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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몇 달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은 그 동안의 속내를 털어내며 작금의 정국(政局)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 와중에 일본통인 지인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때문에 일본이 난리가 났어요.”


“난리?”


“박근혜 사태 터지고 나서 일본 아침방송에서 계속 나오는 게 위안부 협상이랑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예요.”


일본통이라 불리는 지인은 박근혜 사태 터지고 나서 일본 아침 방송을 아주 ‘즐겁게’ 시청하고 있었다(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나보다). 이유는 간단한데, 한국 언론들은 아직까지 몸을 사리는 입장이기에(살아있는 권력이지 않은가?) 아직까지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하고 있지만, 일본 방송에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굿을 했다거나, 최태민과의 관계, 호스트바와 관계된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끝까지(우리가 술자리에서 떠드는 수준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하더니 요즘은 ‘박씨’라고 말하는 패널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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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어째서 부끄러움은 우리들 몫이 된 걸까? 문제는 이 부끄러움 너머의 또 다른 ‘음모’다.


“지난주부터 방송패널들이 걱정하는 게 박근혜 하야예요. 일본에서는 박근혜 하야 때문에 골치 아픈 것 같아요.”


지인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미국에서 트럼프 당선되고 나서 발칵 뒤집히고, 한국에서 박근혜 사태 터지니 골치 아프고 계속 그런 분위기예요. 그리고 나온 게 위안부 협상이랑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관한 거예요. 일본 방송에서는 아주 대놓고 이 두 개를 묶어서 말하고 있어요. 박근혜가 하야하면, 이 두 개가 다 백지화 되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는 뉘앙스예요. 형 뭐 아는 거 없어요?”


술이 퍼뜩 깼다.




퍼즐 맞추기 - ① 설명서


일본 방송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패키지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이 두 개가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일본외무성이 소스를 던졌을 것이다). 우리나라 외교가에서도 이 두 개가 하나의 묶음 상품이라는 인식이 있다(알면서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라고 해두자). 그리고 이 묶음상품은 1+1이 아니라 2+1 아니, 그 이상의 번들 구성이란 것이 문제다.


‘최순실’이라는 변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박근혜의 외교행보는 동의는 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박근혜의 행보가 정말 박근혜의 머리에서 나온 건지를 의심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 대학의 송호근 교수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구한말’로 비유하곤 한다. 100여년 전 대한제국은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에 둘러싸여 먹히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형국이었다. 그 당시 위정자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제국주의 세력들의 적절한 상호견제를 지렛대 삼아 국체를 보전하려 했다(마치 태국처럼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의외의 승리(러일전쟁)와 영국과 미국의 후원을 통해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하게 된다.


(내가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이지만) (링크)


개인적으로 작금의 상황을 구한말로 비유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때 당시에 한국은 쥐고 있는 카드가 없었지만, 지금은 최소한 2~3개 정도 이빨을 들이밀 만한 카드가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이 구한말에 비견할 정도로 위중한 상황이란 건 동의한다. 그때 당시의 위정자였던 명성황후(민비라는 표현은 차마...)는 명산 대찰(大刹)에서 굿을 하고, 신하들에게 뇌물을 받아먹었던 걸 생각하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걸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국제정치 환경에 비슷한 위정자라니...


러일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일본은 한국에 주둔중인 러시아의 육해군을 기습 공격했고, 대한제국은 일본의 후방기지로 전락하게 된다.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를 체결한 뒤 일본은 한국을 병참기지로 만들었고, 그 얼마 뒤인 4월 1일 대한제국의 통신망을 접수했고, 8월 22일 ‘한일협약’을 통해 일본은 고문정치를 통해 대한제국을 간접적으로 통치하게 된다.


그 당시 한국은 미국을 믿고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선한 모습을 보여준 미국(구한말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의 이미지 덕분이다). 그러나 그 미국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을 지원했고, 전쟁이 끝난 뒤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통해 한반도를 일본에 넘기는 것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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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단편을 끌어오긴 했지만,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일본 방송의 ‘걱정’이 100여년 전 모습의 ‘라이트 버전’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퍼즐을 맞춰보자.




퍼즐 맞추기 - ② 추측


미국은 중국이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걸 막아서기 위한 준비에 나선다. 그 결과로 對 중국 포위망 구축에 나섰고, 국가전략의 중심을 ‘태평양’에 있다고 선언했다.


그 시기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등 중국 주변국을 포섭했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예전만 하지 못한 사이에 일정부분 지역패권국가와 협조해 안보 부담을 덜어내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은 각자 알아서 방어하라고 말하지만, 이는 한국과 일본을 겨냥하기 이전에 NATO에 대한 협박이기도 하다. 이미 오바마 행정부는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NATO 연합군들의 군비에 대해 여러차례 문제제기를 하고, 경고를 했으며, 불만을 토해냈다. 유럽은 러시아가 있지만, 과거 냉전시절 만큼의 안보상황이 아니고, 여차하면 ‘핵’으로 치고 나갈 상황이기에 재래식 전력으로 싸워야 할 ‘적이라고 부를만한 세력’이 없다. 이 때문에 이들은 군비투자를 전혀하지 않고, 미국에 의지하게 된다. 제1차 걸프전 당시 NATO군이 들고 온 군사력과 ‘테러와의 전쟁’에 뛰어든 유럽 군대의 수준을 보면 대학생과 유치원생을 비교하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능력도 의지도 있는 對 중국 포위망의 핵심인 한국과 일본을 포섭해 중국을 향한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야 한다. 즉, 한-미-일로 이어지는 ‘명시적인’ 방위체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서로 견원지간이다. 냉전시절에는 둘 다를 ‘반쪽’ 군대로 만들어 손쉽게 미국 통제권 아래 뒀었다. 한국은 육군 위주의 병력 구성으로, 일본은 해공군 위주로 병력을 편성하고 각종 조약과 규제로 이들을 그들의 영토 안에 가둬뒀다(두 나라 모두 해외 투사의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위협 앞에서 이들의 힘을 하나로 묶어야 하는데, 이들은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과거사가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오바마 주도로 한국과 일본의 화해가 추진됐다. 이미 한국과 일본은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韓日基本條約)’을 통해 과거사 청산에 합의를 한 상황. 국교도 정상화됐고, 명목상으로는 더 이상의 채무관계가 없다(일본은 당시 개인 배상을 제안했지만, 박정희가 이를 거부했다). 이 상황에서 불거진 게 ‘위안부 문제’이다. 미국을 위시해 전 세계에 ‘소녀상’이 건립 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일본 외교 최대의 현안으로 이 소녀상 문제가 떠올랐다. 한국 역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감정’과 결부 돼 있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어쨌든 이 둘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중국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중재 하에(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꼴’을 보면 100%다)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을 추진하게 됐고, 2015년 12월 28일 타결하게 된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정부로부터 최상의 것을 받아냈다.”


라고 자평했다(진짜?). 문제는 외교부의 움직임이다. 2014년부터 외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접촉했는데, 이걸로 유추해 보면 2014년 3월 26일에 있었던 한미일 정상회담 전후로 해서 어떤 ‘언질’이나 중재가 있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2014년부터 미국은 ‘Pivot to Asia(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를 외치며 본격적인 對 중국 견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오바마는 아시아 각국과 맺은 ‘안보조약’을 재확인 시키며(‘중국보다 내가 더 낫다 내게 붙어라’란 사인을 보내며) 아시아에서의 행보에 속도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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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


이 시기 아베 총리는 신이 나서 그 동안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바마 방일 직전에 내각 각료와 국회의원들 147명을 대동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물론, 오바마는 이에 대해 우회적인 반대의 입장을 보였지만(메이지 신궁에 가 ‘평화’ 메시지를 전달), 일본에 대해 명시적인 제재를 할 수 없었다. 이제 일본은 미국에게 떼 놓을 수 없는 아시아의 주요 파트너가 됐고,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어야 미국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우경화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돌아가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자신들의 국가 전략과 방위비 문제 때문이라도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아베는 이 기류에 편승해 전쟁 금지를 명기해 놓은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고, 이 와중에 튀어나온 것이 헤이세이 덴노의 양위 언급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모태가 된 ‘제국헌법’으로 돌아가려는(물론, 제국헌법과 같은 극단적인 회귀가 아니라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의 복귀지만)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다. 평소 지한파의 이미지로 알려진 헤이세이 덴노가 아베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다(물론, 궁내청에서는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2015년 12월 28일에 타결된 위안부 협상 문제에 대해 일본 언론은, 2016년 3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당시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방미 시에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 양국에서 작년 12월에 합의한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 미국이 합의내용을 확인하도록 조정할 방침..."


이라고 주장했다.


(누가 봐도 일본 외무성의 소스를 받아서 쓴 기사다)


과거사 문제가 정리 된 다음의 행보는 본격적인 한-미-일 군사동맹. 그 중에서 한국과 일본의 손발을 맞춰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다. 이 전까지는 한국과 일본 간의 상호 교류는 없었고, 서로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미국이 끼어들어 서로의 정보를 전달해 줬었다. 이제 그 시스템이 통폐합 되는 것이다. 무서운 건 이 협정은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진 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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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약의 명분상의 이유는,


“미국과 한국이(한국도 사드를 구매할지도 모른다) 배치할 사드 레이더(AN/TPY-2)가 탐지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려는 것”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명분상의 문제이다. 실제적인 목적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탄도탄과 군사적 움직임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안보법을 개정한 뒤에 미국과의 연합작전을 실행한다는 전제하에서 가장 걸리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지금 개발 중인 대함 탄도 미사일(ASBM)인 둥펑(DF-21D)형이다. 딴지 기사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항공모함을 탄도탄으로 잡겠다는 이 단순무식한 발상이 미국에게는 꽤 위협적이다. 미일 연합함대의 가장 큰 위협이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실시간으로 정보공유를 해야 하는 것이다(북한? 북한은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다)


중국이 사드 부지 선정과 뒤이은 토지보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예민하게 반응해 한류 연예인들을 ‘조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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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 됐다고 해서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그 뒤에 준비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한일 물품및용역상호제공협정(ACSA)’이다. 물품이 뭘까? 간단하다. 병참이다.


한국과 일본은 냉전시절 미국에 의해 길러진 군대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모든 군사규격은 NATO 표준에 맞춰져 있다. 탄약부터 통신장비까지 많은 부분 호환이 가능하다. 이전까지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였기에 이런 물자의 교류에 난색을 표했다(특히나 한국이). 그러나 연합작전을 펼친다면, 서로간의 병참을 도와주거나 지원하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선례’로 있다.


2013년 12월 남수단에 파견 된 한빛부대에서 남수단 내전 위기가 커짐에 따라 예비탄약 확보에 나서게 됐는데(한빛부대는 재건부대였다), 당시 한국군은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로부터  5.56㎜ 탄약 3천417발과 7.62㎜ 탄약 1천600발을 수령했고, 23일에는 일본의 육상자위대로부터 5.56㎜ 1만발을 긴급 지원받았다.


당시 한국군의 요청을 받은 일본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분위기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발톱을 숨기고 있었던 아베 총리는 침략이나 전쟁이란 표현 대신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었는데, 한국군의 탄약 요청 앞에서 일본의 입장과 앞으로의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을 선전할 수 있었고, 외교적으로 ‘선례’를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은 한국군이 탄약을 요청하자마자 바로 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이 직접 자위대 간부들을 소집해서 ‘지급(至急)’으로 탄약지원을 결정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한때 우리를 침략했고, 지배했던 나라가 우리에게 탄약을 지원한다? 일본 우익이 ‘보통국가’와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역할을 말하며 만든 PKO협력법의 최초 수혜자가 바로 한국군이 된 것이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외국군에 탄약을 제공한 최초의 사례였다).


물론, 외교적인 배려를 위해 일본 자위대가 직접 우리 군에 탄약을 제공한 게 아니라 UN을 통해 전달을 했지만, 선례가 남은 건 사실이다(한빛부대는 한국에서 탄약이 보급되자마자 바로 탄약을 반납했다. 단 한 발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훗날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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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침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위안부 협상+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패키지로 말하는 건 당연한 것 일게다. 우리 외교가에서도 이제까지 쉬쉬하면서 떠돌던 이야기다. 다 알고 있지만 언론이나 국민이 물어보면 아니라고 딱 잡아뗐던 것들이다. 그리고 이건 1+1이 아니라 2+1 아니, 그 이상일수도 있다. 이미 ‘한일 물품및용역상호제공협정(ACSA)’은 기정사실화 된 이야기고(정보 다음은 병참이고, 그 전부터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양국 국민들의 ‘감정’만 아니라면 벌써 체결됐어도 체결됐을 문제다. 그 감정의 골을 ‘위안부 협상’으로 봉합하고, 어떤 ‘타임테이블’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국제정세다.


문제는 이때 돌발변수 2개가 등장했다. 하나가 트럼프이고, 나머지 하나가 박근혜다. 아베총리가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가 트럼프를 만난 이유가 뭘까?


하나씩 설명해 보자. 이제부터는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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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트럼프 방문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오바마와 민주당 행정부가 구상한 향후 국제정세의 타임테이블이 존재했다. 이는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만들어진 전략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한국과 일본이다. 이들이 손을 잡고 미국이 구상하는 ‘군사동맹’의 선봉에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졸속이지만, 과거사를 정리하고 하루빨리 군사협정을 맺게 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들어서면서 이야기가 묘하게 꼬였다.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의 등장에 일본은 놀라서 미국으로 달려간 것이다. 일본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임을 설명하고, 이제껏 구상한 ‘세계전략’을 계속 실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을 것이다.


트럼프와의 만남에서 세부적인 경제지표나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소한 문제는 차후에 천천히 협상하면 될 것이고, 만약 문제가 된다면 돈을 주면 해결될 문제다. 핵심은 아베가 주장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돌아간다면 너무도 ‘싼’ 대가이다.


핵심은 일본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라는 걸 큰 틀에서 설명해 주는 것이고, 일본은 미국에 있어서 아시아 최고의 맹방이라는 사실을 재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립주의란 것이 덮어놓고 국제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미국 이익에 부합되는’ 곳에만 선별적으로 치고 들어가겠다는 외교노선으로 보면 된다. 미국이란 나라는 대통령 한 명이 바뀌었다고 나라가 산으로 가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트럼프 역시 바보가 아니고(바보가 아니라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지금 미국 최대의 위협 중 하나가 중국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대신 혹은 미국과 함께 중국과 싸워 줄 ‘불침항모’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아베는 정치인으로 ‘꽤’ 괜찮은 판단력과 결단력을 가졌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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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박근혜 사태


일본 방송과 외교가, 정치권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박근혜 사태다. 트럼프의 경우에는 협상 대상. 즉, 파트너가 명확하게 지정된 상황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결정권자가 ‘식물’이 된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 국민의 성향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일본 방송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이 위안부 협상의 파기와 군사정보보호협정의 백지화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사드배치부터 시작해 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사드 부지 토지보상까지 박근혜가 밀어붙이는 의도 중 하나가 자신이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이미지를 어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외변수의 차단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즉,


“미국 너희들 말 잘 듣는다. 그러니 너희들까지 날 흔들지 마라.”


라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설정해 놓은 타임테이블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완수 할 테니 지원해 달라.”


라는 사인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박근혜 사태에서 미국과 일본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은 30년 만에 이 정도로 성장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것이 최근 일본 방송에서 패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가 등장하느냐이다. 한중일 정상회담에 아베와 함께 나서서 한일 동맹의 힘을 과시하려는 걸까? 아니면, 이것도 이미 타임테이블 안에 속해 있는 이야기일까?)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 하겠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과 딴지 지면을 통해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하겠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이 ‘패키지 상품’과 뒤에 붙은 몇 개의 협정들을 ‘뭘’ 주고 거래를 했느냐 하는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의 對 중국 외교는 갈지자 행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중국의 열병식에 올라섰을 때 박근혜의 모습은 한국을 판돈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최대한 균형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혹자들은 생각 없는 짓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박근혜의 열병식 참석은 외교적으로 보자면, 미국과 일본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예전 김대중 정부 때 푸틴 대통령 앞에서,


“ABM 조약을 지지한다.”


란 발언을 했을 때보다 더 큰 파장을 미칠 수도 있는 이야기다.


2001년 2월에 있었던 한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부시 정부가 추진하는 NMD에 반대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끌어들였는데, 우리나라 외교부는 순진하게도 혹은 ‘이 정도쯤이야’하고 판단하고, ‘NMD가 아닌 ABM이니까’라면서 ABM(Anti-Ballistic Missile) 즉, 탄도탄요격협정에 찬성하는 조항을 공동성명에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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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부시가 가장 열을 올렸던 것이 MD 구상이 아닌가? 당시 김대중 정부는,


"ABM 조약 지지와 NMD 반대는 별개"


라는 되도 않는 헛소리를 하며 진화에 나섰지만(애초에 ABM 조약을 찬성한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미 부시는 화가 난 상태였다. 놀라운 건, 부시는 멍청하지만 그 참모들을 똑똑했다는 것이다. 이를 빌미로 한국을 압박하고, 한국을 MD체제 아래에 집어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백악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외교 비밀 전문을 하나 보낸다.


"오늘날의 세계는 냉전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억제와 방어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와 운반 수단으로서의 미사일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으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을 신뢰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MD)는 이런 반응의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미국이 이 점에 대해 합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며, 특히 우리 군과 영토 방위를 위해 효과적인 MD를 배치할 필요를 인정한다."


...‘우리’가 누굴까? 여기에 대한민국을 넣으면 문장이 완성된다. 부시와 미국 외교관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성명서 초안을 보낸 것이다. 어떻게 됐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타협했다.


“MD를 배치할 필요는 인정하지만, 우리는 미국 정부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국 및 관련 국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 다음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부시를 만나보겠다고 70 노구를 이끌고 워싱턴으로 달려갔지만, 썰렁한 공항에서 무시당하던 모습을 우리는 모두 보지 않았는가? 미국과의 국제외교다.


(우리나라 외교사의 흑역사 중 하나이다)


(미국의 은근한 압박. 이것이 바로 '국제정치의 본질이고, 패권 국가 미국의 힘이다. 세계 경제 10위권을 넘나드는 한국이지만, 역시나 미국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다. 너무 자학하지 말자.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이 故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의 압력에 저항하는 '척'은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출된 권력의 힘이다. 만약 선출되지 않은 대표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렇게 말함에도 미국과의 외교에서 우리가 을의 위치라는 것. 그것도 한없이 병에 가까운 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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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여한 이후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떤 시그널을 보냈을까? 15년 전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시그널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걸 박근혜는 어떤 식으로 받았을까? (아니, 아예 그런 시그널이 없었을까? 100% 장담하는데, 시그널이 없었다면 미국이 망쪼가 든 것이다. 분명하게 뭔가 갔다)


그 뒤 박근혜의 행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미-일 전략구상대로 움직이고 있다(도대체 그 타임테이블에 뭐가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이해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뭘 주고, 뭘 받았는가?”



그 내역서다. 고작 10억 엔을 받고 이걸 내준 거라면 이 나라는 망해도 싸다(군사보호협정, 병참, 그리고 이게 완성되고 나면 등장할지도 모르는 군사작전 연합지휘부 구성까지...). 외교란 상호간의 이익을 전제로 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강한 쪽이 더 많이 가져가지만 한쪽이 전부 다를 가져간다면 그건 식민지와 다름없다. 아무리 몰려도 7대3, 8대2 정도로 주고받는 게 있다. 더구나 한국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징을 안고 있는 존재이다(한반도의 현 정세는 약점이기도 하지만, 강점이기도 하다).


다시 묻고 싶다. 박근혜는 뭘 받은 걸까? 혹시 중국과 더 함께 갈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 하에 대승적 차원에서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걸까? 그랬다면, 더 큰 문제다. 명분이 있더라도 최대한 실리적인 외교를 구사해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겨와야 하는 게 외교다. 이런 표현 쓰고 싶진 않지만,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행보는,


'미친년 널뛰기 하듯'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것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었다면,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두테르테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 이상의 연기력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박근혜 외교 정책은 어느 시점을 지나치면서 급격하게 '방향선회'를 한 느낌이다.


"미국의 압력이 들어왔는가?"

"중국과 새로운 파트너쉽을 맺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섰는가?"

"국가전략 차원에서 더 이상 간 보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는가?"


그렇더라도 사전 정지 작업이나, 최소한의 '출구전략'은 만들어 놓고 움직이는 것이 외교다. 방금 전까지 중국과 함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것 같이 굴다가 어느 순간 사드를 배치하고, 위안부 협상을 하고,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었다. 이건 누가 봐도 어떤 타임테이블이 존재한다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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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압력일까? 압력이라면, 박근혜의 계산착오다. 외교는 와인글라스 표면을 갈아내 재생하는 것과 같은 고도의 신중함을 전제로 한다. 중국과 함께 하며 새로운 동반자를 만난 듯 언론 플레이 하던 모습은 너무도 신중하지 못했다. 최소한의 '출구전략'을 세워놨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를 아예 포기하는 건가?


자주적인 정책적 판단이라면, 더 큰 문제다. 생각 없이 행동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의 '국격'을 생각해 본다면, 너무 급작스런 태세전환이다. 다 떠나서 묻고 싶은 게 있다. 지금의 외교현안에서 박근혜 정부가 이제껏 움직였던 모습이 어떤 타임 테이블을 전제로 그 시간표에 맞췄던 것이라면, 그 타임테이블에 몸을 실었을 때 그 반대급부를 챙겼냐는 점이다.


내가 지적하는 포인트가 여기다.


첫째, 그 판단을 내리게 된 근거는?

둘째, 그 판단의 대가로 뭘 요구했나?

셋째, 그 타임테이블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미래를 예측해 봤나?


우리는 어쩌면 향후 30여 년 간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대한 외교협정을 CF감독과 무당, 호빠 호스트, 말 타는 소녀, 피부마사지사, 강남아줌마가 결정한 걸 목격한 건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의 몸값을 최대로 올려서 팔 수 있었던 다시없는 기회를 놓친 건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변명'이다. 그걸 하라고 국가에서 돈을 주고, 국민의 권한을 위임한 게 아닌가? 전략적 모호성을 전제로 몸값을 최대한 올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스킬'을 바라는 게 아니다. 애초에 국가의 전략적 방향성을 잡고, 그에 따라 움직였는가란 질문이다. 방향성이 없었기에 지금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는 게 아닌가? 만약 강남 아줌마의 '기분'에 따라 집권 초기에 중국 여행을 갔다가 앞으로 대세는 중국이란 생각이 들어 중국에 올인 했다가, 집권 중반기에 미국 여행을 가 노퍽이나 하와이에 정박한 항공모함들을 보며,


'그래도 미국이야'


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외교 노선을 수정했다면... 정말 그랬다면, 이 나라가 단단히 망쪼가 들었다고 가슴을 칠 수밖에... 설마 그런 일이야 없었겠지만... 그랬다면...


정말 아쉽다. 한국은 어쩌면 최대의 몸값을 우려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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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23일 비공개로 체결 됐으며,

국방부는 위의 단 한 장의 사진만 언론에 공개했다



첨언.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3권이 곧 출간한다. 지면에 싣지 못한 이야기들이 추가됐다. 책 좀 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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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디비주는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펜더


편집: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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