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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카, 그 모종(毛種)의 슬픔

- 모종(某種)의 남자는 누구를 위하여 모종(某種)의 것을 세웠나

※ 이 기사의 본문은 팟캐스트 교양 방송 <안알남>(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의 10회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들어가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나는 이 표현을 싫어한다. 세월의 무상함이 싫고, 늙음이 순백의 비단이 아니라 파뿌리를 선물했던 선조들의 가난이 슬프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탈모인으로서 느끼는 박탈감이 아프다. 파뿌리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남아있을 거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내용과는 아마도 전혀 상관없을 차은택의 빛나는 두피가 세상을 비춘 날, 나는 아련한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 지기 선후배도 몰랐던 그의 가발이 한 외로운 인간의 외로운 보호막임을 익히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단언한다. 탈모는 제3의 젠더라고. 탈모인은 외롭다. 우리는 오랜 세월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 나는 차은택의 두피에서 찬연히 빛나는 외로움을 목격하고 단말마를 질렀다.

 

“아아! 전두환 다음은 너냐!”

 

악한 탈모인들은 헐벗은 동지들을 제3의 젠더에 머무르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움으로써, 선량한 동지들을 배신한 실로 박쥐 같은 존재다. 풍성한 독자 여러분이여! 잘못한 것은 차은택의 양심이지 그의 두피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초유의 국정농단이라는 악의 세계로 인도한 그의 태생적 결핍을 용납은 못 할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다. 쓸쓸한 마음으로 나는 지금 이 기사를 쓴다.

 

프로스카, 청와대에 대량으로 불법 납품되어 온 약품 중 하나다.

프로스카는 상품명이다. 이 약의 핵심 성분은 ‘피나스테라이드(finasteride)’. 그렇다. 흔히 ‘프로페시아’로 불리는 같은 성분의 그 탈모약 그룹이다. 왜 ‘프로스카’가 문제인가? 왜 대통령의 성별인 여성에게는 처방되지 않는가?

 

 

피나스테라이드를 알려주마

 

탈모 방지제, 혹은 발모제.

세상에 ‘기적’이라는 수사가 붙은 수많은 발모제가 있지만 인류가 ‘의학적 효과’를 ‘검증’한, 그래서 미 FDA 승인을 받은 탈모방지성분은 단 두 가지뿐이다.

 

첫째, 바르는 미녹시딜.

둘째, 먹는 피나스테라이드.

 

(피나스테라이드의 강화판인 ‘두타스테라이드’는 한국에서는 허용되어있지만 FDA의 허가는 받지 못했다. 밑에 이야기할 부작용도 효능만큼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피나스테라이드는 ‘머크’라는 미국 제약회사가 개발했다. 원래는 전립성 비대증 치료제로 1992년 개발을 완료했다. 그런데 신약 효과 실험 과정에서 전립선 비대증과 탈모를 동시에 지닌 환자들이 이 약을 먹고 머리가 다시 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전립선 비대증은 DHT(디하이드로 테스토스테론)가 필요 이상으로 분비돼서 일어나는 증상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익히 알다시피 남성호르몬, 디하이드로 테스토스테론은 보다 강력한 남성호르몬으로, 테스토스테론이 일반 거피라면 DHT는 티오피다. 처음부터 DHT가 생성되지는 않는다. 테스토스테론이 ‘5 알파 환원효소’라는 물질을 만나 변이하면 DHT가 된다. 그런데 일반 테스토스테론이든 티오피인 DHT든, 테스토스테론 자체를 없애는 것은 의학적으로 어려운 과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피나스테라이드는 5 알파 환원효소를 억제한다. 그러면 당연히 테스토스테론은 이 효소와 덜 만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DHT의 양이 적어지는 것이다.

 

머크사(社)는 이 약이 탈모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지극히 당연한 판단을 한다.

 

“이게 웬 떡이냐!”

 

그래서 5년간 추가적인 임상연구를 거쳐 1997년에 피나스테라이드 용량을 1/5로 줄인 탈모 방지제를 출시한다. 이 약품의 이름이 그 유명한 ‘프로페시아’. 참고로 원래의 전립선 치료 목적인 성분함량 5mg짜리가 청와대에 들어간 프로스카다. 당연히 머크 사는 떼돈을 번다.

 

미국 의학계의 통계에 따르면 미녹시딜은 40%가량의 탈모인에게만 효과가 있다. 그런데 프로페시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모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적든 크든 효과는 있다.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사용해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탈모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약은 미녹시딜과 달리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전립선은 보험, 탈모는 비보험이다. 당연히 전자가 싸다. 보험 적용 여부가 달라지지 않더라도 당연히 성분의 양에 비해 프로스카가 싸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프로스카를 비롯한 피나스테라이드 카피약(특허 기간이 만료되었다)이 실제 전립선 환자들의 수요보다 전 많이 팔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전립선 비대증도 없는데 정량인 1mg이 아닌 5mg을 통으로 복용하면 안 되지 않을까? 물론이다. 그래서 보통 4 등분 해서 복용한다. 자르다 보면 가루 등으로 망실분이 생겨서 자연히 1회 복용량 1mg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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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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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5등분에 성공하는 절약 정신의 소유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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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전문 커팅 장치도 판매된다.

 


척 하면 삼천리라는 말이 있다. 전립선 비대증이 아닌데도 환자가 수줍게 모자를 벗어 헐거운 헤어스타일을 고백하면 전립선 비대증으로 처방전 끊어주는 의사는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한다. 전립선 치료용 5mg 짜리 카피약들은 최고의 고객이 탈모인들이란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쪼개기 쉬우라고 십자 모양으로 패여서 나온 알약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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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기까지가 피나시테라이드의 효능이다. 그럼 탈모인들은 이 기적의 약, ‘Happy Drug’를 영접하고 구원을 얻으면 되는 일 아닌가? 슬프게도 얘기가 그렇게 되질 않는다. 부작용 때문이다.

 

일단 피나스테라이드는 여성과 아이에게 엄금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호르몬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 성장한 여성은? 역시 위험하다. 임산부는 가루도 마시면 안 된다. 피부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기형아를 출산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미세한 가루를 약간 마셨다가 몇 년간 잠복해 있다가 결국 태아를 기형으로 만든 사례도 발견된다. 그래서 주변에 임산부가 있거나 한 여자의 남편이라면 잘리면서 가루가 날리는 5mg 함량 알약은 쓰지 않는 편이 좋다. 여성에게 이토록 민감한 약물이다. 임신가능성이 없더라도 호르몬에 변이를 일으켜 여성의 신체를 교란시킨다. 여성의 경우 탈모가 심하면 최후 발악의 의미로 처방을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위험하고, 공식적으로는 처방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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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완벽한 안전을 위해 캡슐형도 판매된다.

 


결론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프로스카를 처방받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

 

 

프로스카는 모종의 남성이 복용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여성 그것도 대통령에게 프로스카를 권하거나 허용할 의료인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정상적인 사고로는 프로스카가 대통령이 아니라 그녀 주변의 남자에게 제공되었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나스테라이드는 남성에게도 부작용을 선사한다. 첫 번째 사소한 부작용으로는 두드러기, 반점, 가려움, 따가움, 피부함몰 등이 있다. 주로 얼굴 쪽이다. 붓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입술, 입 안, 목구멍 등이 붓는다. 나는 입안이 전반적으로 조금 부었는데, 그래서 입 안이 꽉 차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야 참으면 그만이다.

두 번째 사소한 부작용. 간에 무리가 간다. 간 수치가 올라가고 당연히 피곤해진다. 춘곤증이 계속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약을 복용하면 술은 끊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나중에 간염이나 간암으로 발전하지 말란 법이 없다. 물론 이 정도도 참으면 된다.

사소한 부작용 세 번째. 몸이 피곤해지면서 정신이 붕 뜬다. 눈앞에 별이 보이거나 일어날 때 핑 돌거나,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다리가 풀리기도 한다. 심하면 그냥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약을 복용할 때 자동차 키를 동생에게 양도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대중교통만 이용했는데 이 정도도 탈모인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남성호르몬 생성을 방해하는 약이기 때문에 성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발기부전이다. 그렇다. 비아그라로 치료하는 그 증상 말이다. 심하면 발기불능도 온다. 정액량이 감소하고, 성욕이 감퇴하는 부작용도 있다. 고환암, 영구적인(!) 성 기능 상실 등 무시무시한 결과도 있지만 이쪽은 극소수다.

 

부작용은 보통 증상별로 1~3%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건 자사의 제품을 많이 판매할수록 이익인 머크사 쪽의 통계로 자신들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실험이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의학적으로 증상이 있다는 것은 매우 엄중한 경우다. 저 3%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피나스테라이드를 복용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발기와 성욕에 문제가 생겼다고 증언한다.

나의 경우는 가슴이 여성의 것과 같은 모양으로 커지는 아스트랄한 비극을 겪었다. 탈모라는 실존적 비극 앞에서 가슴 따위 희생한들 어떻겠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지하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역사를 뛰어가던 그 날. 나는 역사 벽에 붙은 전면 거울을 통해 물풍선마냥 세차게 아래위로 출렁이는 나의 두 가슴을 목격하고 말았다.

 

풍성한 모발이냐.

탄탄한 가슴이냐.

 

나는 눈물을 머금고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털 귀한 줄 아는 탈모인이지만 성 정체성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이제 시작이었다.

 

피나스테라이드는 평생 복용해야 효과가 지속되는 약이다. 끊으면 머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의 속도로 훤해진다. 복용하지 않았다면 빠졌을 머리칼 수까지 그대로 계산되어 사라진다. 나 역시 그랬다. 그와 동시에 부작용도 사라진다. 하지만 내 가슴은 여전히 여성적인 곡선을 자랑하고 있으니, ‘화학적인’ 부작용은 날아가면 그만이지만 가슴이 팽창하면서 따라 늘어난 유선(乳腺)과 힘줄은 ‘물리적인’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미 늘어난 유선, 그리고 가슴을 지탱해주는 힘줄은 다시 줄어들지 않는다.

이리하여 나는 지나치게 남성적인 헤어스타일과 여성적인 가슴을 동시에 숙명으로 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목욕 중 거울 속에서 반짝이는 두피와 풍만한 가슴을 동시에 볼 때마다 거울을 깨고 싶지만 그러하지 않는 것은 숙명이란 삼키고 소화해야 하는 무엇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나와 같은 숙명을 대통령 주변의 어떤 남자가 지고 있단 말인가.

 

남성의 성 기능을 떨어뜨리는 약과

남성의 성 기능을 증강해주는 약이 동시에 청와대에 제공되었다.  

 

프로스카로 발기부전이 되고 발기부전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비아그라를 복용하는 모종의 외로운 사내가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망상이란 말인가!

 

물론 의문점은 있다. 딱히 절약 정신이 있어 뵈지 않는 청와대가 돈 몇 푼 아끼자고 5mg 정을 대량 구매하는 일은 좀 번거롭다. 그냥 발모용으로 나온 1mg 정을 구매해 땅콩마냥 하나씩 까먹으면 편하잖은가? 그 혹은 그들은 누구인가? 국민 혈세 귀한 줄 아는 절약 정신의 소유자인가? 발모를 향한 열망이 넘쳐 1mg 정으로는 부족한 탈모인인가? 아니면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통받는 공직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전립선 비대증과 탈모를 동시에 겪는 이 시대의 시지프스인가? 어쨌거나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남성의 성 기능을 떨어뜨리는 약과,

남성의 성 기능을 증강해주는 약이 동시에 청와대에 제공되었다.  

 

 

기사를 마치며

 

이하의 뱀발은 나의 아련한 상상이다. 그저 활자와 이미지가 총천연색으로 연결되지 않는 흐릿한 소설처럼 한 남자가 떠오르는 것이다. 모발을 세우기 위해 남근을 쓰러뜨리고 다시 남근을 세우기 위해 심장이 뛰어야 했던 한 남자가.   

 

아직 남은 모발을 필사적으로 지키기 위해 제 뜨거운 혈관 속에 피나스테라이드가 흐르게 하고, 그러다 풀죽은 남성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 또다시 비아그라를 삼켜야 하는 느와르적 세계의 한 사나이. 그런 그의 연인은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그는 온몸으로 사랑을 증명해야 했던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 그칠 줄을 모르고 뛰는 그의 가슴은 누구를 위한 약한 등불일까?

 

많은 이들이 사랑은 마약과도 같다고 했다. 거듭 덧붙여 기사와는 상관이 없을 테지만 이 시대의 위대한 실험예술 <평창 아라리요>를 보고 떠오른 짤방은 다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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