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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 하기 전에 나는 지진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을 우선 짚어둔다. 그리고 전문가일 필요도 없다. 지진은 전문가에게만 닥쳐오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롯이 현실속에 사는, 한 개인의 지적일 뿐이다.


1. 화내지 말자

먼저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화내지 말자'는 것이다. 정이 많은 한국인이니, 한의 민족이니 해도 '정병'이나 '한병'은 없고 '홧병'만 공식적인 질병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화를 잘 낸다. 하지만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지진이 원인이지, 세월호 같은 인재가 아니다. 자본을 쥔 거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계약직 콜센터 직원에게 폭언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듯, 지진에 대해 누군가 희생양을 찾는 일도 피해야 한다. 기상청이나 재해관련 컨트롤 타워에 대해서도 그렇다.

물론 그네들의 지진 대비 수준이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다. 개선하려고 하거나 최소한 지금 있는 것이라도 정해진대로 노력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며 익숙하지 않은 재난에 대해 다소 엉성한 대처를 하는 부분에 대해 너무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

작금의 모습은 하퍼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 나온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늘 기분에 따라 행동하다가는 자칫 자기 꼬리를 쫓는 고양이 꼴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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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관계자에게 아량을 베풀자는 것이 아니다. 화를 내는 것이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꼬리를 쫓느라 지친 고양이는 능숙하게 쥐를 잡을 수 없다.

지난 9월 13일 오전, 기상청은 "사실상 지진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나는 뉴스로 그 소식을 접하고는 '뭘 믿고 저렇게 확신하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기상청의 그런 엉터리 보도가 사실은 우리 사회의 조급증과 관료제의 폐혜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시대 최고의 지진 전문가이며 관련된 최고수준의 관측장비와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야, 이 지진이 언제 끝나냐"

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몰라"

모른다.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구의 반지름은 6400킬로미터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표면은 고작 10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지구 깊이의 640분의 1조차 우리는 다 파고들어가 본 일이 없다. 지진이 어떤 모양으로 왜 일어났는지 추측하는 일은 아직 알 수 없는 것이 현실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허둥대고 여론은 사납고 기상청에는 이목이 집중된 마당이다.이럴 때는 때려맞추는 수 밖에 없다.

좀처럼 지진이 없던 한반도에 이미 규모 5.8지진이 일어나서 흔들렸고 미미한 여진만 계속되는 상태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끝났다'라는 예측을, 그것도 비굴하게 '사실상'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내보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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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자. 이 지진은 북한이 땅굴을 파서 핵을 터트린 것이 아니다. 내가 방구를 뀌어서 이 민폐를 끼친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도 그정도 힘은 없다. 이 지구가 원래 그렇게 되어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처가 다소 허둥대는 것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상청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런 방식의 자연재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글로 배운 지식이 한번에 잘 먹히리라고 기대하지 말자.


2. 문자메시지는 원래 별 쓸모가 없다

보면 일부 사람들이 가장 흥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재난문자가 안 왔다(혹은 '늦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대한 관계기관의 해명도 옹색하기 그지 없어서 듣다보면 화를 돋운다. 기어이 보도를 통해 긴급재난문자 대응체계에 지진에 대한 내용은 없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아니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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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찌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가령 태풍주의보나 파랑주의보, 폭염주의보는 시민들로 하여금 예상된 재난에 대해 대비할 시간을 준다. 기상위성이나 슈퍼컴퓨터의 분석, 매년 반복되는 계절의 '진동'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세부적으로는 그마저도 틀린다고 욕을 먹지만 태풍이나 장마같은 거시적인 현상에 대해 상당히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지진은 다르다. 일단 흔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지진에 대해 "아 흔들리네, 긴급재난문자를 보고 어떻게 할 지 생각해보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지진이 온 순간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몸을 지켜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재난의 순간에 침착하게 머리를 굴려봐도 어떻게 해야할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이는 상당부분 당신의 책임이다. 안전불감증은 당신에게도 있다. 일생동안 한번도 지진을 겪지않는 한국인에게 지진대비 같은 것은 '암 중요하고 말고'하며 머리로만 생각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 세부적인 방법에 대해 열거하진 않겠다. 재난대비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찾아보라. 내 정보가 당신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굳이 한가지 말하자면 절대원칙은 가장 먼저 스스로의 안전을 챙기는 것이다.

정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링크 하나를 남긴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행동요령이다. 이렇게 해도 안 들어가보고서 기상청 욕만 하지는 말자. 나중에 봐야지, 뭐 뻔한 내용이지라고 넘기고 만다면 최소한 남탓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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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 국민행동요령 : 지진

일본에서는 지진에 대한 재난문자 체계를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갖춰놓았다. 그건 왜일까?

지진파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핑계로 자세히는 적지 않는다. 어떤 지진파는 전달되는 속도가 빠르고 어떤 지진파는 파괴력(에너지)이 높다. 만약 당신이 위 기상청 링크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면 속도가 빠른 지진파를 감지해서 발송된 문자를 통해 몇 초간의 시간을 벌어 생존성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고 해봐야, 실제로 방귀도 없이 급똥이 뿌직 나오는 경우도 많다. 번개는 천둥보다 빠르지만 위치가 가깝다면 두 가지는 동시에 느껴질 것이다. 

내가 여지껏 일본에서 십여차례의 지진을 겪으며 지진경보를 통해 몇 초를 벌 수 있었던 것은 단 한번 뿐이다. 그마저도 새벽 네 시경이고 또 처음 듣는 경보음이라 비몽사몽 할 뿐이었다. 뭐 들어본 적 있는 경보여야 그런가보다 하고 대비를 하지. 텃밭 가꾸겠다고 경운기를 살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그런 비용을 들여 일본같은 시스템을 설치하는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1번으로 돌아가 보면 재난문자에 대해 저토록 횡설수설 하는 것도 우리가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말하자면 맨날 사과주스만 사 먹던 고객이다. 어느날 무농약 사과과일 한 박스를 처음 샀는데 그 중에 벌레 한 마리가 나온 셈이다. 열받은 고객 앞에서 "그거 원래 그래유"라고 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몸에좋은 단백질이라느니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원래 지진에는 문자 안 보내도 된다. 무농약 사과에 벌레가 사는 것 처럼.

그러니 다시 말하지만 그런걸로 화내지 말라. 지구에 사는 한, 지진은 언젠가는 온다. 저 링크를 다시 한 번 걸어둔다.

기상청 - 국민행동요령 : 지진



3. 본진과 여진, 전진

올해 4월, 일본 큐슈에서 큰 지진이 있었다. 제법 큰 피해를 남기고 말았는데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일단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지진이 흔하지 않았다는 점, 땅이 흔들린 방향이 좋지 않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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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달은 두 번의 지진 후 더 큰 지진이 왔다는 점이다.

지진은 땅에 쌓인 힘의 긴장이 풀리는 과정이다. 괄약근에 몰린 긴장이 배변활동으로 사라질 때, 대장활동이 좋다면 큰 거 한덩어리로 속을 확실히 비울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비실대는 장들은 여러번에 걸쳐 배변을 이뤄낸다. 지진 규모가 1, 2 ,3씩 커질 때 그 에너지는 숫자에 비례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로 올라간다. 똥 1킬로그램을 한 번에 내보내는 게 500그램씩 두 번 내보내는 것보다 훨씬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올해 4월의 일본 큐슈도 그랬도 9월의 한반도에도 어떤 예외가 발생했다. 보통 긴장이 몰린 괄약근은 먼저 큰 덩어리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들 화장실에서 경험하듯이 첨엔 뽀지직 하고 작게 나온 뒤 나중에 큰게 뿌지직 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다. 설사인 경우도 그렇고.

게다가 가끔씩은 뒷처리까지 다 하고 일어났는데 그때 새삼 신호가 오기도 한다. 그게 지난 19일의 4.8규모 지진인 셈이다.

본진과 여진, 그리고 어설픈 예측이라고 화를 내는데 너희들 중 단 한번도 작은 똥 먼저 싸고 큰 똥 싸고 일어난 뒤에 또 싼 적 없는 자들만 돌을 던져라. 도대체 지진이 언제 끝나냐고 관계기관을 닥달한 자들은 또 반성해야 한다.

나무위키에서는 이번 9월 12일의 경주 지진을 7시 44분 규모 5.0의 전진, 8시 32분 규모 5.8의 본진이라고 기록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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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일의 지진은 위 지진의 여진이거나 아니면 별개의 지진일 것이다.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나는 또 "답은 모른다"고 도망할 것인데,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셋 다 여진이다. 2011년 일본 관동 대지진에 의한 지각 변동의 긴장을 해소하려는 차원의 여진으로 보고 있더라.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자꾸 똥이야기 해서 미안하다. 우리는 아침밥 먹고 점심밥 먹고 저녁밥 먹고 사이사이 간식과 치맥을 퍼붓는다. 괄약근에 긴장을 가하는 일이다. 살아가는 일이 그렇듯 지구라는 자연의 일은 또 땅에 긴장을 쌓는 일이다. 그런데 똥은 먹는 횟수대로 싸는 것이 아니다. 규칙적으로 한 번만 싸기도 하고 수시로 퍼붓기도 하고 어제그제 것까지 몰아서 싸기도 한다.

지진의 발생도 그러해서 뭔가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나누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오늘 먹은 호식이 두마리가 어떻게 분배되어 정화조에 갈지 지금 알 수 없듯이, 지진의 시작과 멈춤도 그러하다. 안타깝지만 흔들릴 만큼 흔들리다가 멈출 것이고 본진이니 여진이니 하는 말들은 매우 모호한 인간의 직관이다.


4. 기상청과 언론에 바라는 바

그래도 우리의 관계기관이 이번 일을 계기로 수준을 올려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있다.

이번 지진의 최대 규모는 5.8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뉴스를 보면 "흔들렸다", "놀랐다", "겁에 질려있다", "관측사상 최대"같은 자극적인 말들만 앵무새처럼 반복될 뿐 아무런 정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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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5.8이란 것은 리히터규모로 환산한 지진의 에너지다. 똑같은 수류탄도 철항아리 안에서 터질 때와 사람이 몰린 광장에서 터질 때는 피해규모가 달라지듯이, 실제 지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삶의 터전에서 느끼는 실제 '진도'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보도를 보면 진도나 진앙의 깊이같은 3-4차원 자료는 전무하고 평면의 진앙에 규모 5.8이라는 2차원 자료만 존재했다. 이것이 언론의 탓인지 기상청의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차후 큰 피해로 이어지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의 사후대처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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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도 자극적인 소리 그만하고 과연 사회의 대 혼란 앞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소명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살펴보길. NHK파견가서 뭐하냐? 맨날 사케만 사먹지 말고.


5. 죽음과 직면하라

2015년, 도쿄도에서 발행한 지진대비 메뉴얼에는 "죽음과 직면하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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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 대해 타 국가와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는 일본이지만, 결국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죽는다. 그것이 내가 아니었다면 다시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내가 화를 내고 겁먹은 사람들, 혹은 그러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언론이나 커뮤니티의 활동을 보며 우려하는 이유는 분노가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진은 자연재해다. 하지만 우리가 의연하게 그것에 맞서지 못하는 순간부터 인재가 발생하고 그것이 숙명인지 무의미한 희생인지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지진이 일어난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그 순간 우리에게는 갈림길이 찾아온다. 재빨리 가스렌지를 끄는 지혜는 불길에 타죽는 이웃의 숫자를 줄여준다. 하지만 가게의 약탈과 강간에 나서는 불한당의 무리는 생존을 위한 공동체의 협력의 기초가 되는 '신뢰'를 제한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순간에 인간일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두 번, 기상청의 행동요령 링크를 소개했다. 인생은 삼 세번이고 귀신도 사람을 세 번 부른다지 않는가. 당신들 대부분은 내가 내민 두 번의 기회를 뿌리쳤다. 그 행동으로 스스로는 물론 몇명의 이웃이 추가로 위험에 빠졌을까?

화내지 말고 겁먹지 말고 아래 링크를 참조하자.



기상청 - 국민행동요령 : 지진





무성한그곳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