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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16. 화요일

워크홀릭









기업이 돈을 버는 기본적인 형식은 '만들어서 팔기'입니다. 즉,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도록 한다면 좋은 사업이겠지요. 


반대로 비싸게 만들어서 싸게 판다면 아주 멍청한 겁니다. 세상에 그렇게 바보같은 사업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겠냐고 물으실 테지만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희한하게 비싸게 만들어서 싸게 파는 이들, 그 속 사정은 대개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비리', 손해 보는 것을 알면서도 비싸게 사(주)는 거지요.


둘째는 '무지', 자기가 어떻게 사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시나브로 손실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첫째 예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는데요. 혹시 터널링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요즘에는 우리 말로 '일감 몰아주기'라 정리가 된 듯한 이 단어, 바로 대기업에서 자회사를 만들고 그곳의 물건을 비싸게 사주는 것을 말합니다. 재벌 후계자들이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죠. 


이런 짜고치는 고스톱은 제조업계 뿐 아니라 투자업계에서도 일어난 바 있습니다. 별명이 무색하게 쥐띠는 아니셨던 전임가카의 자원외교 과정에서 석유공사가 캐나다의 하베스트 NARL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가 지난해 11월 매각시 1조 3천억 원의 손해를 봤던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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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한겨레


하지만 이런 투자를 빙자한 비리는 사업의 성격상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투자에서는 늘상 일어날 수 있는 실패인지 고의적인 못된 짓인지를 판별해야 할 때는, 그래서 투자시스템이 갖고 있는 촘촘한 방지책과 수차례의 판단과정이 이상하게 허술했는지, 아니면 사익과 연결될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자가 관계되어 있는가 등을 살피게 됩니다. 


이런 쪽으로 접근해 보면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투자 건은 자문회사 선정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배점 기준으로 진행된 것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심사단계마다 점수를 잘 받은 1위 업체가 탈락하고 5위 업체가 갑자기 기준 없는 점수를 몰아 받으면서 1위가 되어 자문회사로 선정된 셈입니다. 그런데 글쎄 이 자문회사에는 전임가카의 청와대 비서관 아들이 있더라지 뭡니까.


또한, 포스코의 경우는 건설업 협력업체에게 공사대금을 부풀려서 지급하고 다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수백 억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입니다.


이제 일감몰아주기는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견기업들도 열심히 따라하는 중인 듯 합니다. 결재자금 후하게 주고 돌려받기는 건설업에서는 뿌리 깊은 구태이기도 하고요.


죄를 짓고 벌 받아야 할 사람들이 벌 받지 않고 떵떵거리고 잘사니, '나는 멍충이냐? 나도 손해 볼 수 없다'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겠습니다. 다만 자기 주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때 침묵하기 보다는 그러지 마시라고 말리는 사람이라도 많았으면 싶네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 보니 서설이 길어졌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구매의 기술을 알아볼 시간입니다. 앞서 말했던 두번째 예의 분들, 즉 구매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다보니 분명 물건은 팔았는데 남는 게 없는 기업을 위해 몇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무지'라는 단어를 썼는데,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배우지 않는 것이 진정 부끄러운 것이라는 옛말이 있지요. 구매에 대해 배우려 해도 딱히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특히 건설업과 관련된 컨설팅 사례와 제조업 관련 사례를 많이 소개해드리니 관련 업종에 계신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초보사장님들은 기업 경영을 시작하고 나면 단순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 복잡하기 그지 없음을 알고 절망합니다. 이 절망 유발 요소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수요와 공급이 절대 딱딱 맞아 돌아가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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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이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수요와 공급에는 워낙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날씨와도 상관 관계가 있고, 발주처(甲)의 내부 결재 구조와 그들 만의 프로세스도 을(乙)에게는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다 보니 건설업의 경우에는 때론 공사를 대비하기 위한 원자재를 너무 많이 구입해서 현금이 묶이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자재의 부족으로 공사를 약속한 공기(工期, 건설업계에서 사용하는 공사기간의 줄임말) 내에 맞추지 못하는 일도 생기곤 합니다. 


여기에 매출은 불규칙하지만 기업의 고정적 유지비와 은행 이자 등의 금융비용은 정기적이게 꾸준히 발생하는 현실, 나가야 할 돈을 막자니 신용불량이 되는 등의 문제로 초보사장님들은 오늘도 머리를 쥐어 뜯고 있을 겁니다. 


사업가들이 틈나면 하는 말이 '앞으로 남고 뒤로 손해 본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판매대금을 받긴 받았으되, 결산기가 되어서 돌아보면 어림잡았던 수준의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이익은 커녕 자금부족으로 판매대금을 쥐어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원자재 수급과 판매관리비를 조달하기 위해 은행문을 두드리곤 합니다.


이때 초보사장님들은 문제의 원인을 판매량의 부족과 적은 마진에 두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잘 나간다는 선배 사장님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더니, 하는 얘기가 저마다 다릅니다. 


총원가 대비 25%의 마진을 설계해서 견적과 입찰에 임해야 된다. 


눈치껏 최대한의 마진을 추구해야 된다. 


일단 이익은 생각하지 말고 최저가로 시장의 경쟁자들을 다 물리쳐 수요를 모두 끌어온 후 대량 원자재 구매로 마진을 만들어 내라. 이렇게 하면 경쟁자들을 모두 이기게 되고 그 때 가서 가격을 올리면 된다.


알듯 하면서도 모를 것 같고, 어떨 땐 선문답 갖기도 한 이런 원가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들과 조언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이렇듯 복잡한 경영에서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제일 먼저 끝장봐야 되겠지요? 이것이 바로 '구매'입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많이 파는 것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잘 사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면 일단 그 사장은 초보 딱지는 떼었다 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벙커를 방문할 때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꾸물팀장의 경우 특히 새겨 들으시길...)


소상공인 컨설팅을 하는 경영 컨설턴트 중에는 식당 영업이 어렵다는 사장님들에게 항상 이런 조언을 합니다. 식당에 앉아서 식당 밖을 보지 말고, 식당 밖에서 식당 안을 들여다보면 그때서야 문제를 볼 수 있을 거라고요.


얼마를 더 팔고, 어느 정도를 남길까라는 고민 이전에 내가 어떻게 원재료를 사들이고 있는지, 그 가격과 품질은 적절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원자재를 구입하고 관리함에 있어서 적당한 때에 재료가 수급될 수 있도록 한다면, 돈을 절약함은 물론 미래의 위험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


경영자는 넓은 업무 범위를 갖고 있습니다. 인사, 회계, 영업, 기획, 구매, 연구개발 등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또는 업종이 다르더라도 모든 사장들에게는 이러한 다방면의 이해와 노력이 요구됩니다.


구매라는 업무 분야가 인사와 회계, 영업과 기획과는 딱히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옛 말처럼 경영의 다양한 분야는 결국 최종적으로 상호 연결되므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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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를 낮추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원자재를 사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분석해야 하고, 내부적인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도 감안해야 합니다. 실제로 원자재 구매라는 분야는 높은 관심과 비중을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설명해드리자면 이런 것들입니다.


원자재를 판매하는 공급사는 많은 물량을 사주는 사람보다는 꾸준한 물량을 소화해 내는 예측 가능한(forecast, 향후의 구매 계획을 알려 줄 수 있는) 건설업자를 좋아합니다. 또한 신용이 있는 사업자와의 거래를 선호합니다. 언제나 많은 물건을 살 것처럼 떠벌리고 네고(Negotiation, 가격인하 협상을 뜻하는 해당 업계의 줄임말)를 잔뜩 해서 깎아 놓고 실제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최소한의 수량만 매입한다면, 신기하게도 해당 원자재 업계에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어느 사이 해당 회사에 대한 나쁜 평판이 돕니다.


구매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기존 구매처에 익숙해져서 대체할 수 있는 공급처를 찾지 않는 안일함입니다. 동일한 품목의 납품처라도 각 회사별로 대금 결제 방법, 결재일까지의 여신(與信, 일부 원자재는 납품 전후가 아닌 공급받은 자의 판매가 완료된 시점에 대금이 지급되기도 함), 운송료, 하자 교환 정책 등이 모두 제 각각 다릅니다. 무턱대고 거래처의 말만 듣지 말고, 직접 여러 거래처들을 비교해 보고 거래해 가면서 제조/공급사도 옥석을 가려 거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매력이라는 것이 결코 많은 돈으로 다수의 물량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언젠가 물건이 많이 팔리면, 그 때 정말 크게 확 질러서 원가 낮추고 마진을 높이리라' 만큼 바보 같은 생각은 없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구매에 중요성을 환기시켜드리기 위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해 원자재 구매에서 신경 써서 회사 내부에 체계를 수립해야 할 부분들을 추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간과하기 쉬운 원가 관리 요소들


운송비, 세무기장대리비용 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지급 수수료, 은행차입금의 이자비용, 감가상각에 따른 원자재의 노화로 발생하는 가치 하락 등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업의 이익에 큰 영향을 끼치는 원가요소들입니다. 특히나 다양한 종류의 여러 가지 건축자재를 보관해야 하는 경우 창고임대비 뿐 아니라 화재보험, 장비 노화를 막기 위한 항온항습 설비 등의 구축과 같은 설비 투자까지 일어난다면 발생하는 비용은 계속 커져만 갑니다.


창업초기 회사의 자금흐름과 비용 규모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영업에 큰 비중을 두고 영업에 국한된 이익 구조에 한정되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매출에서 비용(원재료와 제조 관련 노임 등)을 제하고 남는 이익을 이익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기업은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순간에도 비용이 지출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비용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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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단순한 상품판매이익에서 판매관리비와 자재 손망실 비용, 은행 이자 등의 추가적인 비용들을 제하게 되면 이익의 규모가 턱 없이 줄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한다면 단순한 원자재 뿐 아니라 자재의 운송비용, 하자로 인한 손해비용 등을 정확하게 집계해서 이익의 규모와 수준을 근거 있게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원가관리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놓치는 것들


옛 어른들 말씀에 보면 사슴을 쫓는 사냥꾼은 앞에 있는 나무는 보고 피해가지만 숲을 보지 못해 길을 잃어버린다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대입하면 원가관리 자체에만 집착하다보면 큰 의미의 사업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 개념있는 사장님들은 '을(乙)'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상호 윈윈(Win-Win)하는 관계를 추구해야 할 산업에서 전통적인 갑(甲), 을(乙)이란 표현은 그 어감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설사에 납품을 하는 원재료 및 설비, 용역 업체 등을 통틀어 '협력사' 또는 '협력업체'라고 칭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입니다.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중요한 것은 원자재들이 가격변동성이나 수급유동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철골과 같은 원자재들은 실제 뉴스에서 보는 것과 같은 품귀현상이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경험하실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재 공급 협력사와의 관계가 튼튼하지 못하면, 돈을 주고도 원자재를 구입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먼저 입금을 해 놓고 차례를 기다려 원자재를 받아오는 일까지 일어나곤 합니다.


건축원재료가 되는 자재납품사들과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지 않고 내가 구매하는 갑이니 우월적인 지위라 생각하여 자사만의 이익을 쫓다 보면,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나 공정한 납품계약을 하기 위해 상대를 배려하고 지원하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중소기업들 중 그리 큰 규모가 아님에도 오랜 시간을 업계에서 생존,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의 노하우를 들여다보면 이런 상생의 의식이 경영자들에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편의를 위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업협력의 개념을 잘 이해하는 경영자라면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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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량 구매를 통한 원가인하의 함정


많은 원재료를 한 번에 구입하면서, 경쟁자들보다 낮은 원가로 자재의 매입이 가능할 때 원가는 내려가고 이익은 늘어나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이는 일견 손쉬운 원가 인하방안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을 쓰는 경우 원가인하의 함정은 미래의 '현금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자재는 장부상으로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지 몰라도 즉시 현금화될 수 있는 자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현금을 투자해서 재고를 확보한 상태에서 건설위기(부동산 가격 폭락, 미분양, 대기업의 이익금 누적을 통한 투자 감소 등)를 맞게 되면 낭패스러운 상황이 되고 맙니다. 또한 많은 량의 자재를 유지,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인건비, 창고임대비와 관리비)과 철저하지 못한 재고 관리로 인한 손실 등을 생각하면 확정되지 않은 대규모 공사 등을 대비하기 위해 원자재를 부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위험성 또한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는 관리요소인 것입니다. 사업의 경력이 짧은 사장님들을 보면 어렵게 돈을 마련해 사무실 한 편에 또는 임대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 건설자재들을 보며 저게 다 돈이라고 흐뭇해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모든 건설 자재가 다 돈이 되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먼 훗날에는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입니다.




4. 재고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의 위험


대량 구매와는 반대로 재고를 거의 확보하지 않는 보수적인 재고관리 또한 구매 관리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는 안일한 경영 방식입니다. 나는 재고 없이 공사 시에만 원재료를 공급받으면 적어도 재고에 대한 리스크는 없는 것으로 보이나 언제나 원자재공급사가 나를 위해 물건을 갖고 있지는 않거든요. 예를 들어보면, 되풀이 되는 원재료 시장의 공급난을 들 수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현금을 미리 주지 않고는 건설자재를 살 수 없는 상태도 나옵니다. 어떻게든 여신이 보장되는 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여러 판매상을 수소문해보지만, 생전 처음 보는 건설사가 원자재를 달란다고 순순히 물건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원재료도 확보하지 않고 있던 건설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받았던 발주를 취소시키거나 공기가 늦어져 지체보상금을 되레 발주사 측에 물어주는 일까지 생깁니다.


또한 재고 부담에 대한 도미노 현상이 산업 전반으로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건설자재를 확보하지 않는 건설사를 상대로 하는 판매상(대리점)은 건설자재의 판매량에 대한 예측이 되지 않으니 자신도 재고를 거의 갖고 있지 않거나 최소한의 재고만을 갖고 가게 됩니다. 연이어 판매상(대리점) 뒤에 있는 공급처인 총판은 자신이 재고의 부담을 떠안거나 원 제조사 또는 수입상으로 그 부담을 전가하게 되는 현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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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건설사에서 원제조사까지 올라갔던 자재 재고의 부담은 역풍을 맞게 됩니다. 바로 제조사부터 시작되는 가격인상의 파도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되면 원가가 올라가는 것이 건설사에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더 무서운 것은 유통망이 소멸하게 되서 그동안 거래했던 공급선이 무너지거나 사라지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는 상황에서 건설사가 포항제철이나 현대제철에 직접 거래를 틀수도 없는 일이니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익으로 누적된 자금을 끌어안고 있지만 말고, 주요 건설자재를 소량이라도 확보하지 못하면, 얻을 수 있는 공사 수익도 잃고, 고객도 잃고, 자재 공급 망도 잃어버리는 악재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건설업계만 예로 드는 것 같으니, 일반적인 사업 환경과 비슷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용산전자상가의 상인들이 '용팔이'라는 치욕스러운 브랜드를 갖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용산전자상가의 유통구조는 소매상이 고객들의 구입요청을 받은 후, 용산지역에 자리 잡은 총판/대리점 등에서 그때그때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주 발생하는 일이 매출취소인데요. 번번이 재고가 없다고 받았던 주문을 취소하는 상인에게 누가 2차, 3차 재구매를 하겠습니까? 결국 용산전자상가는 가면 갈수록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용산상가의 소매상이야, 어차피 오다가다 들리는 손님이 많아서 상관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깐깐한 건축 관련 발주사들이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면 입찰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5. 적정재고 수준의 유지


내가 경쟁하는 타 사업자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요소가 없다면 사업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특히 다수의 사업자가 참여하는 경쟁 입찰이 보편화되어 있는 건설시장은 이러한 추세가 뚜렷합니다.


나의 약점은 경쟁자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나는 약점을 보강했는데, 상대는 아직 그 약점을 보강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훨씬 우월한 경쟁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사업을 경영해 가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불확실성의 제거입니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법칙과 패턴을 인식할 수 있으면,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위기를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쟁자 보다 먼저 기회를 찾아 낼 수 있게되지요.


구매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 막연하기도 하고, ERP(Enterprise Resource Planing,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와 같은 거대한 툴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스스로 부여하는 막연한 불안일 뿐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Excel이든 워드프로세서이든 장기간의 자료 누적, 꼼꼼한 기록 관리를 한다면, 충분히 '구매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스템을 구축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간 발생했던 원자재의 구매와 사용, 손망실 등을 데이터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외부회계감사를 받는 법인들의 원자재수불부와 같은 것들도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에서라면 Excel 수준으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합니다. 문서철에 어지럽게 꽂아두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사무실 구석 박스에 쌓아 두었던 거래명세서들이 일목요연하게 컴퓨터에서 정리되면 그때부터는 쓰레기가 정보가 되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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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정보입니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여러가지 분석과 기업 내부의 혁신을 꾀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과다하게 MOQ(Minimum order Quantity, 최소구입요구수량)를 요청하는 건축 자재들의 소모 비율 등을 계산하여, 매입 후 실제 사용량이 적은 자재의 경우 거래처를 다변화하여 MOQ를 낮추거나, 거래처 변경이 불가능 한 경우에는 다른 대체 자재로 변경하도록 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MOQ를 10,000개로 요청한 납품업자의 물품을 여러 경로로 새로운 공급선을 찾은 후 타 공급업자로 변경하면서 약간의 가격 상승은 있었으나 구매 수량을 3,000개로 낮추면서, 창고관리 비용, 손망실 비용, 현금의 자재화로 인한 유동성 부족 등을 해결한 사례는 워낙 많았죠. 만일 기존 납품업체로부터 많이 사면 싸게 해준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과다한 MOQ 조건을 계속 수용했다면, 창고관리 비용이나 자재손실 비용, 현금이 자재에 묶여 버리는 일은 계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량 못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것은 원재료를 납품하는 거래처들의 납품소요 시간, 원자재의 불량률, 불량 자재의 클레임에 대한 대응 현황 등을 기록으로 계속 남겨두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자체적으로 거래기업의 정보를 관리하고, 거래 실적과 업무 협력 사항을 작성해서 이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기업들의 이력관리DB에 포함되는 내용과 관리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해당업무 담당자 정보 : 중소기업은 기업 내의 시스템 체계보다 인력 개인의 역량에 많이 의존하는 형태입니다. 담당자가 바뀌게 되면, 그간 우리 회사와의 거래 관련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이직한 담당자의 회사와 다시 거래를 틀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더군다나 자주 담당자가 바뀌는 거래회사라면 기업의 경영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구매처를 미리 변경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 단가 변동 사항 : 단가의 변동성을 확인하여, 거래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 근거로 사용하기도 하고, 협력사의 대응 수준을 판단합니다. 단가의 변동성이 크지 않은 자재임에도 불구하고 단가가 수시로 변동하는 거래처라면, 우리 회사 내부 거래 담당자의 관리 능력이 미숙해서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기에 꾸준히 확인합니다.


● 납품 소요 기간 : 발주 후 실제 납품까지의 기간이 매번 다를 수 있으므로 데이터를 누적하여, 평균 납품 소요기간을 계산합니다. 다년 간 쌓아온 데이터를 근거로 공사 기일 등을 산정하기에 견적서나 제안서 작성 시 구체적인 공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 불량 및 클레임 : 납품된 자재에서 불량의 횟수가 많은 경우, 품질 개선 요청을 하거나 개선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타 거래처로의 전환을 시행합니다. 품질 개선 요청 시에는 출고 시 품질 시험 확인서 등을 첨부하여 납품을 요구하기도 하고, 규모가 큰 거래처인 경우에는 자재공급계약서 등을 작성하여, 건축자재 불량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우리 회사의 피해 등에 대한 클레임과 보상책을 명문화 합니다.


● 결재 관련 정보 : 우리 회사에서 원자재 결재를 했던 날짜 등을 기재하여, 평균적인 결재 소요 기간을 산정하고, 건축자재 공급사가 우리 회사에 배려한 여신 기간 등도 산정합니다. 일반적으로 납품 관련 협의 시에 우리 회사의 결재 조건과 상대방의 여신 조건 등을 합의해야 하는데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며, 업계의 평균적인 현황을 근거로 제시하기 때문에 협상에서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6. 대리인 비용


'대리인 비용'이란 말이 있습니다.사업의 주체인 소유주와 달리 위임 받아 일을 하는 직원, 전문경영인 등에게서 나올 수 있는 비합리적인 업무행위로 발생하는 손실을 '대리인 비용'이라고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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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라떼.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전임 가카의 업적으로 온 사회가 대리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업계에서 회자되는 농담 중에 경리, 구매 관련된 업무담당은 사장의 친인척들로만 구성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금을 직접 만지고 은행의 입출금을 담당하는 경리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구매담당이 믿을 수 있는 친인척이어야 한다는 말은 구매 업무를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습니다.


구매 업무에서는 납품 업계의 뇌물관행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구매 업무 자체가 방대한 양의 자료 관리와 원자재 관리 능력까지 아우르는 책임감 있는 직업윤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회자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학적인 연구에서는 '대리인 비용'이라는 명확한 의미로 정리를 한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구매업무를 하는 담당자들이 신경쓰고자 한다면 해야 할 일은 끝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구입한 건축자재와 설비, 기계 등의 경우 그 품질의 적정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여러 개의 건축용 나사와 볼트가 납품되었다고 보면, 나사를 일일이 검사해서 인수증을 싸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어떤 담당자는 샘플로 몇 개를 골라내 나사선이나 풀림방지 돌기 등을 검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KS와 ISO 같은 품질관리 규정을 참고하여 납품 수량과 품질만족 수준을 정한 후 시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건축설계의 안전성 기준에 맞추기 위해 건축용 나사 규격을 새로 지정하고 금형을 통한 신제품 개발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 구매 담당자들은 이깟 나사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고 공장의 납품을 받자마자 트럭 앞에서 바로 시원하게 인수 사인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바로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건축공사 후 실제 사고가 나서 시공건설사가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 이전에 안전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다시 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반면 납품업체로부터 공급계약서를 체결해 공급건축자재의 하자 발생 시 피해 보상액을 정하지 않았다면, 모든 피해는 건축사가 다 떠맡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대리인 비용을 완전하게 소멸시킬 수는 없겠지만, 철저한 인사관리를 통해 구매 업무자의 업무영역을 정확하게 인식시키고 사내교육과 면담 등을 통해 실무 담당자는 예상할 수 없는 사업의 위기에 대해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태만한 업무자세로 발생한 피해는 담당자를 문책하고 새로운 근로자를 채용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내부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전문적인 교육이 따라주지 않아 무지의 상태에서 계속 잘못된 구매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면 이는 사장의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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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원자재를 싼 가격에 그것도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건설사에서는 건축공사 몇 개를 더 수주하는 것만큼 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 새롭게 사업을 창업한 중소기업의 대표가 제게 경영의 비기(秘器) 하나를 말해달라고 한다면, 감히 중소기업들은 구매 관련 기술을 계속 업데이트해서 구매 부분에 대한 나름의 프로세스와 기준들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국가에는 조달청이 있고, 중견기업과 대기업에는 별도의 구매부서가 존재하는 데는 구매에 중요한 기업경영의 비밀이 숨어있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본론에서 언급된 6가지의 방법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경영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경험적 주제들로 구성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입니다. 


사장님들이 영업 대상 고객사들에게 좋은 서비스와 신용을 보여주기 위해 했던 노력의 10%만 기울여도 생산성 높고, 좋은 품질의 원자재를 가진 원천공급처와의 파트쉽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경영과 수익창출이 결코 영업과 마케팅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경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많은 학자와 기업가들이 서로 다른 대답이나 정의를 내놓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경영활동에 있어서 CEO는 자신이 처한 환경 내에서 최선의 전략과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업가의 필요 역량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할 것입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영인들의 고민은 업무의 범위와 산업의 분류에 상관없이 방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면을 할애해 원가관리와 구매전략에 대한 분야를 예로 들어 전략과 시스템을 설명한 이유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기업 내부의 역량을 집중함에 따라 빠른 시간 안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원가와 가격'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했는데 사건이 하나 터졌네요. 이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기업 환경의 고질적인 문제와도 관련이 있기에 번외로 언급하고 가야할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긴 글 더 길어지겠지만요...



[번외 편: 팬텍의 몰락]



바빴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자칭 기레기 퍼모 씨와 메일을 주고받다 팬택이 청산절차를 밟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기업회생절차를 통해 매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수의향을 밝힌 대상자들이 적합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문을 닫게 되었네요.


‘법인격’이란 말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한 회사를 실제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것을 ‘법인’이라고 하며,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로 인정합니다. 일부 휴대폰 대리점들은 팬택의 몰락과 법인 청산을 통해 남는 책임의 문제를 사주인 박병엽 부회장에게 묻는 것 밖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저는 팬택이라는 법인은 소유주 한 사람으로 대표할 수 없는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팬택이 제공하는 제품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24년간 팬택이라는 유기체를 움직여온 직원들과 협력회사 그리고 팬택의 제품을 사랑했던 고객들이 남긴 유산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언론도 팬택이라는 회사가 이동통신업계의 굳고 단단한 카르텔의 벽 속에서 신음해 온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더군요. 대기업이나 국가에게 당신들도 책임이 있지 않냐고 묻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괘씸하더라고요.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친구가 있다면 송사 한 줄 쓰는 것이 인간의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1. 소비자에게 필요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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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네모반듯한 성냥갑 같은 삐삐들 일색이던 이동통신업계에 형형색색에 둥글둥글하고 심지어는 거울까지 달려있는 삐삐가 등장합니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삐삐가 나타난 거죠. 모토로라나 대기업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던 팬택의 시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왜 대기업들은 그렇게 간단한 걸 못했을까요? 대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는 복잡하고 느립니다. 기획안에 대한 내부 평가와 실행에서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하는 문제만으로도 시간이 흐릅니다. 반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의사결정은 빠릅니다. 벤처기업은 품의서 하나를 들고 사원이 사장에게 직접 결재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주간회의 시간에 올라온 아이디어 하나가 바로 ‘GO!’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소비자가 원하는 혁신, 그 혁신에 빠르게 응답하는 기업, 그것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입니다. ‘내가 만든 게 좋은 거니 군말 말고 쓰라’가 아닌 ‘무엇이 필요한가요?’라고 물어오는 기업이 소비자에겐 필요합니다. 이번 팬택 사태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이 내려놓았던 ‘권리’를 생각하고 중소기업들을 바라 봤으면 합니다.


팬택이 만들어놨던 삐삐 중에는 ‘문자삐삐’라는 것도 있는데, 지금의 SMS와 마찬가지로 삐삐 액정에 문자가 찍혔습니다. “급래사요망”이라는 어마무시한 문자를 날려 새벽 5시에 전 직원을 비상훈련이라고 호출하던 제 첫 직장의 사장님도, 팬택을 무지무지 사랑했던 고객이었죠.



2. 한국식 경영?


90년대 후반 몰아 닥친 IMF의 한파에서 우리 기업들은 엄청난 비난을 받습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연공서열식의 인사 시스템, 기업공개를 통해 자본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폐쇄적 경영방식 등 이전에 하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었고, 자의든 타의든 급하게 연봉제를 받아들이고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라는 입에 올리기에도 저급한 정의가 전 국민의 머릿속에 들어갔습니다. 중소기업은 계속 몰락했고, 2008년 KIKO사태에 이르러서는 IMF의 한파를 견뎌낸 중견기업들마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한국식 경영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제를 끄집어내기 힘들 정도로, 자본의 능수능란한 손길에 우리 기업들은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만의 경영방식을 찾아내 본다면 그건 ‘가족경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아침 7시부터 일찍 집을 나서 밤 12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가는 일중독자 한국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도 가장 긴 사람이 동료이고 회사니까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집들이를 하고, 사장이 직원의 생일에 상품권을 준비하고, 야유회, 체육대회, 산행을 함께 합니다. 상조회를 만들어 애경사를 미리미리 준비하고, 상조회가 없어도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큰일이라도 있으면 지갑을 열어 봉투를 만듭니다.


나이가 많고, 연봉이 오를수록 퇴사를 강요하고,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일천하니 야근과 휴일근무로 자신을 증명하라고, 동료보다 나음을 인사평가를 통해 검증 받으라고 하는 대기업의 문화에서 한국식 경영을 찾아내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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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은 지난 31일 미국 Verizon社에 LTE모뎀 2400개를 납품하기 위해, 이미 직장을 떠난 직원들을 포함해 15명의 직원이 공장에 모여 마지막 작업을 했습니다. 팬택 임직원들은 휴직자까지 참여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전자신문>에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계속됩니다.”라는 광고를 올렸습니다. <전자신문>은 이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광고를 게재해줬고, 이 돈은 벤처기업협회에 전달되지요.


팬택 직원들의 마지막 행보에서 한국의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이 과연 손발이 오그라드는 구시대적 촌스러움이었는지, 기업을 우리라는 공동체로 여기는 인식과 자신의 일과 일터에 대한 ‘자부심’이 과연 자본가들이 말하는 ‘합리성’에 반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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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나브로 소비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독점의 사슬


모든 국가는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독점은 결국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이라는 권리를 빼앗고, 국가의 산업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또한 눈에 띄는 독점과 달리 소수의 강자가 담합하는 과점시장에 대해서도 견제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카르텔이 독점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적인 내용일거 같군요.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은 먼 훗날 교과서에 실릴 독과점시장의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 팬택의 24년 역사 또한 실렸으면 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자유롭게 살 수 없으며, 소비자가 제품 선택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가격이 보조금이라는 명목 하에 숨는 요상한 시장.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선택 받는 것이 아니라 알 듯 말 듯 별 차이도 없는 신기술을 내세워 새로운 제품을 사게 강요하는 시장. 중소기업이 경쟁자로 출현하면 언제든 그들을 고사시킬 수 있는 머니 게임의 강자인 대기업들만이 수십 년 간 독식한 시장.


도대체 국가가 뭘 하고 있기에 이동통신시장이 이 모양인가!라는 소리가 갈수록 들리지 않습니다. 만만한 팬택 제품은 쓰레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삼성 제품에게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소리는 마음껏 못합니다. 거대기업과 거대자본 그리고 정치가 유착된 사회에서 감히 소비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무슨 흉한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침묵에서 그치지 않고, 그 큰 힘에 이끌립니다. 나라경제를 떠받치는 기업인데 내가 조금 불편해도 작은 불만을 참으면 될 뿐이라는 무기력증이 몸에 퍼진지 오래니까요.


팬택의 몰락은 하나의 중소기업이 문을 닫는다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닙니다. 국가가 공정거래를 위한 시장의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이제 팬택은 과거의 기업이 되겠지만, 팬택이 남긴 유산은 우리에게 남았습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혁신의 가치, 기업과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의미, 무기력하게 현실에 순응하다가는 또 언제 이런 이별을 겪게 될까 정신이 번뜩 들게 해주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기억하듯 우리 또한 팬택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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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1. 비상장주식

2. 영업비밀 겸업, 그리고 경업

3. 사장의 월급

4. 혁신적 기술과 신제품을 위한 연구 개발

5. 기술개발자금

2014 결산. 컨설팅 일기

6. 지적재산권 1

7. 지적재산권 2

8. 우리회사 자산은 얼마일까

9. 니 사업을 알아라

10.판매 예측과 적용: 패턴을 파악해라

11.기업의 조사와 평가: 경남기업 협력사를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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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퍼그맨,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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