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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08. 목요일

햄촤





 

 

김용화 감독의 영화 <미스터 고>가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망했다고. 엄청나게 홍보하는 분위기로 봐서 그래도 본전은 찾으려니 예상했던 터라 의아하기도 한 게 사실이다. 나야 원래 야구를 별로 안 좋아해서 관심이 없긴 했는데, 야구하는 고릴라의 이야기가 궁금한 관객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나보다.

 

사실 영화의 개봉보다도 기뻤던 건, 덕분에 허영만 작가의 원작 만화가 복간됐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느낀 게 나 혼자만은 아닐 걸? 누가 뭐래도 허영만 작가는 부모님 세대서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 인기작품을 내놓는 전설의 레전드니까. 아무튼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서점까지 한달음에 달려가서 지르고 말았지. 권당 정가 12800, 만만치는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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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읽으며 이 내용을 어떻게 영화로 옮겼단 거지?’ 싶었는데, 듣자 하니 기본적인 설정, 그러니까 고릴라를 데려와서 야구를 시킨다는 것만 빼면 만화와는 다른 이야기였다고. 하긴, 만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막판에 가면 치타가 주자로 나오고 매가 외야수를 보는 막장까지 치닫는 내용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기는 것도 문제다.

 

아무튼 그 돈을 쳐들이고는 왜 망했어, 진작 제대로 좀 만들지. 영화는 신정 연휴 즈음에 TV에서 재미나게 볼 수 있길 기대하겠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허영만 작가의 야구만화는 <미스터 고>가 아니라 <10번 타자>라는 작품이다. 혹시 아는 분들이 계실랑가. 검색을 해보니 88년에 출간된 작품. 벌써 25년도 전에 읽었단 얘기다. 두 권 분량의 짧은 만화였지만 독특한 아이디어 덕분에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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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작품.

 


그 독특한 아이디어라 함은 바로 등장인물들이 야구를 배우는 방법인데, <공포의 외인구단마냥 목숨 걸고 ‘X나게훈련하는 게 아니라, 각각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도사님들을 만나 비법을 전수 받는다는 점이다. 그 비법이 뭐냐고? 야구 말고 딴 짓을 하는 거다. 그것도 아주 열나게.

 

주인공 강토는 야구부원이지만 만년 벤치 신세에 물 주전자 담당이다. ‘10번 타자란 경기에 나갈 일이 전혀 없는 타자, 즉 후보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야구도사를 만난 강토는 도사에게 당구를 배운다. 오타 아니다. 야구 아니라 당구 맞다.

 

아니, 당구를 쳐서 야구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당연히 말도 안 된다. 그런데 허영만 작가는 그걸 설득력 있게 만든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믿음직스럽게 만드는 거, 그거야말로 이야기꾼으로 필요한 재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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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바, ? 내가 우라마와시 제대로 보여줄게...

 


아무튼 당구의 마스터가 된 강토는 날아오는 공만 봐도 공의 어느 부분을 쳐야 타구가 잘 날아갈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눈을 갖게 된 덕분에 오시, 맛세이, 시끼등을 구사해 공에 시네루를 줘서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게 된다. 대체 뭔 소리냐고? 왜 이래요, 선수끼리... 다 아심서...

 

한 편 강토의 친구 오사발은 벌목을 배워서 도끼질을 통해 타격을 깨우친다. 고목나무를 손에 피가 나도록 도끼로 찍어대며 훈련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최고의 타점,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 정확히 도끼를 찍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타격에 대한 깨우침이 되어 그를 후보에서 4번 타자로 변신 시킨다.

 

만년 후보들이 갑자기 주전급 선수가 되었으니 기존 선수들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다른 선수들이 전부 팀을 뛰쳐나가 저만의 야구도사를 찾아 나서는데, 한 명은 연탄 나르기를 통해 안정된 자세로 수비를, 한 명은 작살 낚시를 통해 타격을, 또 어떤 선수는 진주에 바늘 꿰기를 연마하고...

 

요즘처럼 독자들이 깐깐한 시대에 이 만화가 웹툰 형식으로 연재됐다면 씨바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하는 댓글 세례를 받았으려나. 아가들아, 니들이 뭘 몰라서 그래. 존나 재밌었어. 500원도 아까워서 유료 웹툰 안 보겠다는 미래의 대머리 유망주들이 뭘 알간?

 

아무튼 극과 극은 통한다는 사실을 나는 <10번 타자>를 통해 만화로 깨우친 셈이다. 근데 잠깐, 이거 지금 생각하니 완전 무슨 생활의 달인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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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처묵처묵 하는 걸로 야구를 깨우치게 될 것 같진 않고...(그래도 돈은 많이 번다던데)

 


원고를 쓰기 위해 <10번 타자>를 검색하다가 이 만화의 주인공들이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고 그냥 중학 야구 선수들이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 중학 야구에서 당구를 배우고 도끼질을 하고... 역시나 지금 생각하면 80년대란 그런 시대였나, 하고 되새겨 보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피구왕 통키>에 나오는 그 무시무시한 마구를 던져대는 놈들도 전부 초등학생이었다. 무서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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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ㅋㅋㅋ 초딩 새1끼 아놔

통키: 너도 마찬가지야 이 새1끼야...

 


본인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트위터를 열어 타임라인을 복습하는 것. 하루를 잉여롭게 시작하는 나만의 비결이다. 그렇다. 나는 트위터의 달인...은 아니고 그냥 잉여다. 존나 잉여.

 

오늘도 변함 없이 잉여 느낌 물씬 풍기며 타임라인을 훑던 중, 링크를 통해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폐교 위기에 처했던 중학교 야구부가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전교생이 고작 52명인 학교에 전국대회는 첫 출전이었으며, 그것도 창단 2년 만에 이룩한 일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만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기사의 주인공은 만화 캐릭터들이 아닌, 경남 양산의 원동중학교 야구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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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링크>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야구특화 학교 전략. 학교와 학부모, 시와 교육청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여 2년 만에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열심히 야구를 연습한 학생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이 원동중학교의 학생들이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10번 타자>같은 고된 훈련을 겪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나 승리에 대한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오히려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며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일본만화 <H2>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 공교롭게 남녀공학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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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런 현실 오글 돋는 대사를 입으로 읊으면서... 하진 않았겠지만.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만화처럼 고된 훈련을 통해 고수로 거듭날 필요는 없다. 원동중학교 학생들이 대회성적과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야구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걸 해서 뭐에 쓰게?" 라는 질문 없이,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하는 야구. 그렇게 야구를 정말로 즐기면서 성장하면 야구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0번 타자>의 강토와 다른 선수들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깨우침을 야구에 반영했듯 말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그런 거 없다. 잉여 칼럼에 무슨 결론씩이나. 그냥 쓰니까 쓰는 거다. <미스터 고>에 이어 <10번 타자>도 복간 되어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결론이라면 결론 되겠다. 기승전잉! 운 좋으면 다음 주에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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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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