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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들어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된 몇 가지 표현을 반추해본다.

 

 -박읍읍

 -ㄹ혜

 -마티즈

 -판사님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난세에도 센스 오브 휴머를 잃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심각한 시국을 비틀고 풍자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이유는, 공영 방송의 언론 기능이 마비된 것과 더불어, 각 방송사들의 정치 풍자가 완전히 사멸한 상황에서 그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간간히 맥이 끊기지 않으려는 발버둥도 있었다. 그러나 강성범의 뉴스 풍자 코너는 다시보기가 불가하더니 사라져 버렸고, 민상토론은 행정지도를 받았다. 엄혹한 군사정권에서도 풍자를 멈추지 않던 최양락은 미리 통보도 받지 못하고 하루 새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때로는 개그맨에게 풍자를 요구하는 의견도 나왔다. 본보기를 여러 번 목격한 생활인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박읍읍, ㄹ혜는 박근혜 대통령을 의미하는 말이다. 박근혜 실명을 밝히는 순간 발생하는 모든 법적 문제를 피하며, 우스꽝스럽게 넷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엔 보수 정권 들어 국민들이 철저하게 체화한 자기검열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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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범죄를 포함하여) 그는 반드시 그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한다. 박읍읍은 대통령의 실명을 미처 언급하기도 전에 끌려가며 내는 소리, 혹은 철저한 자기검열로 자기 입을 틀어막는 소리를 텍스트화한 것이다. 소름 끼치게 두렵고 좌절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네티즌은 이렇게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도 풍자하며 나름대로 화두를 던지고자 이를 사용했다.

 

정권에 해가 되는 글이나 이미지에는 어김없이 마티즈가 찾아간다는 댓글이 무수히 달린다. 특히나 이 정권에서 수많은 인사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불법적 조작 사건과 연루된 어떤 주요 인물은 자살을 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들에서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마티즈가 등장했던 것이다. 멀쩡했던 사람이 구하기도 힘든 마티즈를 어디선가 구해 그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또한 보수 정권이 특히나 자주 사용하는 ‘공포’ ‘두려움’을 사람들로 하여금 내면화시키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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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대명사가 된 빨간 마티즈

 

판사님으로 시작하는 말은 형식으로나마 존재하는 삼권분립의 기본을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보수 정권하의 사법부는 국민 여론과 너무나 먼 기소와 판결들을 남발했다. 재벌과 고위공직자, 정권의 부역자 협력자들은 잘못이 있어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데 비해, 노동자를 비롯해 심지어 야당 의원들까지 사법부의 명백한 견제를 받아야 했다.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이 경제학자로서 TV토론에 나와 열변을 토했다. 박근혜 정부는 사면 자체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 중반부터 재벌 총수 사면이 시작됐다. 이유는 여느 때와 같이 경제 활성화다. 그러나 이혜훈 의원은 강력히 주장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쌓여온 적폐 중 하나가 재벌 사면이다. 하지만 실제로 재벌 사면으로 인해 경제가 활성화되었다는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과관계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횡령, 뇌물, 배임 등으로 회사와 노동자, 한국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사람을 다시 의사결정 구조의 최상층에 되돌려 주고 그로써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슬금슬금 밝혀지는 사법부와 행정 입법부의 더러운 유착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 와중에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은 종교계와 세계 인권, 노동 기구들의 비호 속에서 투쟁하다 결국 업무방해, 집시법, 교통방해, 공무방해 등으로 차가운 창살과 함께하게 되었다. 학생들 또한 몇몇 시위를 이유로 감당 못 할 벌금 폭탄을 맞고 재기하지 못할 만큼 위축되었다.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성추행을 하고 별장에서 섹스파티를 한 것은 무혐의나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다. 반면 범속한 시민들은 음란물을 저도 모르게 공유하다 그들의 몇 배나 무거운 벌을 받아야 했다. 누구도 사법부가 공정하다고 믿지 않는다. 선진국의 투명한 검찰 시스템과 그 신뢰도에 비해 우리나라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하늘 위의 권력, 검찰은 처참한 신뢰도를 기록한다.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우리에겐 무서운 법의 철퇴가 인정사정없이 내려칠 것을 의미하는 말이 바로 ‘판사님~’이다. 이런 댓글이 달리는 본문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 철퇴는 항상 정권의 반대 진영에 설 때만 작동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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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노무현은 살아있고, 그 정신은 민주 진영의 커다란 자산으로 존재한다. 그의 수많은 업적을 나는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연설로 그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 넣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욕을 많이 먹어서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비상식이 서서히 물러가고, 권력에 군인이 빠지기 시작했을 뿐 권위주의는 청산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다. 모든 언론은 그가 마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사죄해야 할 나쁜 사람처럼 묘사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욕을 했다. 네티즌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욕하기는 스포츠였다. 일이 잘못될라치면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작가는 노무현 대통령이 책임감에 크게 시달렸었다고 증언한다. 왜 본인이 모든 일에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을 공포로 몰지 않았다. 의문사가 생기지도, 마티즈가 출동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후신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의문사를 점차 규명되도록 노력했다. 비판과 비난 모두 사법부를 이용해 처벌하거나 근절하지 않았다. 권위주의와 기회주의가 넘실대는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던 곳에서 혈혈단신으로 맞섰다. 그리고 그 덕에 부서져 나갔다. 사법부를 혁신하고자 검사들의 대화를 시도했고 부서졌다. 청와대 출입 기자실로 패거리 언론(팩 저널리즘)이 조성되는 폐해를 막고 직접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위가 없다며 부서졌다.

 

나는 대통령이 가벼워서 좋았고, 욕을 해도 잡혀가거나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좋았다. 그런 비판과 비난을 억압하려 했던 흔적이 없어서 좋았다. 오히려 다양한 자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권위주의와 기회주의를 혁파하고자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낀다. 보수 정권 8년, 우리는 국제 인권기구 엠네스티로부터 대통령이 인권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려 서한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가 곪아 터지며 사람들을 억눌러 왔던 자기검열은 파쇄되고 있다. 이젠 모두가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걸쭉한 욕 한마디씩을 덧붙인다. 광장에는 100만 명이 최고 권력의 퇴진을 요구한다. 안 하면 강제로라도 끌어내릴 태세다. 갖은 패러디가 광장과 인터넷과 방송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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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컷뉴스>

 

여전히 박읍읍과 마티즈와 판사님은 넷상에 존재하지만, 그 근저에 깔린 의미는 이전과 다르다. 이전엔 두려움이었다면, 이젠 그만큼의 조롱이 담뿍 담겨있다. 단어 몇 개로 시대상을 전부 파악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현상은 시대상을 반드시 일정부분 반영한다. 이제는 의미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지금 이 말들이 반영하고 있는 시대상은 하나다. 하야하라 박근혜. 마티즈는 거절한다. 판사님 뭘 봐요 일이나 똑바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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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