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7. 24. 수요일
춘심애비
‘NLL 논란은 국정원 대선개입을 물타기하려는 수법이니 자꾸 말려들지 마라'고 하실 분덜이 많을 것으로 안다. 말려들면 안 되는 거 시발 나도 안다. 이거슨 NLL 얘기가 아니다.
NLL 논란이라 함은(아니래놓고
바로 얘기해서 미안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새누리당 측의 주장에 대한 논란이다. 뉴시스에서 이에 대한 사건 일지를 소상하면서도 명료하게 정리했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0722_0012241579&cID=10301&pID=10300
<[대화록 실종][일지]2007년 남북정상회담부터 대화록 실종까지> 뉴시스, 2013.07.22
다들 아는 얘기 다시 정리할 필요는 없겠고, 암튼 분명히 국정원에서 녹취를 따서 청와대에 제출하고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어야 할 문서가, 국가기록원에 없는 것으로 나오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렇게 되면 경우의 수는 2가지 밖에 없다. 새누리당 애들이 국정원에서 보관중이었던 회의록을 보고서 그 지랄을 했거나, 혹은 새누리당 애들이 국가기록원의 자료를 본 이후에 자료가 없어졌거나. 둘 중 어느 쪽이더라도 참으로 좆 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런데, 이 명료한 사건이 파면 팔 수록 새로운 게 계속 나온다. 국가기록원 측은 본문 검색을 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없다'고 발표를 하고, 이후에 "시발
왜 본문 검색 안 해!"라는 여론이 생기자, 이래저래 이것저것
해 보고 나서 지난 22일 ‘없다'는 발표를 한 번 더 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뭔가 석연찮다.
이 모든 석연찮음을 완전히 제거하고 명료하게 사안을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정보들을 모두 후벼파봐야
한다.
1) 참여정부에서 만든 e-지원 시스템의 특성상, 등록된 자료는 삭제 자체가 안 된다. 그런데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e-지원 시스템의 모든 특성을 다 알아야 할 거고, 이미 국가기록원이나 국정원, 검찰 등은 미덥지가 못해졌으므로, 결국엔 제 3자가 e-지원 시스템을 소스부터 다 까 봐서 파악한 후, 시스템 생성 이후 지금까지의 로그를 다 뒤져봐야 할 거다.
2) 국가기록원은 또 PAMS 시스템(국가기록원의 대통령 기록물 관리 시스템)을 쓴댄다. 이거 역시 제 3자가 소스 다 까 보고 로그까지 다 까 봐야 모든 실체가 나올 거다.
3) 뿐만 아니라 도대체 정문헌과 서상기, 김무성이 본 자료는 국정원 요약본인지, 국정원 사본(내용상 원본과 동일한 사본)인지, 국가기록원 원본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위법 행위를 한 것인지, 국정원에서 위법 행위를 한 것인지, 둘 다 아닌지가 명백히 밝혀질 거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 수사가 필요할 텐데, 검찰은 역시 미덥지 못하므로 이 때문에 특검을 조직하려면 여야가 합의를 해야한다.
4) 게다가 국정원이 갑작스레 요약본 및 사본을 공개한 것에 대한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한 법률'을 검토해서 이 국정원 사본(내용상 원본과 동일한 사본)이 과연 공공기록물로 전환이 가능했던 것인지, 그리고 공공기록물을 이따구로 막 공개해도 되는지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 판단을 법원이 하려면 소송이 필요한데, 미덥지 못한 검찰이 나설 리 없으니 야당이 나서야 할 거다. 그런데 아마 야당이 나서면, ‘물타기에 넘어간다'며 반대 여론이 또 생기겠다.
5) 이 모든 과정이 원칙적인 방식으로 다 수사되고 판단되려면 한 3년은 걸릴 거 같으니 그 전에 언론 및 시민, 혹은 정치권이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원, 국가기록원 주요 인사 및 담당자 전원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 시절의 청와대, 국정원, 국가기록원 주요 인사 및 담당자 전원의 증언이 필요할 거다.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국, 이 모든 걸 낱낱이 파해치고 어떤 새끼 잘못인지 밝히는 건, 사실상 누가 싼 똥을 분석해서 그 놈이 똥을 싸기 전에 뭘 먹었으며 먹은 음식이 무슨 맛이었는지를 완벽하게 맞추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겠다.
이 문제 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그런데 말이다. 일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꼬는 데에 있어서 실제로 행한 액션은 아래와 같다.
1) 2007년 남북정삼회담 회의록을 새누리당 일개 의원이 보고서, 내용을 맘대로 왜곡해서 언론에 드러낸다.
2) 국정원이 내용을 왜곡한 요약본을 1차로 까고, 전체 내용을 2차로 깐다.
3) 국가기록원에서,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그냥 ‘없다'고 발표한다.
4) 이 모든 과정에서, 원본을 공개하자느니 말자느나, 했다가 말자느니, 말았다가 하자느니 말을 계속 바꾼다.
이 4개 행위는, 어렵지가 않다. 그냥 저렇게 하면 땡이다. 저 4개의 행위만으로 이 사태는 반 년 넘게 언론을 가득 메워 모든 이슈의 블랙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명의 노력과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게 의도한 전략인지, 아니면 그냥 벌어진 현상인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 둘 중 무엇인지를 밝히려면 수백 수천 명의 노력과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
하지만 상황 자체를 들여다 보면, 어떤 문제를 졸라게 복잡하게 꼬기 위해 고작 몇 개의 행동만을 했을 뿐이란 거다.
그러면 진짜 중요한, 국정원 대선개입을 한번 보자. 국정원 요원 하나가 오피스텔에서 댓글 알바짓을 했다. 문 잠궈놓고 감금했다는 드립부터 이 사건은 꼬아지기 시작한다. 이제와서 이 사태 전반의 진실을 낱낱이 밝히려면, 현임 국정원장이 자료를 공개한 과정 및 이유, 요약본이 원본의 표현들을 왜곡하게 된 경위 및 이 과정에서의 지시여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료를 열람하게 된 경위 및 자료를 전달한(혹은 열람시 동석한) 국정원 담당자, 동 자료를 열람한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료를 보게된 경위와의 상관관계, 댓글여론개입에 대한 청와대의 지시여부 혹은 보고받은 적이 있는지 여부, 청와대 비서실의 보수시민단체 지원 및 여론개입의 사실여부 및 국정원 댓글 여론 개입과의 상관관계, 전임 국정원장과 현임 국정원장 인계과정에서 본 건에 대한 전달 여부, 대선 당시 경찰의 중간수사발표에 대한 경위조사 및 언론보도된 CCTV 자료에 대한 조사, 블라블라 등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지게 된 경위를 보자.
1) 댓글 달던 요원이, 경찰이 왔음에도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2) 새누리당이 ‘감금'이라는 생떼를 쓴다.
3) 경찰이 며칠 만에 수사중간발표를 한다. 물론 ‘그런 거 없다'는 내용으로.
앞서 NLL 논란도 그렇고, 이 국정원 대선개입도 그렇고, 사태의 복잡함을 수식하는 말은 좀 길고 복잡하게 쓰고, 그렇게 만들게 된 경위는 단순하게 썼다고 지랄 할 이들도 있겠다. 일면 그런 의도가 있었음은 인정한다.
논란이 되는 문제를 다 샅샅이 밝히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복잡한 문제들인 반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는 데 필요했던 요소들은 간단명료하게 떨어진다는 말이다. ‘일 다 벌어진 후에 저런 식으로 정리하면 안 저런 게 뭐가 있냐'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몇 개의 행위만으로 한 상황을 졸라게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건, 한 행위와 다음 행위 사이에 벌어진 리액션과 그러한 리액션을 야기하는 맥락들의 조합이다. 그 한 주체가 하는 액션과 그에 대한 리액션의 상관관계에 따라 어떤 사건은 별 노력 없이 복잡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은 졸라리 노력해서 단순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나비효과 같다고나 할까...
그냥 쉽게 예를 들어서, 버스 정류장에 한 사람이 121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그 버스는 약 5분 후에 그 정류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사람이 그 5분 후에 도착하는 121번 버스를 타지 못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을 거다. 극단적으로는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해서 탑승을 못하게 할 수도 있겠고, 돈을 뺐거나, 협박을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방법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를 때,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만약 외국인이고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초행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디가냐고 물어본 후 ‘122번 버스가
더 먼저 올거고, 그게 목적지에 더 빨리간다'고 말하면 된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건, 패거나, 돈을
뺐거나, 협박하는 것 보다 더 단순하다.
즉, 그 사람이 약속이 급한 사람인지 여유있는 사람인지, 버스 시스템에 익숙한지 아닌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등등에 대한 특성을 많이 알고 있을수록 보다 단순한 방법으로 더 복잡한 결과를 유도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NLL 논란이나 국정원 대선 개입에 있어서, 당사자들이 했던 행동이 얼마나 단순한지와, 그 행동으로 인해 반대 편에서 해야하는 행동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를 비교해보시면 되겠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는 말 한마디는, 수많은 여론의 갈등과 정치적 이용을 낳고서 3년 만에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그냥 한 인간이 뻥을 친 거 하나로 3년 간의 삽질을 유도했으며 그렇게 얻어낸 결과는 그냥 ‘뻥쳤다'는 사실 뿐이다.
지난 서울시장 재보선에서의 선관위 홈페이지 장애 건은, 새누리당이 언놈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되도 않는 디도스를 시킨 후에, 선관위 측에서 ‘석연찮은' 자료를 발표한 것으로 수많은 전문가와 정치인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의 분노, 의혹,
논쟁, 갈등을 낳았다.
곽노현 교육감에게 돈을 받은 인간이 여권의 편에서 증언을 한다. 석연찮은
증인 확보 하나로 진보세력 전체가 갈등을 빚고 진보 매체끼리, 세력끼리 서로 까고 물어뜯고 난리가 났다.
쟤들은 쉽게 가고, 야권은 어렵게 간다. 그저 석연찮고 비상식적인 행동 하나면, 야권은 진흙탕 파티파티가 된다. 이걸 보고 ‘진보의 쓸데 없는 결벽증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민주당의 무능'이라는 말도 있고, ‘친노의 책임'이라는 말도 있고, ‘비친노의 책임'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수많은 말들이 있다는 사실이, 복잡한 리액션 그 자체다. 이 복잡한 리액션에 대고 ‘그러니까 물타기에 넘어가지 말고 국정원 국정조사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면 가뜩이나 복잡한 리액션에 더하여 한 가지 갈래가 더 생기는 거다. 어느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 맞는 말도 아니다.
이런 구도에 대한 답은 뭘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수 없이 다양할 거고, 그 자체가 이미 뱅뱅 도는 챗바퀴겠지. 수많은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석연찮음에 수많은 리액션이 복잡하게 얽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석연찮음에도 계속 복잡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거겠다.
잠깐.
수많은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투비컨티뉴드
편집부 주 본 기사의 필자이자 <딴지일보>의 필진으로 활약하고 계신 '춘심애비'님의 책이 출간 되었습니다. 그 이름마저 꼴릿한 <취업을 준비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위한 취업 준비와 과정, 그리고 신입사원으로 첫 발을 내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지침서. 즐거운 직장생활을 꿈꾸는 딴지스 열분덜의 성원이 있을지어다! 도서 구매 페이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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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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