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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 의원. 생소한 이름이다. 이번 사건으로 얼굴과 목소리는 유명해졌지만 '오피녀'라는 걸출한 별명에 밀려 이름이 사람들 기억에 남을지는 의문이다. 그가 엊그제 국정감사에서 아주 핫한 스타로 태어났다. 재선 의원이건만 그 자신도 이토록 유명세를 치루게 된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각계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특히 나와 비슷한 곳에 선 사람들은 이은재 의원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 대세라지만, 이은재 의원의 문제 제기 자체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공공기관의 예산집행 과정에 있어 정당한 절차가 지켜졌는지는 공적인 자리에서 확인해 볼 만한 대상임이 명확하다.

 

이은재 의원의 변명을 한 번 들어보자. 솔직히 내가 이 의원이라도 이 사태는 조금 억울할 것 같다.

 

그가 주장한 문제는 아래 두가지이다.



 1. 왜 수의계약을 했는가?


 2. 왜 각 학교에 할당되어 집행해야 하는 예산을 교육청이 거둬들여서 일괄 집행했는가?



법적으로 교육청에서는 소프트웨어를 공개입찰을 통해 구매하도록 되어있다. MS오피스는 입찰로 샀지만 한컴오피스는 서율교육청이 수의계약으로 구매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학교에 할당된 예산을 교육청이 가져다가 일괄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구매함으로써 교육청이 결과적으로 예산을 '전용'한 행위에 대해 해명을 해 달라고도 했다.

 

이런 상식적인 국정감사 활동이 왜 이 의원을 궁지에 모는 결과를 가져왔을까?

 


1. 


우선 조희연 교육감이 순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카린은 19세기 말 처음 개발되었고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서 설탕의 대체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랬동안 유해성 물질로 분류되어 많은 제한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이후에서야 서서히 규제가 풀렸고 2015년에는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66년 삼성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는 비록 오늘날 사카린의 누명이 밝혀진 지금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그가 사카린의 무해함을 그 당시 인지하고 있었을 리도 없었거니와 오히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문제는 없었겠지만 옳은 일은 아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악의가 없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했을 것이다. 국정감사 중에도 그랬지만 예산 집행에 있어서도 이러한 행위가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닳고 닳은 정치인이었다면 이은재 의원의 저 '공격'을 꽤나 곤란하게 생각했을 테다.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료제이며 법치국가를 사는 우리들에게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태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의 시발점은 오히려 조희연 교육감이 이은재 의원의 의도를 제대로 못 알아들은 데 있다. "왜 허락도 없이 총을 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럼 총을 쏘지 먹습니까?"라며 태연하게 대꾸한 것이다. 총기 사용에 대한 '허락'의 문제를 '총의 용도'에 대한 문제 제기로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본 사람들이 하는 이은재 의원에 대한 조롱은 마치 "저 사람이 총을 먹는 거라고 했대"라고 곡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희연이 당당하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던 일이다. 만약 조 교육감이 내심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어이쿠"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사태는 크게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이번 사태는 이은재 의원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과거 그는 법인카드를 전용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2012년부터 국무총리실 산하의 국책연구기관 한국행정연구원장을 역임하면서 에르메스의 명품이나 방울토마토, 고구마 같은 식자재를 개인적으로 구매했고 2014년에 국정감사에서 이를 지적당했다. 자라 보고 놀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솥뚜껑도 무서워한다.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해서 비난받아본 그는 타인에게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일에 익숙했을 것이다. 굴뚝에서 나온 두 청소부 중 얼굴이 깨끗한 사람만 더러운 동료를 보고 얼굴을 씼으러 가고, 더러운 사람은 그걸 으아하게 쳐다봤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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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교육감은 자라를 본 적이 없으니, 왜 솥뚜껑을 들고 설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기 나름대로 솥뚜껑의 문제점을 생각하다가 "오피스는 원래 MS만 만드는 것"이라는 걸출한 대답이 나왔다. 이런 엉뚱한 대응이 절차적 문제 제기에 대한 비난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버렸다. 만약 별다른 절차 없이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면 잘못은 잘못이고, 예산 전용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그저 "어차피 사야될 거 29억 아꼈으면 됐지"라는 구멍가게식 마인드로 "사퇴하라"는 거친 포화를 뚫어낸 것이다. 잘못하면 언론에서 엄청 물어뜯길 수 있었는데 그는 이번에 운이 좋았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이은재 의원이 억울한 일을 당한 헤프닝일 뿐일까?



2.


사태가 다소 엉뚱하게 흐르긴 했지만, 이은재 의원의 이번 굴욕은 스스로의 잘못이 8할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은재 의원의 문제 제기를 조희연 교육감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동문서답에 상대방의 오해를 지적했어야 할 이은재 의원은 비상식적인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스스로 써 둔 시나리오에 갖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탐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정적인 패착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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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비디오머그>

 

전장에서 상대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내가 화공을 준비하고 상대방을 기다렸는데 적이 예상하지 못한 루트를 지나가려고 한다면 나 역시 거기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예상은 예상일 뿐이다. 다시 적을 함정으로 유도하거나 화공의 장소를 바꾸거나 작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예산 전용과 불법적인 수의계약을 걸리다니 어이쿠야"는 이은재 의원이 예상한 조희연 교육감의 루트였고, 분노해서 외친 "사퇴하세요!!"는 예정된 화공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적인 거물 적대세력인 서울시의 진보 교육감을 잘라버리거나 위기에 몰아서 정치인으로서 스스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은재 의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국정감사는 왜 하는 것일까?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의 유력인사를 불러다가 망신을 주고 정치적인 위기에 빠뜨리고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려고 행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행정부나 공적 영역에 관한 기관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일이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으면 된다. 그런 국정감사의 자리에서 이은재 의원은 과욕을 부리고 본래 기능에 충실하지 않았다.

 

이은재 의원이 그때 차근차근 자기의 질문 의도를 밝혔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추가 소득으로 조희연 교육감을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어벙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은재 의원은 적이 있지도 않은 자리에 원래 시나리오대로 불을 질러버리고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드러냈다. 조 교육감의 수의계약과 예산 전용은 이은재 의원이 자기 상식으로 판단한 것처럼 개인적인 축재나 부정행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나가는 루트가 다를 수밖에 없었고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서 원래 계획대로 "사퇴하세요!!" 드립이 튀어나왔지만, "아니 그럼 MS 말고 어디서 사라고" 같은 대응이 불길에 역풍을 불러일으켜 이은재의 군대를 전멸시켜 버린 셈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승장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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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짤방도 생기고..

 

사실 이번 사태로 너무나 즐거웠다. 개인적인 입장을 드러내서 미안하지만, 나는 새누리당이 좀 당했으면 좋겠고 조희연 교육감 같은 사람이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번에 일이 이렇게 풀린 건 행운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늘 그럴 수 있을 리는 없다. 대응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음으로서 이득을 얻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마음이 편하지 않기도 하다. 국회의원이 교육청의 업무처리에 대한 상식적인 질의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잘못된 것들을 제대로 바로잡을 기회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드라이버와 망치를 가지고 고장 난 곳을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화염방사기로 약점을 찾아내 불살라버리는 것이 우리 사회 삼권분립의 현주소라는 사실이 이렇게 다시 드러났다. 선행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닥치세요." 같은 대응은 필요악일지라도 마음 한켠에 종기처럼 남는다.

 

잃은 것은 또 있다. 여담이지만 이번 다툼의 최대 패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일지도 모른다. 90년대부터 독과점으로 전 세계에서 때려 맞은 MS는 자신들에 대해 또다시 상황파악 못 한 교육감의 입에서 "독점 상품"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 내심 불안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왜 학교가 굴러가려면 무조건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사야 하는지, 소프트웨어 종속에 대해 찬찬히 살펴볼 기회도 이렇게 잃어버리고 그냥 당연한 것으로 고착된 것이 이번에 우리 사회가 당한 추가적인 1패이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차근차근 잘 이야기하고 개선해나가는 일이다. 언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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