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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물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선장이다. 선장은 배의 책임자이고 현장 상황에 가장 정통한 인력이며 사고 발생시 승객을 가장 안전하게 탈출시키고 소속 회사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즉 ‘전문가’다. 그런데 그 책임은 완벽하게 방기됐고 선원들 역시 더 이상 나쁠 수 없을 만큼 의무를 저버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전문가들의 지시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결국 승객들과 함께 바다에 잠긴 불운한 승무원의 어쩔 수 없는 주문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아무 말이 없는데 서비스직 승무원이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 


보는 것마다 눈을 찔렀던 세월호 참사 풍경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가만히 있으라 방송을 철석같이 믿으며 구명조끼 입고 서로서로 위로하고 억지로 웃음 지으면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세월호 선장 이하 선원들은, 나아가 초동 대처에 완전히 실패해 버린 해경 123정의 해양경찰들은 그 어린 생명들을 배신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문가’에 대한 기본 신뢰를 무너뜨리는 죄악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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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라.”는 지시가 무조건 부당한 것이 아니며 때로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건만 세월호 참사 이후 이 말은 죽음의 주문이 돼 버렸고, 최악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돼야 할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생활의 지혜로 격상됐다.


그러나 재난 속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 즉 각자 알아서 살아남기란 곧 우리 사회에 정글을 둘러치는 일이고 각자 정글북의 모글리가 된다는 설정이다. 모글리야 주인공이고 누구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결국 각자도생이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지옥문의 열쇠일 뿐이라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래서 뼈아프고 막막하고 답이 없고 캄캄한 일이겠다.


헌데 이렇듯 재난 앞의 각자도생은 더할 것이 없는 참담한 사태이나 그 외 일상에서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깔끔하게 무시되고 저마다의 경험과 지식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는 꼴을 지켜 보자면 참담함은 암담함으로 짙어진다.


얼마 전 나름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은퇴 인사를 만나 뵈었다가 기함을 했다. 역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광활한 만주 대륙을 누비던 위대한 상고사 이야기에 이맛살이 좁혀지고 ‘식민사학에 찌그러진 우리 역사’에 분개하는 타액의 분출이 급증하고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역사’에 주먹을 부르쥐시는데 내 머리 속에서는 그저 영화 <러브 스토리> 주제곡의 첫머리가 연신 도돌이표를 찍을 뿐이었다. “Where do I begin” 이거 어디서부터 짚어 드려야 하는 것인가.


그의 주장에 따라 보자면 우리 사학계는 이병도 휘하의 군대 조직처럼 식민 사학을 보급하고 있고 그를 거부하는 ‘민족 사학’은 발도 붙이지 못하는 극악한 처지에 처해 있었다. 그에게 전문가들이란 사실을 왜곡하고 사대주의에 찌든 허섭쓰레기들에 불과했고 그들의 주장은 “가만히 있으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교정을 해 드리고 싶어서 반론을 펴면 그건 다 조작된 것에 불과하고, 관련 기록이 없다고 하면 왜 이 책을 믿지 않냐고 위서(僞書)들의 제목을 술술 읊으신다. 이쯤되면 백약이 무효다.


그래도 사정은 좀 낫지만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은 의학계에도 상당한 듯 하다.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에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등장하는 ‘대체의학’이니 ‘민족의학’이니 ‘자연 치유’ 어쩌고 하는 어이없는 스토리들을 들여다보자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 수백년간 의학이라는 학문과, 의사와 의학자라는 동서양 공히 최고급 인력들이 연구하고 쌓아올려 온 전문 영역의 대하(大河)를 어떻게 이렇게 용감하게 아기의 오줌줄기로 전락시킬 수 있을까 그 대담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들의 세계에서 의사라는 전문가들은 돈만 밝히는 수전노에 자신들만의 성에 갇혀 다른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못하는 한심한 군상으로 폄하된다. 당연히 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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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서 보았듯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의무에 소홀하고 지녀야 할 미덕을 저버릴 때 불신은 싹트고 ‘사이비’들은 그 틈을 파고들며 정작 전문가들의 손길과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손발을 스스로 잘라 버리는 대중의 선택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3~40년 전부터 ‘단’이니 ‘다물’이니 떠들며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의 악다구니가 싫어서 정면 대응을 피해 온 역사학계의 전문가들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전현직 고위층 인사들과 자타칭 진보인사까지 망라된 위대한 상고사 매니아들의 퍼레이드를 목도하고 있다. 극히 일부 의사들의 탐욕과 무능은 몇 가지 이름난 사건들과 왜곡되기 쉬운 개인적 경험들의 눈밭에서 점차 우리 사회에 짐이 되는 눈덩이로 커 가는 불신의 원인이 됐다.


의학계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사건 중의 하나로 ‘황우석 사태’를 꼽는다. 개인적으로 한국어에 대한 최악의 모독으로 황우석이 내뱉은 ‘인위적 실수’라는 말을 꼽거니와 이런 ‘신성한 죄악’과 ‘정직한 사기’ 앞에서 대한민국 전체가 속아 넘어가거나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하고 눈감았을 뻔 했던 끔찍한 기억은 되돌릴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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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극히 일부 양심적인 전문가들이 그에 대해 항변했고 또 그보다 더 일부의 용감한 언론인들, 즉 언론 전문가들이 이를 세상에 알리면서 거짓의 바벨탑은 무너졌지만 최소한 황우석이 그 경지에 도달하게 된 과정 자체만 해도 우리 의학계는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행정 기관이 황우석이 책임자로 있는 ‘수암 생명 공학 연구원’이라는 곳에 고등학생들의 ‘인턴쉽’을 권하면서, “인류 희망을 위한 세계 최고의 생명 공학 연구 기관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연구원에서 생명공학 분야의 특화된 스펙활동으로 대입 경쟁력을 강화”하자며 일선 학교에 뿌린 공문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넋을 잃고 만다. ‘인위적 실수’로 자신의 모교에서 쫓겨나고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의 명예에 누런 똥칠을 했던 인사가 공무원들에게 또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떻게 이리도 황망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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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결한 비전문가 입장에서 황우석의 ‘인위적 실수’가 어느 정도인지, 어느 범위까지는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얼마나 부풀리고 사기를 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건 전문가 집단이 정리를 좀 해 줘야 할 것 같다. 최소한 황우석의 이름과 대한민국 행정 기관의 공문 앞에 ‘협조하며 가만히 있다가’ 낭패를 볼 여리고 착한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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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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