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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Guide) 


**가이드【명사】


① 관광이나 여행에서 안내를 맡은 사람.

┈┈• 여행에 ∼가 동행하다.

② ‘가이드북’의 준말.


 

세부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관광을 온다. 대만과 홍콩 관광객도 꽤 많고, 러시아와 중동, 인도 쪽에서도 온다. 물론 가장 많은 건 한국 관광객이다. 관광객이 많은 세부에는 가이드도 많다. 특히 세부 관광객들의 주요 거점인 막탄 섬에는 각국의 많은 가이드들이 살고 있다.

 

가이드는 관광객들보다 먼저 그 지역을 정찰해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지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관광객이 좋은 가이드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생각지 못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딴 나라로 여행을 가면 그 나라 국적의 가이드가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게 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어떤 나라들은 편법으로 한국인 가이드를 현지인 가이드의 도우미로 등록해서 법망을 피해가기도 한다.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가이드가 단독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 필리핀 관광청에서 외국인에게도 가이드 자격증을 내주기 때문이다. 물론 가이드 자격증 없이 일하는 가이드도 많다. 불법이긴 하지만 자격증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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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태국 다음으로 많은 한국 관광객이 오는 곳으로 가끔 태국을 앞지를 때도 있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세부(Cebu), 보라카이(Boracay), 마닐라(Manila), 클락(Clark) 등이다. 각 지역마다 관광지로서 특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이드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 때문에 지역을 이동하면서 일하는 가이드들도 많다. “요즘, 보라카이가 물이 좋데!” 이런 소문이 나면 보라카이로 갔다가, “요새는 세부가 대세래!” 이런 말이 돌면 세부로 몰려오고, “요새는 클락이 좋데!” 이러면 클락으로 간다.

 

이 바닥도 유행이 있어서 기본기가 탄탄한 가이드들은 장소를 바꾸는 것을 낯설어하지 않는다. 어딜 가나 타짜는 있기 마련이다. 타짜 가이드들은 같은 나라에서 지역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나라를 바꾸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력이 오래된 가이드 중에는 베트남에서 몇 년, 캄보디아에서 몇 년, 태국에서 몇 년, 중국에서 몇 년 이런 식으로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일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각 나라의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세부의 경우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 정도가 기본적인 패키지관광 일정으로 이 기간 동안 손님과 가이드는 잠잘 때를 제외하면 거의 함께 생활한다. 가이드는 관광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면 솔직히 즐거운 일보다는 괴롭고 짜증 나는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 좋은 손님을 만날 때도 있다.

 

여행을 많이 다닌 연세 지긋한 여자 손님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관광객은 가이드의 입을 통해서 그 나라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요. 가이드가 좋게 말하면 그 나라를 보는 인상이 좋아지고, 나쁘게 말하면 인상이 나빠지죠. 좋은 가이드를 만나면 많은 걸 배우게 되요.”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겠지만 내겐 가이드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있는 말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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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정이 끝나고 손님이 한국으로 떠나면 가이드는 행사를 정리해서 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수입과 지출을 비롯해서 문제가 됐던 사안들을 보고하는 문서로, 가이드들은 ‘정산서’라 부른다. 정산서를 회사에 제출하고 회사의 결재가 나면 공식적으로 그 일정은 끝이 난다. 물론 손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본사에 컴플레임을 한다면 훨씬 심각한 일이 발생하겠지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하나의 패키지 행사는 거기서 마무리가 된다.

 

일정을 끝내고 정산서를 쓸 때면 “과연 여행객들도 이런 과정을 거칠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여행객들도 가이드처럼 “정산서를 쓰고 기록을 남긴다면 다음 여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마무리가 됐다는 뜻은 새로운 출발점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르는 세상으로 떠나는 모든 행위를 ‘여행’이라 부른다. 삶이 지속되는 한 여행은 멈출 수가 없다. 싫든 좋든 우리는 모두가 여행자이다. 삶은 곧 여행이니까.


 

가이드 교육

 


“Oneul 10am Samusil Sinib Guide Gyoyuk Itseumnida”

(오늘 오전 10시 사무실에서 신입 가이드 교육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는 가이드들은 이런 식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영어밖에 안 되는 로컬 2D폰을 쓰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Today 10am new Guide meeting. Don’t forget.” 이렇게 영어로 전달하면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꽤 오랫동안 알파벳으로 쓰는 한글 문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는 스마트 폰과 함께 사라졌다.

 

가이드들은 통상적으로 랜드사(현지 가이드 회사)에 입사하면 약 3개월간의 교육 기간을 거친다. 교육 과정은 필리핀의 ‘역사’, ‘지리’, ‘문화’ 등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일이며, 담당하고 있는 호텔들과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옵션들에 대한 정보 습득 그리고 관광객에게 사용할 멘트를 만드는 일이다(**멘트(ment): 가이드가 관광객 앞에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통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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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일하는 가이드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미팅에 참석해야 한다. 행사가 끝난 손님에 대한 정산서를 제출하거나 다음 행사 손님의 바우처를 수령하는 일을 해야 하고 여행사로부터 주의사항이나 특이사항 등에 대한 브리핑도 받아야 한다. 이 미팅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참석하지 않으면 제재가 가해지기도 한다. 또한 신입 가이드들이나 초보 가이드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야! 신입 가이드, 이름 뭐야?”


“네, 000입니다.”


“입국 멘트 한번 해봐.”


“네??”


“너 아직 입국 멘트 못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해봐, 샹그릴라 호텔, 15명 미니버스, 비행기 한 시간 딜레이 됐다고 생각하고 해봐”


“네 알겠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야! 시티투어 멘트 한 번 해봐.”


“네, 주저리 주저리.....”


(**입국멘트 : 가이드가 처음 손님을 만나서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 중에 차에서 하는 첫 번째 멘트)

 

20~30명 정도 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선배 가이드들 앞에서 하는 신입 가이드의 멘트가 자연스러울 리가 없다. 사람들은 듣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고 비웃음 가득 찬 시선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간혹 짓궂은 선배들 중에는 “가이드 님 지금 화장실이 급한데 차 잠깐 세워주시면 안돼요?” 같은 신입 가이드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멘트 중간에 날리기도 한다. 멘트가 끝나면 이런저런 지적질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멘트를 했던 신입 가이드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다 이런 일도 생긴다.

 


“야, 누구! 너 입국멘트 시범 한 번 보여 봐!”

 


경력 약 6개월에서 1년 정도 된 가이드에게 하는 말이다. 아마도 남자들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미팅 때마다 다반사로 생긴다. 물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극한 상황에서도 가이드들은 멘트가 입에서 끊어지면 안 된다. 그러니 이런 식의 교육법이 굳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겪는 당사자는 조롱받는 것 같은 상황에 대한 모멸감과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 당장 테이블을 뒤집고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참담함 등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다.

 

이런 일이 지나고 나면 또 누군가 다가와서 이런 위로를 한다.

 


“힘들지? 우리도 다 겪었던 일이야."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 져.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교육 기간 중에는 인격적 대우 같은 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인간적 대우 때문에 교육기간 중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가이드 교육생들은 랜드사의 회의실이나 사무실 등 빈 공간에서 공부를 한다. 교육이라고 하지만 누가 강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료집이나 교재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역사 공부해, 지리 공부해, 멘트 만들어 놔!” 하는 식으로 포괄적 지시만 떨어진다. 물론 누군가 나중에 검사는 한다. 하지만 교육 시키는 일을 반기는 가이드는 없다. 추가 업무에 불과하고 자기 일을 하면서 교육까지 신경 써서 하는 것은 버겁기 때문이다. 교육생들은 간혹 사무실 직원들의 잔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때로 간부들 눈에 띄면 “무슨 멘트 한 번 해봐” 식으로 테스트도 당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이드의 교육기 간은 랜드사마다 다르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정도가 평균이다. 큰 회사일수록 교육 기간은 길어진다. 랜드사에는 독하게 교육시켜야 오래 간다는 미신 같은 생각이 흘러다닌다. 그러다 보니 독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자랑인 줄 아는 사람들이 교육을 빙자해서 인격 모독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때는 더 했어!!”



그렇다고 신입 가이드가 이런 교육과정을 겪지 않을 방법은 없다.

 

교육이 끝난 신입 가이드는 자연스럽게 상명하복이 몸에 배게 된다. 소위 말해서 선배를 하늘처럼 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 세계에서 발붙이기가 어렵다. 이 바닥은 좁다. 만약 문제를 일으키고 나가면 금방 소문이 나니 다른 회사로 가기도 힘들어진다. 그러니 쉽게 들이박기도 힘들다. 한국에서 멋모르고 취직한답시고 온 사람들은 이런 일에 부딪히면 더 난감해진다.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꾸역꾸역 버티다가 떠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교육을 받던 회의실 벽의 화이트 보드에는 커다랗게 가이드 서열이 적혀 있었다. 그 중 첫 번째로 이름이 올라 있던 가이드 부장은 나와 동갑이었다. 계급이 깡패인 이런 곳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20살이나 어린 여자 선배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붙여야 했고 잔심부름을 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뭐,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어디 간들 세상사는 일이 만만하겠는가?


어쨌든 나는 천신만고 끝에 지긋지긋한 3개월의 교육 기간을 끝냈다.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벼랑 끝에 서 있던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지나고 나면 옛이야기 할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 하며 그때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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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 시절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곱씹던 말이 있다.

 


“오늘도 지나가리라...”

 


그리고 이런 말도 했던 거 같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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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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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imes I think I'm fighting for a life I ain't got time to live"
- Dallas Buyers Club, 2013.
가끔은 살려고 애쓰다가 정작 삶을 누릴 시간이 없는 거 같다.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