접 뽑는다. 경제 시스템은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으며 살 수 있다.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가 있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정말 그런가? 누군가는 그렇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지금의 모든 권리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눈을 똑바로 뜨고 살펴야 한다는 거다. 진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다.


홍콩의 오늘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를 생각했으면 한다. 끓어가는 물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개구리.jpg 

살만해... 살만하지 이정도면...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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