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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장


일본에서 전철, 지하철 등의 철도 교통을 이용할 때 우선적으로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 중 하나가 차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1인 승무제가 당연시되는 노선을 주로 이용하다 일본을 여행하는 분들은 이들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일본 전역의 대부분의 노선에서 아직까지 철도 차량의 마지막 칸은 차장이 차지하고 있다. 차량의 마지막 칸, 즉 앞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승객과 차량의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 사람들은 철도 차량이 역에 정차할 때마다 꽤나 분주하게 움직인다. 신호를 관리하고, 승객의 탑승 상황을 확인하고,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출발 신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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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거칠게 이야기하면 승객을 수송하는 철도 차량마다 오직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마지막 칸에 탑승하는 인력을 최소한 한 명씩 더 배치하고 있는 셈이 된다. 아마 인력 감축을 통한 이윤 창출을 기업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분개하고 남을 일일 것이다. 고작 신호 몇 개 확인하고 사람들이 전철에 다 탔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따로 인력을 고용해 월급 주고 때마다 보너스 주고 명절에는 선물도 챙겨 주라니. 그렇게 퍼 주면서 기업을 어떻게 경영하란 말인가.


그리고는 "눈을 들어 조국의 철도를 보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정말 최소한의 인원으로도 철도는 어떻게든 굴러간다. 사람들은 누가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경우, 정말 대부분의 경우 안내방송과 벨 소리에 맞춰 전철에 잘만 탑승한다. 대부분의 노선에서, 대부분의 역에서 진정한 의미의 최소한의 인원만으로도 사람들은 매일 매일 대형 참사 따위 일으키지 않고 평온하게 철도를 이용하고 있다. 차장의 인건비만으로 양국의 대중교통 비용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한국의 철도가 일본보다 싸지 않은가. 저렇게 인건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서로 좋지 않나.


후자의 주장이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옳은 소리인지도 모른다. 다만 저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엔 나는 아직까지도 심리적인 부담을 느낀다. 이젠 꽤 예전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하던 날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날, 그 열차 혹은 그 역에,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신호를 확인하고 열차 문을 열어 탈출을 유도할 수 있는 인력이 두 명, 아니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날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2. 공사


일본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간혹 작업복 혹은 경비복을 입고 헬멧을 쓴 사람이 차량 유도용 형광봉을 들고 행인들에게 이런저런 안내를 하는 장면을 보는 일이 있다. 일본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 장면을 보고 직감적으로 "아, 이 주변에서 무슨 공사를 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일본에선 2층짜리 단독주택을 올리는 것 같은 규모로 치면 작은 편에 속하는 공사라 할지라도 그 공사를 하는 사람이 비용을 부담해 안전 확보를 위한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새로 건물을 짓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공사 기간 만큼 인건비가 나가는 셈이니 꽤 부담이 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안전 확보 업무를 하는 동안은 정말 그 일만 한다. 즉, 건설을 위한 노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정해진 자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을 유도하고 공사가 안전히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만 한다는 말이다. 건물이 올라가는 것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고도 그 시간 만큼의 인건비를 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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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감축을 통한 이윤 창출을 건설업의 가장 큰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발로 땅을 구르며 분개할 것이다. 벽돌 한 장 올리지 않는 사람을 위해 복장까지 따로 마련해 공사 기간 내내 하루하루 인건비를 주다니. 그렇게 공사를 하니 쓸데없이 비용만 올라가고 덕분에 부동산 가격도 상승해 서민들이 방 한 칸 빌리는데 그렇게나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는 "눈을 들어 조국의 건설 현장을 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행인 안전 확보를 위한 인력은 없거나 정말 최소한만 배치해도 성숙한 시민의식의 나라 한국에서 행인들은 건설 현장 주변을 잘만 걸어 다닌다. 사람들은 알아서 자신의 몸을 지킬 줄 알며, 그렇게 오늘도 별다른 대형참사 없이 전국에서 건물들은 잘만 건설되고 있다. 불필요한 인건비 아껴서 공사비용도 줄였으니 서로 좋은 것 아닌가.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후자의 주장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 같은 대형사고는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평소에 인건비 아끼고, 만에 하나 무슨 일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대응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엔 심리적인 부담을 느낀다. 그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무슨 일'이란 것이 사람의 생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3. 안전의 가격

 

나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효율적인 경제활동을 추구하는 분들 가운데도 저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항상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세상엔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점심도 없는데, 왜 안전은 공짜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매우 당연하게도 안전에는 비용이 든다. 그리고 그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은, 평소에는 문자 그대로 낭비된다. 만약 한 명이 운전해도 멀쩡히 운행했을 철도에 두 명을 태우는 것을 인건비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어차피 사고는, 생사는 확률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력과 비용만 투자해도 현대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수십 명 단위의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은 그다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 그 비용 평소에는 아끼는 것이 낭비를 줄이는 길 아닌가. 위험하다고? 어제도 괜찮았다. 지난달도, 지난해도. 그러니 내일도 괜찮을 것이다. 별일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작은 "별일 없을 것이다"가 모여 2014년 4월 16일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미 알고 있다.

 

 

4. 행운과 낭비

 

안전 확보를 위해 인력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았는데도 우연히 확보되고 있는 안전은, 방심을 유발한다는 의미에서 딱 그만큼의 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다른 분야의 기술력과 국민 교육을 통해 함양된 최소한의 시민의식으로 안전이 확보돼 버리면,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거 봐. 안전을 위해 따로 돈 안 써도 별 탈 없잖아. 앞으로도 돈 쓰지 마"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런 안이한 판단들이 모여 어떤 참사를 부르는지 우리는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다. 그 안이한 판단을 막기 위해 국가와 사회는 제도를 만들고 감시와 견제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연히 확보된 안전은 행운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행운이 아니다. 그 행운이 방심을 불러 다른 더 큰 참사를 부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같은 이유로, 안전을 위해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당연히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이런 방향의 합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5. 지진

 

남부지방에서 수십 년 만에 관측된 큰 지진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사회가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미성년자 고등학생들은, 이런 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야 하고 학교가 책임지고 가정으로 무사히 귀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그런 조치가 취해졌으리라 생각하고 뉴스를 읽다가, 눈앞이 캄캄해지는 소식을 들었다. 그 상황에서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소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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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어쩌면 학교의 의사결정권자들은 '효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별일 없을 것이다. 허둥대며 귀가니 뭐니 하느라 '시간이란 자원'을 '낭비'하느니,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실제로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고등학생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것 봐라. 별일 없지 않은가. 이럴 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책상에 앉아 있으라고 '지도'한 우리는 효율을 소중히 여기는 진짜 어른이고 진정한 교사라고 자화자찬이라도 했을까. 그러니 다시 비슷한 재해가 발생해도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라. 움직이지 말고 공부해라"라고 큰 목소리로 외칠 셈일까.

 

이번 행운이 잘못된 방심을 불러 다른 불행을 조장하는 독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시민사회가 눈치를 챈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효율을 운운하는 우를 다시 범하는 일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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