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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jtbc 뉴스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때 대전으로 지인 한 명이 찾아왔다. 두부 두루치기에 쓴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요즘 세상에서는 최순실 말고는 더 할 말이 있을까마는)를 나눴다. 그러다 지인이 툭 한마디 던졌다.


“방산주나 좀 사둘까?”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난 소주를 털어 넣었다.


“1년 4개월 남았으니까... 가능하겠지?”


“방산주야 묵혀둬도 큰 변동 없으니까 보험 든다 생각하고 몇 주 질러볼까?”


지인은 홍보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하지만, 내가 보기엔 CR(대관업무)쪽에 더 가까운 이였다. 그런 그가 방산주를 입에 올렸다. 큰 의미도 없고, 어떤 소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나 역시도 별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저 술자리 푸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그와 난 이 ‘주제’를 가볍게 바라보지 않았다.


작년부터 시중에 떠돌던 이야기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더 몰리면, 늘 그래왔듯 이벤트를 터트릴 것이다. 레임덕을 고려한다면, 이제까지와 달리 꽤 큰 이벤트를 열어야 하는데, 개헌 아니면 전쟁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개헌 논의가 터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나와 개헌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던 그때 내 머리는 멍해졌다.


“진짜 개헌카드를 꺼낸 거야?”


문제는 개헌 카드를 꺼낸 지 12시간도 안 돼 jtbc에서 최순실 특종을 터트렸다. 뒤이어 한겨레와 조선일보에서도 준비해뒀던 기사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개인적으로 일련의 모든 사건의 뒤에는 조선일보가 있다고 믿고 있다. 한 필부의 망상이라 볼 수 있겠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시기가 너무도 절묘하다. 마치 어떤 ‘타임 테이블’을 짜놓고 딱딱 톱니를 맞춰서 돌리는 느낌이다).


개헌 카드는 이제 그 동력을 잃어버렸다. 이제 남은 건 ‘전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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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표현이 적확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반어적인 표현도, 내 정치적 성향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인간 박근혜’와 그 인간 박근혜가 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원인이 뭘까? 혹자는 세대 대결에서의 패배를 말하곤 하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재인 후보의 ‘권력의지’가 박근혜 후보(아니면, 그를 둘러싼 이들의 권력의지)의 그것보다 부족했기에 졌다고 바라본다(요즘은 거꾸로 너무 자주, 너무 많이 권력의지를 표출해서 문제지만).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다음이다.


보통의 권력자들이라면, 획득한 권력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적 신념이나 이상(理想)을 실천하려고 할 것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권력을 차지했다면, 그걸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권력자의 모습이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대한민국의 실수이다. 대통령을 뽑는다는 건, 그 사람의 정치철학을 확인 한 후,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이 나라의 미래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묻겠다.


“당신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알고 있는가?”


국민의 51.6%가 뽑은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그녀의 철학이나 신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의미로 이명박 대통령은 명확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돈에 대한 탐욕이 극한으로 몰렸을 때 등장한 영웅.”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은 돈에 대한 탐욕으로 영웅을 갈구했고,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이명박이었다. 우리의 탐욕이 우리의 눈을 가린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의 선택은 박근혜의 선택 보다 나았다. 비록 사기(?)를 당했지만,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은 명확한 판단기준과 정치철학을 보고 선택을 했다(그 철학의 비루함은 논외로 치자).


그러나 박근혜는 달랐다.


단지 옛 향수와 막연한 희망만으로 우리국민들은 박근혜를 선택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봉건사회’로 돌아간 듯 했다(아니, 신정체제인가?).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아버지가 대통령이었기에 그 딸도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논리. 북한의 백두혈통과 뭐가 다른 걸까? 그녀가 보여준 것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었다. 그 정치인으로서의 모습도 상당부분 그녀의 몸 속을 돌아다니는 ‘혈통’의 이미지를 활용한 모습이었다.


여기까지는 한국 정치판에서 허용범위 안 쪽의 문제이다. 부친의 후광을 등에 업은 2세 정치인이 어디 박근혜 한 명 뿐이겠는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치인과 국가 지도자는 같아 보이지만, 다른 존재이다.”


정치인의 경우는 이미지만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아무런 콘텐츠 없이 단지 ‘이미지’만으로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그러나 그 폐해는 오차범위 안쪽이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의 존재는 어느새 사회적 성공의 지표가 됐고, 그 결과 법조인, 의료인 등과 같은 성공한 전문 직업군의 통과의례가 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다음 마치 ‘타이틀’을 따듯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우리는 이들의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보다는 그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투표장으로 향한다. 그게 일상이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는 다르다.


대통령의 ‘직무’와 ‘역할’이 뭔지 단적으로 말해 준 사람이 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대통령의 임무는 yes냐, no냐를 결정하는 자리이다.”


대통령보다 똑똑한 사람은 많다(각계 전문가와 비서진, 장관들, 전문 관료들이 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이 똑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는 자신의 국정 철학에 대입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존재이다. 결정 장애가 있든, 잘못된 철학이나 정보에 의해서든 일단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때로는 초법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통치행위’로 인정,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주기도 한다(우리의 상식 선에서 허용되는 범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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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에게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결정’은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배경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믿기에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즉,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민들의 선택을 5년 동안 양도한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철학이 왜 중요한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국가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대통령의 철학이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국민은 대통령 후보들의 정치철학을 보고,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다.


다시 묻겠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나 신념을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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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산군


박근혜 대통령을 ‘연산군’과 비유하는 학자들이 많다. 심리학자 몇몇은,


“왕족이며,”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을 지켜봤고,”

“가장 가까운 자가 배신하는 것을 보았고,”

“폐쇄된 환경에서 척박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으며,”

“그 결과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됐다.”


(무속학자들은 연산군이 ‘무당’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학설을 강하게 제기한다. 그의 이상행동은 무당의 ‘무병’과 비슷한 행동양태를 보였다는 것인데, 이미 신정神政국가로 넘어간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자면, 이 역시도 공통점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산군의 불행했던 유년시절과 박근혜 대통령의 기억을 등치시켜 바라본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건 다르다.


연산군과 박근혜 대통령이 놀랍도록 닮은 한 가지는 권력을 대하는 자세다.


칸트가 말했다.


“사람을 수단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


이를 권력에 대입해보면,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돼야 한다.”


그렇다. 권력은 목적이 될 수 없다. 권력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권력자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건 19살 때였다. 그러나 진정한 왕이 된 건 9년 정도가 지난 뒤였다. 그럼 그 사이에 했던 게 뭘까? 부왕인 성종이 남긴 ‘똥’을 치우는 시간이었다. 성종시절 비대해진 대간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해 연산군은 나이에 맞지 않은 노회한 정치력을 보여줬다. 훈구대신들을 부추겨 신진 사림세력과 싸움을 붙였고, 자기를 위해 나선 신하들은 철저히 보호해 줬다. 그 사이 보여준 국가운영 능력도 나름 합격점을 받을 만한 수준이었다. 균형 잡힌 외교능력과 업무 파악능력도 엿볼 수 있었고, 과단성 있는 결정도 몇몇 내렸다.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시작한 사화(士禍)의 경우도 연산군의 잘못이 아니라 김일손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은유적으로 세조를 비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조가 성종의 아버지였던 덕종의 후궁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단종의 시체를 들판에 버려 짐승들의 먹이로 썼다는 등 거의 유언비어에 가까운 이야기를 사초에 실으려 했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당연히 화를 내야 할 것에 화를 낸 것이다.


(쓰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비슷해지려고 한다)


노회한 연산군은 이 사화를 통해 자신의 국정 장악력을 한 층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연산군은 조선시대를 거쳐 간 그 어떤 왕들보다 강력한 왕권을 손에 쥐게 된다.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에서 이 만한 권력을 휘두른 왕이 몇이나 됐을까?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렇게 어렵게 획득한 권력을 연산군은 술 마시고, 계집질 하는데 쏟아 부었다. 권력이 목적이었지만, 그 권력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절대권력을 획득한 지 2년 만에 몰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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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의지만 있지 획득한 권력으로 뭔가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그녀가 ‘선거의 여왕’으로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했고, 이를 자산으로 권력을 획득하는 것 까지는 너무도 연산군과 비슷하다. 노회한 정치력, 부모의 후광, 적절한 이미지 메이킹. 그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 가장 오래 청와대에 있었던 인물이었고, 그에 걸맞는 노회한 정치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은 목적이었지 수단이 아닌 것이다. 즉,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녀의 모든 목적이 끝이 났다는 것이다. 아, 수정해야겠다. 그녀에게 있어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두 가지 행위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나는 자신의 원래 집이었던 ‘청와대’로 돌아가기 위함이고,


나머지 하나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지도자 중 한명이라 생각하는(그녀의 입장에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함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대통령 자리란 그런 자리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그녀가 대통령 자리에 앉은 후 가장 역점을 뒀던 정책이 무엇인지를...


딱히 그녀만의 ‘정책’이나 그녀만의 ‘철학’이 담긴 행위를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나머지공백들은 그녀의 권력의지를 부채질 하고, 그녀의 ‘이미지’를 활용해 대통령의 자리에 앉힌 그 누군가들의(최순실 혼자만의 작품이라는 순진한 착각은 버리자) ‘이익’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다.



 

2. 돌낚시


어린 시절 친구들과 개울가에서 했던 낚시가 있었다.

처음엔 족대를 들고 개울을 헤집었지만, 중학생 형들이 이를 비웃으며 하나의 방법을 알려줬다.


“돌로 내리쳐!”


큰 돌로 개울 위로 튀어나온 돌을 내리치면, 작은 피라미들이 두둥실 떠올랐다(나이가 들면서 밧데리로, 군대에선 크래카로 대체됐지만). 충격파로 물고기들을 기절시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스킬이다.


이제껏 우리가 겪은 수많은 권력자들(군사정권을 제외하고)은 국정동력을 장악하기 위해 보통 2개의 카드 중 하나를 사용하곤 했다(혹은 둘 다를). 하나는 인사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정(司正)이었다. 인적쇄신이란 명목 아래 관료들의 고삐를 바짝 죄던가, 아니면 5대 권력기관(정권에 따라 즐겨 사용하는 권력기관이 달랐다. 전두환 때 경찰, 노태우 때 검찰, 김대중 때 경찰...)을 동원해 사정 정국을 만들었다.


그러다 이걸로 막지 못하는 게 생기면 어떻게 될까?


박근혜 정부의 정치는 감히 말하건데 ‘이벤트 정치’... 개인적 명명(命名)으론,


“돌 낚시 정치”


를 하고 있다. 큰 돌을 내리쳐 한 방에 모든 사안을 덮어버리고,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충분히 물밑에서 교섭을 하고, 정치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문제를 박근혜 정부는 수수방관... 아니, 방기(放棄)하고는 도저히 손 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돌을 하나씩 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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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의원을 두고 배신의 정치를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난 확실히 느꼈다.


“이명박이 더 낫다.”


이명박의 정치력, 인격, 품성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그는 최소한 정치인으로서... 아니, 하나의 조직을 이끌던 리더로서의 기본적인 경험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물밑에서 해당 사안의 당사자를 불러 교섭을 하거나(혹은 협박을 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면서 최대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율을 했다.


비선이나 커튼 뒤의 타협, 정치적 협상 등을 나쁘게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국민들 모르는 곳에서 하고, 각 조직의 장들은 사전에 조율되고 정제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는 이런 물밑 협상이나 조율을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 강대 강의 대결, 파열음과 충격파로 정국을 얼려버린 뒤에 정국을 이끌었다.


분명한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과 TK라는 자산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평균적인 지도력만 보였다면 집권 4년차까지 레임덕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만 관리했다면,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도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 자산을 거의 다 까먹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목적이었기에 대통령으로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그 결과는 방기(放棄)였다. 조선업 위기 앞에서 국내 빅3 조선사의 교통정리와 지원시기를 놓쳤고, 국적 해운사 2개 중 1개가 공중분해 될 위기 앞에서도 손 놓고 앉아 있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시장에 맡겨버리겠다는 ‘의지’로 한 행위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납득하긴 어렵다. 세월호 사태 때는 또 어떤가? 역시나 방기(放棄)였다. 대통령으로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회피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정국을 빨아먹는 돌덩어리를 던져 잠재웠다.


...난데없이 해경이 해체된 사실을 기억해 보라. 해경 해체로 여론을 다독이고, 시선을 돌렸다. 분명한 사실은 그 이전에 사전에 검토하고, 조율하고, 실행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 황금 같은 시간을 버리고는 커다란 돌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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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이 태생부터 ‘공주’였기에 타협이나 협상이 아니라 명령과 상명하복만을 알고 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결정을 미루고, 회피하다 마지막 순간에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이 내리면 돌을 내리치는... 익숙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공주여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란 자리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었기에 거기서 멈춰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권력의지는 있지만, 권력의지의 최종 종착지가 대통령 자리에서 멈춘 것이다.




3. 개헌과 전쟁


이 ‘돌낚시’가 반복되면서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내성’이란 단어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자극이 반복되면 무감각해지고, 그러면 더 큰 자극을 받아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피라미들이 이제 자극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악재가 반복해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숙명과도 같은 레임덕. 그리고 집권 말기만 되면 언제나 반복되는 친인척 비리. 분명, 큰돌이 내려 칠 것이란 예상들을 하기 시작했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들이 그러했다.



“개헌 아니면 전쟁이다.”



농담처럼 떠돌던 말들이다.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가 터져 나오면, 국정 동력을 잃을 테고, 그럼 분명 뭔가가 하나 터질 텐데, 분명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릴 거라는 이야기가 무성했다. 그러나 이걸 전하는 이들도, 말하는 이들도, 생각했던 이들도...


“설마”


란 생각으로 건성으로 넘겼다. 그리고 개헌 카드가 터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굉장히 아까운 카드였을 것이다. 명분도 어느 정도 있었고, 필요성도 인정받을 만 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87년 체제의 불완전한 타협책이었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있다. 이걸 언제 꺼내드느냐는 시기의 문제만이 남아있던 상황.


최순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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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돌’을 내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피라미가 떠오르기 전에 수면 아래서 요동치는 다른 무언가가 치고 올라왔다. 설사 요동친다고 하더라도 피라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문항 설계를 했는지 모르지만, 국민 70%가 개헌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는 청와대가 시기와 사건들을 최대한 유리하게 작성해 돌렸을 것이다.


그걸 근거로 개헌을 말했다. 무리지만, 해볼만한 승부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굴욕도 맛봤다.


이제 남은 건 그 다음이다. 이미 국정동력은 사라졌다. TK가 흔들렸다는 건, 다른 민심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칠순에 가까운 내 노모도 8시만 되면 jtbc를 틀고는,


“무당이 나라를 다스렸네.”


라며 개탄하고 있다. 만약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겨놨다면,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관리형 정부로 몇 달을 버티면 된다. 국정운영은 당으로 넘어갈 테고, 차기가 나서서 나라를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1년 하고도 4개월이나 남았다.


식물정부로 가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뭔가를 해야 할 것이다. 아니, 박근혜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의지를 부채질 했던 세력들에게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들이다.


그들은 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려 할 것이다.


내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거개의 인물들 혹은 그 사람들이 만나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놓은 발언은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다.


“안보 이슈를 내부적으로 접근 하든지, 아니면 외부적으로 터트리든지...”


내부적으로 접근 한다면, 영화 <자백>의 시즌2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고, 외부적으로 터트린다면 국지전 성격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권력자들은 내부의 문제를 외부의 사건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를 무수히 반복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작년 목함지뢰 사건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모습들을 떠올려 보라.


...민족주의는 프랑스 대혁명 이래로 지배층들이 잘 써먹었던 전가의 보도였다(물론 실패했지만). 민중들을 분열시키고 갈라놓는 게 어려워지자, 하나의 민족이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갈등을 덮어버리고 자신의 권력을 지켜냈다.


우리가 보는 그 수많은 ‘국뽕’들을 보라. 민족주의를 교묘하게 자극하고 팽창시키는 비논리의 향연.


이제 남은 건 우리의 습자지 보다 얇은 기억력에 의존한 어떤 ‘커다란 충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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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어제 몇 군데 전화를 돌렸다.


“어딜까? 어떻게 할까? 언제 할까?”


기우일수도, 망상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설마’하던 사건들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 정부는 내 빈약한 상상력을 비웃듯 계속해 더 큰 돌을 던지고 있다. 이제 내 상상력에 걸어뒀던 리미트를 해제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길 간절히(?!) 원했지만, 사람의 머리는 다 거기서 거기인 듯 하다.


“최소한 국지전? 아니면 간첩사건?”


이 모든 악재를 덮어버리고, 국정동력을 되찾아 올 정도의... 그러니까 식물정부가 되지 않을 정도의 이슈를 만들어 내거나 찾아낼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리길 바란다. 아니, 파파이스의 노스트라다문예처럼 한 편의 김빠진 소설로 끝나길 바란다. 그러나 1~2년 전 시중에 떠돌던 ‘개헌 아니면 전쟁’이라는 말이 이제 낯설게만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그녀 주변의 권력의지들은 너무도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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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


편집 :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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