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8. 06. 화요일
정우성
애국심, 좋지. 뭔가
뜨겁고 좋잖아?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하늘 아래 천적 일본 축구 대표팀과 경기를 한다고 쳐.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어디 있겠어? 그냥 일심동체로 겁나게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는 거야. 그 순간 하나로 뭉친 우리를 발견하지. 참
좋은 풍경이네. 흥겹고 말이지. 하지만 축구 구경하듯이 세상
바라보는 거 난 반댈세. 축구경기야 토론하면서 보는 건 아니지. 누가
토의하면서 응원을 해? 근데 축구경기를 관전하듯이 세상사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 경우 애국심은 겁나게 중요한 마음상태지. 그게 마음상태에서 대뇌까지
치고 올라와 가지고서는 사상으로 발전하면 애국주의가 되지. 애국주의는 정상적인 토론을 허락하질 않아. 이견이 있으면 네 뿌리는 어디냐고, 그저 매국노로 치부해버리면 그만. 경제, 통상, 외교, 소비, 분쟁 등등. 애국주의로
바라보면 참 단순하고 편리하지. 세상사 이렇게 단순할 수가! Simple
is Best!
자, 여기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분쟁이 있어.
3년을 끌어오고 있어요. 불구경은
참 재미있지. 남의 싸움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또 어디있어? 게다가
이건 애국심을 불러내요. 그냥 뜨거워지는 거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태초부터 내려온 명언이 있잖아. 검은 삼성전자면 어때? 우리나라
기업이잖아? 너 앱등이냐? 오바마가 글쎄 미무역위원회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거야. 자기네 나라 기업인 애플을 보호해주려고. 1987년
레이건이 그런 종류의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로 처음이라는 거야. 이렇게 이례적인 일을 오바마가 했으니까
당연히 보호무역주의를 선언한 거 아니겠어. 미국이 악의 제국이고, 오바마는
악의 수령이지. 하, 거참. 몹쓸 나라야. 근데 넌 참 단순한 감정을 가졌구나.
기사: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TC, 미국 무역위원회)가 내린 애플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명령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현지시각 8월 3일). ITC는
지난 6월 4일에 3G 이동통신
기술을 사용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구형 일부 모델에 대해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미국내 수입금지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오바마 미대통령은 26년만에 처음으로 ITC의 결정에 대해 이례적인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자 대한민국 언론이 들고 일어났지.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언론들이 신성한 '애국동맹'을 맺은 것처럼 보였어. 모두 하나같이 저 밑줄 친 단어를 주목한 거야. 연합뉴스가 선봉장 역할을 했어. '25년만의 미대통령 거부권, 보호무역주의에 삼성 당해'라는 제목의 감정적인 깃발을 들었지(http://goo.gl/UGBxKx).
8월 5일자 주요 조간신문의 사설 제목이야.
'보호무역 성향 드러낸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경향신문, http://goo.gl/y6nyQ5),
'이게 노골적 보호무역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중앙일보, http://goo.gl/Vcz7BB),
'유감스런 미국의 애플 수입금지 거부권 행사'(한겨레신문, http://goo.gl/23DopY),
'애플 편 든 오바마, 자유무역 외칠 자격 있나'(동아일보, http://goo.gl/vF2FDH),
'오바마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자인가'(전자신문, http://goo.gl/J6NSIh).
애국동맹 아래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구별이 없지.
눈물 쏙 빼게 혼내주자! 애국! 충성!
그런데 정말로 보호무역주의 맞아?
보호무역주의를 따지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게 있어. 오바마의 거부권이 ITC 결정이 있은 날로부터 60일 동안 졸라 로비 받고 고민해서 생긴 이벤트였는지, 아니면 어떤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었는지 말이지. 전자라면 로비천국의 나라 미국에서 벌어진 애플인맥의 압승인 거고, 후자라면 그야말로 음모론이야.
나는 후자에 판돈 2,500원 모두를 건다. 세상의 모든 음모가 나쁜 목적으로 만들어진 암흑 세계의 작품인 것은 아니야. 좋은 의도로 각본을 짜는 음모도 있어. 게다가 그런 음모라면 나도 한 번 짜보고 싶네.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 이례적인 일이야. 그런데 그보다 더 생뚱맞은 건 6월 4일에 있었던 미국 ITC의 최종 판정이었어. 예비판정에서는 삼성전자가 졌고 애플의 손을 들어줬지. 이 사건을 쭉 지켜본 전문가들은 최종 판정에서도 애플이 무난하게 이길 걸로 예상했어.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이니? 예비 판정이 뒤집어진 거야. 삼성전자 승.
왜, 권투경기 있잖아. 관중은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 알아. 그런데 이상한 손이 올라간 거야. 그때 관중들의 분위기 알겠지? 특허분쟁이라는 게 좀 복잡하고 전문적이잖아.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렸지. 생뚱맞은 결론이 나온 거야. 나는 이게 이상한 거지.
자, 이 음모론의 퍼즐을 맞춰보자. 우리는 지금 탐정처럼 굴어야 해. 팩트만을 만지작거리되 방향을 잘 맞춰서 끼워 보는 거야. 마음의 평정만 찾는다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야.
평정만 찾는다면...
(1);
미국 무역위원회가
예비판정에서
삼성전자의
주장을 기각했어(애플승). 삼성전자는 9개 나라 소송에서 안방(대한민국 서울)을 제외하고는 표준특허로 재미를 보지 못했어. 유럽에서는 괜실히 반독점조사를
받게 됐고, 표준특허사용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지. 그러니 애플의
손을 들어준 예비판정은 너무 자연스러웠어. 미국은 애플의 안방이라며?
(2);
잠깐!
그러면 표준특허에 대해서 미 행정부의 입장을 만천하에 공표할 기회가 없잖아? 오 이런, 비밀회동!(미국거래위원회, 미국법무부, 미국특허청, 그리고 백악관에서 특허제도 개선에 관한 좀 더 강력한 입장을 발표하거나 준비) 미국 연방
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가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표준특허를
사용하여 경쟁자를 판매금지시킬 수 없음을 선언한 것도 최근의 일이지.
(3);
비밀회동의 결과가 뭐니? 무역위원회가 최종판정에서 예비판정을
뒤집어. 그리고 삼성전자의 표준특허 1개에 손을 들어주는 거야. 한국 언론들
뜨거워졌지. 미국,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거야. 같은 날 백악관은 특허괴물을 이슈로 특허제도 개선을 발표했어(http://goo.gl/cdQb8). 그냥 정확히 같은 날이야. 은근슬쩍 표준특허도 싸잡아서
말하고 있어. 미국 백악관의 '특허행사와 미국 혁신' (http://goo.gl/hRrzB3)이라는 공문서야.
(4);
오,
예쓰. 이제 됐어. 준비된 거 실행해야겠지? 법무부와 특허청은
ITC의 최종판정이 있은 날로부터 4일 지나서 표준특허가
쟁점이 된 사안에서 강화된 ITC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지(http://www.justice.gov/atr/public/guidelines/290994.pdf). 이 가이드라인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겠으나, 사실상
표준특허로 무역위원회의 수입금지명령을 신청하는 것은 극히 어려워지는 거야. 사실상의 특허 시스템의 개선이야.
(5);
그사이 언론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칼럼, 기업들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 몇몇 상원의원들의 공식 발표 같은 것은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안주거리지.
(6); 그리고 8월 3일, 오바마 대통령 (준비된) 거부권 행사. 그리고 한국 언론 폭주.
그런데 말이지. 추리 소설이지만, 왜 오바마 정부는 이런 각본을 짰을까? 그냥 발표하고 선언하면 되잖아. 이게 답변이 될까 몰라. 미국은 케이스 시스템이야. 케이스가 있어야 그게 레퍼런스가 되고, 판례가 되는 것이 거든. 규모가 크면 더 좋아. 더 역사적인 케이스가 되는 거니깐. 걔네들은 케이스 스터디를 하면서 토론을 하고 이론을 만들고 정책을 수립하는 거 같아. 사실 좀 부럽다. 역사가 곧 케이스지 뭐. 케이스의 집합이 역사 아니겠어?(그런 점에서 기분 나쁘지만 미국보다 우리가 후진 거야.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우린 케이스를 먹거리 포장용 상자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 초원복집에도 케이스가 있지. 그게 뭐 어쨌단 말이야?)
자, 여기까지는 대략 이해하겠는데, 오바마 정부가 원하는 게 뭐야? 삼성전자 골탕 먹이기? 애플 보호? 그러니까 보호무역주의?
그런데 그거 좀 쪼잖하지 않니? 미국 회사가 애플만 있니?
구글도 미국회사잖아. 다른 회사도 겁나게 많어.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1개를 상대로 쫄 정도로 미국 경제가 우스운 거야? 우리
좀 너무 자뻑하거나 과장하지는 말자.
미국은 말이지. 지적소유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지적재산권 혹은 지식재산권)을 매우 중시여기지. 이게 아주 큰 미국의 자원이자 경쟁력이거든. 그걸 보호하는 커다란 시스템 중의 하나가 특허 시스템이야. 그런데
이 시스템에 하자가 있으면 미국 자원과 경쟁력에 흠결이 생기는 거거든. 이걸 개선하고 개혁하겠다는 게
오바마 정부의 입장인 거 같아. 어떤 하자냐?
Don't feed the trolls-괴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
첫째, 특허괴물이야. PAE(Patent Assertion Entities) 또는 NPE(Non Practicing Entities)라고도 부르지. 얘네들의
정체가 뭐냐면, 제조를 하지도 사업을 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특허를 겁나게 보유해서, 멀쩡한 제조사를 공략하는 거예요. 얘네들한테
안 당하는 회사가 없지. 삼성전자도 졸라 당해. 애플이나
구글, MS, 인텔, IBM도 마찬가지야. 미국은 송사의 나라잖아. 턱 하니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위협을 한 다음에 삥을 뜯는 거지. 이게 돈이 되더라는 거야. 우리나라
기업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지. 특허괴물은 특허제도에 기생하는 거라서,
이걸 좀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야. 그런데 특허괴물 자체는 시장의 산물이라서 어쩌지를 못해. 그러니까 그들의 소송무기를 행정부 차원에서 손을 보겠다는 것. 행정부
산하의 무역위원회가 아주 좋은 타깃이 되는 셈. 어때? 특허괴물
그냥 놔두는 게 좋을까?
둘째, 표준특허야. 표준특허는
알다시피 표준기술에 관한 특허야. 제품의 규격이 제조사마다 다르면 제조사나 소비자나 골치 아프거든. 그래서 제조사나 연구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곤 해. 때때로 정부에서
주도하기도 하겠지. 기술에 규격과 규범에 대해서 약속을 하지. 그런
약속이 모여서 표준기술이 되는 거야. 쉽게 말하자면 옷의 치수, 신발의
치수 같은 것도 일종의 표준인 셈이지. 페트병의 뚜껑의 사이즈도 규격이 있어요. 이런 것도 표준이야. USB 규격이나 Wifi 같은 것도 기술표준이지. 이동통신기술의 대표적인 표준기술은 3G나 요즘 유행하는 LTE가 있지.
그런데 기술이다보니 특허권자가 생기지 않겠어? 표준기술의 특허권자인 개인의 권리도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표준기술의 정신은 문턱을 낮추고 개방하는 데 있어.
그런데 특허권의 속성은 독점이야. 골치 아픈 모순이 생긴 거지.
사례: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이 페트병 뚜껑에 대한 표준을 정했어. 그래서 적어도 뚜껑에 대해서는 동일한 규격으로 만들게 됐어. 후발주자인 성춘향이 기술표준에 따라 동그란 병뚜껑의 페트병을 만들기 시작했어. 그런데 홍길동이 성춘향한테 '동그란 병뚜껑'에 대해서 자신이 특허를 보유했다고 말해. 그러면서 자기한테 병 1개당 10원을 요구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넌 '네모란 병뚜껑'을 만들어!라고 주장하는 거야. 성춘향의 페트병의 몸뚱아리와 재질은 기가막히게 좋은 건데, 그놈의 뚜껑 규격 때문에 아예 페트병을 못 만들게 되는 거지. 성춘향은 말했어. 10원은 너무 비싸. 페트병 원가가 얼만데... 0.5원으로 하자라고 제안하니까. 홍길동이 무역위원회에 제소하여 수입금지를 요구하는 거야. 성춘향의 페트병은 중국에서 제조하거든. 그때 페트병을 만들기 시작한 황진이라는 예쁜이가 있었는데 홍길동이 반하고 말았어. 그래서 홍길동은 황진이한테는 넌 그저 0.1원만 주면 돼. 아이고 귀요미... 라고 말하는 거야.
대략 위와 같다. 홍길동은 성춘향과 황진이를 차별하지. 그리고 성춘향한테는 너무 비합리적인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어. 기술표준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야. 이러면 안 되지 않겠니? 그래서 표준기구에서 규칙을 정했어.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라이선스를 부여할 의무(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FRAND)를 표준특허권자에게 부여했지. 이거 안 지키면 반독점행위로 간주해서 특허남용이라는 거야. 그런데 기업은 다 전략이 있잖니? 협상도 전략이지. 협상을 질질 끌고 다소 무리하듯한 요구를 하면서 소송으로 윽박지르는 거야. 우월한 지위를 사용하는 거지.
표준특허가 원천기술이니까 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흔히 생각하는데, 글쎄
동의하기 어려워. 그 기술이 태어나자마자 원천기술이 된 게 아니야. 그
기술은 보통의 기술이었는데 말이지. 여러 회사들이 협심을 하여 표준을 만들기로 약속을 하니까 원천기술이
된 거야. 기술 표준이 되면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되지. 그게
이노베이션이야. 특허만 있으면 뭐하니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는 기술은 사장되고 말아. 그냥 죽는 거야. 그런데 표준이 됐으므로 그 기술이 살았어. 게다가 눈부시게 빛나게 되었지. 특허가 본디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표준으로 간택을 받았기 때문에 빛이 난 거야. 그런데 그걸
가지고 경쟁자를 윽박지로 소송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부정하게 비춰지지. 이게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이야.
요약하자면 오바마 행정부는 표준특허권자의 남용행위를 막아서 자기 나라의 특허제도와 혁신 시스템을 보호하겠다는
거야. 난 사실 여기서 문제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맞는 말이거든. 재수 없게 이번 케이스에서 삼성전자가 걸렸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지. 하지만
애플을 공략할 특허를 선택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자유였어. 삼성전자는 표준특허의 후폭풍을 잘 몰랐던 거
같아. 왜냐하면 표준특허에 관한 케이스가 별로 없었거든. 그렇게 애플과 치고박고 싸우기 위해서 표준특허를 골랐는데, 아주 그게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던 거야. 사람들은 그걸 자업자득이라고 표현하지.
미국 시장은 우리나라 기업에게 매우 중요해. 미국 특허제도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아니? 그 소송천국의 나라에서 말이야. 특허의 지뢰밭에도 불구하고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우리나라 기업에게는 –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야 - 오바마정부의 특허 시스템 개혁은 겁나게 도움이 돼. 특허괴물이
우리나라 기업을 얼마나 못 살게 구는지 아니? 오바마 정부의 특허 시스템 개혁은 마치 의료보험시스템
개혁만큼이나 역사적이지. 이건 뭐 일반 사람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만 진짜로 그래. 미국은
'선발명주의' 기반의 특허제도야. 미국만
그래요. 웃긴 나라야. 그런데 백 년이 넘은 이 제도를 글로벌
표준처럼 '신청인우선' 기반의 특허제도로 개혁한 게 오바마
정부였지. 게다가 오바마 정부에 참여한 전문가들과 열성적인 지지자 그룹은 특허제도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팀 오라일리 등의 공저인 <Open
Government>(열린정부만들기, 에이콘출판사)라는
책이 있어. 이거 겁나게 좋은 책인데 거의 안 팔렸다는군. 너흰
내용 없이 정치하니? 안타까운 일이야). 어느 모로 보나 보호무역주의는
잘못된 번짓수.
이번 오바마의 거부권행사에 대해서 이해득실
좀 따져보자.
애플 당연히 신났지. 얘네들은 천운을 타고 났어. 잘났다. 삼성전자는 뿔났지. 유체이탈을
해서 삼성전자의 특허팀의 머릿속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네.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싸움을 아주 유별나게
키웠지.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았어. 하지만 그 꼴이 뭐니. 하지만 말이야. 아주 거시적인 시각으로는 오바마의 거부권은 삼성전자한테도
좋아.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얼마나 많이 당했는데... 미국
시스템에서 특허괴물의 준동이 어느 정도 다스려진다면, 제조사인 삼성전자도 덕 좀 볼 거예요. LG 전자도 마찬가지겠지. 이게 어떻게 보호무역주의니? 표준특허는 아쉽지만, 삼성전자만 표준특허가 있니? 다른 유수의 기업도 표준특허가 많아요. 구글은 오바마 정부의 특허 시스템 개혁 드라이브 좋아해. 모토로라의
표준특허 활용이 좌절됐지만 말이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페이스북 같은 회사도 오바마의 이런 드라이브를 환영했지. 퀄컴이나
인터디지털 같은 회사는 아주 기분 나빠 해. 퀄컴은 한편으로는 칩을 팔지만 한편으로는 특허로 윽박지르는
대표적인 기업이거든. 인터디지털은 대표적인 특허괴물이고 말이야.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어떨까. 아주 좋아요. 환영할만하죠. 중소기업이 표준특허를 보유하기 되게 어려워. 해외시장에 진출하면 표준특허권자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 그런데
표준특허권자의 공격이 무뎌지면 수출기업에게는 당연히 좋은 소식이야. 또한 특허괴물을 미행정부에서 적절하게
견제하면 이 또한 큰 이익이지. 그래도 보호무역주의니?
어쨌거나 삼성전자가 좀 안타깝게 됐어. 비즈니스 전략으로는 대성공을 했지. 그렇지만 대가를 지불했어. 그 대가가 바로 이 특허분쟁이야. 그만 했으면 쓰겠다. 삼성전자는 승자의 관점이 아니라 사실상 패자(특허소송의 패자이지 시장의 패자는 아니므로 괜찮아)의 관점으로 출구전략을 도모하는 게 합리적으라고 생각해. 기분 나쁘지만 비즈니스는 냉정한 거 잖아.
(1) 일괄타결이 어렵다면 소송의 규모를 줄이는 협상은 어떨지, 예컨대 미국, 독일 정도만 남겨두고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일본, 호주에서의 소송 취하
(2) 공격무기로서 표준특허 철수. 이것은 진작에 했었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미련이 있는지 모르겠어. 이것 때문에 애플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와의 소송이 꽃놀이패가 됐거든. 삼성한테 이겨서 모토로라한테 써먹을 수도 있고, 다른 표준특허권자에게 대항하는 법리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어서 좋고 말이야.
(3) 어쨌거나 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다음에 일괄타결 추진. 뭐 대략 이런
프로세스인데, 삼성전자의 그 잘난 특허팀이 나같은 일개 변리사의 견해를 청취할 리는 만무하지만.
이상한 애국주의에서
벗어나면 냉정심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러면 국가 산업의
정책적인 관점에서 뭔가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우선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 같아.
(1) 표준특허의 허와 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그동안 얼마나 많이 표준특허 강조했었니. 그게 마치 국가경쟁력인 것처럼 말이야. 떼돈 번다며 밑줄 쫙쫙 그어가면서 강조했었잖아. 그렇지만 FRAND 같은 건 아예 취급도 안하셨죠?), 이번 미국 행정부의 입장은 앞으로 확고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이게 국제적인 통설이 될 가능성 커졌어.
(2) 특허침해로 수입금지시키는 무역위원회 제도에 대한 연구.
(3) 각 기업의 특허전략에 있어서도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은 꽤 유용할 수도 있어. 이번 소송과 미행정부의 입장 등을 참조하여 미국 시장을 진출할 때의
대응전략을 세우는 데 변화를 도모할 수도 있겠군.
(4) 학자들과 관료들은 특허제도와 경쟁법 사이의 관계를 좀더 면밀히 연구하길 바래. 특허로 돈 번다는 환상만 붓지 말고, 주판 튕기기 놀이를 그만 멈추고 말이야.
(5) 특히 관료들은 특허제도에 대한 국제적 정치의제에 뒤쳐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게 좋겠어. 장차 특허는 국제정치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거든. 너무 많은 특허가 경쟁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야... 특허제도는 여전히 공고하겠지만, 개선에 대한 논의 필요성은 커질 거야.
일단 머리 좀 식히고 다시 생각 해보자능...
끝.
편집부 주 본지 필진으로 활약하고 계신 특허분쟁 분야 AAA급 전문가인 '정우성'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전세계를 무대로 벌어지고 있는 기업들 간의 초강력 스펙타클 특허전쟁을 너님들의 코를 후벼파고 있는 새끼 손가락만큼이나 씨언하게 분석해드립니다. '특허전쟁' 얼런 읽고 교양들 맘껏 쌓으시라. 도서 구매 페이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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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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