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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언론사라고 주장하는 N社에 전화를 걸기 전 난 마음속으로 마지노선을 정했다.


'3백'


B5 사이즈의 리갈패드 하나를 새로 뜯고, 2B 연필을 오른 손에 쥔 채 회사 전화기를 들었다. 깊은 심호흡, 그리고 눈을 감고 내게 최면을 건다.

 

'난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팀원들이 파티션 너머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긴 심호흡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곤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심호음. 그리고 들리는 낯선 중년 남자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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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부장입니다.”


무미건조한, 그러나 기자 특유의 거만함이 녹아든 어투.


"안녕하십니까? A社 마케팅 팀장 OXX입니다. D 대행사 김과장에게 말씀 전해 듣고..."


"어쩐 일입니까?"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투. 거만함이 오만함으로 변질되는 속도는 빛보다 빨랐다.


(웃으며) 어유, 어쩐 일이라뇨. 인사드리려 연락 드렸죠.”


“인사 하려면, 김영란법 나오기 전에 했어야지.”


(씨바, 그런 말은 마음속에 넣어둬! 내가 진짜 이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너 부끄럽지 않냐? 너 기자라면서? 너희 언론사라며?)


"(안면경련이 날 정도로 표정을 풀었다) 죄송합니다. 전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경력직으로 팀장 자리 들어온 지 이제 겨우 두 달이라... 업무 파악한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D 대행사에 말 전했는데... 임원 아니면 말 안 섞겠다고?”

 

(씨바, 초장부터 야자 놓는 거야? 임원 아니면 말 안 섞는다고? 우리 회사가 졸로 보이냐?)

 

"그게... 아시겠지만, 회사 사정이 뒤숭숭하지 않습니까? 다들 상황 파악하고, 수습하고... 때마침 국경절이라 회사 전체가 비상입니다. 다음에 제가 자리를 만들 생각인데, 그때까지만 해량해 주십시오."

 

(정공법이다. 깔 거 다 까고 시작하자)


회사 사정 뒤숭숭하다는 말을 먼저 던졌으니, 그쪽에서 아예 막장이라면... 그러니까 이번 참에 탈탈 털고, 안 보겠다는 생각으로 나오면 국세청 이야기 털고, 연짱으로 조지겠다고 받아치겠지만 이쪽에서 먼저 털었으니 그렇게까지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이 경우 제대로 '경험'이 있는 쪽이라면 화제를 돌리고 약속을 잡을 것이다. 개가 배를 보이는데, 거기에 칼을 꽂는다? 그 뒤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간의 침묵. 치고 들어가야 한다.


"한 번 뵙고 싶습니다. 부장님 오해도 풀 겸, 저도 인사 한 번 드려야죠."


"...봅시다."


“그럼 언제 괜찮으십니까? 혹시 뭐 좋아...”


“우리 회사서 봅시다. 세상 뒤숭숭한데...”

 

말꼬리를 흐리는 폼새가 김영란법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협상이란 건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부터가 기싸움이다. 자기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강요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만약 김영란법 이전이라면, 협상 주도권을 위한 첫 수라 생각하겠지만, 부장의 말을 생각한다면 김영란법이다.


(영란 언니~! 언니 정말 좋은 일 한 겁니다)


통화가 끝났다. 부장은 자기 회사에서의 만남을 원했다. 시간은 4시간 뒤다. 점심시간을 2시간이나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평소 같다면,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약속을 잡았을 터인데, 누가 봐도 김영란 법의 위력이다.


'술 없이 협상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이미 약속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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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協商)


N社로 가는 차 안에서 난 네이버에 대한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네이버만 없었으면, 이 꼴을 안 당해도 되는데...'

 

포털에 올라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도 안되는 규모의 인터넷 찌라시 언론사와 중앙일간지가 동격으로 취급받는다(적어도 노출면에서). 그 하나만으로 수많은 인터넷 언론사의 존립근거가 만들어졌다.


씨바...


나름 번듯한 사옥을 가진 N社로 가는 길. 하긴, 요즘은 오프라인 언론사들이 인터넷 언론사를 자회사로 두는 건 유행도 아니고, 이미 하나의 공식이 되지 않았는가? 돈 못 버는 애들은 아예 사업부나 부서 통째로 들어내 온라인 언론사를 만들고는 지 밥벌이는 지가하라고 등 떠미는 시대이니...


(N社에 대한 욕을 많이 했지만, 나름 규모가 있다)


그들도 한 때는 종이신문을 찍어내던 곳에 있었고,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밀려난 자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먹고 살기 위해 각다귀처럼 우리 같은 기업에 달라붙은 것인지도 모른다.


부장은 자신의 자랑스런(?!) 사옥을 보여주며, 자기가 나름 뼈대 있고, 규모 있는 언론사란 걸 내세우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동행한, 아니 수행하고 있는 김과장은 나름 ‘번듯한’ 사옥을 보며 의외란 표정을 짓는다.

 

“저거 다 허깨비야. 저것들 십중팔구 샛방살이에 독립채산제로 곪아 터진 것들이야.”


“아...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만약에 액수나 금액 나오면 난감하단 표정 지어.”


“예?”


“돈 없는 티를 내라고”


“아... 예. 알겠습니다.”


“나 3백 이상 안 쓸 생각이야.”


“에? 그걸로 되겠습니까?”


“3백원도 아까워.”

 

그쪽에서 나온 ‘평기자’란 놈이 회의실로 안내하더니, 부장님이 지금 미팅 중이라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미팅은 개뿔. 장사 한 두 번 하나?


10분 동안 난 아놀드 주지사님이 선전하는 전쟁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였다. 생각 같아선 헬기 동원해서 이 사옥 전체를 다 날려버리고 싶었다. 이런 거머리 같은 놈들, 각다귀 같은 놈들... 회의실 밖에서 뭔가를 들고 부지런히 오가는 저 ‘기자’란 년놈들...


“저 새끼들도 우리가 준 돈으로 먹고 살겠지?”


“그, 러겠죠?”


“개새끼들... 사지 멀쩡한 것들이 할 일이 없어서 남의 등이나 처먹고 사냐.”


“그러게요.”

 

15분이 흐르고 난 뒤 다시 회의실 문이 열렸다.


부장이란 놈이 거침없이 들어오더니 내 앞에 섰다. 개새끼... 


자리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나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그쪽에서도 명함을 꺼내 내밀고, 얼마간의 수인사. 평기자란 놈이 그제서야 음료수 4잔을 들고 나온다.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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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은 다짜고짜 우리 회사의 부도덕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경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 꾹 눌러 담고 있었다고, 그런데 이번 조사4국 사태(?!)와 그 이전의 기업 운영 행태를 보니 인내에도 한계가 오더라는 일장연설. 그가 80년대 학번이고, 6.10 당시에 광화문으로 나섰다는 말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올 뻔 했다. 지금 개콘 찍는 거야?


‘실망’


부장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다. 실망이란 단어는 이쪽 업계에서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돈을 주면, 눈 감아 주겠다.”

 

란 의미이다. 대행사 쪽에서 1차로 전해들은 말로는 우리 회사를 박살내겠다는 의지가 보였지만, 나와 통화 할 때에는 한 풀 꺾인 모습을,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선 ‘실망’이란 말을 꺼내들었다. 실망은 정말 훌륭한 ‘출구전략’이다.


그리고 그 실망과 짝을 이루는 단어가 ‘실수’다.


우리가 모르고 한 실수다. 노여움을 풀어 달라, 실망한 마음 아프게 받아들이겠다. 실수에서 배우겠다.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 한 번 만 더 기회를 달라.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들이 연속기사로 준비 중인 기사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법무팀에서 처리 중인 2개의 사안은 노동관계 문제이며, 지난 1월에 노동부가 발표한 일반해고지침에 비하면 놀랍도록 관대한 일이었고, 그나마도 원만하게 해결되는 상황이다. 국세청 문제의 경우는 아직까지 어떤 혐의점이 나온 게 없다. (살짝 눌러줬다). 그렇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실망 끼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만약 국세청에서 어떤 처분이 내려지면, 그때 제대로 보도자료 돌리고 후속조치 하겠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이 이상 나올 말이 있을까?)


여기까지는 부드럽게 흘러왔다. 물론, 부장이나 그 옆의 평기자는 인상이 굳어진다. 잘 뜯어보면,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이 아닌가? 자, 문제는 이때부터다. 보도자료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말이 안 되는 문장과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난 은근히 돌려 까며, 우리 회사의 결백과 우리를 물어뜯으려 하는 N社의 행동을 비난했다. 만약 여기서 말이 끊어지면, 부장은 길길이 날뛰며 자신을 얕잡아 보는 거냐고 난리 칠 것이다. 옆에 앉아 있는 김과장도 안색이 좋지 않다. 어조와 어투는 너무도 공손하지만, 그 내용은 하나도 공손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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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내뱉은 단어들과 이 모임의 목적인 ‘돈’과는 연결 될래야 될 수가 없다. 김상중처럼,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묘미가 있다.


여담이지만, 내가 몇 년 전부터 생각한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언론사라 자처하는 이들이 아프리카 TV처럼 개인방송을 하는 것이다. 홍보맨들 다 불러놓고, 막 떠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보고 별풍선을 몇 개 쏠 건지 맡겼으면 한다. 차라리 이게 깔끔하지 않겠는가?


기자가 기사로 조지거나, 기사로 조지겠다고 협박한 다음 당사자들끼리 둘러앉는다.

그런 다음 액수를 까고 협상을 한다? 이 얼마나 쪽팔린 짓일까? 물론, 내 입장에선 쪽팔리지 않지만, 우리는 기자들 낯을 세워져야 한다.


(보통의 경우 대행사를 통해 ‘금액’에 대한 최종합의를 도출하게 하고, 난 언질만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보는 앞에서 바로 해결을 봐야 한다. 이런 경우가 제일 난감하다)


기자들은 돈도 받아야 하고, 그들의 체면도 챙겨가야 한다. 어찌 보면 참 못할 짓이다. 예전 야인시대란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게 종로 상인들이 ‘세금’이라며, 김두한 패거리들에게 돈을 내면서,


“그래도 세금은 내야지”


하면서 자발적으로 돈을 내며, 김두한 패거리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다. 김두한 패거리의 행위는 ‘삥을 뜯는 것’ 법률적으로 말하자면, ‘갈취행위’다. 그런데, 상인들은 세금이라며 그 행위를 미화하며, 자발적으로 낸다는 걸 드라마는 강조한다.

 

김두한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조작이다.


대한민국의 기자들이 그렇다. 그들은 광고란 삥을 뜯으며, 광고를 내는 이들의 ‘자발성’도 얻어가려 한다.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광고는 ‘삥’을 뜯는 행위다. 잘해야 중앙일간지나 TV 정도? 인터넷 광고라도 접속자수가 어느 정도 돼야 광고효과가 있다. N은 어디에도 해당사항이 없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모난 구석이 있는 나는 삥을 뜯기는 것까지는 인정하지만, 그 행위 자체를 ‘자발적’이라는 방식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연차가 어느 정도 된 후부터 나는 어느정도 ‘눌러준’ 다음에 대놓고 금액을 제시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어차피 삥을 뜯는 행위란 거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리 솔직해 지자.'

 

아슬아슬한 줄타기라고 해야 할까? 이 바닥에 있다 보니, 이렇게 대면을 하는 상황까지 온 경우라면 어지간하면 조지지 않는다란 걸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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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연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무도 상처가 있고, 옹이가 있어야 더 단단해지지 않습니까? N社와 저희 A社가 좀 더 단단해지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


흰소리다. 시너지는 또 무엇이고, 옹이는 또 무엇인가? 그러나 그쪽은 알아듣는다. 부장은 이제야 본론이 나왔다며, 얼굴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때마침 저희 회사가 하반기 출시 상품으로 XXX를 내놓게 됐는데...”


자연스럽게 광고로 이어진다. 아니, 이쯤 되면 광고든 유가기사든 상관이 없다. 어차피 돈을 주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예산은 어느정도로...”

 

말끝을 흐리는 부장, 오전 중의 통화 때와는 다른 누그러진 목소리다. 방금 전의 내 발언은 이제 머릿속에서 사라진 듯 하다.


액수를 물어볼 때 난 최대한 덤덤하게 말한다.


“삼백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삼백?”

 

목소리 톤이 말하는 건 ‘너무 적다’란 의미일 것이다. 이때부터는 연기다.


“중견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우리 회사 매출을 보라.”


“작년에 비해 홍보마케팅 예산이 반으로 줄었다. 대행사에 물어보라.”


“살려달라.”


온갖 읍소를 다한다. 부장은 은근슬쩍 우리회사의 작년 매출을 말하고, 작년 광고집행 비용을 주워 넘긴다. 처음에 밑밥을 깐 게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중견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며, 현재 홍보 마케팅비 예산을 반으로 줄인 상태라고...


“제가 움직일 수 있는 돈이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저야 더 하고 싶은데, 워낙 불경기다 보니...”


부장은 막무가내로 5백을 말한다. 얼떨결에 부장의 속내가 드러난다. 이제 예의고 체면이고 다 벗어던진다.


(미친놈... 요즘은 중앙일간지 내지 전면이 3백으로 나온 경우도 있다. 근데, 한참 밑바닥을 기고 있는 너희 같은 애들에게 5백을 주라고? 제정신이냐?)


“부장님, 제가 빈말 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돈이 없습니다. 작년 매출은 진짜 반짝 한 번입니다. 사업이란 거 지켜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바람 한 번 타면 확 오르지만, 바람 빠지면 금방 주저앉는다는 거. 저희 지금 다시 올라설지 이대로 바람 빠질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앓는 소리도 이 정도면 예술일 것이다.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 광고를 집행해야 할까?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돈을 쥐고 있는 애가 앓는 소리를 하는데,


“털어서 나오면 100원에 한 대다.”


라고 양아치 짓을 할 수 있을까? 아마 경기가 더 나빠지면 회사 재무제표 들고 와 보는 앞에서 우리 센터를 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양아치 기자들은 만나보지 못했다. 부장의 표정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얼마를 예상 했는진 모르지만, 삼백이 나쁜 금액은 아니란 걸 부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연작 기사를 만들어 놓고 벼랑 끝 전술로 터트리는 방법도 있지만, 모양새가 나쁘다. 더구나 새로 온 마케팅 팀장, 지난달에 국세청에 한 번 털렸고, 팀장이 직접 찾아와 돈이 없다고 읍소를 하는 상황. 을지문덕의 송공시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는 건 그도 알고,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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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부장 입에서 무거운 탄식음이 나오더니, 뒤이어 재빨리 말이 이어졌다.


“A社의 행보를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선다. 평기자라 불리는 그쪽 핏덩이에게 세부사항을 조율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편집회의를 핑계로 빠져나가는 부장. 또 한 건이 낙찰됐다.


부장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나도 주섬주섬 짐을 쌌다. 김과장도 얼떨결에 내 뒤를 쫓는다.


평기자가 뭐라 대거리를 하려는데,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과 함께 쏜살같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서야 긴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애초에 목적했던 삼백에 돈을 맞췄다. 이건 이사에게 보고 올릴 필요 없이 내 선에서 전결로 결제하면 된다. 대행사 쪽에 연락해 N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당분간 N과는 거리를 둬야겠다... 뭐 그런 생각들이 머리에서 빠르게 돌아갔다. 이때 김과장이 치고 들어온다.


“팀장님?”


“응? 왜?”


“저기... 돈 어떻게 집행하실 겁니까?”


“뭐?”


“광고로 할지, 유가기사로 할지...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어

 

광고로 할지, 유가기사로 할지 거기서 정리를 하지 않고 바로 내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거기까진 다 협의하고 내려오는 게 상례이다. 그러나 난 이 곳에서 1분 1초라도 더 있는 게 싫었다. 그래서 금액에 합의하자마자 부리나케 빠져나온 것이다.


“광고랑 유가랑 뭔 차이 있어?”

 

김 과장은 송아지 같은 눈을 껌벅이더니,


“없는데요.”


“알면서 왜 그래? 적당히 아무거나 던져주면 되잖아.”

 

광고 파일이든, 유가기사 파일이든 아무거나 하나 던져주면 된다. 어쨌거나 여기에 광고를 해봤자 아무 효과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이제 갓 핏덩이를 벗어난 김과장도 안다. 광고는 핑계일 뿐. 오늘은 N社에 삼백만원이란 돈을 상납하기 위한 자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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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럴 때는 전두환이 다시 집권해 이 기자 놈들을 싸그리 삼청교육대로 보내보려야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버러지 같은 놈들... 나름 정의감 투철했던 나이지만, 이 업계에서 하루하루 연차를 쌓아나가다 보니 어느새 전두환을 그리워하게 됐다.


기자들은 내게 그런 존재들이다. 



다음회에 계속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아참, 이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구나.





지난 기사


기업 홍보팀, 그리고 국세청 조사 4국

기자와 기업은 어떻게 거래하는가

김영란법 폭풍전야, 나는 음지에서 이런 일을 합니다





빨간두건


편집: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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