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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궁속의 아이들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 하다보니, 수 십년간 진행된 많은 연구와 이론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 평화샘 프로젝트가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나불거리다가 잘못 전달될까 싶어 내가 실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출간한 출간물이 7~8권 정도 있으니 혹시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 주 - 평화로운 교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인 평화샘 프로젝트는 노르웨이의 올베우스 프로그램과 핀란드의 키바 코울루 프로젝트를 토대로 한국적 특성에 맞게 재구성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평화샘'은 평화로운 교실을 지향하는 샘(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땅속에서 물이 솟는 샘처럼 평화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도 담고 있다. 

출처 - 링크


어쩌다보니 필자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어쩌다보니'라는 말이 맞겠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무한경쟁의 내일을 알 수 없는 사회가 되자 철밥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방학조차 있는 교사라는 직업은 부러움의 대상을 넘어 어떻게든 같이 좋게 되었으면 좋겠는 대상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대학교 생활을 말아먹고(나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F가 나오고 학사경고가 누적되었다. 공부의 방향이 틀렸었나봐.족보를 안 봐서 그런가봐.) 재수생이 되었고, 다시 진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회사원이 되기 싫었다. 직장 상사 비위 맞추고 눈치보며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사업 말아먹고 전전긍긍하는 아버지를 보며 구멍가게라 하더라도 사업은 사업이니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포 다 떼고 보니 남는 곳이 별로 없다. 수능 끝나고 신문지 뒷면의 대학별 예상 점수표에 30센티미터 자로 내 점수대에 줄을 좍 그었다. 그리고 그렇게 교육대학교에 입학.


나만 그렇게 사명감 없이 교대에 들어가는지는 모르지만, 대학생활 동안 주변 친구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교육에 대한 사명감으로 교육대학교에 들어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IMF가 터지고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라, 안정된 직장을 찾아나선 장수생들도 한아름이었고, 같은 이유로 교육대학교 입학 커트라인은 가파르게 오르는 추세였다. 교육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가파르게 오르지는 않았을 것임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다. 대학 동기들 중 '내가 서울에 있는 XX대학교에도 붙었지만 여기에 왔노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친구들도 흔했다. 졸업하고 현장에선 '내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 그 점수에 교대갔는 줄 아냐.'는 드립을 시전하신다. 아무튼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아마도 지금도 그들 중 한 명일 것이다. 퇴근 이후의 삶을 위해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의 댓가로 생활을 영위하고, 보너스로 헬조선에서 남들은 꿈도 못꾸는 장기간의 방학도 누릴 수 있다.


10년 전, 전역하고 발령 받은 사실상의 첫 학교는 학생수가 1000명 정도 되는 중대형 학교였고, 그 동네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고 학부모 소득수준이 높다는 아파트로 둘러싸인 학교였다. 58년 개띠가 주를 이루는 선배 교사들은 3월 첫 달 아이들을 쥐 잡듯 잡아야 일년이 편하다는 조언(?)을 해주시었다. 첫날에는 그저 무섭게 하면서 웃는 모습일랑 3월말에나 언뜻언뜻 보여주어야 교사를 만만하게 보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세워진 위엄 위에서 조금씩 눈 녹듯 온화함을 보이는 것이 원활한 학급운영의 묘수라며, 강약중강강의 리듬으로 하루를 보내면 될 것이라는 애정어린 조언도 해주시었다.


하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웃기는 상황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성미였고, 첫 날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걱정어린 시선과 내가 무서워져야한다는 상황이 너무 웃겨 웃음보를 터뜨리고 시작했다. 아이들이 즐거운 교실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그 방면으로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은 없었다. 복도에는 불려나와서 혼나는 아이와 선생님이 줄줄이었고, 학년 연구실에 가면 청어처럼 엮여 들어온, 고개숙인 아이들과 훈련소 조교처럼 언성을 높이는 선생님들이 있기가 다반사. 아이들이 즐거울만한 교실은 혼자 알아보아야 할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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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어 만들어낸 재미있는 교실. 당시만해도 진보교육감 이전 시절이라 한 반에 학생이 42명이었다. 한 명에 1분씩만 이야기해도 42분인 멋진 시절. 아이들을 몇 개의 팀으로 나누어 팀점수를 받는 경쟁구도를 만든다. XP를 딸 수 있는 몇 가지 약속을 정해서 XP를 쌓는다. 일정 XP가 쌓일 때마다 레벨업을 한다. 시즌이 끝날 때 만렙이 되는 팀에게 보상이 주어진다. 뭐 이런 식이다. 개인별로는 교사에게 지적을 받을 때마다 경고가 누적되어 하루 5회 경고누적시 부모님에게 연락하도록 되어있었고, 학급전체와 정한 몇 가지 약속을 이행할 때마다 쌓은 포인트가 누적되면 전체와 약속한 보상을 주는 식이다. 떡볶이를 사먹는다든지, 체육시간에 축구를 한다든지. 반대로 전체와 정한 좋지 않은 상황이 될 때마다 경고가 쌓여서 꽉 차면 대청소를 한다든지 체육시간에 이론수업을 한다든지 등의 벌칙이 주어진다. 나름 학급 질서도 있으면서 아이들은 재미를 찾아가겠지 싶었다.


그런데, 즐거운 교실은 커녕 해마다 문제가 생겨났다. 혼자 외롭게 지내다가 집에 가는 아이가 해마다 몇 명씩 있었고, 한 해가 지나도록 나랑은 한 마디도 해보지 못하고 보내는 아이들도 많았다. 따돌림을 당해 전학가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어른들에 대한 극도의 반발감에 학교에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아이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고, 체벌과 얼차려를 주고 집에와서 괴로워하는 꼴사나운 날들도 해마다 벌어졌다.


XP를 따기위해 만들어진 팀은, 언제나 몇몇 의욕이 왕성한 키 큰 여자아이들을 수장으로 하며 팀내 저성과자들을 압박, 협박, 달래기 등으로 끌고 갔다. 팀내 갈등이 심한 팀은 분열과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분쟁이 끊임 없었고 교사 입장에서 팀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식으로 사회적 압박을 가하거나 잘 타이르거나 어르고 달래거나 까꿍까꿍 하거나 해서 교실이 어떻게든 굴러가게 하려고 했었다. 학부모들은 내가 젊은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100% 신뢰했다. 늙은 남자는 0% 신뢰하더라.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다. 시험을 보고, 시험지에 싸인을 받아오게 하고, 나머지 공부를 시키고, 수업을 하고... 교사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들이라 여기며 묵묵히 수행했다.


아이들은 학교가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를 몰랐다. 괴롭힘은 수시로 일어나서, 힘있고 권력있는 아이들은 힘없고 소외된 아이들을 빨아먹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내고 협박하고 학부모를 소환해서 상담을 해도 괴롭힘은 그치지 않았고 더 교묘한 수법으로 더 집요한 괴롭힘이 있을 뿐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의 외모를 비하하며 괴롭히고 혐오했다. 여자아이들은 떼로 몰려다니면서 서로서로를 갉아 먹으며 지냈다. 그 떼에도 끼지 못한 섬 같은 여자아이들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자신의 책상에 의지하며 살아갔다. 조용한 외톨이 남자아이들은 공책에 낙서판을 만드는 것을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갔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폐수처럼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다. 바다로 나가면 다 섞여서 별일없을 것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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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을 하며 한 해를 쉬었다. 시간을 내어 집 지을 자리도 마련하고 집을 지어보겠다고 나섰다가 좋게됐다. 김어준 총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두뇌 개조 작업을 했다. 팟캐스트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했다. 휴직을 끝내며 학교를 옮겼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학교 친목회를 탈퇴했다. 아이들을 팀으로 나누어서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아이들에게 근현대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저항정신이 담긴 노래들을 아이들과 함께 불렀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가 즐겁지 않았다. 따돌림은 여전했고, 나는 교실 질서에 정면으로 맞서는 아이들과 씨름을 하느라 하루하루 피곤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학교에 새로 들어온 20대 선생님에게서 신선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에 대한 명쾌한 답안을 누군가가 이미 작성해 둔 것 같은 느낌. 선생님에게 그 신기한 학급운영에 대해 설명을 듣고 바로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 학급운영이 평화샘에서 나온 것이라는 정도를 들었다. 


처음 그 학급운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아이들 사이의 폭력의 유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해석도 불가능하고 대응도 불가능했고 뭔가 찜찜한데 건드릴 수 없었던 아이들 사이(특히 여자아이들) 문제의 근본을 알 수 있었고, 왜 내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도와줄 수 없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평생 번 돈과 앞으로 벌 돈까지 몽땅 털어부어서 고생고생해서 들어온 마을에서의 삶이 왜 순탄치 않은지, 그리고 앞으로도 왜 순탄치 않을 것인지 알게 되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괴로워하고 무기력한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길도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왜 나는 유년시절 내가 살아온 보금자리에서 따스함과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었나에 대한 질문의 답도 찾았다. 내 아이가 자라면서 적어도 내가 만들어가는 아이의 보금자리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 잡혔다.


관계적 폭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마치 식스센스에 나오는 꼬마친구처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혹은 보여도 설명할 수 없는 폭력이 보이기 시작하고 설명할 수 있기 시작할 것이다.




2. 괴롭힘과 폭력에 대하여


여기는 초등학교 교실.


"여러분이 겪어보거나 본 적이 있는 괴롭힘과 폭력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초등학교 애기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그리고 무엇이든 다 칠판에 받아 적어본다.


때리기, 꼬집기, 할퀴기, 발차기, 밀치기, 머리채 휘어잡기... 당연히 아이들다운 갖가지 신체적 폭력이 나열된다. 신체적 폭력이 나쁜짓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니 넘어가자.


그 다음으로는 가지가지 쌍욕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10살 친구들이 알고 있는 욕과 기분 나쁜 말 등 언어적 폭력을 나열해 본다. 대강 아래와 같다. 학기 첫 날, 함께 알고 있는 욕을 모아서 그 뜻을 함께 알아보고 우리 다같이 쓰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활동이니 학교에서 욕이나 가르친다는 오해는 말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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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할 땐 써야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총수포함)도 많으시겠지만, 쌍욕 등 각종 언어폭력이 폭력이라는 것도 그리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니 넘어가자. 친구들끼리 서로 사용하는 쌍욕이 인간관계의 맥락적으로 서로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또래 문화에서 욕을 하는 것을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징표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다. 그렇다고 쌍욕이 일반적으로 폭력이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반대 한 표 던지겠다.


"씨X놈아, 엄마X이 밥X먹으래."


"니X미가? 갈테니까 X쳐 이X아."


아빠와 딸이 나누는 이 대화가 아주 자연스럽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귀 댁에서 상용화하시라. 우리 집에서는 안 그러려고 한다. 집 자녀들과 이런 쌍욕을 나누면서 지내신다면 인정해드리겠다.


아무튼, 아이들은 이렇게 신체적폭력과 언어적폭력에 대해 칠판 두 바닥이 가득차도록 말한다. 어른들에게 당한 폭력과 상처도 한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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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아이들 중에는 부모에게 '베란다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비롯한 신체 모든 부위를 무차별적으로 10여 분간 구타당했다'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엔 그래도 정해진 부위를 정해진 체벌도구로 때려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눈물나게 고맙다고 해야할까. 방금전까지 신체적 폭력이 잘못되었다고 한 바닥 줄줄이 읊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당한 폭력을 위와 같이 이야기 해주면서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라고 말한다.


신체적폭력은 잘못되었지만, 뭔가를 잘못하면 신체적폭력을 당해도 싸다는 인식. 선생님, 사범님, 학원선생님, 수영강사님 등 아이들은 만나는 어른들에게 신체적폭력을 당했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이야기해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험을 해왔다는 것이다.


"엄마한테 수영강습받다가 말 안 듣는다고 발바닥을 회초리로 20대 맞았다고 했는데, 니가 잘못해서 맞은 거라고 했어요."


우리반 아이의 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에 대해 크게 실망했던 절망의 감정을 나누었다.


"옛날에 대통령 해먹겠다고 갓난 아기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죄없는 시민 몇 천 명을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죽였던 사람이 있었다. 그 인간은 발바닥 몇 대 맞았을까?"


"..."


"0 대. 왜냐하면 그런 인간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20년 정도 후에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고 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투쟁했다.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조차도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 여러분이 언제 사람을 죽였나? 그런데 왜 수 천명 죽인 학살자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나?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


뭐 이런 얘기를 해주지만,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어디에서든 사회적으로 약자인 아이들이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크게 들지 않는다. 학부모 편지로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부탁하고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당한 폭력으로 도움을 청했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의 전부이지 않을까 싶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들도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때리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삶이 팍팍해지고 먹고사니즘에 바쁘다. 아이는 마을이 기른다는데 이 땅에서 공동체로서의 마을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는 한 세대가 지나고 있고 육아는 한 두 명의 어른들이 부담해야 할 무거운 짐인 것이 현실이다. 평화적으로 사람을 대하기가 너무나도 어렵고 더뎌보인다. 집에서, 학교에서 맞았던 경험이 있고 손이 막 올라간다. 그렇게 자랐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공동체가 붕괴된 이후 인간에 대한 믿음 없이 길러지는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서 생기는 것들이고,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우리 사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서로 보둠어 안고 아이들을 길러낼 수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연재의 마지막 정도에 공동체 회복을 시도했던 갖가지 헛발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예정이다. 폭력을 사용한다고 태생이 나쁘다거나 너는 인간 쓰레기야라고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알아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조를 바꾸면서 내 아이들에게 신경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부모노릇이다보니...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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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 다르게 집에 양육자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 (빠른 출근시간, 늦은 퇴근시간, 단위가족 위주의 가족 편성 등) 그래서 내가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말려줄 다른 어른이 없다. 그리고 아이 하나 기르는 데 세 명의 어른이 필요하다는데, 그 세 명의 몫을 혼자서 감당하는 중이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렇다고 아이를 때릴 수는 없으니, 감정이 상했을 때 양육자가 일단 그 상황에서 피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흡연자의 경우 담배라도 한 대 피고 오시든가 비흡연자의 경우 잠깐 집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연습 말이다.


감정적이 아니고 아이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효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의미의 폭력은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에 마치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을 뿐더러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또, 체벌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행동 수정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체벌이 없는 환경에 처하면 행동 수정의 효과가 바로 사라진다. 다시 말해, 가정에서 체벌도 불사하는 엄한 환경을 제공해왔다면, 그 집 아이는 학교에서 학원에서 방과후교실에서 가정의 엄한 환경 그 이상의 엄한 환경을 제공받아야 행동 수정의 효과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더 엄하고 무서운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지 않을까? 징벌당하며 자라나는 아이는 징벌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폭력속에 자라왔다고 우리 아이들을 폭력 행사하는 부모로 키우지는 말자. 누군가부터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폭력을 피하는 훈련과 사랑을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받아온 폭력을 되물림 하지 않고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다. 물론, 필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평화롭게 자라고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필자들, 부럽다. 재벌가 자식들도 못 받고 자란 것을 너님은 받고 자랐다. 평화와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돈으로 뺏기는 쉽더라. 나도 내 자식들과 후손에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나를 만나는 우리 반 아이들도.




3. 관계적 폭력의 개념


타인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폭력이라고 하자. 가해자의 의도성과는 관련이 없다. 물론 과실치상과 폭행을 같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의도적인 괴롭힘은 비의도적인 괴롭힘보다 큰 문제이기는 하겠다. 아무튼, 피해자가 괴로움을 겪는다면 폭력의 범주에 포함시키자.


그렇다면, 가학적 행위에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끼리 모여 행한 서로 합의한 가학행위는 폭력의 범주에 속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대통령가카님께서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내 귓가에서 자장가를 불러주시는 하해와 같은 은총을 배푸시더라도 내가 괴로운데 계속 불러주시는 것은 폭력이겠다. 


내가 괴롭다는데 가카께서, "내 목소리는 너무 아름다운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해봐야 폭력이다. 내가 싫다고 하는데 계속 불러주신다면 이제부터는 의도적인 폭력이다. 그래서 "댓통령가카, 내 귀가 아프니 이제 그만 불러주십시오." 했더니 서슬퍼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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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만 살모사 앞에 선 들쥐마냥 심장이 얼어붙은 듯 모든 생각이 정지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만다. 얼마 후 TV에 나오신 가카께옵서는 '자장가를 싫어하면 종북' 이라는 발언을 하셨단다.


그 무렵부터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귓속말을 하는 것 같고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흩어지며 말을 걸어도 잘 대답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신경과민이지 싶어서 잠도 푹 자보고 따뜻한 우유도 마셔보았지만 그 느낌이 왠지 사실인 것만 같다. 점점 인간 관계에 소심해지면서 쪼그러들어가는 내 자신을 느낀다. 하지만, 가카께옵서는 나에게 신체적폭력이나 언어적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 환장할 노릇이다. 하나도 안 웃긴 소설 끝. 


신체적폭력도 아니고 언어적폭력도 아닌데 굉장히 마음에 상처를 받고 무서운 것들에는 뭐가 있을까에 대해 아이들에게 물으면 대략 이런 것들이 나온다.   


나를 쳐다보며 귓속말하기
여럿이 팔짱끼고 독사같은 눈으로 노려보기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끼고 쳐다보고 있기
말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대하기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명만 쏙 빼서 데려가기
여럿이서 시내에 가기로 했는데 인원수가 다 찼다는 이유로 빠지라고 하기(나중에 다른 애는 끼워줌)
다른 애들에게는 다 주는데 나만 안 주기(장난감, 까까, 놀이참여 등)
다른 사람에게는 느슨한 규칙을 자기차례에는 빡빡하게 적용하기
각종 차별
뒷담화로 비밀 폭로
뒷담화로 허위 사실 유포
둘이 있을 때 친절하다가 여럿이 있을 때 갑자기 싸늘해지기
여럿이 있을 때 친절하다가 둘이 있을 때 갑자기 싸늘해지기
놀이에서 계속 낮은 역할만 시키기
너랑 안 놀아



필자분들이 보기에 위에 있는 내용들 중 이것은 심각한 폭력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몇 개 정도나 되는지 묻고 싶다. 몇 년간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주먹으로 몇 대 맞는 것과 여럿이 나를 쳐다보며 귓속말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75%정도. 학년이 높을 수록 더 높은 비율을 보임)은 별 망설임 없이 몇 대 맞는 쪽을 택한다. 신체적폭력과 언어적폭력과 관계적폭폭력 중 어떤 것이 가장 무섭냐는 질문에도 대부분 관계적폭력을 선택한다.(이 역시 아이들 학년이 높을 수록 관계적폭력이 무섭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어른 세계에서 신체적폭력도 아니고 언어적폭력도 아닌데 굉장히 마음에 상처를 받고 무서운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더라. 아래의 것들은 어떠신지? 이것들은 위에 있는 것들이 자라나서 어른 버전이 된 것들이다.


모여서 커피 마시다가 내가 나타나면 커피만 마심
수군거리다가 내가 나타나면 흩어지거나 함
즐거운 분위기였다가 내가 나타나면 썰렁한 표정으로 바뀜
인사를 해도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감
인사를 하면 어쩔 때는 받고 어쩔 때는 받지 않아 헷갈림
말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한참 있다가 못 들었다고 하거나 느닷없이 대답하거나 함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명만 불러서 데려감
담배 한 대 피러 가자 / 차 한잔 할래? / 점심에 XX 먹을래? 라고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만 권함
간식 / 기념품 등의 소소한 것들을 나만 빼고 다른 사람에게는 준다
술자리에서 했던 내 사생활이나 생각을 얼마 후 모두 알고 있다
나에 대한 거짓 소문이 돈다
각종 차별
둘이 있을 때는 언니 동생하다가 여럿이 있을 때엔 싸늘해진다
여럿이 있을 때엔 친절하다가 둘이 있으면 싸늘해지고 막 대한다
어쩔 때는 친절하게 대하다가 어쩔 때는 갑자기 급 쌀쌀맞게 대함
출근시간, 점심시간 등 다른 사람에게는 느슨한 규칙을 특정인물에게는 빡빡하게 적용한다
누구에게도 배정되어 있지 않은 잡무가 생기면 특정 인물을 시킨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털어 놓으면 '니가 참아.'라고 한다
이웃이 왠지 나를 째려보는 것 같고 싫어하는 것 같다
회식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만 빼고 2차로 고고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으로 분류할 수 없지만, 위의 예에서와 같은 인간관계를 이용한 사회적 폭력을 관계적 폭력이라고 한다. 요즘엔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 중 두 세 명은 관계적 폭력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은 있을 정도로 개념이 보급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마을에서, 종교공동체에서... 사람이 모이는 어디에서나 관계적 폭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에 비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관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신체적폭력과 언어폭력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 처벌은 받지 않는다. 매우 교묘하고 당사자가 내부고발을 하지 않는 이상 실체를 알기도 쉽지가 않다. 피해자가 관계적 폭력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특별히 손을 쓸 수 있는 것이 없다. 기분 탓이려니 하고 지나다 보면 어느 새 삶의 만족도가 뚝 떨어져있을 뿐. '피해의식'이 있다며 자신을 학대하게 될 지도 모른다. 혹은 실제로 없던 피해의식이 생겨날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 댓통령님같은 권력자가 휘두르는 관계적 폭력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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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도 월권행위를 하는 관리자들과의 싸움의 순간이 아니라, 관리자가 종용한 동료들과의 싸움의 순간이다. 동료들과 싸우면 원치않은 싸움으로 내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고, 이들과 싸우지 않으면 관리자의 월권행위에 수긍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버리게 됨은 물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더라는.




4. 귀댁의 자녀는 안녕하십니까?


3년 전 정도의 일이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관계적 폭력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12살 여자아이 셋이 삼총사처럼 다녔다. 쉬는 시간 늘 함께 붙어 있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밥도 같이 먹고 점심시간에도 셋이 같이 다닌다. 셋이 친하구나 싶었는데, 어느 날 셋 중 한 명이 신비스러운 일화를 전해주었다. 제보 내용은 강빈이라는 아이가 강아지 놀이를 한다는 것. 강아지 놀이가 무엇인지 몰라서 물어보았더니 역할을 정해서 연기하면서 노는 일종의 소꿉놀이였다. 강빈이는 늘 강아지 주인역할을 하고 나머지 수영와 예빈이는 강아지 역할을 한단다. 그 역할을 정해주는 것이 강빈이. 강아지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네 발로 다니다가 주인이 손을 내밀면 앞발(애들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며 꼬리를 흔든다거나 하면서 강아지처럼 있어야 했단다. 강아지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은 못하게 했단다. 그런데 강빈이가 두 강아지에게 뒷발로 서있게 한 상태로 '기다려'를 하고는 집에 가 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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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들이 다른 역할을 한다고 하면 신경질을 내거나 토라져서 비위를 맞추며 살고 있었는데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교사에게 도움요청을 하게 된 것. 문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더라는 것이다. 강빈이를 불러서 앞으로는 강아지 놀이는 하지 말라고 하는 정도. 수영이와 예빈이에게는 강아지 역할을 시키거나 하면 거절해야한다고 하는 정도.

그리고 그 날 집에 왔다. 아이들 노는 방에서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 가 보았다. 4살 딸아이가 네 발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같이 놀고 있던 동네 언니들에게 물어봤더니 강아지 놀이를 하고 있다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어찌나 놀랐던지 당장 놀이를 중단 시키고 강아지 놀이는 하지 않도록 하자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봐야 5살인 동네 언니들이 가고 나서 딸래미에게 물어보았다.


"너 강아지 역할 하면 재미있어?"
"응."
"(그렇구나... 재미... 있구나...)강아지 역할을 돌아가면서 하니?"
"(해맑게 웃으며) 아니, 내가 강아지야"
"그... 그렇구나."


큰 아이가 작은 아이들을 돌보며 놀고, 그 작은 아이들이 큰 아이가 되어서 또 작은 아이들을 돌보며 노는 선순환 구조가 없어진 지가 오랜지. 어려서부터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교구나 장난감을 갖고 놀던 아이들은 상대방을 대상화하고 통제하려고 하게 된단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기관생활을 하며 각종 교구 수업에 길들여지고 집에서는 혼자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간이 많은 요즘 아이들. 상대방을 괴롭히면서도 괴롭히는 것인 줄도 모를 수 있고, 괴로워해도 왜 괴로워하는지 잘 모른다.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괴롭힘인 줄도 모르고 무리속에서 관계 지으며 있을 때에 안정감과 살아있음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 그 무리속에 남으려고 한다. 관계적 폭력이 무서운 이유이다. 내가 이 관계 속에서 말라 비틀어져 피폐해짐을 느끼면서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스스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동네 언니의 어머니와 이야기 해보았는데 이야기가 쉽지가 않다. 애들끼리 놀다가 생긴 일이기도 하고, 잘 이야기 하겠다고는 하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강빈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친구들을 멍멍이로 만들어서 벌 세워놓고 가서 30분동안 아이들이 기다리며 서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신다. 수영이와 예빈이 엄마와도 통화를 했다. 놀라움을 표시했다. 끝.

만약 강빈이가 놀다가 나머지 두 친구를 주먹으로 때려서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혔다면, 그리고 동네 언니가 손톱으로 아이 얼굴을 확 그어 놓았다면 어땠을까?




5. 이제는 관계적 폭력을 멈출 때

우리 사회는 공개적 문제제기와 의사표명이 가능한 사회일까? 혹시 문제제기가 있을 때 감정적 대응을 하는 사회는 아닌가? 여러분이 만들어가고 있는 가정은 어떤가?

딸아이와 조카아이들 유치원 생활을 지켜보니 관계적 폭력은 3~4살 때부터 벌써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관계적폭력이 때리거나 욕하거나 하는 것 이상으로 나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으면 안되겠다. 집단면역체계처럼, 우리 사회의 일정 비율 이상의 사람들이 관계적 폭력의 개념과 폐해에 대한 인식을 탑재하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른들부터 바뀌어야 아이들이 바뀌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사실, 관계적 폭력이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곳은 가정과 학교이니까.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우리 부모들과 선생들은 얼마나 많은 관계적 폭력을 행사해 왔던가?

교사들에게는 자신이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학급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좀 더 많은 교사들이 관계적 폭력에 대한 개념을 탑재하고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 만큼이나 심각하게 다루어준다면 다음 세대가 살아갈 사회는 좀 더 사람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딴지 독자 중 교사들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아는 교사가 있다면 관계적 폭력의 개념에 대해 독자분들께서 화두를 던져주는 것은 어떨까?

부모에게는 자신이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정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세상살이가 점점 팍팍해지는 요즘이더라도 말이다. 이 글을 읽으시고 가정 내에서 본인의 관계적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보시게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절반은 해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보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각자 도생 연재가 끝나기 전에 함께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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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짜리 내 노트북이 드디어 안 켜지는 요즘이다. 글 쓰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느려져버려서 애초에 매주 한 편씩은 올리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다시 말해, 궁금하신 분들은 평화샘프로젝트로 나온 책을 보시는 편이 빠를 수도 있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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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아파트를 탈출하다





분노하샘


편집: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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