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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26. 금요일

독투불패 타데우스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과 많이 다른지는 본인도 잘 모른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당시에 나는 갓 20살이 넘은 젊디 젊은 어린아이였다. 집에서 백수 같이 뒹굴 거리던 시기, 친구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동네에 경호업체 사무실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경호원 이라면 전적으로 청와대 경호원을 상상하며 이 업계에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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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니 우리 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아주 늙어 보이는 형들과 사장이 우리를 반겼다. "경호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왔습니다." 라는 친구의 말에 우리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진하게 우려내온 커피믹스도 한 잔씩 마시며 낯선 분위기를 극복해 내려 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각종 수상패와 공로패 등이 걸려 있었고 사장님은 아주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겉 모습과 말 속에서 묻어나오는 자신감이 남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자기네는 이상한 회사가 아니라는 점과 우리는 제대로 된 경호에 관련된 업무를 배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본인은 대학의 경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순수하디 순수한 어린이 같은 마음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었다. 경호원이라는 멋진 직업에 대해서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그의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자동차 경호시 운전 기술에 관한 얘기까지 들었다. 굉장히 흥미진진했으며 나의 마음은 이미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가 되어있었다. 


다음날부터 훈련이 시작 되었다. 경호회사의 사무실 옆에는 우리가 운동 할 수 있는 도장이 있었다. 저녁에 그 곳에서 운동을 했다. 처음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다들 엄청난 유단자들 이라는 사실이다. 오래되어서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사장님은 각종 무술을 마스터 했으며 도합 사십 몇 단의 유단자였다.  


오바 조금 덧붙이면 나는 사장님이 장풍을 쏠 줄 아는 사람이라 믿고 있었다. 그 외에 검도 유단자와 합기도 고수, 킥복싱 선수 출신들이 즐비했다. 나도 지지 않기 위해서 중학교시절까지 유도선수였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사장님 왈 "애기 때 배운 거나 안 배운 거나 별 차이 없음"이라는 진리의 명언을 듣고 몸을 만들자라는 의욕에 불탔다. 도복을 사고 무슨 무술을 배우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은 검은 띠를 받았다. '그래 역시 경호원은 폼이 안나면 안 되지'라는 나의 상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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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간지


일이 없는 날이면 한 시간씩 모여서 운동을 한다고 했다. 몸을 풀고 낙법 연습 좀 하고 그 후에 서로가 서로에게 아는 비기를 전수해 주는 그런 방식이다. 당시 나는 검도와 킥복싱을 주로 배웠다. 물론 사장님이 있으면 사장님이자 관장님이자 사부님인 그분의 통솔 하에 발차기 연습 같은 것들을 하곤 했다.  


운동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운동 후 약 세 달이 지나면 하나씩 단증을 획득할 수 있으며 단증의 단이 올라가는 속도는 너님들의 상상보다 훨씬 빠르다. 참고로 당시에 일한 지 6개월이 갓 넘은 잘생긴 형은 이미 4단 이었다. 물론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무단이었다. 


우리는 단증이 나올 즈음 돈만 따박따박 내면 되는 그런 시스템인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가. 당시 같이 운동하던 여러사람들의 단증을 다 합치면 특전사? 유디티? 웃기네... 우린 아마 도합 몇백 단이었을 거다. 


그러다가 첫 임무에 투입 되었다. 군대도 안 갔다온 보송보송한 나는 당시에 웬 건물의 경호 및 순찰 임무를 받았다. 약 여섯 명이서 지금은 어딘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경기도 어딘가의 건물을 24시간 교대로 4일간 순찰하는 일 이었다. 이제 막 공사를 끝낸 건물은 사람도 없고 할 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어려서부터 부유하고 곱게 자란 내 친구는 여기 형들과 놀기는 했지만 이런 뽀대 안나는 일까지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양복을 입지 않은 경호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나는 항공잠바에 검은 건빵바지 플러스 군화같은 워커도 나름의 단단한 멋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은 지루했다. 가만히 서서 지키고 와따가따 짝다리 짚고 흔들흔들 이게 다였다. 차가 오면 확인하고 들여보내고(근데 뭘 확인하는지는 모른다)

 

처음 4일간 경기도 어딘가에서 먹고 자고 손에 쥔 돈은 8만원 이었다. 그 동안의 도복 값이며 항공점퍼 등의 자잘한 돈이 떼여졌지만 아랑 곳 하지 않았다. 그냥 형들이랑 떠들고 가만히 놀다 왔는데 8만원이 생긴 것이다. 당연히 저녁에 친구들과 소주를 마셨다. 다음부턴 더 많이 벌 수 있었으니까. 


형들은 항상 양복을 입고 옷깃에는 우리 경호업체의 뱃지를 달고 다녔다. 금색의 자그마한 뱃지는 국회의원의 그것처럼 다는 순간 목과 가슴에 200%의 힘을 불어 넣어주는 절대 뱃지였다. 형들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검은양복 쫙 빼입고 나이트가서 우리 경호원이라고 하면 여자들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니... 


이야~ 이게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뽀대 나는 알바임에 틀림없었다. 

 

형들과 띵가띵가 좋은 관계도 유지하고 군대가기 전에 몸도 만들고 운동도 공짜로 배우던 중 다음 일이 들어왔다. 사실 처음 한 일은 사람도 별로 없고 뭐 짜세도 별로 안 나오는 심심한 일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바로 방송국 가요 시상식의 경호업무이었다.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보디가드의 케빈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 바로 내가 케빈 코스트너가 된다니. 이야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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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거?

 

행사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인가 그곳에서 열렸다. 연예인이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팬들은 모여들고 있었고 경호 업체는 우리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오고, 우리 사장님은 자기네 과 학생들까지 데려왔다. 대학생들 보다 아는 것도 없었을 테지만 본인은 어찌저찌 대리라는 타이틀도 있고 손에 무전기 까지 쥐어주었다. 손목에 대고 통신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야말로 후까시나 잡고자 하던 나의 욕망과 딱 맞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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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까시는 내 모든 것.


입장 전에 팬들을 좋아하는 가수 별로 줄세워 놓았다. 당시 내 앞에는 그 이름도 찬란한 핑클 팬들이 있었는데 다른 쪽은 다 여자애들인데 이것들은 다 남자다. 그렇다. 내가 우리 업체의 막내였고 짬밥도 안 되니 관심도 없는 남자놈들 앞에 세워놨던 거다. 난 그때 느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은 아름다울지라도 핑클을 좋아하는 너희들의 외형적 모습은 정말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남자애들이 단체로 구호를 외치며 핑클을 기다리던 그 모습은 아... 정말 손가락 발가락뿐 아니라 뇌까지 오글거리는 그런 경험이었다.


내가 전문 경호원도 아니고 사람을 어떻게 경호하는지 따위는 알지 못했으므로 난 최일선의 경호 업무 따위는 하지 않고 이때도 역시나 여기저기 자리나 지키고 있는 수준이었다. 나 외에 수십 명의 경호인력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괜찮았다. 연예인도 구경하고 게다가 어깨에 잔뜩 후까시가 들어간,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엄마가 사주신 나의 A급 양복도 입었으니. 


가요 시상식이 한창 일 그 시각, 나는 로비에서 같이 일하는 형과 소소한 대화나 나누면서 뭉기적 뭉기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윗층에서 누군가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워낙 멀리에서도 그 화려한 옷차림 등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보게 만들었다. 내려오는 사람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어...어랏. 앙드레김 선생님이네?


사실 그 전까지 앙드레 김이라는 사람은 나에게 완전 이상한, 디자이너랍시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가지고 사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냥 단순히 목례를 했다. 왜 했는지는 모른다. 어려서부터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라는 그런 가르침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앙드레김 선생님은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수고하시네요. 정신 없으시죠?" 라는 말을 덧 붙이며... 아마도 우리가 힘들어서 잠깐 쉬는 중이라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란 생각보다 굉장히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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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냥 행사에 가면 여기저기 넘쳐나는 경호원들에게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는 유명인사를 나는 보지 못했다. 권위의식? 그딴 건 없었다. 다만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었다. 고인이 되신 선생님이 내가 경호업체에서 일하면서 만난 유일한 따뜻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행사가 끝나고 연예인들이 차례대로 집으로 간다. 우리는 순번대로 있다가 몰려드는 팬들 앞에 가드라인을 설치하고 한 사람씩 혹은 한 팀씩 밴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했다. 


처음에 MC를 보던 유정현이 나가고 김종서가 나가고 팬들은 누가 나오든 일단 소리를 지르고 뭐 그런 와중에 얼추 계산해보니 어랏! 내가 데리고 나갈 사람이 또 핑클이다. 이 얼마나 멋진 우연인가? 


양 쪽에 두 명이 서면 연예인이 살포시 팔짱을 낀다. 아니 손을 대는 정도라 해두자. 내 옆에는 이진이 서 있었다. 당시에 이진은 핑클 내에서 외모로 그렇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내 옆에 서는데, 그리고 손이 내 팔을 잡는데 심장이 튀어 나오는 줄 알았다. 주위의 수많은 팬들은 나를 의식 안 했겠지만 나 역시 그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마치 결혼식에서 신부를 데리고 퇴장하는 신랑처럼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녀를 밴까지 무사히 데려다 줬다. 


그 후 한동안 친구들이 모이면 나는 이진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한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답던 나의 경호원 알바에 나도 모르게 슬슬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몇몇의 일을 더 하고 비록 돈은 별로 안 되지만(물론 시간당 수당은 높다. 일 안하고 노는 날이 많아서 그렇지) 나름 후까시도 잡을 수 있고 양복도 입고 다니는 이 일이 나는 맘에 들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일하던 친해진 형은 조금 더 일한 후에 프리랜서로 독립하면 하루에 15만 원씩 벌 수 있다며 자기가 나가면 나도 데려간다고 했었다. 얼추 계산해 보니 20일 일하면 300만 원, 우와 좋은 조건이었다. 일반적으로 나는 당시에 하루에 8만 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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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돈으로도 후까시 잡을 수 있겠다.


어느날, 아침부터 일이 있었다. 사무실에 나가니 다들 피곤한 눈이었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피곤해도 양복을 입고 머리에 젤을 가득 발라서 힘을 꽉 주고 추운 날씨라 얼마 전 구입한 코트까지 입고 갔었다. 


다같이 이동을 하여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찜질방 이었다. 찜질방 탈의실에는 우리 외에도 약 100여 명의 경호원들이 있었다. 대략 2-30명은 이미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대부분은 못 본 얼굴이었다. 다들 서로 간단한 예의는 차렸지만 목과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간간히 큰 소리로 자신의 남성성을 각인 시키려는 덩치들도 있었다.


그렇게 찜질방 탈의실에 있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우리를 조용히 시켰다. 빠른 반말과 날카로운 얼굴이 강한 인상을 풍겼던 그 남자는 우리에게 주의할 점을 주지시키고 있었다. 절대로 충돌이 일어나선 안 된다. 맞을 경우에는 큰 소리를 치면 카메라로 찍을 것이다. 그러면 더이상 때리지 못한다. 그 외에도 뭐라뭐라 했지만 기억은 잘 안 난다.

 

그 후에 그는 우리에게 각자의 경호회사 뱃지를 다 떼라고 했다. 당시에 우리는 약 100여 명의 인원이었고 무엇을 시키던 그냥 지키고 서 있으면 그만이었다. 이 일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다라고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를 세 개 조로 나누었다. 옆에는 비디오카메라로 모든 상황을 녹화하는 젊은 아가씨가 하나 있었다. 당시에 날이 추웠기 때문에 다들 두꺼운 양복에 코트를 입고 왔는데  그 아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면 거추장스러울지 모르니 목도리는 자기를 달란다. 자기가 보관해 주겠다고. 오호라. '생긴 것도 귀여운데(물론 나보다 나이가 훨 많았다) 마음도 이쁘네'라고 생각하며 목도리를 내주었다. 나는 세 개의 조 중에서 다른 두 조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찜질방 앞에 있는 2층 짜리 상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진행은 일사분란 했다. 미리 준비해 둔 사다리를 상가 건물에 기대고 한 명씩 빠르게 올라갔다.


옥상은 넓은 평지에 바닥에는 초록색 우레탄이 깔려 있었다. 옥상의 양 쪽에는 건물 내부로 이어지는 출입구가 하나씩 있었고, 옥상의 한 쪽은 아파트와 맞닿아 있었다. 


날은 추웠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자리에서 담배나 하나씩 물고들 어슬렁대고 있었다. 통제를 하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밑에서는 뭔가 공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옥상에 있는 건물에서 연결된 문으로 아줌마, 아저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 뒤에 있던 또 다른 문에서 우리를 통솔하던 그 강한 인상의 남자와 카메라를 든 여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 카메라를 든 여자는 내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웃어준다. 이노무 마음 또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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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요~♡


아줌마, 아저씨들이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면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강인한 인상의 우리의 리더는 우리 보고 뒤로 돌아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스크럼을 짜서 우리 뒤에 있는 문을 봉쇄하라고 했다. 당시의 순진했던 나는 이렇게 덩치가 큰 애들이 몇십 명 있는데 저 아줌마, 아저씨들이 우리와 부딪칠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용기가 가상하게도 가장 겉면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인생 뜻대로 안 되는 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는 없다.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줌마, 아저씨들은 주저 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젊은 애들이 3-40명씩이나 모여서 문 하나를 막고 있는데 그게 어디 쉽게 뚫리겠는가? 게다가 젊은 아가씨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지금 다 녹화중입니다"를 연신 외쳤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그녀가 나에게서 가져간 나의 짝퉁 버버리 목도리는 그녀의 얼굴에 칭칭 감겨서 그녀의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가 되어있던 것을. 그녀처럼 아줌마, 아저씨들 중에도 카메라로 우리를, 그리고 그 상황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몇 분 간의 진입 시도가 차도가 없자 이제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점점 더 열을 받아 가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물론 뒤돌아 있었고 그 사람들도 카메라를 가지고 있기에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다만 귀로 들으면서 상황을 추정해 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줌마, 아저씨들은 필사적이었다. 그럴수록 우리도 더 필사적으로 막아야만 했다. 앞에 있는 저 문이 무슨 문인지는 모르지만 막아야 한다는 임무가 주어져 있지 않은가. 


그때였다. 갑자기 종아리가 시큰해졌다. 누군가가 나의 종아리를 발로 밟았다. 두 번, 세 번 계속 같은 자리였다. 뒤를 돌아보았다. 웬 아줌마가 서 있었다. 키는 내 가슴팍 언저리 밖에 안오는 그 자그마한 아줌마는 필사적이었다. 순간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성질이 났다. 나는 어깨동무를 풀고 아줌마를 옆으로 밀면서 "아이 씨X~ 아퍼요" 를 외쳤다. 그리고 다시 뒤로 돌아 어깨 동무를 했다.


그때였다. 나의 젤로 발라 단단히 고정시킨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헝클어 지면서 한 사람은 내 머리를 잡고 두어 명이 내 코트를 잡고 뒤로 쭉 당겼다. 순간 나는 손을 써 볼 틈도 없이 무리에서 이탈했다. 내 주변은 순식간에 아줌마, 아저씨들이 가득 메웠고 "이 놈이야. 이놈이 때렸어" 라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뒤통수로 날라오는 손은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앞에 아저씨를 밀쳤다. 여기 저기서 손이 날아든다. 막을 수도 없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려고 해도 누군가가 내 코트를 잡고 있었다. 이런 썅~ 


그때 우리를 인솔하는 강한 인상의 그와 우리 사무실에서 같이 온 형이 나를 구하러 왔다. 나는 순식간에 풀려났다. 내가 밀친 아저씨는 바닥에 누워서 "나 죽는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서 제일 안 쪽인 우리가 지키는 문쪽으로 들어갔다. 나처럼 튕겨져 나온 몇몇이 이미 다 헝클어진 머리로 내 옆에서 나를 동정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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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부스러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고 슬쩍 봤다. 뒤쪽에 아줌마, 아저씨들은 점점 더 흥분했다. 나를 데려온 강한 남자는 카메라를 찍던 여자애에게 "다 잘 찍었어?" 라고 물어봤다. 그 여자는 대답 대신 나에게 "잘 했어요!" 라고 했다. 내가 뭘 잘했지? 난 끌려가서 쳐 맞은 것 밖에 없는데...


조금 있으니까 아까 우리 쪽 말고 다른 쪽에 있던 있원 30명 정도가 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의 방어막은 더 든든해 졌다. 나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말끔했다. 나도 얼추 중간 쯤에 다시 꼈다. 그러고 가만히 있기를 몇 분. 뒤쪽도 점차 조용해 졌다. 그렇다. 성인남자 60여 명이 막고 있는 문으로 들어가기란 쉬운 게 아니다. 우리는 이겼다. 여기저기서 욕지거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이정도면 잘했다. 


그때였다. 쏴~~~~~~


소화전에서 나오는 찬물이 우리 위로 떨어졌다. 이 추운 날에 찬물이다. 뜨뜻한 물이라도 좀 섞어서 뿌려주지... 60여 명의 건장한 넘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미 물에 다 젖은 뒤였지만 계속 맞고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순간 옥상 구석에 널부러져 있던 판때기를 주워들은 몇 명이 용감하게 앞을 막아섰다. 소용없었다. 물 줄기를 하늘로 올리자 비처럼 물이 쏟아져 내렸다. 턱이 덜덜 떨려왔다. 


이쯤되자 여기저기서 욕설이 오갔다. "늬들은 애비 애미도 없냐?", "니들은 자식들 한테도 이렇게 하냐?"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면서 이제 서로의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 중 몇몇은 입꼬리를 한껏 치켜 세우고 그 사람들의 자존심을 긁어댄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양 쪽의 피해가 심해졌다. 추운 겨울날 물을 뿌린 바닥에서 미끄러진 아줌마나 옷이 찢어진 내 동료들이나. 


애초에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지는 중요치 않아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 이유도 모른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곳에는 내 편, 니 편이 있을 뿐이었고 서로에게 적 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다가왔다. 소화전을 차단했는지 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다른 쪽에 있던 인원 3-40명이 와서 교대를 했다. 우리는 홀딱 젖은 생쥐 같은 몰골을 하고 처음 모였던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찜질방 여기저기에는 옷을 벗어놓고 말리는 우리 쪽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대로 옷도 벗지 않고 뜨끈한 싸우나로 들어가서 몸을 말렸다. 조금 있으니 오히려 옷이 뜨거워지고 그제서야 옷을 벗어서 옆에 잠시 널어두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사람들의 몰골은 장난 아니었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무용담이라며 떠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같은 업체에서 나온 형들도 다들 지쳤는지 우리는 구석에서 방석을 매트리스 삼아 잠깐 눈을 붙였다. 대략 30분에서 1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위에 있는 사람들을 교대해 주기 위해서 다시 올라갔다. 위에 있던 사람들도 바닥에 있던 물에 맞았는지 상당히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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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양 진영은 소강 상태였다. 주위를 보자 경찰이 와 있었고 전경들도 많이 왔다. 그들은 옥상에 올가가지는 않고 줄 맞춰 서서 방관하고 있었다. 오전처럼 사다리를 타고 기습적으로 올라가지 않고 다른 쪽에 있던 입구를 통해 올라갔다. 그러면서 보니 상가와 아파트가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 사람들이 반대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에도 뉴스에는 지역 이기주의나 NIMBY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대충 그런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오후가 되면서 우리는 몇 번의 교대 후에 얼추 일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막아놨던 문에서는 공사장 인부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나오고 짐을 정리해서 우리가 올라온 쪽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옷은 젖었다가 말랐고 찜질방의 이상한 냄새까지 배어서 찝찝했다. 저녁무렵까지도 아줌마, 아저씨들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여기저기서 고함을 지르고 울고 불고 하였다. 나도 지칠대로 지치고 나서야 퇴근시간이 되었다. 


우리 업체에서 나온 몇몇이 리더격인 강한 인상의 아저씨에게 가서 '일도 끝났으니 간다'는 보고를 하였다. 아저씨는 수고했다며 현금이 든 흰 봉투를 건넸다. 얼마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봉투는 사장님에게 갈 것이고 나는 1~2주 후에 8만 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나와서 차에 올랐다.


피곤해서 였는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차로 지나가면서 보니 이미 무언가 공사는 다 마무리 된 듯 했고, 그 앞에는 동네 주민들이 아직도 계속 농성중에 있었다. 경호업체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지키던 그 자리에는 이젠 전경들이 서 있었다.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울고 있는 아줌마를 위로하는 아저씨가 하늘을 보면서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을 보았다. 나도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돌아오는 차 안은 조용했고 강렬한 그날 오전의 기억만이 남았다.


사무실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즈음에 운전을 하던 형이 한마디 했다. "사무실 들렀다가 술 한잔 할래?" 모두들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막내라고, 내가 나서서 "형 옷 다 안 말라서 집에 가야 될 것 같은데요." 그러자 형은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머리는 갓 감은 사람처럼 뽀송뽀송했지만 부시시하게 말라 있었고 넥타이는 불룩하게 주머니에 들어가 있고 양복은 구깃구깃 해졌다. 다만 젖지 않은 목도리만 목에 대충 걸쳐져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우울했다. 지금까지의 생각과 많은 것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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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앞에서 뽐내기 바쁘던 경호원이라는 직업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아무 일이나 하는 그런 곳이었다. 마치 남의 싸움을 말리다 감정 싸움에 말려들어 덩달아 싸우게 된 느낌이 들었다. 그 곳에 우리 사장님은 없었다. 실장님이라는 형도 없었다. 우리는 단돈 8만 원에 누군가에겐 정말 중요한 걸 빼앗는 일에 동원 되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당시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동네에 내려서 난생 처음으로 혼자 소주를 마셔봤다. 괜히 그러고 싶었다. 마치 늦게까지 야근을 한 샐러리맨이 피곤함에 쩔어 소주를 한 잔하고 들어가듯...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혼자 마시는 소주는 맛이 없었다. 반 병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도착해서 다시 착한 아들이 되었다. 다만 다음날 사무실에 찾아가서 그만둔다고 얘기를 했다. 내 구겨진 A급 양복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라 잘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내가 뭘 하고 들어왔는지 부모님께도 말 못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같이 일하며 친해진 형은 말렸다. 미안했다. 그만 둔다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만 뒀고 더이상 그 사무실에 간 적은 없다. 


그렇게 나의 한 달여 간의 짧은 용역 알바는 막을 내렸다.


요즘도 가끔 용역이 노사문제에서 등장하는 경우나 전경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미디어를 통한 그들의 모습은 악마다. 사람들의 삶을 짓밟는 그런 일을 자행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옛날의 내가 생각이 난다. 난 악마였는가? 아니면 뭣도 모르는 어린애일 뿐이었는가?  지금은 착한 놈인가?


다 아닌 것 같다. 그냥 상황에 따라서 삶을 사는 후까시 잡기 좋아하는, 하지만 남자답거나 특별히 정의롭지는 않은 그냥 평범한 잉여 인간 중에 한 명이 아닌가 싶다.  


나는 누구와 왜 싸웠을까?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아줌마, 아저씨들은 나와 싸웠다. 나도 그들에 맞섰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싸움이 일어나는 자리에 싸움의 당사자는 없다. 자본주의의 가장 추악한 면모를 이용하는 돼지들을 위해서 오늘도 사회는 편을 갈라서 싸운다. 난 그 싸움에 끼기 싫다. 싸움의 도구로써도 혹은 싸움의 당사자로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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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 싸움을 피할 능력이 있는지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싸움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방식으로 이곳 저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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