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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암에 걸렸다

2016-11-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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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렸다

단순한 이야기다. 오른쪽 윗 턱에 뭔가 덩어리가 만져진다 싶었는데 조직검사를 해보니 악성종양 판정을 받은 것이다. 편평상피세포종양. 이게 정식 명칭이라고 한다.


그리고 삶이 바뀌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뿐이다. 암에 걸리기 전과 후는 절대 같은 삶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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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침대에서 눈을 뜬다. 눈을 뜰 때의 내 자세는 투탕카멘 자세다.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해 잠들 때 취했던 그 자세 그대로 눈을 뜨게 된다. 밤새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아침에 온 몸이 뻣뻣한 것은 덤이다. 그 넓은 침대가 좁다고 헤집고 다니며 자는 것이 보통이라, 도대체 무슨 잠을 그렇게 험하게 자냐고 맨날 아내에게 구박을 받던 내가 이런 잠을 자게 된 것은 뭐 그리 대단한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다.


제 때 잠을 자고 제 때 일어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오지 않는 잠을 어거지로 잤을 뿐이다. 수면제 한 알도 안 먹고, 잠 안 온다는 핑계로 몇 잔씩 들이키던 술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술하고 담배는 진단을 받던 그 순간 자동으로 끊게 되었다. 술 담배 끊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암에 한 번 걸려 보시길 권한다. 아주 순식간에 별다른 고통없이 바로 끊을 수 있게 된다. 보통은 다들 그렇다고 한다. 아닌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잠 깨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아니다. 눈이 떠짐과 동시에 이어질 일상이 두렵다는 얘기다. 23번째인가 24번째인가 가물가물하다. 오늘도 차를 몰고 산 넘고 물 건너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암 센터 1층 방사선 종양학과 방사선 치료실까지 가서 스스로 내 몸에 일정량의 방사선을 쬐고 와야 한다.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다섯 번, 모두 6주간 30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것이 목표였고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든 지 오래건만 전혀 적응이 안된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입 안, 혀, 목구멍의 점막은 뭐 이미 오래전에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맹물만 마셔도 꼬챙이로 긁는 것처럼 아프다. 침을 뱉으면 피가 섞여 나오고, 아니 그 이전에 침 자체가 잘 나오지를 않는다.


침 나오는 약, 구역질을 막아 주는 약, 진통제 등의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애초에 신체 조직이 상해가고 있는데 약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무엇보다도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니 배가 고프다 못해 마비가 오고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이제 일어나 대충 씻고 차려 입고 신촌까지 가야 하는 거다. 죽이라도 한 그릇 강제로 먹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다. 경장영양액, 내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필수 영양제가 들어 있다는 그거나 마셔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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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치료실

이제는 절차가 아주 몸에 배어 버렸다. 암센터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로 1층에 올라온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측으로 십여 미터 걸어 오면 방사선과 접수창구가 있고 그 앞 키오스크에 환자카드를 대면 번호표가 나온다. 이 시간이면 보통 서너 명 이내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고 많아봐야 다섯 명이다.


창구에서 내 이름 (환자카드를 인식시켰기 때문에 창구에서는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이 호출되면 일어서서 다가가 방사선 치료비를 납부한다. 선납으로 몫돈을 지불할 수도 있지만, 보험 처리 관계상 조언을 받아들여 매번 납부하는 걸로 결정했었다.


참여정부 때 도입된 중증 질환자 대상의 산정특례 제도는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본인 부담율 5%만 감당하면 나머지 치료비는 건강보험에서 제공되며, 그나마 본인 부담조차 흔한 실비보험(사보험)에서 상당 부분 감당해 준다. 고가의 첨단 항암제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엄청난 도움이 된다. 심지어 그 자격은 5년간 유지가 된다.


치료비를 수납하고 나서 방사선 치료실로 간다. 내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상의를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뒤 복도를 지그재그로 한참 들어가 나에게 배정된 '세기조절 방사선치료실'로 향한다.


잠시 기다리면 내 이름이 불려지고, 들어가면 CT촬영기처럼 생긴 기계가 놓여있다. 입 안에 있던 보철을 빼내고 기계 위에 올라가 누우면 얼굴을 고정시키는 플라스틱 그물망(이 또한 내 사이즈에 맞춰 개별적으로 제작된 것이다)을 씌우고 준비를 한다.


잠시 후 윙 소리와 함께 치료가 시작되면 내 몸은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얼굴 주위를 돌아가며 방사선을 쏘고 있는 기계의 움직임이 소리로 감지된다. 한참을 멍하니 누워 있으면 소리가 잦아들며 어느 순간 누워있는 판이 움직이면서 치료가 끝났음을 느끼게 된다.


또 한 번 해치웠다. 기계에서 일어서면서 한숨을 내쉬면 직원들이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러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웃어 보이며 힘내시라고 얘기해주는 것까진 좋은데, 왜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냐 말이다. 난 당신 같은 장성한 자식이 없어요.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야, 라고 우겨볼까 하다가 하나 밖에 없지만 삼수하고 있는 딸이 떠올라 사실 별 차이도 없구나 싶어 힘이 더 빠진다.


입을 헹구고 방사선 치료실을 벗어난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지하로 내려간다. 주차장에 가서 차를 타고 바로 빠져나와도 되지만 죽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 구내식당으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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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죽을 한 그릇 주문한다. 한참을 기다리면 평상시 같으면 먹음직하게 보였을만한 죽이 한 대접 푸짐하게 내 앞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암담할 뿐이다. 일단 조금이라도 뜨거운 것을 입에 넣었다가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게 되므로 식혀야 된다. 그리고 저 많은 양을 먹어 치울 자신이 없다. 평소 겨우 죽 한 대접이 어떻게 한 끼니 식사가 되냐고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죽 한 대접은 도저히 앉은 자리에서 다 먹을 수가 없는 엄청난 양으로 다가오게 된다.


먹는 게 전쟁이다. 한 숟갈 한 숟갈 퍼 넣고 우물거리는 것이 칼을 물고 뛰는 것 같은 고통으로 느껴진다. 맹물을 입에 머금어도 입 안에 헐어 있는 점막이 따끔거리며 아픈데, 온기가 남아 있는 죽에 들어 있는 흐물흐물한 쌀 알갱이는 뾰족뾰족한 돌덩어리로 느껴진다.


오로지 살아 남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이걸 먹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삼켜서 뱃속에 집어 넣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과장된 감정까지 느껴가며 싸우듯이 죽을 퍼먹는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은 내 안의 고통이 밖으로 비어져 나온 흔적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아프다. 방사선을 한 번 더 쬘 때마다 더 아파진다. 앞으로 몇 번 남았는지 세어 볼까 하다가 포기하고 만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정 못 견디겠어 언제든지 얘길 하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친절한 조언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치료효과가 없어지니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 따라 붙어 있는데 어떻게 아파서 그만두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말로 잔인한 일이다.


그렇게 전체 30번 중에서 또 한 번의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죽까지 한 그릇 먹어 치운다. 인간 승리. 스스로가 뿌듯하고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자부심이 든다. 입안은 얼얼하다 못해 아예 감각이 없는 지경.


화장실로 가서 보철을 뽑아들고 입안을 헹구고 청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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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철 – 좀 커다란 틀니

종양은 오른쪽 윗 어금니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치아의 뿌리를 밀어 제끼며 커졌고, 입천장과 윗턱뼈를 침범했다는 것이다. 결국 수술로 제거해 버렸다.


암에 걸리기 전까진 전혀 모르던 세계 중에, 암환자들에게 “수술이 가능하다”라는 판정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하는 것이 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물론 그게 완벽하게 깔끔하지는 않았고, 어떤 부위에서는 여유 폭이 매우 좁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암덩어리를 모두 잘라냈다고 한다. 담당 교수는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수술에 매달렸다고 무척 고생했다고 자화자찬. 정말 고마운 일이다.


어찌되었거나 나는 입천장의 오른쪽 절반, 오른쪽 윗 치아 8개, 그리고 그 치아들이 박혀 있던 윗 턱뼈를 모두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그 부위는 텅 비어 있다. 이게 무척 신기한 것이, 입과 코 사이가 그렇게 뻥 뚫려 버리면 우리가 살면서 아주 쉽게 하는 많은 동작들이 불가능해진다.


일단 말을 못하게 된다. 구강내의 압력 조절이 불가능해지고, 마이너스 압력을 만들 수가 없게 되니까(당연하잖은가. 구강과 비강이 서로 통하고 있는데...) 뭔가를 마시거나 먹는 동작이 불가능해진다.


수술하기 위해 입원을 하면서 언제 퇴원하게 되냐고 묻자, 죽을 먹을 수 있게 되면 퇴원이라고 답변을 한다. 즉 수술로 입천장, 윗턱뼈를 다 잘라내고 그걸 대치하는 인공 보철을 장착한 뒤, 그걸 이용해서 뭔가를 먹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이 되면 퇴원할 수 있다는 뜻.


고통은 둘째 치고 입 안이 텅 빈 느낌, 휑한 느낌은 무척이나 생소하다. 거기에 보철이라고 끼워 넣은 것은 자꾸 상처를 건드리고, 수술 자리에서는 피가 흘러 가득 채워 넣은 거즈에 배어들고 있고... 뭐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버튼 누르면 나오는 진통제를 혈관에 직접 맞으면서 버티다가 물부터 마시는 것을 시도해 보고, 어떻게 해서든 기능을 되찾으려고 노력을 한다. 웅얼웅얼 하면서도 말하는 흉내를 내 보려고 노력하고 수시로 물을 머금고 흘리거나 기도로 들어가지 않게 무사히 삼키는 연습을 한다.


결국 죽을 떠서 먹을 수 있게 되고 퇴원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엄청난 희열이 따라왔던 기억이 난다.


이제 다시 살아 났구나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람이 먹고 마시는 간단한 동작을 못하게 되면 말 그대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암이 아니더라도 굶어 죽을 수 있다는 느낌, 독자 여러분들은 가급적 평생 느끼지 마시길 권하고 싶다.


이제는 보철에 어지간히 적응이 되었지만, 수술 자리가 완벽하게 굳고 자리를 잡고 나서야 정식 보철을 만들어 준다고 하니 몇 달 동안은 계속 조금 불편하고 조금씩 모자른 상황이 지속될 것 같다. 임시 보철로 버티려하다 보니 다 좋은데 발성이 부정확하다는 점이 못내 맘에 걸린다.


조금씩 좋아지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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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입안이 헐고 아픈 것도 문제고, 머리가 빠지는 것도 문제다. 보통 머리는 항암치료를 받아야 전반적으로 빠지게 되는데, 두경부(머리와 목 부위)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면 모발이 자라는 부위에 직접 방사선을 쬐게 되니까 그 부위에 급격한 탈모가 진행된다. '머리가 좀 빠지네' 정도가 아니고 그냥 뭉텅 뭉텅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며칠 걸리지 않아서 그 부위가 매끈매끈 해진다.


양쪽 귀를 잇는 선에서 위쪽으로는 머리가 그대로 있고, 그 아래로는 민짜 대머리가 되어 버렸다. 물론 그 위 부분도 모발이 자라는 두피 부분이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 허옇게 들뜨고 딱지가 앉고 엉망 진창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제대로 먹질 못하니 급격하게 체중이 감소하면서 체지방과 근육이 한꺼번에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 결과 심각한 체력의 손실이 오게 된다. 말 그대로 피곤해서 움직이기가 힘든 상황이 된다.


거기에 집중력도 떨어지고, 아파서 뭔가 몰두하기도 힘들어진다. 그저 편한 의자에 앉아 모니터에 뭔가를 틀어 놓고 지켜보고 있는 수밖에. 그러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된다.


병원까지 운전을 해서 다녀온 뒤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저녁 시간이 된다. 겨우겨우 컨디션을 회복해서 죽이라도 한 그릇 먹은 날은 그나마 좀 낫고, 그나마도 못 먹고 영양액으로 버티면 더 몸이 가라 앉는다. 눕고만 싶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침대에 가서 누워봤자 제대로 잠이 들지도 못한다. 두려움과 고통과 생소함, 그리고 회복이 될 지, 하던 일을 계속 할 수는 있게 되는 건지,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머리속을 휘감으며 안정을 방해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잠이 들어야 할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만다. 그러나 내일 아침에는 다시 일어나 병원에 가서 방사선을 쬐야 하는 것이다. 의무적으로 잠이 들어야 한다.


결국 투탕카멘 자세를 취하고 누워서 강제로 잠들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이며 매우 불편하기 짝이 없는 수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 암 환자의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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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의 공포

지금은 방사선 치료도 모두 마치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사실 수술이 잘 되었고, 검사에 검출되는 암 조직은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중요한 조직을 잃어 버린 것은 억울하지만 암환자의 입장에서는 호사스러운 얘기다. 수술로 조직을 다 제거했으니 남은 것은 재발만 안 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암 덩어리가 생겼다는 것은 그 주변에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암세포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암세포들을 모두 혼줄을 내줘 재발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즉 재발의 확률을 낮추기 위한 방사선 치료를 받은 셈이다. 근데 사실 혼줄은 암세포가 아니라 내가 난 것 같기도 하다.


담당 교수님(사실 과는 다르지만 나와 대학동기. ㅋㅋㅋ)의 말씀으로는 일단 발병 시점에서 2년간 재발이 안 되면 재발 확률은 현저히 낮아진다고 한다. 거기에 5년간 재발이 안 되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완치 판정을 받게 되고, 완치 판정을 받게 되면 그 뒤로 암이 재발하더라도 그건 재발로 간주하지 않고 별개의 또 다른 암에 걸린 걸로 간주된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다시 암에 걸릴 확률은 일반인과 거의 같은 수준.


즉 5년이 지나야 다시 일반인이 된다는 얘기다. 아, 물론 5년이 지났다고 해서 잃어버린 입천장과 윗 턱뼈, 그리고 8개의 치아가 돌아 오진 않는다. 상어들은 죽을 때까지 이빨이 계속 자라나온다고 하던데... 상어보다 못한 비루한 인간의 몸.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아 들어도, 암환자들에게는 언제나 형벌처럼 따라다니는 무언가가 있다. 즉 나는 암에 한 번 걸려서 암 덩어리가 생긴 적이 있고, 그걸로 수술을 받았으며, 언제 또 그런 흉측한 넘이 다시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 공포는 아마 죽을 때까지 항상 나와 함께할 것이며, 수시로 내 의식 속에 현실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자다가 꿈도 꾼다. “폐에 암이 생겼습니다. 폐를 들어내야 합니다.” 이런 소릴 꿈 속에서 듣게 되면 자동으로 식은 땀이 나며 잠에서 깨게 된다. 일반인들은 절대 이해 못 할 느낌이다. 사실 암에 걸리기 전과 후는 결코 같은 삶일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하다. 죽음에 한 쪽 발을 걸치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암환자의 삶이다. 그것 뿐이다. 그것 말고는 다를 게 없다.


나는 평상시의 삶으로 다시 돌아왔고, 음식을 씹는 것이 조금 불편하고 발음이 약간 새고 체력이 조금 떨어져서 집중하기 힘드니 글을 쓰기도 조금 더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났고 제자리에 돌아온 셈이다. 정말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나는 암환자로서 살아갈 것이며 남은 생을 항상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살아가겠지만, 그 또한 나의 삶이고 그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게 인간의 위대함 아니겠는가.


이걸로 딴지 마빡에의 “복귀의 변”을 갈음하기로 하자.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