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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정치에 대한 경각심이 아주 낮은 도시였다. 한국이나 유럽 국가와 같이 민족 국가(nation-state) 형태의 사회가 아니라 국제적인 무역항이며 '이민 도시'였기 때문이다.

 

물론 홍콩에서 손중산 같은 역사적 인물이 거쳐 가기는 했지만, 홍콩으로 오는 대부분들의 이민자들은


 - 굶어 죽지 않고 가난을 피하기 위해서 (기회의 땅)

 - 제대로 된 '사업'을 하기 위해서 (중국 개혁개방 전까지)

 - 정치적인 이유 (중화인민공화국 창건부터 문화혁명까지)


이런 경로로 홍콩을 오게 된다.


어? 정치적 박해를 피해 홍콩으로 오게 된 사람들은 정치적 경각심이 높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중국에 대한 반발감은 강해도, 홍콩까지 도망쳐 온 판에 굳이 '홍콩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 피해자들의 심리다.

 

실제로 유대인 가정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육을 가정에서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육한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을 상기하는 것이고, 생각하면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니 언급 자체를 꺼려한다. 문화혁명의 피해자들도 다를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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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정상적인' 방법으로 홍콩으로 들어온 중국 난민들

심천에서 헤엄쳐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다고 카더라

출처 - <LIFE>

 

근데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이민자 2세대, 3세대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에게 홍콩은 더 이상 기회의 땅도 아니고 피난처도 아니다. 홍콩은 삶이 터전이고 집이다. '중국에서 온 이민자'가 아니라 '홍콩사람 Hong Konger'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1980년대부터는 홍콩의 인구가 이미 500만 명을 기록해서, 중국에서 오는 이민자들의 수를 제한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몇 세대가 지나면서 홍콩에 시민 사회나 민족주의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인식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그래프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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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람을 붙잡고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라고 물어보면 답하기 어려워한다. 법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되어있지만, '일국양제'의 통치 아래에서는, 중국은 홍콩사람들의 일상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가일 뿐이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홍콩을 '국가'라고 놓기에는 또 애매하다. 홍콩은 정식적으로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97년 이전에는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의 수가 많아서 중국에 대한 소속감을 더 느꼈을 수도 있다. 97년과 16년 사이, 자신을 '홍콩인 香港人'이라고 답하는 비율은 34%에서 42%로 늘었다. '중국인 中国人'이나 '중국의 홍콩인 中国的香港人'이라고 답하는 비율은 39%에서 30%로 떨어졌다.

 

홍콩은 심천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하고 있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육체적인 거리일 뿐이다. 홍콩은 정서적으로 대만보다 더 멀리, 아마 싱가폴 정도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싱가폴은 반중 정서가 강하다).


중국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여기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크게 5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예정이다.


 - 경제, 문화 우월주의: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요로운 홍콩사람들이 중국을 미개하고 비문명적이라고 봄.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함.


 - 부모, 조부모의 영향: 앞에 말했듯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 홍콩으로 오신 분들이 많다. 중국에 대해 좋은 얘기할 이유가 없다.


 - 중국에 대한 이해 부족: 뒤에서 말하겠지만, 홍콩시민들은 중국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질 않는다. 중국을 여행하러 가려 하지도 않는다. 영국이나 동남아로 여행을 더 많이 간다.


 - 경제관계: 중국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긴다. 식당을 가도 자리가 부족하고, 집을 사려고 해도 집값이 너무 비싸다. 중국 관광객들이 홍콩에서 분유를 사재기하는 바람에 현지 아이들을 먹일 분유가 부족해 친중국 성향인 홍콩정부에서조차도 제한을 걸어야 할 정도.


 - 정치적인 문제: 파룬궁같이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밴 당한 단체들은, 그들의 상황을 알리기에 홍콩만 한 도시가 없다. 중국이랑 가깝고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다. 그리고 뒤에서 말하겠지만 홍콩사람들이 정치적 박해를 당하는 일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홍콩은 교육열이 우리만큼 높다. 우리나라처럼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이지만, 고등학교 진학률은 거의 100%에 가깝고, 대학교 진학률은 68.8%에 이른다. 

 

홍콩에는 4년제 대학이 8개밖에 없다. 인구가 700만인 것에 비해 굉장히 적은 숫자다. 그래서 홍콩정부는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고, 유학생의 수도 많다! 실제로 97년 이전에 태어난 홍콩시민들 중에 영국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은(대부분이 중산층 이상) 학비나 장학금 같은 면에서 영국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 영국 유학생의 수가 많다.

 

대부분의 홍콩 대학생들은 3개국어를(광동어, 영어, 중국어) 기본으로 하고, 중, 고등학교는 기존의 영국식 교육제도를 그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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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hinadaily>

 

china student uniform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학생들의 편리를 위해서는 중국식 교복이 더 좋은 것 같다...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이것도 97년 홍콩 반환 때 문제가 되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 당국은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정책을 적용하도록 했다.

 


“홍콩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자”


“물론 아무나 판단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정한 홍콩사람이 판단하도록 하라는 뜻”

 


홍콩 행정장관은 일관적이고 노골적으로 중국 당국의 노선을 지지해 왔다. 2003년에는 홍콩식 국가보안법을 도입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2012년에는 '국민교육 德育及國民教育'을 도입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이 두 사건들도 우산혁명과 홍콩정치를 알아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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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혁명의 전신격인 국민교육 반대운동.

2012년 9월 홍콩중문대학교. 홍콩은 날씨가 더워서 밖에 오래 못 있는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교육정책은 '시민교육 公民教育'인데(이것도 1984년 홍콩 반환에 관한 협정에 영국이 동의한 이후에 진행된 정책이다. 물론 그 전에는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서구식 민주주의, 자유, 권리, 의무 등에 대해서 배운다.

 

참고로 1994년까지 홍콩에서는 '중문 (中文) 교육'이 없었다. 국민당이 세운 학교나 몇몇 사립학교에서는 가르쳤겠지만 필수과목도 아니고 '홍콩 수능'에서 시험 쳐야 하는 과목도 아니었다. 영국의 식민통치가 타민족의 언어나 문화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다.

 

1997년이 되어서야 중학교에 만다린(普通话) 수업이 생기게 되는데,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익혀야 되는 것은 중문학(中文)이지 만다린(普通话)은 아니다.

 

중국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중국어는 만다린(普通话)을 필두로 광동어, 복건어, 상해어, 하카 등등 외국어급의 사투리가 많은데,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휘나 문법도 많이 차이가 난다.

 

2000~3000년간 중국에서의 글자는 엘리트들만 사용했기 때문에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를 거치며 통일된 문체를 쓰게 되고, 이웃나라 왕실도 세계의 언어로써 같은 문체를 사용했다(조만문명권의 왕조들 포함).

 

훈민정음을 기억 하는가?

 


세종어제훈민정음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나라 가운데, 즉 “왕실”이지 500년뒤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다]
문자와는 서로맞지 아니해서
이런 까닭으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펴지 못할놈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야 가엾이여거
새로 스믈여덟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 쉽게 여겨 날로 쓰며 편한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사실 중국도 1900년대까지 다를 건 없었다. '어린 백성들'이 말하는 것과 '나라 가운데에서' 쓰는 것이 다르다. 논어 맹자에서 공자 왈 맹자 왈 한다고 해서, 영희 왈 철수 왈 하지는 않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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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아Q정전. 루쉰은 백화운동을 넘어서서 한자를 없애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도 말 하는 대로 글자를 편하게 쓰자!”

 


조선의 훈민정음 반포 400년도 훨씬 지나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 '백화 운동 (Vernacular Movement)이다. 이 백화 운동에 힘입어서 나온 것이 만다린(普通话)을 바탕으로 한 중문체(中文)이므로, 광동어를 독자적으로 한 광동어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문학을 광동어로 읽고 이해할 수는 있다. 홍콩인들이 중국어를 접할 때 읽는 방식이다.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언어가 디지털화되면서 이야기가 쫌 더 복잡해진다. 만다린과는 달리 번체자를 쓰고, 발음체계도 다르기 때문에 아얘 다른 문자 시스템을 사용한다. 즉, 광동어만의 새로운 백화(白話)가 탄생하는 것.

 

어쨌든 홍콩인들에게 국어는 광동어고 중문학이지, 중국어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홍콩인'으로써의 정체성, 중국에 대한 반발감, 높은 교육 수준, 교육의 내용들을 고려할 때, 홍콩에서 20대, 30대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서 중국당국의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는 진짜 우산혁명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지난 기사


우산혁명 청년들의 정치 데뷔

우산혁명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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