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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Seong 추천5 비추천0

2013. 08. 05. 월요일

SamuelSeong








본 기자가 종합미디어그룹, 딴지일보의 필진으로 합류했던 게 99년 봄이었다. 한동안 상근했다가 일반 필진으로 글 쓰기 시작한 게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일주일에 몇 편씩 송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냐면 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입학기록과 졸업기록만 있다) 글 쓰는 게 아무래도 느리다. 영문 쓰는 속도와 한국말로 쓰는 속도가 비슷하다. 둘다 열심히 사전 찾아서 제대로 된 뜻의 말을 선택해야 하는, 어휘력 한계가 있으니까.

수뇌부 죽돌기자의 “기사 하나 내 놓을 때가 되지 않았어요?” 라는 협박성 전화를 받았던 게 약 2주 전이다. 독자 여러분께선 <아부나이 니홍고>의 그 억양 그대로 야밤에 대뜸 이 소리를 듣게 된다고 상상해 보시면 대충 느낌이 오실게다. 

여튼 급했던 관계로 꼰대질 하나 써서 던져놓고, 낼름 휴가 받아 부모님 댁에 와서 만 하루를 잠만 자고, 회사에서 가져온 일을 좀 해보겠다고 하던 차에... 똥 밟았다. 부모님께서는 TV조선에 채널 고정해놓고 사시는 분들인데다, 보시는 신문이라곤 공중 화장실 깔판으로로나 적절한 바로 그 신문. 점심 먹고 낮잠 자려는 순간에 왜 하필이면 이 기사가 눈에 들어왔는지, 필자 생활 14년 만에 처음으로 연달아서 기사를 송고하게 되었다. 수뇌부는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에게 감사 전화 한 통화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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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본 기자가 연달아 기사 작성을 하게 만든 그 문제의 기사부터 보자.

[오늘의 세상] 관광객 1000만명 시대인데... 가장 많이 읽히는 '한국 여행 가이드북'의 엉터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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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무식함이야 본 종합미디어 그룹 관계자로서 트위터로 한 수 지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굳이 연타 기사를 쓰게 된 것은 본 기자의 입방정이 이 삽질을 여기까지 끌고 갔던 게 아닌가 싶어 나름 수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사연은 그러니까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촛불 집회가 한참이던 즈음에 서울시의 관광 관계공무원들과 이래저래 몇 번 볼 일이 있었다. 그때 Lonely Planet(이하 LP) 서울판 본 적 있느냐고 물어봤었다.(꽤 오래전에 분사한, 노매드의 서울판을 취재하러왔던 담당 필자와 같이 돌아다녔던 내용이 실린 적도 있었다) 전혀 놀랍지 않게도 본 적 없다는 말씀이 돌아왔고, 그 내용은 차치하고 책이 다루는 정보량이 네팔 트레킹 가이드북보다 얇다는 건 아냐고 해줬었다. 사실이 그러니까. 그러곤 잊어먹고 있었는데... 몇 달 뒤였나? 뜬금없이 서울시가 LP를 고소고발한다고 날뛰더라고... 아마 번역 외주줬던 게 그 즈음에 끝나서 의사 결정권자들에게 들어갔던갑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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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자체가 없었던 게... 당시 서울시장님이 누군가? 세계 최대의 부이를 한강에 띄워놓고 랜드마크라고 하질 않나(부이가 그 큰 한강에서 마킹을 잘도 하겠다), 빠뤼에 한 번 가봤다가 꽃혀서 한강을 세느강처럼 만들겠다고 한강 다리에 카페를 만들질 않나(대도시 안에 킬로미터가 넘는 강, 그닥 많지 않다. 저개발 국가도 아닌 다음에야 다 차타고 넘는데 주차하기 까리한 위치에 있는 까페가 잘 되까?), 세계 최대의 제빙기를 시청으로 만드는 '디자인 서울'을 구호로 삼으셨던 분 아닌가 말이지. 

무엇을 집어넣든, 대형 삽질 전문가에게 일이 가면 그 결과물이 삽질이 되는 것은 우주적 질서 아닌가. 아니나 달라? 고소고발은 애멀다고 생각했는지 출판사에 직접 예산을 지원하는, 세계에서 몇 없는 용감무쌍한 정책결정을 내리시게 된다. 갑질에 익숙한 대한민국 관료사회에선 이렇게 하면 잘 써줄 거라고 믿었나보다. 기사 꼴을 보면 기자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고. 

그런데 관광청 발행책자들과, 역시 관광청이 돈줄인 여행잡지들이 아닌, 말 그대로의 가이드북들은 본질적으로 ‘독립된 매체’다. 그 독립된 매체에 시비를 걸던 분들이 돈을 주면서 잘 써달라고 하면 잘 써줄까? 감사한 마음으로 돈 받은 저자가 보다 풍족한 조건으로 해당 지역을 흝었을 수는 있겠다. 그외엔?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한국식 갑을 계약이 통할거 같은가? 저자의 독자 판단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게 그 바닥이다.

예를 들어 1978년 개관한 세종문화회관을 '기괴하게 거대한(monstrous) 건물'이라고 하면서 '마치 평양의 건물을 따라한 것 같다. 벨라루스나 마케도니아, 러시아 수도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이라고 했다는 부분이 대표적인데, 이거... 건축미학에 대해 개론서 정도 들춰보고 미학 수업 좀 들어본 학부생들도 이런 대답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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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을 초대형 대리석 건물로 뻥 튀긴 미학양식은 전제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미학양식 아닌가? 그 기자는 몰랐던 거 같다만.

마찬가지로 광화문 주변도 그렇다. 미학 양식으로 보자면 중국의 천안문 광장과 똑같다. 다만, 광화문은 집회하기가 힘든 방식으로 만들어놨다는 것과 천안문은 그게 아니었는데 천안문 시위 이후에 그렇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는 것 정도의 차이나 있을까?

또한 본 기자가 밥벌이 하는 현장이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 인근이라 조선일보 기자가 지적한 이 문장이 왜 황당한지도 잘 모르겠다.

'한국 여성들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코를 높이고 가슴을 키우는 것은 미국인처럼 보이고 싶어서' 

아니, 서구형 미인형으로 미의 기준이 바뀌어놓으니 TV에서 한 공장 제품들만 나오기 시작한거 아니었나? 그 공장엔 성형 미인 없나봐?

그리고 이거. 부끄러운 우리 자화상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론리 플래닛 한국>은 '인종 문제(racial issues)'를 다루면서 '단일민족 사회인 한국에서 이민자들은 종종 의심을 받거나 열악한 취급을 받는다''2012년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한국 네티즌들의 반발이 컸고, 중국 동포가 수원에서 저지른 살인사건 때문에 대중의 분노가 커졌다'고 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해 별 감각이 없으신 기자님에겐 이게 드러내선 안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가 '다문화는 남아' 같은 개념 말아먹은 상태의 나라라는 거, 가이드북이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필수정보 중에 하나다. LP를 들고 배낭여행하러 들어올 사람들이 코카시안 계통의 백인들일 꺼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글로벌 하지 못한 거자나.

어떤 인종이 자신들이 만든 책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판국에 한국에서 명백하게 존재하는 인종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면 그건 의무 방기라고. 실제로 인종문제 졸라 심각하다. 한화의 김태균이 롯데의 쉐인 유먼 보고 '얼굴 까매서 까다롭다'고 했던 거, 빅리그였다면 선수 생명 종치는 발언이었고, 팀도 징계 사안으로 올라갈 내용이었는데, 그게 어떻게 처리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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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타율 3할1푼6리, '6'홈런, 37타점. 연봉 15억 야수의 평가하기 '까다로운' 성적

본 기자, 이자스민을 공격하는 이들에 대해 유감 졸라 많다. 일단 국회의원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정책들은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사회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용들인 걸. 아니, 비백인계 대한민국 국민을 비례대표로 뽑지 못한 다른 정당들이 땅을 치고 후회해야 할 일이지, 멍청한 기자들이 잘못 보도한 내용을 출마하면서 정정했다는게 무슨 문제라는건가?

그리고 본 기자, 이 문제에 있어선 이해관계자다. 지역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그 나라 최고의 국립대 재원과 결혼하겠다고 그 집안에 결혼허락을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혼해서 한국 살면 들을 이야기가 '다문화는 남아'라는 거라고 하면 빡 안 돌겠니? 수출역군으로 한국 설비 팔아먹겠다고 히말라야 해발 3~4천 고지를 우습게 드나들면서 남아시아의 어지간한 밀림들은 다 들어가고 있는 넘에게 그 딴소리 하는 놈 보면 꼭지 안돌겠음?

거기다 산수도 못하는 분들이 터무니 없이 부풀려서 ‘다문화가정지원예산’을 공격하고 있는 걸 보면 ‘아이들의 급식 예산’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노인 복지 예산’을 깎아먹을 거라고 목청 높이는 영감님들과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고. 여튼. 이 외엔 간단하게 코멘트만 달아주려고 한다.

'한국은 동일한 영토에서 수천년 동안 역사를 지속해왔지만,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늘 서로 잘 지내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재 정치적으로 분단돼 있지만, 먼 옛날 삼국시대에도 고구려·백제·신라로 나뉘어 살았던 역사가 있다. 이웃국가들과도 종종 잘 지내지 못한 나라'라는 설명도 있다. 아니, 삼국이 전쟁 벌인 게 몇 번인데?

'한국의 무질서한(unruly) 정부'라는 대목에선 부끄러운 국회 풍경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2009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한국의 국회를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한 의회'로 꼽았다. '한국 국회의 토론은 종종 주먹질로 끝난다', '2008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놓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그고 법안을 상정하자 야당 의원들은 해머와 전기톱을 이용해 문을 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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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한다. 글로벌 스탠다드의 기준으로 놓고보면 국가정보기관이 자국민들을 상대로, 그것도 특정 지역을 공격하고 있었다면 그건 ‘내란죄’다. 니네 그거 다루긴 했냐? 무엇보다 이 삽질, 글로벌 스탠다드에 무지한 조선일보식의 지적질론 해결되지 않는다. 본 기자가 그 옛날에 LP이야기를 했던 것은 한국에 대한 영문 소개서들이 빈한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했던 거지, 외국놈들의 시각이라는 거 자체에 신경쓰라는 게 아니었거든.

아닌말로, 졸라 꼽지만 독도는 리안크루암(Liancourt Rocks)라고 쓰는 놈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도가 우리꺼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 거기다 LP, 요즘 잘 안 팔린다. 뭔가 제대로된 정보를 주고 싶다면, 남들이 쓴거 가지고 지랄할 줄이나 아는 니들이 만들 일이다. 너넨 우리에게 없는 윤전기도 있잖아?

본 기자의 입방정으로 애멀게 휘말린 서울시에는 딱 한 말씀만 올린다. 서울시는 조선일보 기자가 요구하는 것처럼 그거 일일히 바로잡는데 신경쓸 게 아니라 서울시 식당들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쉽게 메뉴를 제작할 수 있는 웹툴이나 개발해주시라. 한글도 모르고 뭐가 어떤 음식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 가이드북들이 제시한 길 따라서만 졸졸 돌아다니면 뭔 돈을 쓰겠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원하는 거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메뉴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그러니까 음식 사전 박혀있고 들어가는 표준 식재료들이 영어/중국어/일어 정도로 표기만 되어 있어도 가이드북이 추천하지 않는 식당도 찾아가게 되어 있다고.

숙박시설도 마찬가지고. 업주보고 언어 배우라고 우격다짐 그만하시고 간단하게 종이 한장 내밀고 Yes/No로 이야기만 할 수 있게 해보시라. 대한민국 닭집들부터 터져나갈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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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 머겅...  









국제부 Samuel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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