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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을 이야기할 때 흔히 남부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고 하지만 남부는 사실 전쟁을 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남부인들은 전쟁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 남부인들이 열광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들은 전쟁을 중세의 영웅적 이상주의를 실현할 기회 정도로 인식했다. 마크 트웨인이 남북전쟁 당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실패한 출정에 대한 개인사>라는 단편소설에서 우리는 전쟁 초기에 남부인들이 전쟁에 대해 지닌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기대하는 전쟁소설과는 달리 실패한 사람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전쟁이란 사람들이 기대하는 영웅적 투쟁이 아니라 어리석은 광기에 불과하다. 그런 사실을 이 소설은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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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전쟁이 나자 미주리 주 마리온 카운티의 한니발에서 어릴 적 친구들과 마리온 경비대(Marion Rangers)라는 민병대를 조직해 원정을 나간다. 그러나 출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시끌벅적한 휴일 놀이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겐 전쟁은 낭만적인 환상을 만족시켜줄 놀이이다.


그들은 행군 중 한 마을에서 주민들의 환대를 받고 그들에게 신세를 지면서 처녀들과 시시덕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리에 놀라서 한밤중에 비를 맞으며 비참하게 철수하다가 일행 중 하나가 개에게 물리는 희극적인 소동이 벌어진다.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도 그들은 적들이 잡으러 온다는 소문에 숨어 지내기 급급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적의 첩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경계를 서던 중 무고한 민간인을 사살하게 되며 그제야 자신들의 장난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나는 살인자라는, 내가 한 사람을, 내게 어떤 해를 끼친 적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나를 쏘았다”라는 주인공의 말은 어쩌면 이 전쟁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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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는 회고적인 수법을 씀으로써 전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것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의 화자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인들이 전쟁을 대하던 태도를 다분히 냉소적이고 풍자적으로 바라본다. 적어도 전쟁 초기의 남부는 규율도 없고 전쟁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대비도 없었다. 이 소설에서 사병들은 장교의 명령을 묵살하고 집에 가고 싶으면 가고 마음대로이다. 더욱이 화자는 평소에 북부의 대의를 지지했지만 남부인이라는 이유로 남부군에서 활약하면서 참전의 명분도 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주인공이 결국 전쟁에서 이탈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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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영웅놀이에서 시작된 남북전쟁은 사실상 대량 살상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패전이었다. 남부인들은 패전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희생자를 찾았으며, 그 희생자들은 바로 해방된 흑인이었다. 그들에게는 남북전쟁도 흑인 탓이고, 백인의 빈곤도 흑인 탓이고, 실직도 흑인 탓이고 모든 것이 흑인 탓이었다. 남북전쟁 패전의 심리적 상처와 분노, 낙후된 남부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힘없는 흑인들에 대한 폭력으로 달랜 것이다. 그 희생자들을 찾기 위해 광분한 단체들 중 하나가 KKK(Ku Klux Klen)이다. KKK는 미국의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 낳은 국가적 질병이었다. KKK는 백인들이 저지른 무수한 역사적 과오를 엉뚱하게 흑인들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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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이라는 영화를 잠시 들여다보자. 이 영화는 그리피스(D. W. Griffith) 감독이 1914년에 만든 무성영화이다. 나름대로 미국 영화의 고전에 속할만한 작품이다. 3D영화가 밀려드는 시대에 이 영화는 무성영화를 보는 색다른 재미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가면 속에서 인종차별주의를 여과 없이 내보이고 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진실’을 고의적으로 비틀고 왜곡해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는 남부의 도덕적 정당성을 옹호하고 백인우월주의를 감싸고돈다. 노예제 시절 남부는 평화스럽고 흑인들은 백인들의 ‘계몽’ 속에서 노예로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런 남부를 북부는 무단히 침략했다. 이 영화 어디에서도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자행하는 폭력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가한 사소한 폭력—그 자체도 사실인지 의심스럽다—은 심심찮게 묘사된다. 노예 흑인들은 순수하고 인정이 많고 순종적이다. 반면에 이 영화는 ‘계몽된’ 흑인들을 공공연하게 멸시하고 증오한다. 그들은 탐욕스럽고 무지하고 미개하고 더럽고 야만스럽다. 그들은 북부를 등에 업고 남부의 순수성을 더럽힌 악한들이다.


이 영화의 제2부는 사실상 KKK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이 영화에 따르면 백인들이 자행한 KKK단의 만행은 북부의 정상배들과 남부의 무도한 흑인들로부터 남부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이다. 그것도 항상 도발은 흑인들이 먼저 했으며 백인들의 대응은 정당방위이다. 이 영화는 상영 이후 백인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으며 1910년대에 KKK단이 재차 준동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 면에서 그리피스 감독은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KKK는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크리스마스 전날 테네시 주 풀라스키에서 여섯 명의 남부 퇴역군인들이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운 단체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다. 곧 이어 1867년에는 테네시 주 네쉬빌에서 포레스트(Nathan B. Forrest)의 지도아래 중앙조직을 결성하고 강령을 채택하고 지부까지 두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그들의 주 활동 목표는 흑인들과 흑인을 옹호하는 백인들(nigger-lovers)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공화당(그 당시의 공화당은 지금의 공화당과는 상관없다)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앙조직은 형식에 불과했고 각 조직은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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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다. 클랜들은 하나같이 눈만 뚫린 하얀 두건을 쓰고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망토를 걸치고 심지어는 말에도 하얀 천을 덮어씌운 채 총이나 채찍을 휘두르며 거리를 질주한다. 영화가 만들어낸 상업주의의 산물이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은 흔히 흰 두건이나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흑인들의 집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그들을 채찍질하거나 죽였다. 또한 밤이면 불타는 십자가를 들고 다니며 지역 사회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한창 전성기 때는 회원이 거의 60만 명에 달했다.


백인 우월주의와 기독교 원리주의가 결합한 것이 KKK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만행을 성경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며 흑인들을 위협하고 살해했다. 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무에 매달아 죽이고,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고, 심지어 살해한 흑인을 토막 내서 정육점에 내거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죽어간 흑인들의 숫자가 19세기 후반에 수천 명에 달한다. 특히 1873년 부활절 일요일에는 루이지애나의 콜픽스에서 280명 가까운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학살되었다. 클랜 조직은 그랜트 대통령의 강력한 탄압으로 1870년대에 빠른 속도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890년대 남부에서는 흑인들에 대한 백인의 린치가 여전히 극성을 부렸다.


KKK는 1915년에 조지아 주 스톤마운틴 정상에서 시먼즈(William J. Simmons)라는 인물에 의해 재조직되었다. 그 조직은 1920년대에 무서운 속도로 퍼져 그 전성기인 1925년 무렵에는 회원 수가 거의 600만 명에 달했다. 그들은 이전의 KKK와 달리 남부를 벗어나 전국적인 활동무대를 갖게 되었다. 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북서부 지역에서 그들의 조직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한 그들은 반흑인주의를 넘어서 반유대주의, 반가톨릭, 반공산주의, 반이민을 부르짖었다. 1918년부터 1927년까지 10년간 그들이 학살한 흑인의 수만도 40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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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KKK는 주로 도시화와 산업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동유럽과 남부유럽으로부터의 대량이민, 남부 흑인들과 백인들의 대규모 북부이주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이들 새로운 인구가 북부의 대도시들과 공업지역에 밀려들면서 기득권 세력들과 새로 유입된 세력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더욱이 1920년대의 금주법 시행과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광신적인 종교적 열정이 클랜과 결합하면서 그 세력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토착 백인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욕망, 술이 미국인들을 타락시킨다는 두려움, 유대인과 가톨릭에 대한 개신교도들의 혐오, 점점 확산되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클랜들의 인종차별주의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들은 왕성한 활동으로 많은 주들에서 의회를 장악하고 연방의원을 배출하고 심지어 1924년 인디애나 주에서는 잭슨(Edward Jackson)이라는 주지사까지 배출했다. 그나마 대통령까지 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저항이 거세지면서 그 조직은 1920년대 중반에 급속히 퇴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약하지만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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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타임 투 킬>(A Time to Kill)은 조엘 슈마허 감독이 1996년에 만든 영화로 미시시피 주의 한 작은 지방에서 벌어지는 인종갈등을 보여준다. 어느 날 열 살 난 한 흑인 소녀가 가게에서 물건을 사 집으로 돌아가다가 술에 찌든 두 백인 불량배에게 강간과 린치를 당해 초죽음이 된다. 이 사실에 분노한 그 아이의 아버지 칼 리 헤일리는 법정에 들어서는 두 사람을 총으로 살해하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다. 그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젊은 백인 변호사 제이크 브리긴스에게 변론을 의뢰하며, 그때부터 그들은 법정에서 힘든 싸움을 벌인다. 그 사이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은 KKK단을 결성해 흑인들과 칼 리의 편을 드는 백인들에게 온갖 테러를 가해 그 도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에 대응해 흑인들은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며 칼 리를 석방하라는 시위를 한다. 더욱이 배심원단은 백인들로만 이루어져 칼 리에게는 승산이 없다. 재판에 지면 사형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제이크의 감동적인 최후 변론으로 인해 배심원들은 마음을 바꿔 칼 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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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KKK라는 테러조직으로 표출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는 미국 남부의 백인들이 지닌 지독한 우월주의와 그 가운데서도 인종적 정의를 부르짖는 소수의 용기 있는 흑인들과 백인들의 노력을 의미 있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KKK단의 미시시피 지역 단장인 스텀프 싯슨은 칼 리에게 죽임당한 백인의 한 형제가 복수하겠다고 찾아왔을 때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라진 듯이 보일지라도 KKK는 항상 바로 그 자리에 표면 아래 숨어 있었네. 하느님의 심판을 내릴 기회만을 노리면서 말이야."


그들은 스스로를 흑인들에게 오염되어가는 순수 미국을 지키는 정의의 사도로 자처한다. 아마 그들이 뒤집어쓰는 흰 천은 그들에겐 백인, 순수, 도덕적 고결 따위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그렇게 철저하게 가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정말 떳떳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무엇이 두려워 얼굴을 가리겠는가.


KKK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수많은 단체들 중의 하나이자 그 상징적인 단체이다. 그들이 부르짖는 ‘하느님의 정의’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거나 인종혐오자이거나 홀로코스트주의자이다. 그 하느님은 일부러 백인과 흑인을 만들어 서로 반목하고 죽이고 노예로 만들고 약탈하게 했다. 이 무슨 지독한 악취미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믿는 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면, 그들이 믿는 신이 사랑의 신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모독하고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아마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두건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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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제13조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흑인들은 노예에서 해방되는 순간 자유의 몸이 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버림받은 사람들이 되었다. 노예해방은 그들에게 어떤 물질적인 보상도, 신변의 안전에 대한 보장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주지 않았다. 노예에서 해방된 순간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알몸뚱이뿐이었다. 노예 시절 그들에겐 재산소유권이 없었기에 해방되는 순간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남부 농장들에 주저앉아 소작농 신분으로 노예제 시절 못지않은 착취를 당했다. 더욱이 그들은 해방되는 순간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그들은 해방되었지만 미국에서 살 자격인 시민권도 없었다. 그러므로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보안관을 찾아가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1868년에 수정헌법 제14조에 의해 그들은 시민권을 부여받았고 1870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제15조에 의해 투표권을 부여받았으나 그것은 허울 좋은 권리에 불과했다. 남부의 주들은 인두세, 복잡한 투표절차, 문자해독시험 같은 제도를 통해 대다수 흑인들의 투표를 원천 봉쇄하였으며 그나마 남은 흑인 유권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백인들이 조성하는 투표방해, 협박, 폭력, 살인 같은 공포분위기 속에서 투표할 용기를 낼 수조차 없었다. 더욱이 1890년 미시시피 주에서 흑인의 투표권을 법적으로 박탈한 이후 남부 주들은 20세기 초까지 앞 다투어 흑인의 투표권을 아예 박탈해버렸다. 그러므로 남북전쟁 이후 몇 년간을 제외하고는 흑인들은 20세기 중엽까지 미국 정치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1877년에 재건정책이 끝나면서 남부 각 주의 권리가 다시 남부로 넘어가자마자 남부는 흑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과 인종차별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백인들은 걸핏하면 흑인들이 백인을 살해하고 백인 여자들을 강간한다는 이유로 흑인들을 폭행하고 살해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주장은 터무니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난 수백 년에 걸쳐 무수한 흑인을 살해하고 강간했으니 흑인도 같은 만행을 저지를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으며, 다른 한편 그런 거짓 선전을 역이용해 흑인을 탄압하는 구실로 삼았다. 또한 그들은 그런 살인과 폭력으로 새디즘적 만족을 추구하고 흑인들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백인보다 낮은 지위에 고착시키려고 했다. 남부의 백인 여자가 흑인에게 강간당할 가능성은 그 여자가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보다 더 낮다는 캐쉬(W. J. Cash)의 주장은 그들의 그런 기만을 폭로한다. (캐쉬는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로 <남부의 마음>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밝혔다.)


이 시기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가한 차별은 헌법의 보장 아래 이루어졌다. 1890년 플레시(Homer Plessy)는 루이지애나에서 백인 전용 열차 칸에 타려고 하다가 주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흑인의 피가 8분의 1 섞인 백인이었다. 그의 사건은 연방대법원에까지 올라갔고 6년에 걸친 재판 끝에 연방대법원은 “법령은 인종적 특성을 없애거나 신체적 특이성에 입각한 구분을 없앨 힘이 없다”고 주장하며 흑백분리를 합헌으로 판결했다. 소위 ‘분리하되 평등한(separate but equal)' 이상 흑백분리는 합헌이라는 논리였다. 이 판결로 인해 이른바 ‘짐크로(Jim Crow)법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 그때까지 관습적으로 자행되던 흑백차별과 분리가 합법화됨으로써 기차, 버스, 식당, 화장실, 학교 등 거의 모든 곳에서 흑백분리가 반세기 이상이나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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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의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는 <쿠 클럭스>(Ku Klux)라는 시에서 한 흑인이 클랜 단원들에게 끌려가 폭행당하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아주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서

말했다. “넌

백인이 위대하다는 걸 믿느냐?”


나는 말했다.

“나리, 실은

풀어주시기만 하면

뭐든 믿겠습니다.”


백인이 말했다.

“짜식,

그렇게 서서

말대꾸를 해보겠단 말이지?”


그들은 내 머리를 때리고

나를 때려눕혔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쓰러진 나를

발로 찼다.


한 클랜 단원이 말했다.

“내 얼굴을 쳐다봐—

그리고 백인이 위대하단 걸

믿는지 대답해봐.”


이 시에서 클랜 단원들은 흑인을 위협하고 폭행함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다. 그들의 폭력에 직면한 흑인은 백인을 ‘나리(mister)’라고 부르며 백인들은 그런 흑인을 ‘짜식(boy)’이라고 부른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흑백의 위계질서는 변함이 없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질문에 흑인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이번에는 말대꾸를 한다면서 차고 때린다. 그들은 그가 똑바로 서서 그들과 같은 높이에서 대답하는 것에 참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를 쓰러뜨려 그가 그들을 우러러보며 대답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너는 백인이 위대하다는 걸 믿느냐?”는 백인들의 반복된 질문은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함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거나 믿지 못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흑인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그것을 확인하려 한다.


남북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백인들의 린치로 희생되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길이 없다. 적어도 수천 명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그 사실을 외면하다가 클린턴 정부에 와서야 비로소 의회에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정부가 공식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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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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