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Pretty_Woman-502333445-large.jpg



<귀여운 여인>은 게리 마샬 감독이 1990년에 만든 영화이다.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인 백만장자 에드워드가 어느 날 할리우드의 한 거리에서 매춘부 비비안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관계는 그가 호기심에서 그녀를 차에 태워 호텔로 데려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그녀를 3000달러에 일주일간 산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지내는 사이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며 기업 사냥꾼으로서의 자신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즉, 그는 인수해 분할 매각하려고 했던 10억 달러짜리 조선회사의 인수를 포기하고 그 회사와 투자 계약을 맺는다. 그녀 역시 그의 돈으로 어엿한 숙녀로 놀라운 변신을 한다. 그들의 달콤한 한 주간의 로맨스는 끝나고 헤어진다. 동화는 동화일 뿐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가 그녀를 찾아가면서 동화가 현실로 이루어진다. 할리우드는 동화를 현실로 만드는 공간이다. 수없이 보아온 신데렐라 콤플렉스이다.


이 영화를 신데렐라인 비비안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 에드워드에 초점을 맞춰 보면 그는 여성에 대한 뭇 남성의 욕망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그는 아내와 이혼했으며 사귀던 여자와도 막 끝이 났다. 그는 항상 일에 쫒기며 산다. 그런 그가 매춘부인 비비안에 끌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전처나 헤어진 애인과는 달리 따지고 들거나 피곤하게 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주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돈만 주면 그녀의 성 뿐만 아니라 인격까지 소유할 수 있다. 그에게 그녀는 젊고 생기 넘치며 말 잘 듣는 여자, 보고 즐기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완벽한 소유물 내지 애완용 동물이다. 그녀는 생각 없이 단순하다. 그것이 끝없이 일에 치어 사는 그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녀는 그에게 전문적인 성적 서비스로 만족을 주고 그가 지쳐 있을 때 위로해주고 그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그녀와 함께 지내고 그녀에게 값비싼 옷을 사주고 그녀를 호화판 식당과 오페라에 데리고 가는 것은 자기만족을 위해서이다. 그는 일을 하다가도, 오페라 극장에서도 언제나 그녀를 만족한 눈으로 그윽이 바라본다. 마치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그는 그녀를 변신시키면서 자신의 부가 지닌 힘을 확인한다. 그 힘은 남성으로서의 그의 성적인 능력과 결부된다. 그녀는 여성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남성의 욕망에 최적의 인물이다.



120784710.png



그러면 아래 구절은 어떨까?


사회적, 자연적 원인들이 합세하여 여성들이 남성의 권력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성들은 다른 모든 예속계급과는 너무나 다른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인은 그들에게 실제적 봉사 이상의 것을 원한다. 남성은 단지 여성의 복종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감성도 원한다. 극단적으로 야수적인 남성을 제외한 모든 남성은 그들과 가장 가까이 결합되어 있는 여성이 강요된 노예가 아니라 자발적인 노예이기를,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총아이기를 바란다.


est mill sujeicao das mulheres.png


영국의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이 1869년에 발표한 유명한 <여성의 예속>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귀여운 여인>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요약해준다. 그는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놓인 남성에 대한 예속상태를 갈파하고 남녀의 완전한 평등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여성의 예속은 여자는 날 때부터 남자보다 덜 지적이고 육체적으로 뒤진다는 오랜 관습적인 편견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편견이 여성에 대한 교육을 통해 영속화 되었다고 비판한다. 국가와 사회는 이런 관습적인 편견을 법률과 제도를 통해 고착시켜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질서로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여성을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하고 가정에 가두었다.


한편,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일부일처제에 잠복된 폭력성을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즉 원시적/자연발생적 공동소유에 대한 사적 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최초의 가족형태였다.' 다시 설명하자면, 원시 공산사회는 수렵사회이며 그 사회에서는 난혼이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지배권은 전적으로 여성에게 있었다. 그러나 경작사회로 바뀌면서 경작에 필요한 강한 육체 노동력을 지닌 남성이 여성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잉여생산과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그 부를 자식에게 세습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식에게 세습할 때는 위험이 따른다.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순결의 신화와 일부일처제이다.


여성의 순결은 적어도 남자가 결혼하는 순간 배우자의 몸 속에 다른 남자의 아이가 들어있지 않다는 보증이다. 거기에다 여성은 결혼한 후 일부일처제에 예속되어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여성이 오로지 한 남자와만 성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결혼생활 중에 낳은 아이가 남편의 아이라는 보장을 할 때 남자는 재산을 안전하게 자식에게 대물림 할 수 있다. 물론 남자는 일부일처제에 구속받지 않는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남자는 매춘이나 축첩이나 노예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등의 형태로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120784710.png


이런 설명에서도 보듯이 대부분의 사회는 가부장 제도를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확립했다. 남성은 한 가정 내에서 아내와 자식들을 배타적이고 절대적으로 지배할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아내와 자식은 그의 지배에 복종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그런 지배는 늘 약자인 여성에 대한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보호는 언제든지 폭력으로 바뀔 수 있다. 보호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폭력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서양에서 흔히 말하는 신사도라는 것 역시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여성은 남자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나약한 존재이므로 남성은 여성에 대해 예의와 존중심을 지니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순종을 전제로 한 것으로 그것에 저항하는 여성이나 그 보호밖에 있는 여성은 쉽게 폭력과 정신적, 육체적, 성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신사도는 실제 사회에서 여성의 법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 상승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고착시키는데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평등과는 거리가 먼 이데올로기이다.


maxresdefault.jpg


남부 숙녀(Southern Lady)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여성을 남성에게 철저하게 예속하기 위한 하나의 사회적 수사이다. 남부 숙녀는 품위 있고 사려 깊고 온정적이고 사교적이며 여성적인 연약함을 지닌 여자이다. 그 허구적인 이미지는 여성에게 가정적이고 남편에게 순종하며 정절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 이미지에서 연약함은 때로는 병약함으로 표현된다. 남부 여성은 이따금 히스테리하고 신경과민증적이며 지독한 에고이즘을 보여준다. 그들은 소위 남부의 고결한 봉건적 질서를 떠받쳐주는 박제된 인물들이다. 그들은 공적인 영역이나 직업은 물론 심지어 육아와 가사에서조차 배제된 채 가정의 장식물로 전락한다. 남성이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가정의 천사이다. 그들은 그 천사의 막 뒤에서 흔히 남편이나 아버지나 다른 남성의 폭력에 시달린다. 그들은 남편이 흑인 여자들에게 저지르는 불륜을 묵인하고 살거나 남편의 욕망의 희생양이 된 여자노예나 그 여자가 낳은 자식을 학대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블랑쉬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스칼렛 오하라나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음향과 분노>에 나오는 캄슨 부인은 이런 남부의 전형적인 숙녀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병적인 연약함과 오만함에다 비현실적인 꿈에 사로잡힌 블랑쉬나 페티코트를 입고 발랄하게 남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스칼렛이나 늘 병석에 누워 자식들을 방치하고 자기연민에 빠진 캄슨 부인은 남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여성상이다. 그들은 남자들의 절대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는 여인들이다. 그러나 블랑쉬는 결국 제부에게 강간당하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며 스칼렛은 남편에게 버림을 받는다. 그들은 가부장제가 만들어 놓은 질서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톡톡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19세기까지의 미국소설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소설에서 여성은 흔히 유혹자이거나 남성을 길들이려는 존재이며 남성은 그런 여성에게서 도피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드러내 보인다. 그 소설은 여성과의 사랑이 아니라 남성 사이의 강고한 유대를 강조한다. 인디언과 싸우고 거친 황야를 개척하는 미국 남성은 여성의 사랑이 아니라 남성 사이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주홍글씨>에서 헤스터 프린은 목사인 딤즈데일을 유혹해서 타락시켰으며 그 벌로 사회는 그녀에게 평생 에이(A) 자를 가슴에 달고 오욕 속에서 살도록 강요한다. 헤스터는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순결한 가정의 천사라는 규율을 위반했다. 남편 칠링워스는 그런 아내가 아니라 딤즈데일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 헤스터는 남성 사이의 투쟁의 공간인 미국적 황야, 야성, 자연의 은유이다. 그녀가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숲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그녀가 바로 그 자연을 체현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허크는 그를 문명화하려는 여성들에게서 계속 도망친다. 그의 삶은 개인을 문명화하려는 사회로부터 사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도피의 여정이다. 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에서도 립은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산으로 강으로 돌아다닌다. 남편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부인은 결국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심장이 터져 죽음으로써 처벌을 받는 반면에 립은 만년에 아내가 없이 안락하게 산다. 한편, 제임스 쿠퍼의 <개척자>들을 비롯한 일련의 소설에서 주인공 내티 범포는 아예 여성이 없는 숲에서 남자들끼리의 유대 속에서 평생 삶을 영위한다. 그는 길을 여는 개척자이고 황야의 척후이다. 그는 문명을 피해 계속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지만 그의 길을 따라 문명이 들어간다.


Henry Mosler (American genre artist, 1841-1920)  Quilting Bee.jpg


19세기 중엽까지 미국 사회에서 백인여성의 지위는 열악했다. 그들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으며 베를 짜고 실을 잣는 일을 하고 야외 노동에도 참여해야 했다. 그들은 글도 배우지 못하고 교육을 받지도 못한 채 남편에게 봉사하고 자식을 키우는 데 일생을 다 바쳤다.


미국은 기혼여성에게 어떤 법적인 권리도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남편의 소유물이 되었다. 여성은 거주 선택의 자유가 없었고, 자신의 수입을 관리할 수도 없었고, 자식에 대한 친권을 행사할 수도 없었고, 타인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도 없었으며, 서류에 서명할 수도 없었고, 법정에서 증언할 수도 없었다. 여자가 결혼하는 순간 그녀가 지닌 모든 재산은 물론 그녀가 일해서 번 돈도 남편의 소유가 되었다. 남편은 필요하다면 아내를 타인에게 빌려줄 수도 있었다. 남편은 아내를 방치하고 자식들을 돌보지 않더라도 아내가 번 돈을 법적으로 차지할 수 있었으며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식들을 아내에게서 빼앗을 수 있었다. 가족은 남편에게 사유재산과 같았고 남편은 그 재산의 유일한 소유주였다.


한 마디로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유아나 심신미약자나 법적 사망자나 다름없는 지위로 전락했다. '결혼을 통해 남편과 아내는 법률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 즉 여성의 존재 혹은 법적 실존은 혼인 중에 정지되며, 혹은 최소한 남편의 실존에 포함되고 통합된다' 처녀의 경우는 약간의 재산 소유가 허용 되었지만 사회적인 인정이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다.


미국사에서 여성의 지위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1820년대부터이다. 1810년대까지 미국 산업은 주로 가내수공업에 의존했다. 그러나 1820년대에 매사추세츠 주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빠른 속도로 공장제 공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러나 1830년대까지도 여전히 인구의 90%가 시골에 거주하고 있어서 노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1830년대에 로웰(Lowell) 공장지대의 공장들은 독특한 시스템으로 농촌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노동력을 방직산업에 끌어들였다. 그 공장들은 여공들을 위한 기숙사를 완비하고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을 관리해서 부모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 제도는 뜻밖의 효과를 낳았다. 기숙사에 공동으로 거주하는 젊은 여성들은 경제적인 독립의식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연대의식을 형성하게 되었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면서 점차 노동문제와 여성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한 마디로 기숙사 생활이 여성 노동자들을 의식화한 것이다.


미국의 본격적인 여성운동은 1830년대에 노예해방 운동에 여성들이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들은 노예해방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미국 사회에서 노예와 마찬가지로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여성 해방운동을 시작했다. 여성들은 1833년에 독자적으로 여성반노예제협회(Female Anti-Slavery Society)를 결성해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연방의회가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 워싱턴 특별구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1834년에는 미국여성도덕개혁협회(American Female Moral Society)가 결성되어 남성의 매춘, 성에 대한 이중 잣대, 여러 형태의 성적 방탕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1844년에는 로웰 노동자인 사라 배글리(Sarah Bagley)가 여성노동개혁협회를 설립해 10시간 노동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주장했다.


suffragettesa.jpg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던 당시 여성운동가들은 흰색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가사를 벗어난 노동에 참여하고 노예해방 운동을 전개하면서 여성은 처음으로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의식화되었다. 그런 가운데서 1848년에 미국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일어났다. 7월 19-20일에 뉴욕 주 세네카폴스에 있는 웨슬리교파의 교회에서 여성참정권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퀘이커 교도들이 대거 참여했다. 퀘이커 교도들은 식민지 초기부터 남녀평등을 부르짖었으며 교회 내에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목사도 없었고 예배 때는 신자들이 돌아가며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의 계급차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평화를 옹호했다. 200 명이 넘는 여성과 40여 명의 남성이 참여한 그 대회는 참정권을 포함한 완전한 시민권을 주장하였다. 그 대회는 '바람직한 어린 시민의 양육을 책임지는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마땅히 향유하여야 할 자율적인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빗대어 여성의 권리선언을 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로부터 어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고, 그 권리들 중에는 생명, 자유, 행복추구가 있다. (…) 인류의 역사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절대적인 전제정치를 확립하려는 직접적인 목적을 지니고서 여성을 끊임없이 학대하고 착취해온 역사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공정한 세계에 그 사실들을 제시하는 바이다.


이 선언에서도 보듯이 여성은 더 이상 어머니와 아내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사회와 국가에 받아들여지기를 열망했다. 이후 미국 여성운동은 재산권, 투표권,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여성운동은 특히 남북전쟁 이전까지는 기혼 여성의 재산권 보장을 위한 투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결실로 1848년에 뉴욕 주 의회는 지참금 혹은 결혼 후에 받은 재산에 대한 기혼 여성의 전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여성운동의 주도권은 참정권 획득 운동으로 옮겨갔다.


hillary-clinton_3.jpg

현재는 참정권을 넘어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해보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왜 자살했을까? 그들은 도시로 도망쳐서 직업을 구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대의 도시는 피난처가 될 수 없었다. 도제제도에 기반을 둔 폐쇄적인 도시 산업 시스템에는 그들이 받아들여질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공장제 공업의 발전은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켰다. 많은 젊은 남녀가 부모를 떠나 도시에서 일하게 되면서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였으며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결혼제도에서는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으며 결혼 당사자들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결혼이 당사자들의 사적인 행위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자유연애와 결혼이 확산되었다. 즉 산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로 드디어 연애결혼이 탄생했다. 도시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며 부모의 감시를 벗어난 그들은 배우자의 선택에 더 이상 부모의 간섭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이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로 축소되면서 결혼의 안정성은 오히려 약화되었다.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관계는 사랑이 식으면서 쉽게 파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지난 기사


[1부]

콜럼버스의 두 얼굴, 미국의 두 얼굴

먹기 위해 찬양하는 백인 정복자

영국신랑과 포카혼타스

신의 나라를 원했던 청교도들

아메리카 드림과 인종청소

흑인, 노예가 되다

마녀를 찾아라


[2부]

차(茶)를 바다에 처넣다

백인과 기득권만의 미국 독립

미국, 헌법을 제정하다

미국, 영국과 다이다이를 뜨다

미국 노예제도를 흔든 '내트 터너의 반란'

서부영화, 팽창야욕의 낭만적(?) 재현





naemaeumdaero


편집: 딴지일보 꾸물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