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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28. 수요일

이작가










3. 돈 냄새를 맡는 남자

 



“고객님. 고객님이 그러니까 가난한 거예요. 그러니까 돈을 못 갚는 거야.

무슨 비가 와서 일이 없어? 나가면 다 일이 있지. 일 안 하고 술 먹고 그러다 빚은 언제 갚아?

고객님이 그렇게 사니까 평생 빚을 못 갚지.”

 



장재완은 고객님, 고객님, 소리를 섞어 가며 채무자의 감정을 심하게 자극했다. 저편에서 뭐라고 항의하는 것 같았지만 장재완은 자기 할 말을 마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런 쓰벌 놈.”


장재완이 고객님에게 미처 하지 못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철수는 흘끔 장재완을 바라보았다. 철수가 입사했던 첫 날부터 장재완은 화려한 욕설을 펼쳐보여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철수는 그가 전라남도 어느 소도시에서 건달처럼 지내다 서울로 왔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장재완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부모님 중에도 전라도 출신인 쪽이 없었다. 그는 욕을 할 때만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그러니까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전라도 사투리는 오직 욕설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철수는 그가 대체 어디서 이런 말을 배웠을까 궁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식자리에서 장재완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룸에서 웨이터 할 적에는 돈을 증말 많이 벌었거든. 어느날 새벽에 집에 와가지고 오늘 얼마나 벌었나 보자고 돈을 세기 시작했다. 바지 주머니 까고 뒷주머니 까고 마이 안주머니 까고 조끼 주머니도 까고 존나 까고 또 까고 까는데 배춧잎이 계속 나오는 거야. 씨발 허리띠 풀어도 나오고 빤스에서도 나오고... 나오는 대로 침대 위에다 늘어놨다. 술냄새 자지냄새 풀풀 나는 돈이 침대 위에 쫘악... 그걸 펼쳐놓고 보는데 엄청 서럽더라. 내가 그 돈 받아낸다고 사장님 사장님 아이구우 우리 사장님... 계집애들 보다 더 굽실거리면서 받아낸 돈인데... 야, 철수야, 우리 일이 뭐가 좋은지 아냐? 남의 돈 받아내는 데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 씨팔좆팔만 안 하지 하고 싶은 얘기 다 해도 되거든. 남의 주머니에서 돈 꺼내오기가 쉽냐?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또 있을 것 같냐?”

 

 

룸살롱 웨이터로 일하면서 큰 돈을 펑펑 쓰는 손님들에게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도는 철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장재완은 그 세계에서 어울렸던 사람들을 통해 격한 전라도 스타일의 욕설을 익혔을 것이리라. 손님으로부터 인격적인 모욕을 당한 뒤 웨이터나 아가씨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욕설을 풀어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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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가 보기에 장재완은 양아치라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양아치였다. 눈치가 빠르고 머리도 좋지만 룸살롱의 생리와 채권추심 업무 외에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사양 좋은 컴퓨터를 포맷한 뒤 업무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전혀 설치하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랄까. 그에게 설치된 프로그램은 오직 돈을 가진 사람을 구분하고 그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기능만 하는 것 같았다. 채권추심원으로서 장재완은 여러 모로 놀라운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분배할 때 아무리 좋지 않은 채권을 배당받아도 개인달성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전화통화 사이에 남들에게 다 들리는 혼잣말을 자주 했다.



“이 새끼 돈냄새 나는데, 일단 질러봐야지.”


또는


“저 새끼가 돈이 있을까? 원금을 좀 빼줄까...”



그러나 철수는 이 새끼와 저 새끼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장재완이 쥐고 있는 채권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대체 어디에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장재완은 채무자의 개인정보나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는 목소리를 들으면 상대에게 돈이 있는지 없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심지어 다른 추심원이 채무자와 통화하는 내용만 듣고서도 돈이 나올지 아닐지를 쉽게 파악했다. 한 번은 철수가 열심히 채무자를 설득하고 있는데 장재완이 손을 내저으며 끼어든 적도 종종 있었다.



"철수야. 그만 해라. 그 돈 절대로 못 받는다."


철수는 일단 장재완이 시키는 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장대리님. 전화로 돈 낼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십니까?"


"음... 어떻게 아냐면 말이다... 일단 전화를 걸어서 누가 받으면, 김철수씨 핸드폰이죠? 이렇게 묻잖아. 그럴 때, 아니에요, 단박에 이러면 전화번호가 바뀐 거라고 봐야겠지. 근데 그게 아니라, 어디요? 누구요? 이렇게 되묻는 놈들이 있단 말야. 우리가 와이캐피탈입니다, 하고서 그제서야 이 번호 김철수 전화번호 아니라고 암만 잡아떼도 이건 뭔가 있는 거지. 남자 전화를 여자가 받든 여자 전화를 남자가 받든, 김철수를 아는 사람이거나 전화를 대신 받았거나 했겠지. 무슨 얘긴지 알겠지? 그런데 말이다, 김철수 아니라고 딱 잡아 뗀 놈이라고 해서 꼭 아니라고 할 수는 없거든. 그러니까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케바케다 이거야. 알겠지?"

 

 

친절한 설명을 들었으나 철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채무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정도의 조언은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지라도 철수는 장재완이 보기에 안 나올 돈은 절대로 안 나올 돈이라는 신뢰는 가지고 있었다. 사내에서 그의 판단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장이 한참 교섭을 하다가 전화를 끊고는 장재완을 불렀다.



“재완아. 11874번 전화 좀 걸어봐라.”


“알겠습니다.”


“원금 500에 이자 800인데, 내가 이자 빼고 400까지 불러놨거든.”


“네. 제가 교섭해보겠습니다.”


장재완은 길지 않은 통화를 마치고 사장에게 보고했다.


“250에 완납으로 교섭했습니다.”


“내가 400 불렀는데 거기서 더 빼주면, 씨팔 나는 뭐 헐랭이 빤스냐?”



교섭을 할 때는 대개 한 번에 잔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채무를 감면해 주곤 했다. 그러나 와이캐피탈에서 이자 감면에 원금의 50%만 회수하는 경우는 마지노선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국민행복기금 때문에 나온 타협안이었다. 다른 추심업체 상황도 비슷하긴 했지만 추심원이 월말에 실적이 부족해 당장 한 푼이 아쉬울 때가 아니라면 이렇게 대폭으로 할인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사장이 퉁명스럽게 쏘아 붙여도 장재완은 당당했다.



“목돈 생길 일 없는 놈입니다. 250도 오늘 중으로 입금 안 할 겁니다.”


“개새끼. 지 채권 아니라고...”


“30만원이라도 분납해서 받아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내일 다시 전화해 보겠습니다.”


“알았다.”



사장은 교섭결과에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장재완의 판단을 신뢰했다. 돈 냄새를 맡는 감각은 아무리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추심원이라 하더라도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이었다. 그는 채무자와 긴 대화를 하지 않고도 상황을 판단했기 때문에 일 처리가 빨랐다. 채무자와 교섭을 할 때 상대를 몰아쳐서 최대치를 끌어내기 때문에 일단 그가 교섭해 놓은 채권은 그 뒤로 별 탈 없이 약속 대로 입금이 되었다. 와이캐피탈에서는 분기 별로 신규 부실채권을 매입하면서 담당채권을 바꾸도록 했는데 장재완이 미리 교섭해 둔 채권을 넘겨받으면 일이 매우 쉬워졌다. 그가 질러 놓은 결과를 받아내기만 하면 자기 실적으로 쌓이게 되니까. 그래서 사장은 대개 장재완이 교섭해 놓은 채권을 자기 몫으로 돌렸다.


장재완은 다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고덕형 씨 핸드폰이죠? ... 와이캐피탈입니다. ... 요즘 장사는 좀 어때요? ... 불경기, 아, 불경기 우리도 아주 미치겠어요. 돈이 돌고 돌아야 돈인데. 내가 지금 고사장님 대출기록 보고 있는데, 보니까 원금 150에 이자가 300이 좀 넘네요. ... 연체이자는 대출이자하고 같나? 잘 아시면서 왜 그래요? 이거 신규일발이네. ... 돈 빌리고 이자만 딱 한 번 내셨다고요. ... 예에. 이런 경우는 사기로 고소가 들어가요. 사기죄면 형사소송이라 빚 다 갚고서도 벌금 따로 내셔야죠. ... 우리가 뭐 없는 소리 하나. 변호사든 법무사든 찾아 가세요. 경찰서에 가서 물어 보든가. ... 아, 잠시만요. 5분만 있다가 전화할게요.”



툭, 장재완이 수화기를 내던지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철수는 수화기를 들고 장재완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그는 양손 새끼손가락을 번갈아 귓구멍에 넣고 열심히 후벼댔다. 시원할 때까지 귀를 파고 나서는 새끼손가락 끝을 유심히 관찰하고 입으로 훅훅 불어서 귀지를 날려버렸다. 양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펴고 목을 좌우로 끄덕끄덕 흔들어댄 뒤 넥타이를 고쳐 맸다. 그렇게 딴청을 피우다가 다시 수화기를 들고 재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법무부에 급하게 전달사항이 있어서.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죠? ... 그래요. 다 해봐야 450인데 소송 들어가기 전에 빨리 처리하시죠. 오늘 중으로 처리해 주시면 특별히 50 정도는 빼드릴 수가 있어요. ... 젊으신 분인데 채무가 이렇게 쌓여 있으면 어떡해요? 사업 계속 하려면 신용이 생명인데 안 그래요? 앞으로 돈 벌어서 장가도 가고 부모님도 모시고 하셔야지. ... 빚을 정리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시작하는 거죠. ... 4시까지 더도 말고 딱 400만 마련해서 연락주세요. 예예.”



장재완은 채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일에 능숙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즐기는 것 같았다. 철수는 장재완이 채무자를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하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지만 볼 때마다 신기했다. 채무자와 전화통화를 할 때 그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표정까지 변했다. 무대에 오른 배우 같았다. 그 중에도 배역에 몰입해서 열정을 뿜어내는 멋진 배우였다. 젊은 시절 내내 룸살롱 웨이터로 일하다 서른이 되어서야 채권추심업계에 들어온 그에게는 이 업계에서 성공하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그는 실적이 좋았고 빠르게 대리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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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욕하지 마시라고요. 왜 욕을 하고 그래, 아저씨 나 알아?”



철수의 책상 맞은 편에서 오진성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통화를 하느라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철수는 불안했다. 오진성은 25살로 와이캐피탈의 남자직원 중 나이가 가장 어렸다. 2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을 마치고 곧바로 입사한 첫 직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는 성격이 급하고 감정적인 편이라 고객응대에 능숙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누군지 아냐고? 내가 누군지 알고서 이 새끼 저 새끼 찾아?”


목소리가 격양되자 박치훈 과장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박치훈 과장은 오진성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 뭐하는 거야? 전화 끊어.”


오진성은 과장이 시키는 대로 전화를 끊었지만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댔다. 과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 새끼 또 금감원에 컴플레인 들어가면 어쩔라고...”



채무자가 추심원에게 욕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괜히 욕을 먹다 보면 추심원 입장에서도 화가 나서 맞대응을 하게 되는데 그럴 때 욕으로 맞서면 회사가 곤란해졌다.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기관은 금융감독원이었는데 채권추심원이 채무자에게 험한 욕을 하거나 위압적인 태도로 대해서 민원이 들어가면 업체가 집중단속의 타겟이 될 수 있으므로 모두 조심하고 있었다. 최선책은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사장도 과장도 누누히 직원들에게 가르쳤다.

 

 

철수는 성격이 유순해서 이전에도 다른 사람에게 맞서 욕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고 덕분에 이 회사에 쉽게 적응한 것 같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한 살 차이일뿐인데 오진성은 젊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종종 사고를 일으켰다. 금감원에 몇 차례 민원이 들어가자 사내에서 징계가 떨어졌고 오진성은 대리로 승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주임으로 직급이 강등되었다. 결국 철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오진성은 입사가 일 년 빠르지만 철수와 같은 주임 직급을 달게 되었다. 상명하복의 위계가 철저한 회사에서 꽤나 불편한 관계였다.

 

 

공평하게 들어보았을 때 오진성보다 장재완의 말이 훨씬 더 심한데 어째서 오진성의 채무자만 금감원에 민원을 넣고 장재완의 채무자는 통장에 돈을 넣는 것일까, 철수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늘 아침의 채무자가 무사히 눈 감아 줄까 걱정스러웠고 그보다 먼저 사내에서의 일이 걱정되었다. 과장이야 한 소리 던지고 말았지만 저쪽에서 오진성을 바라보는 사장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철수는 아침부터 사장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일 오진성이 가여웠다.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문득 시계를 보니 10시가 가까워졌다. 철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전 한 시간 동안 입금을 약속한 채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철수는 눈꼬리가 가늘어진 사장의 얼굴을 흘끔흘끔 살피며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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