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8. 19. 월요일
논설우원 파토
4년 전 오늘 저녁, 교수질을 하는 오래된 친구와 우원은 비감 속에서 함께 신촌 세브란스를 찾았다. 그곳에는 숱한 생명의 위협과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 나라의 현대를 굵직하게 살아 온 한 노인이, 영욕으로 어우러진 생을 마치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무슨 대단한 결기를 갖고 간 것은 아니다. 그를 개인적으로 유별나게 숭배해서도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그에게 빚지고 있는 무엇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한 시대를 불태우며 살다 간 사람에 대한 예의로 찾아 간 거다.
그 곳은 정식 빈소는 아니었고 이후 국장을 대비해 임시로 마련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대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대절 버스와 조문객으로 가득할 줄 알았다.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만으로 일손을 놓고 몰려들 인파를 우려해 가는 것 자체를 고민했을 정도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갈 정도니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도착한 그 곳은 의외로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빈소가 표시도 제대로 안 돼 있어 찾기조차 어려웠고, 인파는커녕 되려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쪽에 가까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황망해하던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우연히 그 단서를 찾게 된다. 호남 쪽 말씨를 쓰는 중년 남자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거다.
“꼭 절 하고 와야 되나.”
“에유, 여기까지 왔는데 절은 안 해도 되겠지.”
“그래. 괜히 사진 찍히면 좋을 거 없어.”
차림이나 분위기로 보아 사회적으로 깨나 성공한 사람들이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결국 빈소까지 들어가지 않고 돌아나갔다. 그런 그들의 태도를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좀 지나쳐 보였다. 고인을 그렇게 따르고 공경하던 사람들이 막상 죽고 나니까 저리도 냉정하단 말인가, 지금이 무슨 박정희 중앙정보부 시대라고 저렇게 벌벌 떠나, 이런 생각이 들더란 말이다.
세브란스의 충격적인 썰렁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6일간의 국장기간 내내 비슷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석 달도 안 됐던 때다. 소위 야권성향 사람들은 죄다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고, 각종 행사를 통해 전의를 가다듬으며 3년만 참으면 좋은 세상 온다고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따라서 그 와중에 일어난 김대중의 죽음은, 비록 노령에 의한 병사일 망정 그 생이 가진 의미를 보더라도 뭔가 기폭제가 될 듯 했는데 현실은 반대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호남인들의 소극적인 태도나 그날 직접 본 오바스런 두려움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당시 우원은 이날의 기묘한 느낌을 기사로 썼었다. 허나 이후의 본지 서버 디도스 공격으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듯 하다)
국장 당일에도 이렇게 많은 빈 자리가 남아 화제가 될 정도였다.
좌석들은 초대권을 보낸 사람들의 수에 맞춰 마련된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며 당시에도 약간의 오싹함을 느끼긴 했지만.
우원이 이 알 듯 모를 듯한 상황의 내막을 이해하게 된 것은 3년 반이 지나, 작년 대선 이후가 되어서다. 대단한 비밀이 있다는 게 아니라 다들 잘 아는 대선의 과정과 결과, 거기에 최근 국조 증인선서 거부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어이 없는 사태를 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됐다는 말이다.
결국, 그때 3년만 참자 운운하고 떠들던 우리들은 세상을 완전히 잘못 읽고 있었던 거다. 그 모든 사건들 속에서조차 우리는 화만 냈을 뿐 어리석으리만치 순진했다. 가카의 당선과 광우병 사태, 노무현 서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잠깐의 반동일 뿐이라고, 그 찰나의 시기만 버티면 사필귀정, 당연히 좋은 날들이 돌아올 거라고 마냥 믿었던 거다.
그러나 5.18의 학살을 위시해 오랜 세월 모진 탄압과 차별을 받아온 호남 사람들은 그 왁자지껄함 속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흐름의 변화, 거대한 세(勢)의 역전을 본능적으로 눈치 챈 것이다. 노무현에 이은 김대중의 서거는 앞으로 다가올 거꾸로 된 세상의 전조라는 것, 보수 기득권층의 반격은 3년만 지나면 당연히 무력화될 무엇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평생 몸에 배어 온 생존에의 긴장감, 그 촉수를 통해 감지한 거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두려움은 4년 여가 지난 오늘 눈앞의 현실이 되어 있다. 대선은 정보부의 노골적인 개입으로 얼룩졌고, 그럼에도 거기에 대한 항거가 시작되는 데 무려 7개월이나 걸릴 만큼 우리는 얼이 빠져 있다. 그가 아직 세상에 있었더라도 이랬을까.
김대중에 대한 일부의 편견은 참으로 뿌리가 깊어, 노무현 영결식에서의 위 광경을 두고도 ‘권모술수의 대가다운 노련한 연기’란 말까지 돌았다.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사람에 따라 이날 그의 눈물이 미묘하게나마 좀 오바라는 느낌을 받은 경우들은 좀 있을 거다. 노무현 서거는 물론 애통할 일이지만, 그래서 우리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이룬, 민주투사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출신의 전직 원로 대통령이 저렇게 어린애처럼 오열할 것까지 있나, 하는 류의 무엇 말이다. 우원도 조금은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저 오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가 차마 말로는 하지 못했던, 아니 그날 추도사를 통해 말하려 했지만 정권이 금지했던 이야기들이 저 눈물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시대를 누구보다도 길고 굵게 살아온 거인, 권력과 독재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그날 느낀 것은 우리의 분노나 슬픔보다 훨씬 진하고 깊은 무엇이었을 것이다. 거대하게 되살아나 덮쳐오는 반민주 수구세력의 실체,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것과 싸우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시간도 없다는 절망감이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리고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아, 김대중은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힘없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걸쳐 이루려 했던 가치들이, 어쩌면 스스로 대통령이 되면서 이루었던 거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그 무너짐이 성곽의 꼭대기라고 여겼지만 그는 발밑의 진동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돌아간 후 4년,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은커녕 독재자의 딸이 오직 그 끗발만으로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제 이 나라는 정보부가 제 맘대로 대선에 개입해 대통령을 만들어내고도 죄의식조차 갖지 않는, 수치스러운 후진국이다.
와중에 김대중과 오랜 세월 함께 했던 한광옥은 새누리당의 높은 분이 되었고 리틀 디제이로까지 불리던 한화갑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이 박근혜 지지를 공식 선언했었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던 평생 추구했던 가치를 노년의 영달을 위해 버린 거다. ‘대통합’은 민주주의나 인권의 기본 원칙이라도 이해하는 상식적인 보수와 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지,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에 나오는 분이나 그녀를 둘러싸고 부정과 전횡을 일삼는 수구 부패세력과는 하고 싶다 한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정일 뿐이지만, 만약 김대중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국정원 선거 개입에서 가신들의 배신에 이르기까지의 이 모든 일들은 적어도 이렇게 뻔뻔한 형태로는 일어나기 어려웠을 거다.
인수위 시절, 국민대통합위원장 한광옥과 대통령 당선자 박근혜
결국 문제는 용기와 지혜, 전투력을 겸비한 리더십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 중 하나다. 정책이고 전략이고 다 떠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인물, 깃발을 들려는 사람이 너무 없다. 어떤 이는 너무 몸을 사리고, 어떤 이는 너무 점잖고, 어떤 이는 너무 우유부단하며 또 어떤 사람은 그냥 깜냥이 안 된다.
민주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들이 훼손됐는데, 그 사실만으로 일단 양심에 따라 목소리를 높여야 함에도 남의 눈치를 보거나 돌아올 반응부터 걱정하거나 이후의 입지를 계산하고 앉아있다. 우리가 아는 김대중이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 저 양반들처럼 스리슬쩍 뭉개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촛불이 움직이니 이제서야 눈치 보며 꿈틀꿈틀, 이런 식은 아니었을 거다.
인정하자. 그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 멘붕과 피로감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왔다. 정보기관의 대통령 선거 관여와 조작은 분명한 대선무효의 이유가 되고, 되어야만 한다는 엄연한 사실 말이다. 이건 그저 기본의 기본으로 이 나라는 물론 선후진국 막론하고 그 어떤 민주공화국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다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선거를 진짜 다시 할 수는 없잖아, 박근혜를 하야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잖아, 같은 따옴표 붙이는 소리들이나 하고 앉아있다.
재선거고 하야고 뭐고는 다 나중 문제다. 그런 것은 이 일이 어떻게 풀려나가냐에 따라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결과다. 그와는 무관하게 지금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국정원 사태가 공화국의 가치와 헌법을 더럽힌 불법 행위로써 충분한 선거 무효의 사유라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하고 또 국민이 납득하도록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명백한 부정에의 침묵은 패자의 우아한 승복이 아니라 자기기만이자 월권일 뿐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의 룰을 지금 이 거짓의 제국에 적용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그럼으로써 이 정권이, 실제 권력의 소재와 유지 여부와는 별개로, 잘못된 바탕 위에 세워져 정통성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에 제대로 남겨야 한다. 이후 대통령이 사과하거나 재선거를 치르거나, 그런 나중 상황을 미리 점쳐서 이건 어차피 안 될 거고 저건 지나치다며 계산하면서 움직이는 것, ‘원칙적으로’ 옳다면 양심의 목소리를 따르면 되는 거지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는 것, 그건 우리가 그토록 경멸해 마지 않았던 직업 정치꾼들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아니냐.
돌이켜보면 유신이나 5공 때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침묵했다. 부정과 부패, 불법과 폭력이 자행돼도 항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무슨 ‘원칙적인’ 소리를 한들 ‘현실적으로’ 박정희나 전두환이 무너질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라고 아무리 욕한다 한들 ‘현실적으로’ 재선거를 할 리 없고 광주에서의 일을 아무리 떠든다 한들 언론이 다룰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조차 극소수의 사람들은 외롭게 목소리를 냈다. 투옥 당하고 고문 당하고 나아가 사형 당하고, 주위의 가족친지들도 투옥 당하고 고문 당하고 사돈의 팔촌이 경영하는 사업체까지 무너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말이다. 바로 그들 덕에 침묵하던 대부분의 우리들이 민주주의의를 향기나마, 잠시나마, 맡아 볼 수 있었던 거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김대중은 그들의 리더였다.
그렇기에 4년 전 김대중의 죽음, 그리고 그 눈물을 이제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넘겨준 민주주의의 바통이 지금 어느 진흙구덩이에 떨어져 있는지, ‘어차피 비 오는 데 계주는 글렀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열심히 뒤져야 한다. 이제라도 바통을 붙잡고 다시 뛰지 않으면 진흙구덩이에 처박히는 것은 결국 우리들과 우리 자식들의 육체와 영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점은 이걸 내버려 두면 결코 발목 정도나 빠지는 진흙구덩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3년 반 후에 사람 사는 세상 대신 이게 왔듯이, 방치해 둔 구덩이는 언젠가는 죽음의 늪이 되어 우리 모두를 머리 꼭대기까지 집어 삼키게 될 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을 저지르고도 제대로 비판 받지 않은 권력은 언제나 그래왔다. 그러니 앞뒤 재지 말고 일단 사리부터 명확히 따지자. 이것도 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선배들을 모욕하고 후배들에게 죄를 짓게 된다. 이런 것을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죄라고 부른다.
아래 노무현의 서거에 대한 김대중의 당시 글을 남겨둔다. 읽어본 분들도 있겠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되새기면 느낌이 다를 거다.
다시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허나 그의 진정한 명복을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이 많을 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추도사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수록)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 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 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 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 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 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 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 같습니다, 정말 꿈 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2009년 5월 29일
15대 대통령 김대중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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