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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진 한마디 展

2013-07-1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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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11. 목요일

좌린 








예술로서의 사진


코닥.jpg

코닥 프로토타입 CCD 카메락스2


지금으로부터 불과 삼십여 년 전인 1975년, 코닥 프로토타입 CCD 카메락스 2라는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가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사진에 매진해 온 솜씨 좋은 사진가들은 매우 긴장하기도 하고, 디지털 사진에 대해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만의 노출 데이터를 축적하고, 현상액의 미묘한 온도 변화에 따른 컨트라스트와 입자의 차이를 구분하며, 수시간 또는 수일에 걸친 암실 작업으로 미묘한 톤을 재현하는 작업을 해 오던 장인이었다. 그런데 장난감 같은 장비로 철커덕 찍고 그 자리에서 간편하게 리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니 어떤 사진가인들 사기 당한 것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1975년에서 백 삼십여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36년 프랑스 특허청에 다게레오타입이라는 은판 사진술의 특허 신청이 접수되었다. 이후로 평생을 회화에 매진해 온 솜씨 좋은 초상화가들은 매우 긴장하기도 하고 사진에 대해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력에 손상이 올 정도로 세밀한 관찰을 하고 수개월에 걸친 붓질로 대상을 재현하는 작업을 해 오던 차에, 괴상한 천으로 덮어씌워진 나무 상자를 세워 놓고 철커덕 찍기만 하면 실물을 베낀 듯한 묘사가 저절로 되어버리는 세상이 오니 어떤 화가인들 화가 나지 않았을까.


"이따위 것을 예술이라 볼 수 있는가" 필름을 사용하던 많은 기성 사진 작가들이 디지털 사진에 대해 가졌을 반감일 것이다. 이것이 정당한 박탈감인지 단순한 오해인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다만 여기서 사진이 가진 양면성 한 가지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을 조악하게 명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술로서의 사진'과 '언어로서의 사진'.

 

언어로서의 사진


"나 오늘 엄청난 화로구이 음식점에 왔어, 기름기가 그물처럼 박힌 살코기를 석쇠에 구웠는데 어찌나 두툼한지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육즙이 입 속에 가득 차 말도 못할 지경이야."


고깃집.jpg


요즘 사람들은 이런 대상을 묘사할 때 글을 쓰지 않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인터넷이나 SNS에 올린다. 묵직한 DSLR 카메라라면 더욱 좋다. 고기의 색깔과 질감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척 간편하다. 주말 근교 여행기를 읽어도 사진이 있고, 복잡한 전자제품 수리 방법을 설명하는 글에도 사진이 있다. 대체 사진이 없었더라면 저런 생생한 묘사와 전달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사진기가 없었을 때도 우리는 필요한 표현과 소통을 잘 하고 살았다. 말과 글만 가지고도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사진으로 표현할 때 더욱 효과적인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어로서의 사진'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사진을 바라보려는 태도이다. 과거에는 사진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했고,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이면 으레 대단한 예술가나 전문적인 작가로 알려지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적당한 가격과 빼어난 기능의 장비가 많이 보급되어 누구나 웬만한 수준의 사진을 찍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촬영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 되어 있기 때문에 한글도 못 뗀 어린 아이도 핸드폰 사진을 곧잘 찍어 낸다. 사진 언어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DSLR 열풍


한 때 우리나라에, 그리고 여전히 세계적으로 DSLR 열풍이 불어닥친 것은 사진 언어의 보급과 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여 멋진 출사지를 찾아 다니며 엄격한 촬영 기법을 배우고 감탄을 자아낼만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열성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진기를 장롱에 넣어 버렸다.


언급했다시피 '언어로서의 사진'과 '예술로서의 사진'이 그리 명확한 구분은 아니다. 언어적인 측면이 더욱 포괄적인 개념이고, 그 속에 예술적 표현이 포함된다고 할 수는 있겠다. 분명한 것은 한 때 불었던 DSLR 열풍의 동인은 사진의 예술적인 측면 또는 그에 대한 동경이었다는 점이다.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신 타인에게 공인 받아야 하는 '작품'을 추구하는 분위기는 습득해야 할 지식과 갖추어야 할 장비는 늘리고, 찍을 수 있는 주제는 한정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접근이 결국 사진 작업에 대한 피로를 초래했을 거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사진으로 말하기


좌린의 사진과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사진기의 계기판과 다이얼보다는 피사체에 떨어지는 빛을 응시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 보자. 한 번에 완벽한 세팅에 성공하는 것보다 끊임 없는 리뷰와 보정으로 문장력, 아니 사진적 시각을 키워나가 보자. 그리하여 결국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사진 언어 구사에 능숙해 지자. 사진기와 사진은 목적이 아니라 편리하면서도 독특한 하나의 표현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것이라면 어쩌면 사람들로 하여금 장롱에 모셔두었던 DSLR을 다시 꺼내 들게 할만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sP7091546.jpg

 

이 전시는 한 달 동안 사진과외를 함께 한 촬영자들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씩 던져 보는 '말'이다. 단박에 공감이 가는 말도 있고, 좀 더 들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 말도 있을 것이다. 사진 과외 마지막 시간이기도 한 이 전시가 촬영자 뿐 아니라 감상자 모두에게 '사진으로 말을 꺼내고 사진으로 타인의 말을 들어보는 소소하면서도 색다른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좌린

트위터 : @zwa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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