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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작품은 인간 베토벤이 짜낼 수 있는 예술혼의 극치였다고 생각한다. 아주 못된 비교이긴 하지만 박정희가 내린 긴급조치들 가운데 ‘긴급조치 9호’는 편협하고 잔인한 독재 근성의 몰골이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담긴 걸작(?)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를 금하는 건 그러려니 하자. 그 다음엔 이런 조항이 등장한다.


“학교 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예외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 (금지)”


그러니까 학생이 어느 자리에서 정치적 발언만 해도 ‘정치 관여’로 긴급조치 위반자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까지도 애교다. 다음 조항에 대해서는 아마 북한의 정치보위부도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금지)”


이 어마어마한 긴급조치 9호가 떨어진 게 1975년 5월 13일이었다. 이쯤 했으니 어느 놈이 감히 나서겠느냐며 의기양양하던 정권은 불과 9일 뒤 터진 서울대 ‘오둘둘’ 시위로 큰 코가 깨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달포 뒤인 6월 19일, 이번엔 한 여대생이 긴급조치 9호 첫 여성 위반자가 되어 감옥행 테이프를 끊는다.


이 사연을 알려면 신원호PD가 차기작으로 꼽았다는 소문의 해인 1974년 10월로 가야 한다. 신문사를 제 집 드나들듯 하며 기사를 ‘빨간펜 선생님’처럼 고쳐대던 기관원들의 횡포 앞에서 절치부심하던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선포했다. 이에 졸렬하기가 휴전선 이북의 정권 외에는 경쟁상대가 없던 유신정권은 기업들에게 압박을 가해 <동아일보>에서 광고를 철수시키는 작태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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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74년 12월 26일 자


대한민국 국민들이 열화와 같이 일어서서 동아일보의 빈 광고란을 메우던 순간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였다.


1975년 3월 동아일보 사측이 정권에 굴복하여 기자들을 해고하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 맨 먼저 지지성명을 발표하며 장안을 울렸던 학교가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였다.


“동아, 너마저 굴복하면 진짜로 이민 갈 거야.”


라고 동아일보 백지광고에 썼던 ‘이대S생’은 하나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악전고투하며 정권과 싸우는 해직기자들을 돕고 싶었던 이대생들은 길거리에서 동아 돕기 손수건을 팔아 기금을 마련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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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자가 문제의 손수건을 제작한 것은 이런 와중이었다. 그는 시위 과정을 상징하는 동양화,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동은 대담하게, 말은 겸손하게 하라(邦無道危行言孫)’는 <논어> 헌문편(憲問篇)의 구절, 윤동주의 <서시>를 각각 넣은 세 종류의 손수건을 만들었다. 디자인은 서울미대에 다니는 친구가 예쁘게 해주었다.”

(주간경향 신동호 기자 뉴스메이커 579호)


손수건은 불티나게 팔렸다. 며칠 안 돼 300원짜리 손수건을 팔아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행위는 긴급조치 위반이었고 이대생 몇몇이 체포된다. 잡혀가는 순간에도 경찰 아저씨가 뒷덜미를 잡은 공포보다도 손수건 판 돈 10만 원을 빼앗기는 게 억울해 돌아가시는 줄 알았던 이 신실한 대학생들을 밀고한 자는, 뜻밖에도 교수라는 이름의 개새끼였다. 그런 개새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그 이름을 몰라 쓰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시는 분 제보 바란다. 그런 개새끼는 두고두고 가문의 흑점으로 남아야 한다)


그 이후 한국 현대사 곳곳에 메아리로 맺힌 이화의 이름들을 풀어내자면 손가락이 아플 뿐이므로 그만하기로 하자. 오늘은 공든 탑 위에 옥돌 하나를 더 올려놓은 날이니 이를 축하하기에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화는 어제(19일) 또 한 번 자존심을 지켰다. 대한민국 제1권력자라는 여자의 버르장머리 없는 딸, “돈도 실력이야”라고 뇌까리는 말대가리 앞에 설설 기며 학교의 법을 바꾸고 발가락으로 휘저은 리포트에 교수가 ‘감사합니다’라고 머리 숙이던 살풍경을 이화의 자존심이라는 빗자루로 쓸어 냈다.


총장 하나 몰아낸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가 하는 사람들은 총장을 몰아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뻔히 눈에 보이는 특혜가 없었다고 끝까지 우기고 드러난 사실마저도 모르쇠 부인하는 벽창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 자리는 그들만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이 물러서는 것은 개인의 퇴진이 아닌 탓이다. 하지만 이화의 자존심은, 그리고 정의감은 권력 앞에 비굴하지만 학생들 요구 앞에는 철벽이었던 총장을 끌어내렸다. 경하 드린다. 정말로 경하 드린다.


이화여대 학생들을 보면서 다시금 느낀다. 진정한 자존심이란 “나는 남보다 달라.”하는 우월감도, “우릴 감히 어디다 갖다 대?”하는 ‘쫀심’도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보다 더 거대하고 사악한 힘과 맞서고, 비틀리고 굽은 현실에 저항했던 손수건 속에서 자라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동을 대담하게” 하는 용기를 양분으로 삼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 속에서 하늘까지 닿는다는 것을. 이대생들의 행진은 그 한 모범을 보여 주었고 우리 사회의 철벽에 조그만 파열구를 냈다. 그래서 고맙다.



퇴근 길 버스 안에서 '이화' 마크가 찍힌 노트를 든 여학생을 보며 급하게 휘갈긴다. #그런데최순실은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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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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