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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Let it be

2013-08-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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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09. 금요일
멀더요원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물을 위로 보내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건 에너지니 뭐니 하는 과학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자연현상이다.

같은 원리로, 높은 지역에 내린 빗물은 낮은 곳으로 이동하여 작은 개울을 만들고 이것들이 모여 실개천, 하천을 형성하며 최종적으로는 가장 낮은 곳인 바다까지 이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물은 지형에 따라 침식, 퇴적 등을 반복하며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데, 내리는 비의 양이 평상시 물길이 수용할 수 있는 양을 넘는 경우 범람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천이 범람하면 물과 함께 이동하던 토사가 퇴적되어 '자연제방'과 '배후습지'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범람원'이라고 하며 이렇게 형성된 비옥한 퇴적평야는 중요한 생활터전이 된다.

이 중에서 배후습지의 경우 일반적으로 지대가 낮아 홍수시 정기적으로 침수피해가 발생하므로 주로 자연제방에 취락이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최근 '기술의 발달'로 배후습지에도 취락 형성이 가능해졌다.

여기서, '기술의 발달'이란 홍수시 배후습지로 넘쳐 들어온 물을 다시 하천으로 퍼내기 위한 기술, 즉 '아랫물을 위로 흐르도록'하기 위한 기술이며 어떤식으로든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는 기술이다.

여기까지는 대한민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적절히 통과했다면 대부분 알고 있을 상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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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원 : 이건 뭐, 고등학교 지리시간도 아니고...>



요약하자면, 홍수시 정기적으로 침수가 발생하는 배후습지에 취락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정기적으로 사용되는데 이것은 결국 돈이 지속적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러한 '주기적 침수'와 '지속적인 에너지 소비'를 막기 위해 도시개발 단계에서는 취락지역을 만들기 전에 그 지역을 매립해 지반을 높게 만들거나, 상류에 댐을 지어 하천수위 자체를 낮추는 등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도시를 꼭 그런 침수위험지역이 아닌, 침수위험이 더 적은 곳에 만드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강남개발

1967년 11월, 정부에 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확정되었고, 이후 강남일대의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통해 건설에 필요한 용지와 비용을 충당했다.

토지구획 정리는 원래 농지를 정리하는 방법인데,

1) 토지의 주인이 자신의 땅의 일부를 공공용지로 무상으로 제공

2) 정부는 제공 받은 토지의 일부에 공공시설을 건설하고 남은 토지(체비지)는 팔아서 개발비용 등을 충당

3) 땅 주인은 공공용지로 일부를 내놓은 대신 그 주변의 땅 값이 올라 '야호~! 신난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고속도로 건설비용이 없었던 당시 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 '체비지' 매각 시 땅 값이 오르면 더 많은 돈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정부는 땅 값 상승을 원했고 따라서, 국가주도의 '강남 부동산 투기'를 비롯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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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비지>



지형적으로 강남일대는 하천의 범람원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양재천의 범람원이었던 개포동은 상습적인 침수에 따라 진흙으로 질척였기 때문에 '개펄'에서 유래된 지명이고, 신사동은 범람에 따라 한강변에 발달했던 모래사장(沙)에서 유래되었으며, 포이동은 한강물이 범람하는 물미리 마을이었다. 심지어, 잠실은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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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1960년대, 백사장이 저게 그냥 만만한 백사장이 아냐...>



이러한 범람원의 토지는 대부분 정부의 소유이거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싼 가격으로 많은 토지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의 많은 도시들은 정책적으로 도시의 확장이 필요한 경우 주로 범람원으로 확장해 왔는데, 바로 강남지역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저지대에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지대를 흙으로 메꾸어 높여야 하기 때문에 '한강개발 3개 년 계획' 등 각종 개발계획에 따라 동부이촌동, 흑석동, 서빙고동, 구의동을 비롯한 강북지역과, 반포지구, 압구정동, 잠실 등의 강남지역에 대규모 매립공사가 진행되었다.

그 시기에 밤섬의 주민들은 강제이주되고 밤섬은 통째로 '폭파'되어 여의도 개발을 위한 '매립용 골재'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잠실의 경우 매립용 토사가 부족하자 연탄재를 비롯한 쓰레기를 매립하고 그 위에 서울시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흙을 쌓았다(그런 이유로,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아침 내내 비가 와도 오후에는 운동장의 물이 다 빠져 교련수업을 할 수가 있었고, 학생들은 다른 반으로 교련복을 빌리러 다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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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골재로 본 사람들 : 신나셨음>



여기에 더해, 1973년 소양강 다목적댐이 완공됨에 따라 한강 인도교 수위는 약 2m까지 조절이 가능해져 강남일대는 더 이상 비만 오면 침수되어 질척거리지 않게 되었고, 강남개발에 더욱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

이후 계속된 매립과 개발을 통해 잘 알다시피 강남일대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이 되었고 수많은 '졸부'를 양산하며 부동산 불패신화를 이어나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 글의 주제가 부동산 투기가 아니므로 여기까지만.

어쨌거나 '섬을 폭파하여 골재로 사용'하고 '쓰레기를 매립'하는 무지막지하고 독특한 사업 이후에도 수차례 공학적 논리가 아닌 '가장 높은 곳'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 하천은 복개되고 자연 지형을 변형시켰으며 그 결과 지금의 서울, 강남이 만들어졌다.

뭐, 좋든 싫든 이미 그렇게 되어 버린 걸 어쩌겠냐마는... 여기서 꼭 지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공학적 논리에 따른 필요성이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한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른 개발이 아닌, 
누군가의 특정한 목적을 위한 독단적 결정과 업적을 세우기 위한 개발.


앞서 언급한 강남개발은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 충당을 위해 시작되었고, 전두환은 올림픽 열겠다고 김포대교에서 암사동까지 한강수심을 2.5m로 준설하고 상하류에 보를 설치해 유람선을 띄웠다.

이명박은 청계천을 복원 한다며 문화재를 돌덩이 취급하고 한강물을 퍼올려 청계천에서 흐르게 만들더니만, 훗날 간땡이가 부어 도대체 목적이 뭔지도 불분명하게 4대강까지 그냥 파헤쳤고, 오세훈은 한강 르네상스라는 참 '창조적'인 환경미화사업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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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개발시 발굴된 문화재 : 이명박이 돌덩이라고 했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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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별 상관없는 탈레반의 석불 문화재 폭파 장면 : 
이 두 그림을 통해 그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수준을 동시에 떠올려선 안된다... 절대로>



사실, 강남개발을 시작하던 시기에 서울 인구는 1년에 10만 명씩 늘어나 도시문제가 심화되고 있었던 시기였고, 윤치영이라는 '친일파 출신' 서울시장은 국회에서 '서울을 좋은 도시로 만들지 말아야 농촌 인구가 몰려오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인구분산을 위한 조치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집단과 제대로 된 공학적 논리를 가진 집단이 있었다면 하천변의 상습침수구역을 대규모로 메꾸어 군사작전처럼 개발하는 대신에 이미 형성된 다른 지방의 도시들에도 일자리가 많이 생기도록 지원했을 것이다.

서울로의 인구집중보다는 지역별로 특색을 가진 중소도시가 많이 형성되었을 것이며, 적어도 서울이 지금처럼 출퇴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도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제일 좋은 경우 여름에 동해안으로 피서가는 대신 뚝섬, 압구정, 여의도 등의 백사장에서 강수욕 내지는 캠핑을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만약에 누군가의 주장대로,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만든 경부축에는 이미 교통수단도 어느 정도 마련되어있는데 거기다가 고속도로 지을 돈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추진하느니 동서방향으로 서울~강원간 고속도로를 먼저 만들었다면 강릉과 부산은 비슷한 규모의 대도시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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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돈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그러지 말라고...>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멀쩡히 살고 있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섬을 통째로 폭파해 골재로 사용하는 험악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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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이 '무가치한 섬이므로 폭파해 버리자'고 했던 그 섬 : 
이런 식으로 니들 눈에는 밤섬이 그냥 골재로 보였다는 거지?>




2. 서울시장과 경전철

얼마전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남역 침수문제를 2015년까지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했다.

원래 저렇게 '~까지'라고 시기를 못박아두고 시작하는 일들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는데, 서울시의 계획과 추진상황을 보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 강남역 인근에 한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남에는 한강 범람원을 매립해 만들어진 저지대가 강남역 말고도 많기 때문에 강남 전체, 또는 서울시 전체를 다 해결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몇년 전부터 빗물펌프장의 빈도를 상향조정하는 사업을 하긴 했는데, 거기도 나름 아주 '미묘~한' 문제가 있고... 뭐, 어쨌든 적어도 강남역 인근은 해결될 수도 있으니 기대할 사람들은 기대하고, 잘 안 되더라도 너무 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욕을 하려면 그런 지역을 매립해서 택지로 개발한 놈들과 거기서 뭔가를 잔뜩 해처먹은 놈들부터 욕해야지(辱言思原 : 욕을 할때는 근원을 생각하라).

박원순 쉴드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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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 업적도 없는 시장이 되고 싶다'던 박원순 시장이 최근들어 자꾸 경전철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민자사업'으로...

박시장은 "경전철을 포함한 도시 철도 정비는 시민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다."라고 했고, 경실련 등에서는 '서울시 보고서에도 경제성 없는 걸로 나왔고, 돈낭비 토건사업이니 하지 마셈'...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시민단체의 입장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논쟁이 진행중인데, 전에 민자사업에 대해 설명한 바 있지만, 민자사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정부의 재정여력이 없다고 해서 긴급히 필요한 사업을 계속 미루는 것도 문제니까 이런 경우 좀 비싸더라도 민간자본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등에 대해서는 계속 논쟁이 진행중인데, 억 단위의 숫자들이 나오는 그런 복잡한 얘기들을 떠나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그냥 단순하게 두 가지 측면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째는, 그것이 비싼 민간의 자본으로 해야 할만큼 긴급하게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발표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작성한(걔가 이걸 직접 썼겠냐... 누군가 대신 썼겠지) 성명서의 문구를(기분 나쁘지만 그냥 웃어나 보자고) 인용한다.

"현재 수도권은 과밀화 진행 단계를 지났습니다."

아마도 이명박이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데, 사실 서울시 인구가 약간씩 줄어들고 있다.

뭐, 연령대별 인구나 이런 걸 떠나서, 인구가 줄고 있다면 그냥 단순하게 앞으로 발생할 교통혼잡이 지금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을 거라는 얘긴데 과연 그게 민간자본을 도입해서 해야 할만큼 시급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태 불편한 거 버텨왔는데 만약, 그렇게 시급했다면 집권 초기에 시작했어야겠지.

둘째로, 서울시 구석구석까지 경전철을 연결한다면, 분명 경전철 역사 주변의 땅 값은 투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거품이 빠지고 있는 서울지역 부동산에 대규모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부동산에 대한 시민들의 착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실제로 경전철 역사 주변의 부동산으로 재미를 본 사람이 생긴다면 이후 경전철에 대한 더 많은 요구가 발생할 것이다. 더 나아가 다음번에는 경전철하겠다는 후보를 시장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이건 '친일파 출신' 서울시장이었던 윤치영의 생각과도 약간은 비슷할 수 있는데, 지금 서울시의 인구밀도는 세계 주요도시보다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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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은 제일 좁은데 인구는 제일 많어. ㅆㅂ... 이렇게 사는 게 좋냐?>



뭐... 경전철이 안 생긴다고 해서 서울을 떠나지 않을 사람이 떠나지는 않겠지만, 인구의 서울집중 현상을 완화시키는 방향이 아닌 건 분명하다.

어쨌거나 장기적으로는 이것이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에 부정적 요인이 될지언정 긍정적 요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서울시 입장에서 서울시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왔던 '유시민'씨가 '경기도 규제완화'에 대해 했던 말을 인용한다.


"제가 이걸로 표가 다 떨어진다고 해도 양심상, 양심껏 말합니다.
경기도지사로서 국익도 함께 생각하면서 국가 균형발전 속에서 경기도 발전을 추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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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꼭 그래서 표가 떨어져 나간 것 같지는 않구요...>



박원순 시장이 성품상 내년 선거를 위해 뭔가를 막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금, 서울시는 9월까지 모든 절차를 완료하고 국토부로부터 승인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뭔가 절차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인데, 이런 절차에 능한 서울시 건설관련 고위 공무원이 손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시점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감히 충고를 하나 한다면, 서울시 만의 공직자가 아닌 대한민국의 공직자 입장에서 결정을 신중히 하시고, 주변에 있는 서울시 고위직 공무원들을 조심하시라...(어떤 국장급의 경우는 한명숙이 당선될 뻔 했던 선거에서 한명숙이 이기는 걸로 나오자 실제로 짐을 쌌는데, 강남의 개표가 시작되면서 오세훈이 앞서나갈 때 짐을 다시 풀었다는 '루머'도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가장 높은 곳'에서 결정된 일들은 반대가 있건 없건 대체로 '실행'되어 왔고 현재의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체로 그 결정에 반대되는 모든 자료는 편집, 왜곡, 조작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이 경전철이 그걸 최초에 추진하려던 어떤 집단에 의해 성급하게 민자사업으로 추진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아마도 노무현 지지세력이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앞에서 할 말 없어지듯, 박원순 지지자들이 경전철 앞에서 할 말 없게 만들 것이다.


*추가
인간이 자연을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될 이유는 없다. 어떤 시설이든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그건 반드시 해야 한다. 근데, 생각을 신중하게 하고, 작작 좀 했어야지.

결국, 이렇게 자연을 인간의 의지대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폭파되었던 밤섬은 자연의 힘에 의해 다시 퇴적되어 만들어졌다.

마치, 인간이 아무리 지랄을 해봐야 대자연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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