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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오. 나는 임숭재라고 하오. 내 이름을 못 들어 보았다고? 어흠. 국사 시간에 졸았구만! 하고 외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구려. 사실 교과서에 안 나오거든. 피차 공부 이야기하면 재미없을 테니 영화 이야기를 합시다. 얼마 전 나온 영화 <간신>이라는 거 기억나오? 그렇지! 거기 나오는 누구? 그렇지! 주지훈이 내 연기를 합디다. 이제 좀 나를 알아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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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소. 나는 성종 연산군 때 사람 임사홍의 아들이고 조선 왕조 500년을 통틀어 으뜸가는 간신으로 소문나 있는 임숭재요. 그러나 나는 영화 제목도 그렇고 나를 간신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소. 나는 간신이 아니라 충신이었소. 내가 모신 임금에게 나만한 충신이 있었다면 종로 네거리에서 맞아 죽어도 좋소. 나는 적어도 내 임금에 대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충신이었소. 물론 그 임금은 연산군이오.

 

원래 충신의 피는 대를 잇는 법이오. 우리 아버지 얘기 들어보실라오. 우리 형 희재는 집안에서 내놓은 꼴통이었다오. 즉 사람이 좀 융통성 있게 (여러분들의 왜국어에 따르면 유도리 있게) 살지 못하고 꼬장꼬장하고 쓸데없는 선비의 도 따지고 학문을 닦네 어쩌네 피곤하게 살았다오. 툭하면 매 맞고 귀양 다니다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연산군 눈에 딱 그 형이 쓴 병풍 글 (진시황을 욕하는 것이었지만 누구나 연산군인 걸 다 알게 쓴)이 띄는 바람에 황천길로 간다오.

 

아 그때 우리 아버지 대단했소. “이 자식의 성질과 행실이 온순하지 못한 것은 전하의 말씀과 같습니다. 신이 아뢰고자 하다가 미처 아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희재 형은 능지처참 됐지.

 

천하에 이런 충신 봤소? 자신이 충성하는 임금에게 거스른다 하여 제 자식 죽여 주십시오 하는 아비를 봤소? 충신이란 이런 것이외다. 나는 이걸 보면서 다짐했소. 나도 충신이 되리라. 그리고 주상 전하에게 내가 바친 충성은 실로 눈물 없으면 보지 못할 것이요, 냉혈한의 심장에도 뜨거운 피가 솟구칠 것이오. 벙어리들도 일어나 “세상에 이런 충신이 어디 있는가” 외칠 것이요 귀머거리들도 그 칭송에 귀가 뚫릴 것이오.

 

우선 나는 내 몸을 던져 전하를 기쁘게 했소. 연산군께서 처용무를 잘 추시어 기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 보셨겠지만 나도 춤의 명수였소. 실록 기록을 보면 “잔뜩 움츠리면 온몸의 관절이 떠는 것 같았다.”고 돼 있으니 알만하지 않소.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호색한은 호색한을 감지하며 춤꾼은 춤꾼을 찍어내는 것이오. 우리 둘이 짝을 이어 춤을 추면 전하와 나는 암수보다도 더 질펀하게 어울렸으니 과연 어떤 이가 나보다 임금의 마음을 기껍게 할 수 있었겠소.

 

내 고민은 그저 전하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가쁘게 할까 뿐이었소. 궁궐 안에 기생들을 잔뜩 끌어들였지만 전하는 만족하지 못하셨소.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조선 경국대전에도 없는 관직을 자임했소. 채홍사라고 하지. 조선 팔도를 돌며 미인을 찾아내 전하께 바치는 일이었소. 그래도 전하께서 만족하지 못하시자 나는 괴로웠다오. 어찌 이리도 전하께 바칠 충성이 부족하단 말인가. 날마다 가슴을 치며 내 무능을 탓하고 충성심을 가다듬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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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을 탐하는 좋아하는 남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오. 일도(一盜), 이비(二婢), 삼랑(三娘), 사과(四寡), 오기(五妓), 육첩(六妾), 칠처(七妻). 이건 쾌락의 순서요. 꼴찌부터 마누라가 제일 그렇고, 그 다음이 첩이고, 그 위가 기생이랑 보는 재미, 그 위가 과부, 그 위가 처녀인데 그 후는 자기 집 종이오. 자기 집에서 노비랑 몰래 하는 거, 가장 최고의 즐거움은 남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이지.

 

전하께오서는 그만 거기에 눈을 뜨고 마셨다오. 말했지만 나는 충신이라오. 임금의 즐거움을 위해서 나는 모든 것을 다했소. 시집간 내 누이동생까지 바쳤다면 말 다하지 않았겠소. 그래 그것이 다냐고? 아니오! 아니오! 이 정도면 충신이 아니지. 전하께서는 이복누이이신 내 마누라까지 탐을 냈소. 그래서 그렇게까지도 했소. 미친 거 아니냐고? 충신의 길이란 그렇게 고독한 거라오.

 

내가 죽을 때 남긴 유언을 들어 보시오. 아마 눈물로 홍수를 적시다 못해 방 안에 홍수가 날 것이오. “여한은 없사오나 오직 미인을 전하께 바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전하께오서는 내 죽음을 슬퍼하셨으나 내가 저승에서 혹여 전하의 죄를 고할까 하여 내 입을 쇳조각으로 틀어막으셨으나 내 충성이 어찌 가시리오. 백골이 진토되어 일백 번 고쳐 죽은들 말이오.

 

그로부터 수백 년. 내 입에 물린 쇳조각을 빼고 이렇게 여러분께 떠들어 대는 뜻은 다름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충신을 수백 년 만에 다시 보았기 때문이오. 아아 가슴이 떨리고 발이 요동치오. 호색한은 호색한이 알아본다고 충신은 충신을 알아보는 법이오. 수백 년 뒤 내 가슴을 뛰게 만든 충신의 이름은 다름 아닌 이정현이오.

 

지난 선거 때 KTX 바퀴가 닳도록 순천을 오르내리고 안 찾아간 경로당이 없고 순천 사람들이 미안해서라도 찍어 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그 행보를 보며 나는 무릎을 쳤소. 그게 어디 순천 사람들 생각한 일이었겠소. 오로지 자기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충성일 뿐이었지. 내가 문경새재를 넘고 낭림산맥을 거스르고 대동강 물줄기를 샅샅이 뒤지고 김제만경 드넓은 들을 왜 쑤시고 다녔던 바로 그 이유요. “미인을 찾아 전하를 기쁘게 하리라.” 아 이정현 공의 그 모습을 보면서 어찌 그리 눈물이 나던지.

 

명색 여당 대표로 앉았으나 그 충성은 가히 하늘을 찌릅디다. 도대체 누가 주동인지도 모르겠고 누가 돈을 긁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바늘로 찔러 피도 한 방울 안 나올 재벌들이 800억 가까운 돈을 갖다 바쳐 만든 재단의 의혹에 대고 “세월호도 900억 모으더라.”고 하며 주군에 대한 의혹을 온몸으로 방어할 때에는 참으로 눈물이 나더이다. “여한은 없으나 미인을 바치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한 나의 비장함을 빼다 박지 않았습니까. 연산군이 나를 일컬어 “숭재는 제신 중에 가장 충성이 있어 비밀스런 가르침을 받들었다.” 한 만큼 이정현 공의 그분도 그렇지 않겠소이까........

 

아아 그것도 모자라 딱 국감 일정에 맞춰서 대표방에 드러누워 단식을 시작하고 장장 이레를 끌었으니 눈물이 마를 지경이오. 비록 아늑한 방에 드러누워 하는 비공개 단식에 겨우 이레 굶어놓고 구급차 신세를 지는 건 조금 얼척이 없으나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도 외면하고 이제는 네가 져라 설득하는 아버지도 물리치면서 곡기를 끊은 그 마음은 아들 따위는 기꺼이 충성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었던 우리 부친 임사홍이 무색하며 누이동생을 생으로 바친 나에 필적하지 않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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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거니와 모름지기 충신이란 그저 태양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인 것입니다. 태양을 우러르고 태양을 가리는 것을 치우고 태양을 찬미하고 태양의 마음을 헤아리고 태양이 원하는 말을 하고 태양이 싫어하는 것들을 몰아내며 태양과 함께 기뻐하고 태양과 함께 슬퍼하며 태양이 죽으라면 죽고 태양이 살라면 사는 것이요, 죽으면서도 태양에게 뭐 부족한 것이 없었나 돌아보는 것이 충신인 것입니다. 바로 내가 한 일이요 오늘날 이정현 공이 하고 있는 일이지요.

 

아 이정현 공이여. 내 그대를 위해 시조 몇 수 남기리다. 비장하게 외우고 또 단식에 매진하시오.

 


큰누님 가나이다 순실누님 좋이 겨오

두분이 맘쓰시니 이몸을 잊었내다

샥스핀 송로버섯이 눈에 아른 거리오


가노라 여의도야 다시보자 북악산아

산해진미를 떠나랴 한다마는

시장기 하수상하니 갈동말동하여라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정유라 말발굽에 말 편자가 되었다가

큰누님 계시는 곳에 독야멍청하리라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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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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