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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프레임

2013-07-3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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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30. 화요일

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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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부쩍 외제차들이 늘었다. 현,기차의 독점폐해에 반감을 갖는 현명한 소비심리이거나 관세철폐로 차 값이 좀 싸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국산 차라는 이유만으로 애국심에 기댄 그동안의 판매 전략은 약발을 잃어가는 것 같다.


조금 다른 의견을 들었다. 돈 벌려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폐가 될 수 있는 한복차림의 손님을 출입금지 시키던 서울 고급 호텔의 고객 접대 전략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는, 옷차림에 들인 가격이 그 옷을 입은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그 사람이 내심 기대하는  수준의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구매력 만큼의 기대와 대우를 받는 일이 되어버렸다.


생존이 아니라 허영을 위해서 빚을 종용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나라에서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저당 잡히고 지금 당장 구매력이 커 보이도록 허풍을 떠는 건, 싸움을 앞둔 짐승들이 제 몸집이 커보이도록 털을 곤두세우고 까치발을 하고 키보다 높은 나무를 긁어 발톱자국을 내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렇게 알아들었다.


영업맨들이나 사장님들의 슈트차림 전략이 아니란다. 휴대전화 요금도 제때 내지 못하는 어린 친구들이 돈을 벌려고 외제차를 끌고 다닌단다. 그런 차량이 국산 대형 대포차에서 외제차로 차종이 변경 되었냐는 질문에 이르러서야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겨우 굴러갈 정도로 손을 본,  겉만 번지르르한 외제차를 젊은 친구들이 몰고 다니다가 사고가 난다. 웬만한 경미한 사고가 아닌 바에야 수리비 견적이 천만 원은 우습게 넘는다. 차주는 견적서를 가지고 보험회사와 합의를 본다. 자가 수리를 요청하면 견적가액의 70%선에서 현금 지급이 된다. 현금 지급을 약속하면 국산 차 수리비 정도의 가격으로 '겨우 굴러는 다니는' 겉만 번지르르한 외제차로 만들어 주는 곳도 있다.


차주는 차액을 먹는다. 보험사는 사고 보험료 지급을 아끼고 공업사는 세금이 잡히지 않는 가욋돈을 얻는다. 관련자 모두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합리적인 일처리 방식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일 년에 세 차례 정도 사고가 난다. 세 번째 사고는 보통 폐차해야 될 정도이기 십상이고 폐차 후 차량 값까지 받고 나면 오천만 원 정도는 만지는 것 같다고 했다. 보통 병원진료기록을 남기지 않고 고의사고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일단 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살짝 불편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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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배알이 꼴린, 사방이 막혀 우중충한 미래만 그려내는 젊은이들의 심정이 개미 똥구멍 만큼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돈을 그렇게 벌어보면 힘들여 조금의 돈을 겨우 버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성공한 큰 도둑들에게 한정된 수량의 면죄부를 사고 파는 세상이기에, 성공한 범죄자들의 자기 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성실하고 악착같다. 그래서 작은 범죄자들의 앞길은 보통 암담하다.


운전 중에 일어난 차량사고는 어지간해서 백 프로 과실이 잡히지 않는다. 7대3이든 5대5든 쌍방과실이 인정되기 쉽다. 보통 그 비율은 앞 범퍼가 더 앞 쪽에 위치한 사람에게 상황에 따라 차등적으로 유리하게 책정된다.


운전자에게는 운전 중에 일어난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의 두 눈은 전방을 향해 달려있기 때문에 전방에서 일어난 돌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할 책임이 더 크다고 법을 만든 사람들은 생각한 것 같다. 도로 허용 속도 내에서 갑자기 끼어들거나,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갑자기 급제동을 하는 고가의 차량과 추돌한 사람은 심정적으로는 저 새끼가 미친놈이고 죽일놈이지만 법적으로는 과실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갖게 된다. 그리고 보통은 더 억울해 진다.


갑자기 끼어들어 오는 고가의 외제차 운전자의 공간인지능력 부족으로 5대5의 과실을 인정받는다 치더라도 저가의 차를 탄 운전자는 상대방 차량의 수리비를 부담해야 한다. 두 차량의 수리비를 합산한 금액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대상이 고가의 슈퍼카라면 억울함과 금전적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결국 '억울함'을 당한 운전자는 고가의 차량 주위에서 얼씬거리거나 진입 우선순위를 주장하는 행동은 결국 손해로 돌아온다는 학습을 한다. 학습이 된 사람들은 가진 만큼 겸손하게 운전을 하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저당 잡은 용기를 가지고 외제차를 구매한다. 그 와중에도 틈새시장이 형성된다.


알게 모르게 체화된 지혜는 자신 보다 더 가진 자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부당한 경우에 분노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손해로 돌아온다는 걸 배우게 한다. 어떤 수를 써서든 더 가지려고 노력하거나 아예 상황을 받아들이고 납득을 한다. 별 것 아닌 엉성한 법 같은데도 자본주의가 보유자본의 크기로 신분주의를 대체하고 있다는 걸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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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고 좋은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더 많이 배려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법의 판단을 내리는 나라들도 있다고 들었다. 나야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이대로를 원하는 사람들의 힘이 좀 더 강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의 수가 적을 뿐이다.


법을 만드는 분들은 거의 기사가 딸린 고급차를 타고 다닌다. 홍익인간이라는 존나 멋진 건국이념을 갖고 있는 나라의 후손이라서 그런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크다. 자신의 일이라고 체감하는 것에만 분노한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모두가 우리'라는 생각을 갖고 살기엔 참 각박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2008년의 촛불집회도 지들은 안 먹고 우리만 급식으로 먹이려는, 질 좋고 값 싼 상품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시장경제에서 존재하기 힘든 고기를 우리에게 먹이려는 높으신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분노였던 것 같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라고 명명한 방송사 뉴스보도를 스쳐 들으며 새삼 감탄하게 된다. 국정원의 선거 부정개입 사건을 별 거 아닌 것처럼 그렇게 이름을 붙이려고 똑똑한 분들이 머리를 얼마나 쥐어짰을런지 감탄스럽다.


판을 엎기엔 가진 게 많아 잃을 것도 많은 야당 의원님들은 얌전하시다. 


경찰 병력 투입, 군 병력 투입은 공권력 투입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대체됐다. 그 덕분에 이에 저항하는 자들은 '공권력에 저항하는 폭도들'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버렸다. 


어쩌면 이런 프레임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현장을 적발하려고 한 사람들을 '국정원 아가씨의 개인 프라이버시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찌질한 새끼들'로 만들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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