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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08. 월요일

산하





 


1980년 7월 8일 사상 최악의 미스 유니버스

 

요즘에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한때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는 대단한 이벤트였다. 지금은 역시 그 전통이 위태로우나 한때 당당한 ‘4대 일간지’였던 한국일보가 주관하고 공중파 방송사 MBC가 빠짐없이 방송했던 이 미스 코리아 대회는 1950년 대에 시작해서 꽤 오랜 세월 ‘미의 여왕’을 뽑아 왔다. 그리고 거기서 1등을 한 이들은 한국 대표로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했다. 물론 이 대회도 빠짐없이 생중계 또는 녹화 중계로 브라운관을 통해 안방에 전달됐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앉아 미스 멕시코가 이쁘네, 미스 노르웨이가 최고네 쓸데없는 언쟁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미(美)의 기준이 무엇이며, 흑인은 수십 년에 서넛 밖에 되지 못하고 황인종도 비슷한 가운데 백인들만 최고의 미인으로 등극하는지 등등의 의문은 저만치 미뤄두자면, 어쨌건 각국의 민속 의상을 구경하며 인문적 소양을 쌓고 다양한 디자인의 야회복도 구경하며 곁들여 수영복 입은 미녀를 맘껏 감상할 수 있었던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괜찮은 볼거리였다. 그런데 최악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1980년 7월 8일 열린다. 대회 진행 과정에 불상사가 있었다거나 여기서 뽑힌 미스 유니버스가 불미스러운 일로 타이틀을 박탈당한다거나 했던 건 아니었고 성추문이나 심사위원 매수가 횡행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 대회가 열린 장소와 시간이 문제였다. 1980년 7월 8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개최됐던 것이다.

 

카퍼레이드.JPG


본선은 7월 8일이었지만 사전 행사는 6월 말부터 시작됐다. 경향신문에서 연재되는 <여제의 오늘>에 따르면 그 행사에 바친 대한민국 정부의 성의는 참으로 심심(深深)한 것이었다. 69개 국에서 온 미녀들은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서울에 도착했고 우리 역사에서 가장 한심한 집권자라 할 최규하 대통령이 그녀들을 접견하고 환담했다. 3군 군악대가 풍악을 울렸고 그들이 통과할 도로들은 대대적으로 보수됐다. 경복궁이다 경주다 초특급 에스코트 속에 한국 곳곳을 누비는 가운데 하루는 육군사관학교에 초청돼 생도들과 댄스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지금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이 77년 입교한 육사 37기이니 그 동기들이 최고학년으로서 이 미녀들을 접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미녀들이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 앞에 놓인 붉은 카펫은 광주 시민들의 피로 물 들인 것이었고 그녀들의 화사한 미소에 가린 것은 전두환이라는 살인마의 피 묻은 칼날이었다. 자기네 나라의 한 귀퉁이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자기네 군대의 몽둥이와 대검과 총탄에 죽어가는 것을 모른 채 또는 애써 모른척 한 채, 아니면 알아도 모르는 척, 사람들은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한 각국 미녀들의 민속 의상에, 야회복에, 그리고 수영복에 감탄하고 주시하고 침을 흘렸다. 그녀들의 화려한 행사가 펼쳐지기 한 달 전 신촌역 앞에서 부산 출신의 노동자 김종태가 광주 시민들의 죽음을 절규하며 죽었던 것은 신문 귀퉁이에도 나지 못했다.

 

“......나라 안에서 자기나라 군인들 한테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며 죽어가는데 나만, 우리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들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내 작은 몸뚱이를 불 질러서 국민 몇 사람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저는 몸을 던지겠습니다. 내 작은 몸뚱이를 불사질러 광주시민, 학생들의 의로운 넋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이 민족을 위하여 몸을 던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과분한, 너무 거룩한 말이기에 가까이 할 수도 없지만 도저히 이 의분을 진정할 힘이 없어 몸을 던집니다.”


라고 자기 몸에 불을 당긴 후 온몸이 숯덩이가 되어가는 고통을 겪다가 1주일 뒤 죽어간 한 노동자의 참혹한 모습은 육사 생도들의 제식 훈련에 경탄한 미녀들의 원더풀 소리에 완전히 묻혔다.

 

도저히 이를 참을 수 없던 사람들도 있었다. 강원도 탄광 광부의 아들이었던 황인오 같은 사람.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사제 폭탄을 들고 대회장에 진입하려다가 체포된다. 인마살상용이라기보다는 위협용으로 얼키설키 만든 폭탄을 터드리면서 그는 광주항쟁과 그 살인마들의 만행을 은폐하는 어긋난 미(美)의 제전을 폭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유니버스 대회가 남긴 최대의 화제 중 하나는 그야말로 엉뚱한(또는 완전히 미친) 한국 청년과 미스 프랑스와의 러브 스토리였다. 본명이 유재승이라고 했던 이 청년은 자신이 전생에 화성인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구로 온 공주가 자신의 배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배필이 어느 나라에 왔는지 모르니 외국어 공부 하나는 열심히 했다는데 어찌 된 셈인지 그 공주가 글쎄 미스 프랑스라지 않은가. 그 엄중한 경계 속에 상봉은 못했지만 프랑스까지 편지를 보내 자신이 화성의 왕자요 당신의 배필임을 열렬히 설파했는데 이 프랑스 아가씨도 조금은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유리마’라고 개명한 이 한국 남자를 초청했고 결혼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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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화성인' 유리마와 브리짓 쇼케

 

내가 <여성중앙>에서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은 중세 기사의 복장을 입고 '고향에서 우리를 부르러 올 때까지 화성의 기사로 살리라'고 기염을 토하던 모습이었다. '미스 프랑스 쇼케는 그에게 열정적인 키스를 퍼부었다.'고 했고,물론 UFO는 나타나지 않았고 외계의 공주가 되리라는 꿈이 깨진 미스 프랑스는 유리마를 내쳐 버렸다.

 

따지고 보면 그때 미쳤던 것은 유리마 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바로 한 달 전에 수백 명의 자국민이 학살된 나라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한 도시가 싹쓸이를 당하고 학살자들의 총검은 빛나는 가운데 국회는 해산되고 국가원수는 허수아비가 된 채 똥별들의 노리개가 되고 무슨 말이라도 하려면 제 몸에 불을 당기고 피라도 토해야 가능했던 세상에, 폭탄이라도 들고 어딘가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즈음에 무슨 미의 제전이었단 말인가. 세계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제정신으로 보았을까. 자신의 동포들이 흘린 핏자국 위에서 세계의 평화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태엽 인형처럼 암송하는 69개 국의 미녀들을 열렬히 환영하고 대접하며 미쳐 돌아갔던 나라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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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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