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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이리 추천7 비추천0

2013. 08. 23. 금요일

황야의이리









언제부터인가 편의점 냉장고에 일본맥주들이 진열되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전체 맥주의 40% 정도가 일본맥주로 진열되어 있는 편의점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물론 가격도 예전에 비하면 놀랄만큼 싸졌다.


강남은 물론이고 지방 소도시에도 이자카야라고 하는 일본식 선술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더니 쿨피스 종이팩 같은 용기에 담긴 사케부터 멋들어진 병에 담긴 사케까지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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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에 현찰 좀 꽃혀 있거나 금박 신용카드 꽃고 다니는 중년 남자들은 참치회에 준마이 다이긴죠 급 사케 정도는 마셔줘야 후까시가 잡힌다며 일본어로 된 사케 정보를 줄줄 외워댄다.


언제부터 이렇게 일본 술들이 많이 유통되었는지 궁금해져 없는 잉여력을 발동해 검색에 들어갔다. 검색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나온 게 2012년 2월2일에 개정된 주세법 시행령이다.


이전의 주세법 시행령엔 외국의 술을 수입하는 업체가 국내의 도, 소매 업을 겸업할 수가 없었지만 개정된 후엔 수입업자가 도, 소매를 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국내의 유통망과, 국외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대형업체들의 비즈니스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그런데 이 주세법 시행령의 개정은 꽤 오래 전부터 이야기가 흘러 나오던 사안이었다.


한, 칠레 FTA 체결 이후 칠레에서 수입되는 와인을 판매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업체들이 꽤 많은 건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작년에 와서야 갑자기 개정되었고, 개정이 되자마자 2012년에 사케라고 불리는 일본 전통주(이하 사케라고 칭한다)의 수입이 전년 대비 106% 늘었다.


수입량은 두 배 넘게 늘었지만 수입가격은 전년에 비해 리터당 약 40%가 싼 가격에 수입된 것이다.


2012년 신문들은 이런 기사들을 도배했다.


'일본술 불황 모른다'...사케 수입 사상 최대 - <머니투데이>


일본 '맥주, 사케' 불황 모른다...수입 급증 - <매일경제>


일본 맥주와 사케의 수입이 급증... - <스포츠서울>


'일본술 불황 모른다'...사케 수입 사상 최대 - <중앙일보 뉴스>


순한 술 바람...일본 사케 수입 사상최대 - <한국경제>


모두 비슷한 제목의 광고성 짙은 기사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보통 사케는 발효주이기 때문에 빚어져서 출하되면 1년 안에 마시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오래되면 발효가 지속되어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수입되었던 사케는 2011년, 바로, 일본 원전사고 원년에 수확된 쌀로 빚어졌을 확률이 높다.


사케는 쌀과 물, 그리고 효모로 빚어진다. 사케의 등급을 칭하는 준마이(純米)는 순수한 쌀이라는 뜻이다. 이때 일본 전역에선 묵은쌀 사재기 열풍이 일던 때였다.


일본 '방사능 쌀' 공포에 묵은쌀 사재기 - <경향신문>


일본 '세슘 쌀' 우려에 묵은쌀 사재기 바람 - MBC


日 세슘 쌀 우려에 묵은쌀 사재기 바람 - <연합뉴스>


'세슘 쌀' 원산지 세탁 괴담... 日 '묵은 쌀 사재기' 열풍 - <서울신문>


햅쌀 방사능 오염 공포, 日 묵은 쌀 사재기 바람 - <국제신문>


방사능쌀 공포, 도쿄 벌써 작년쌀 사재기 - <JPNews>


일본 '혹시 쌀에도 방사성 물질이...' - <부산일보>


이럴 때 생산된 사케들 이었다. 가격이 떨어질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때다.


이런 미묘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선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되었고 이후 그해에만 전년 대비 두 배가 넘는 사케가 수입된 것,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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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주세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관련기사로 눈여겨 볼 만한 기사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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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112/e20111207103845120420.htm


이 기사에서 언급한 자본력과 전국 판매망까지 잘 갖추고 있는 일부 유통 대기업에서 번뜩 떠오르는 회사가 하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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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롯데월드 공사현장


고층 건물을 짓느라 군용기 항로마저 바꿔버린 위풍당당!! 롯데는 '롯데 아사히주류'라는 회사에서 일본산 사케와 맥주를 수입하고 있으며 수입,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롯데는 일본에서 기반을 닦은 기업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생산된 사케와 맥주를 가장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일본 사케의 방사능 안전 기준치가 300Bq/kg 이니... 모두 기준치 미달이라 안전하다느니 그런 논란 이전에 분명히 일본 내에서도 불안해 하는 쌀로 빚은 사케가 갑자기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또 관계법령이 바뀌었다. 그리고 뜬금 없는 사케 광고성 기사들이 넘쳐났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대기업과 정부의 답변은 '이는 대기업과 전혀 관계가 없고 우연의 일치일뿐이고 방사능 걱정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것이다' 라는...


실제로 얼마전 <조선일보>는 '방사능 괴담'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다음날 대한민국 총리라는 사람은 방사능 괴담을 유포하는 사람을 찾아내 엄중 처벌하겠다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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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총리가 일본 정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지난 19일 기자회견,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방사능 오염수 300톤이 유출되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최근 며칠 사이 오염수 유출이 의심되는 저장탱크 2개가 새롭게 확인됐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원전사고 이후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한 일본정부에게 우려를 표한다.  




일본 내에서도 쉬쉬하는 방사능 문제,


적절한 타이밍에 개정된 한국의 주세법 시행령,


언제부턴가 싼 가격으로 대량 수입되고 있는 일본 사케,


아무 생각 없이 그걸 즐기는 한국인들,


방사능 괴담 유포자를 처벌하겠다는 한국 총리. 



음모론이다.


다만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건 하나,


세상에 공짜 없다.


갑작스레 싼 가격으로 일본 사케를 즐길 수 있는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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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steppenw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