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8. 29. 목요일
ODGD
1. 서론
살면서 이런 질문 한 번 안 받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이라는 영화 보셨어요?”
당신이 만약 그 영화를 보았다면, 혹은 보지 않았더라도 질문자와의 대화를 유연하게 이어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 질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나 이런 경우라면.
“그 영화… 보셨어요?”
자,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찌 할 텐가? 쿨내 나게 ‘그런 영화 안 봐’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대화의 흐름을 끊고 그녀와의 인연이 끊어져도 단 한 줌의 후회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더더군다나 일대일의 대화가 아닌 경우라면-당신이 저런 여인과 일대일로 대화할 수 있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은 성립되지 않는다-그 영화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가는 수십 분 동안 당신은 잠자코 버로우를 탈 수 밖에 없는데도?? 일단 나는 그렇게 못한다. 어떻게든 대화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혹시 당신은 그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하고 작품성도 뛰어난, 그래서 당신도 충분히 보았을만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대부분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칭찬하기 보다는 까 내리는 데에 더욱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현재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커피숍만 해도 각자 다른 주제로 험담을 하고 있는 다수의 고객들을 목격한 바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은 결코 억지주장이 아닌 것이다(본문의 커피숍은 벙커1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
자, 이제 당신은 문채ㅇ... 아니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다른 경쟁자들이 모르는 팁을 얻게 된 것이다. 다른 이들이 그녀의 말에 경청하며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말을 꺼내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의외의 거지 같은 영화 제목에 어벙벙 하고 있을 때, 당신은 그 영화에 대처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된 것이다.
추진력의 중요성은 이 짤로 대신한다.
보통의 글이라면 이 정도의 정보에 으스대며 마무리 되겠지만 평소 산타에 버금가는 퍼주기를 즐기는 필자,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당신을 포함한 다수의 남자들은 채원이의 마음을 얻고 싶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는 시간. 그녀가 ‘혹시 그 영화 봤어? 진짜 최악이더라.’ 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당황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중 순발력 있는 남자들은 그 말에 동조하며 그 영화를 까 내린다. ‘최악이다.’ ‘돈 아깝다.’ 등등.
하지만 당신은 그 중 ONE and ONLY가 되어야만 하는 남자. 한 발짝 더 나간다.
바로 그녀가 최악이라고 한 영화를 극찬하는 것.
잠깐만 다른 얘기를 해보자. 섹시함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떡 벌어진 어깨? 터질 듯 한 근육? 군더더기 없는 바디라인? 이 모든 것이 섹시함의 상징일 수 있지만 동시에 필자를 포함한 일반인에겐 가지기에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이다.
노력의 결과가 설마 이렇지는 않을 거라고 당신은 장담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없어도 우리가 섹시함을 겸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지적인 섹시함’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낼 때 그에 반하는 주장을 유연하고 깔끔하게 펼치는,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들마저 그에게 동조하게 만드는 순간, 이미 당신에게서는 지적인 섹시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적인 섹시함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식스팩을 유지하기 위해 닭 가슴살 씹으며 스쿼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솔깃하지 않은가????? 헬스? 개나 줘버려!!
지적 섹시함을 믿지 못하는 독자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동시에 영화가 끝난 뒤 커밍아웃을 결심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이제 세팅은 끝났고 당신은 ONE and ONLY가 되는 방법을 익혔다. 이 치열한 연애전쟁에서 대부분이 가지지 못한 기관총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총알 없는 총은 세치과도 만도 못한 법. 이제 필자는 여러분에게 탄환을 지급하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악의 영화라 혹평하는 영화들. 동시에 그렇기에 쉽사리 접할 수도,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 영화들. 필자가 대신 봐주고, 극찬해 주겠다 이거다. 아 박애주의 쩐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아래와 같다.
후달리냐?... 나도...
1998년 8월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퇴마록>이라는 영화가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성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은 이후, 우리는 <엑소시스트>나 <콘스탄틴> 같은 바다 너머의 퇴마사에만 만족한 채 지내야 했다. 그러나 마치 운명처럼, 정확히 10년 뒤, 우리의 그런 갈증을 씻어 줄, 대한민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얻게 되었으니-
그 영화가 바로 <맨데이트 : 신이 주신 임무>인 것이다. 제목부터 우리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Mandate(권한을 주다, 지시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해 지적포만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신이 주신 임무’라는 부제를 붙여 칼 한 자루 덜렁 들고 서울의 마천루를 굽어 살피는 저 자가 신의 임무를 받은 자라는 것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이후의 글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제목, 포스터, 본편에 이르기까지 관객에 대한 배려를 절대 잃지 않는다. 저 거룩한 포스터에 대해서만도 화수분처럼 이야기 거리가 쏟아져 나오지만 중요한 것은 본편이기에 아쉽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2. 어떤 영화인가
분명 여기까지 읽었을 때 이미 급 피로감을 느끼고 뒤로 가기에 손이 가는 독자들이 존재할 터. 이제부터 펼쳐질 주옥 같은 글을 경험하지 못할 그대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며 일단 줄거리안내 들어간다.
내가 쓴 거 아니다. 영화에 나온다.
...그렇다고 한다. 음. 뭐... 응.
아무튼 우리의 주인공인 '최강'은 신의 임무를 받은 퇴마사이고 ‘탕’이라는 악령을 추적하고 있는데 이 ‘탕’이라는 악령은 10여 년 전부터 한 시골 마을에 머물며 연쇄 강간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악령은 예전 최강의 아버지(역시 퇴마사)와의 결투에서 그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주 질 나쁜 악령이다. 그리하여 최강은 탕이 숨어있는 화곡리로 찾아가고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최강의 퇴마사 최강이 왜 10년씩이나 탕을 못 잡고 있었는지, 왜 탕은 사람 넘치는 서울이나 광역시가 아닌 인적도 드문 시골 촌구석에서 연쇄 강간 살인을 저지르는지, 의심을 품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신의 뜻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아빠와 함께하는 훈련 몇 번으로 퇴마사가 되는 것을 보니 특별한 자격요건은 없지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피롤 타고나지 않으면 별 수 없는 일. 우리네 삶과 소름끼치도록 닮았다.
아까도 언급했듯 이 영화,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주옥 같지만 모든 면을 다루기엔 지면이 부족하기에 딱 세 가지로 나눠서 몇 가지 장면들과 함께 이 영화의 장점을 설명해볼까 한다.
1) 미장센
다들 아실 것이라 믿지만 미장센이라는 용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아주 간단하고 개괄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영화 내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미장센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화면 안의 공간, 소품, 날씨, 그리고 배우까지. 대사가 아닌 것으로 영화의 내러티브와 분위기를 표현해 내는 모든 것들이 미장센인 것이다. 이러한 특성상 직접적이라기보다는 은유와 비유로 극의 이해와 깊이를 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미장센의 교과서에 가깝다.
첫 장면부터 영화는 90년대의 힙 투 더 합한 랩송을 전면에 배치하며 도심의 풍경을 앵글에 담는다.
파라다이스와 아프리카 난민
키스 당구장(?)과 폐허가 된 건물
이 두 장면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서로 절대 묶일 수 없는 두 개의 이미지를 한 앵글에 배치함으로써 우리에게 알 수 없는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영화상으로는 화면들이 굉장히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이런 분석적인 견해를 내기가 쉽지 않지만 인트로가 끝나갈 때즈음 이 영상들은 우리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박혀 쾌락적인 삶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실제로 필자는 이 영화를 본 이후 그 자리에서 단숨에 피운 한 갑 반의 담배를 모두 재떨이 안에 버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떨칠 수 없는 궁금증이 있었다. 누군가의 몸에 들어간 탕은 연달아 무력한 여성을 잡아 범죄를 저지르는데, 충분히 여성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강간까지는 하지 않는다(물론 결국 살인을 저지르기에 결코 죄가 가볍다 할 수는 없다). 정확히 얘기하면 여성의 몸을 더듬는 ‘추행’은 있으되 실제 ‘강간’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이 저지르는 일이라면 자신의 흔적을 남게 하지 않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겠지만, 이 모든 범죄는 인간의 몸을 빌린 탕이 저지른 것. 흔적은 물론이고 범죄 현장에 그대로 앉아 있더라도 탕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다. 그런데 왜...?
이 해답은 영화 시작 23분 만에 밝혀진다. 아니, 정확히는 '발견되어 진다'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왼쪽부터 형사반장, 신기자, 최강이다.
보이시는가?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현장의 모습이다. 영화 순서상으로도 범행이 벌어지는 장면 바로 다음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흔히 우리는 이런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주로 보게 되겠지만 이 장면에 제작진들이 숨겨놓은 답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시선에 제일 가까이 놓여있는 비쩍 말라 비틀어진 고추 되시겠다. 이미 추수가 끝난 것으로 보이는 저 고추 비닐하우스에 대체 왜? 단 한 개의 고추만 처량히,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남아있는 것일까?? 그렇다. 저 비쩍 마른 고추는 우리의 악령, 탕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의 탕은 성기능 장애가 있는 것이었던 것이다...
아 안돼
음란귀인 탕이 성기능장애라니.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시점에서 나는 탕에게 뜨거운 연민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핵심적인 내용은 퇴마사가 악령을 무찌른다는 것이다. 즉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형적인 주제임과 동시에 식상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런 주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이 정도 수준의 영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연결 들어간다.
우리의 최강이 현장에서 주워온 동네 고딩. 태워다 준다고 하자 쿨하게 중지를 내민다.
고딩에게 디스당한 최강은 동네 잡귀에게 중지를 내밀고
그 소식을 들은 탕은 동네 고딩에게 빙 to the 의
레알 소름 돋지 않는가…?
이렇게 정리를 해 놓았으니 망정이지 그저 흐르듯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쉽게 그 진의를 알려주지 않는 은밀한 서브플롯으로 가득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인 것이다. 그 외에도 최강과 탕의 추격전에서 탕이 쉴 새 없이 갈아타는 인간들이 그 전에 한 번씩은 다 등장했던 사람들이라는 것 또한 마을 전체가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은유인 것이지 결코 제작비가 없다거나 보조 출연자 돌려막기가 아닌 것이다. 오해하지 말라. 이 영화는 절대 그럴 영화가 아니니.
2) 관객에 대한 배려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다 보니 잔인한 장면도 많고 극단적인 묘사도 많다. 어둡고 음울한 톤 역시 시종일관 유지된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영화이다 보니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들도 많다. 그러나 이 영화, 그런 관객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왼쪽 사진은 주인공 최강의 첫 등장장면, 그리고 오른쪽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장면들의 연결을 보고 뒤에 나오는 저 아이가 최강의 어린 시절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관객들이 이 사실을 알아채지는 못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제작진. 사진을 다시 보자. 같은 칼을 쥐어준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똑같은 옷을 입혀 놓았다. 이런 묘사방식은 매체의 특성상 캐릭터들의 얼굴이 비슷해질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끔 쓰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제작진은 과감히 실사 영화에 이 기법을 사용함으로서 그 어떤 관객도 영화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도록 하는 관용의 연출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이런 장르를 감당하지 못하는 심약한 관객들을 위해 용단을 내리고야 말았으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 애쓰지 말라. 안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거의 모든 격투 장면을 매우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아니 그 이전에 누가 누군지조차 도저히 식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의심병에 걸린 독자들은 필자가 일부러 화면을 어둡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세 개 찍은 벙커원 쿠폰을 걸고 그 어떠한 조작도 없었음을 맹세할 수 있다. 혹 이 영화를 실제로 본 관객(드래곤, 유니콘과 동급의 존재감이라 전해진다)이 ‘내가 봤을 땐 이렇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고 싶거든 필자가 친히 핸드폰 결재로 천원을 낸 네이버 측에 이의를 제기하기 바란다.
이해력이 부족한 관객, 잔인한 장면을 싫어하는 관객까지 배려한 이 영화, 심지어 이런 어두운 톤의 묵직한 영화에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장면까지 선사한다.
위의 세 사진은 지금까지 소개한 영화에 버젓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최강과 탕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지쳐있는 관객들을 위한 이런 서비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실행에 옮길 수는 없다. 철저히 장르적이고 작가적인 연출을 구사하면서도 대중영화로서의 본분도 잊지 않은 이 영화. 말로만 듣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가 바로 이 영화인 것이다.
3) 성흔 [stigmata, 聖痕]
일반적으로 사람의 몸에 새겨진 흔적 중 특별히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요즘엔 커피 찌꺼기, 돌 따위에 자연적으로 새겨진 얼룩들을 성흔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 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 중 직접적으로 종교적 의미를 지닌 장면들을 성흔이라는 단어를 빌려 표현하고자 한다.
위의 사진은 아까 간략하게 설명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인트로 영상에 삽입된 이미지다. 일견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듯 하지만 인트로 영상만 따로 떼어내 놓고 생각해보면 이미 영화 초반부터 이런 이미지들을 이용해 영화 말미에 결국 신의 임무를 받은 자가 승리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심지어 왼쪽의 십자가 이미지는 인트로 영상 중 유일하게 퀵 줌이 들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의 사진은 영화상 두 번째 피해자들이다. 보시다시피 어두컴컴한 어딘가에서 귀신을 불러내는 의식을 하다가 악령 탕에게 당하고 만다.
영화 속에서 이들 이외의 피해자들은 모두 혼자 있을 때 변을 당했다. 아까 언급했던 대로 성기능장애를 앓고 있는, 그리고 시종일관 최강에게서 도망치기에 바쁜 연약한 우리의 친구 탕이 두 명의 인간을 한꺼번에 공격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 두 명의 여학생들이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배트맨 없는 조커가 있을 수 없듯, 아무리 적이라지만 신을 무시하고 어줍잖은 촛불 몇 개로 영혼을 불러내려는 아둔한 인간을 벌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정도면 우리의 탕도 베지터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악당이라 해도 좋겠다. 여기서 잠깐, 왜 뜬금없이 여학생들이 후레쉬며 양초며 바리바리 싸들고 폐공장에 갔는지는 궁금해하지 말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단이라는 사실 뿐이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사실은 오직 하나, 그들이 영혼을 불렀고, 그래서 탕이 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전개인가?
이단에 대한 엄격한 시선은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보여진다. 범인으로 몰리고 있던 한 남자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목숨을 끊고 난 뒤, 기자로 신분을 위장한 또 다른 퇴마사가 뭔가 병신 같지만 멋있는 장비로 남자의 방 안을 탐색하는 순간-
이리와~ 이리와~
그녀의 장비에 죽은 남자의 영혼이 찍힌다. 이게 뭔 병신놀음인가 싶겠지만 잠시 진정하고 저 남자 뒤의 배경을 보자. 한자와 기호들로 이루어진 원 형태의 그림. 전형적인 이단의 상징인 것이다. 저 남자는 억울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 이단자에 대한 신의 응징인 것이다.
-사족이지만 저 남자의 손짓은 대한민국 전통 호러의 클래식,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등장하는 무브로서 저 손짓을 쿨하게 쌩까고 나가는 여기자의 태도로 보아 지난 세월의 구태의연한 클리셰에서 벗어나 새로운 하이테크 호러물로 나아가겠다는 제작진의 당돌한 출사표로 읽혀진다.-
반장이 최강을 심문하고 있다. 경찰 앞에서 쿨내 나게 하품하는 최강의 자세를 보라.
이 역시 흔하디 흔한 장면. 주인공을 의심하는 경찰과 그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주인공. 이 장면이 그렇게 허접한 텍스트로 읽혀진다면 아직 당신은 멀었다.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화면을 지켜보자. 일반적인 한국영화에서의 경찰 책상에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있다. 찾으셨는가...? 이 영화,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 혹자는 여기서 그냥 저렇게 스쳐지나가는 별 것 아닌 소품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분들, 아래 사진을 보라.
그 분. 원샷 받으셨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영화 흐름 속에서 1초가 넘는 시간의 원 샷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쉬이 파악하시리라 본다. 그리고 최강에 비해 그 활약은 적지만 구전에 의하면 그 실력이 만만치 않다고 하는 여기자가 퇴마사로 거듭나는 회상 장면에서도 성흔은 오롯이 존재한다.
귀신들이 괴롭혀? 니가 잡으면 됨.
사실 지금까지 나열한 예들은 실제로 영화를 본다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가 이렇게 끝나거든.
영화를 끝까지 다 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더 이상 이 영화를 의심하지 말라!!
영화의 제일 첫 장면이다.
메가 픽쳐스라는 영화사 로고를 보라. 이름이 메가 픽쳐스라면 MP라고 써 있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그들은 버젓이 JC라는 이니셜을 새겨 놓았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JC가 ‘누구’를 지칭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재키 챤은 아닐 거 아냐?!?
그 외에도 수많은 미덕들로 가득 찬 영화이지만 이 이상 얘기한다면 이미 이 영화의 매력에 흠뻑 취해 토렌트를 뒤지고 있을 독자들의 흥을 깨버릴 일이기에 여기서 줄이도록 한다(암만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네이버에서 1000원에 모시고 있으니 그쪽으로 ㄱㄱ).
3. 결론
한글2010 기준 17쪽에 달하는 글을 쓰고 나니 눈앞이 침침하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으로 인해 독자 여러분들이 전국 각지에서 미인을 쟁취할 것을 생각하니 그 보람됨 또한 무시할 수 없음이다. 부디 집구석에 쳐 박혀 모니터만 바라보는 것은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하고 당장 문을 박차고 나와 필자가 여러분에게 지급한 무기를 아낌없이 사용하길 바란다.
ODG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