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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05. 목요일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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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관전해 봅시다



내 평생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메이저 언론에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꼴을 또 볼 수 있을까 싶은 2013년이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슬로건을 이제는 그만 써야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한발치 떨어져서 이 사태 전반을 ‘국정원 신드롬이라고 규정하고, 큰 그림 보기를 시도해보련다. 안되면 말고.

일전에 썼던 [국정원, 사실과 소설]을 참고하면 좋겠다.


예전의 국정원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은 작금의 현실이 시작된 건 MB가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앉히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보 경력이 전무한 최측근을 국정원에 앉혔고, 정보 경력은 없었지만 조직관리에 능통했던 원세훈은 국정원 조직을 금세 장악한다. 그리고 그는 ‘종북세력의 제도권 진입은 안 된다는 발언을 실제로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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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최측근인 국정원장 - 성공적인 조직 장악 - ‘종북세력’ 발언 - NLL 문건 새누리당으로 유출 - 대선 댓글 개입


이 사실들 사이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 해석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다음 국정원장인 남재준은 NLL 문건을 그냥 일반에 풀어버림으로써 원세훈의 국정원과 연결고리를 잇는다. 이어서 이석기 의원 압수 수색 건에 국정원 자체를 부각시키면서 연타로 국정원을 완연한 ‘양지로 끌어올린다. 그냥 보도가 나온 걸 갖고 ‘완연한 양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냐고?


인터넷 기사가 검색 가능한 2000년도 이후 ~ 2012년 이전의 기사를 검색해 보면 국정원이 누군가를 압수 수색하는 것이 보도된 적은 2001년의 <자주민보> 압수 수색 1건 밖에 없다. 그나마 이것도 진보 언론에서 <자주민보>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 단독 보도한 것으로 메이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오히려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 수색하거나 국정원 간부를 압수 수색한 게 더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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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12년 만에 압수 수색을 한 것으로 보든, 압수 수색은 많이 해왔지만 보도된 게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보든지 간에 이석기 의원 압수 수색 건은 아주 이례적이다. 그리고 그 이례적인 보도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것이 국정 조사 이후 특검 얘기 까지 거론되고 있는 국정원 자신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 조직이 이 정도로 이례적인 집중을 받고, 그 현상이 그 조직 자체에 순기능을 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남재준이 이 모든 걸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남재준이 국정원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국정원은 유래 없이 양지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면 이제 양지로 올라와버린 국정원이 지니고 있는 각종 혐의를 대충 정리해보자. 추정은 빼고 드러난 것만 봐도 차고 넘친다.


우선 NLL 문건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뉘앙스를 크게 바꾸는 왜곡을 했다. 뭐 요약 과정에서 실수를 했느니 뭐니 해도 ‘나를 ‘저로 바꾸는 등의 문제들은 언론에서 제목으로 그대로 인용됐으며, 딱히 정정 보도도 없었다는 점에서 만에 하나 진짜로 실수라 해도 실수라고 봐줄 수 없는 존나 큰일이다. 나라의 안보를 위해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이 국가 기밀 문서를 요약하면서 할만 한 실수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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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왜곡한 요약 문건을 일반에 공개해 버렸다. 국가 기밀이자 외교적 파급력이 상당한 문서를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풀었다고 국정원장이 직접 발언했다. 그리고 청와대는 이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음을 천명했다.


지난 대선에서 댓글을 통해 여론에 개입한 것 또한 사실이다. 댓글을 달았던 요원 당사자가 국정조사에서 ‘정상적인 업무였다는 발언을 했고, 검찰 조사를 통해 댓글 내용이 파악됐으니 이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에 밝혀진 사실들에 따르면 국정원 요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댓글 알바질에 참여했고, 그 대가로 비용이 지급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얘기니까 경찰의 수사 축소 혐의는 별개로 하자.


이 모든 과정의 내부가 아닌 이 과정이 밝혀지는 상위 과정에서 드러난 혐의도 빠트릴 수 없다. 앞서 말한 NLL 문건 요약 과정에서의 왜곡에 대해 ‘실수라고 이유를 대는 등의 여론 대응 방법에서 드러난 건 국정원이 조직의 목적과 책무보다 정치적 포지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 책무를 맡은 담당자가 ‘실수였다고 대답하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온당한 대답은 기술적인 원인과 결과, 그 결과가 끼치는 영향,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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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댓글 여론 개입도 조직의 특성상 모든 업무를 낱낱이 까발릴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답변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가 혼재하는 답변이 이어졌기 때문에 국정원의 답변들 사이에 아귀가 맞지 않는 현상이 드러난다. 예컨대 정상적인 국정원의 업무였다는 발언과 오피스텔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발언은 모순이 되며,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었다는 발언과 문재인 후보 지지글에 반대를 누른 기록 또한 모순된다. 이렇게 모순되는 지점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한다.


자, 이 전체 흐름을 요약해보자.


국정원은 원세훈 원장 재임 시절 벌였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2013년 3분기 동안 양지로 완연히 드러나게 됐으며, 같은 시기의 대외 발언을 종합하면 본연의 책무보다 정치적 입장 확보를 우선시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 모습의 일환으로 자료의 변질, 앞뒤가 안 맞는 모순적 발언, 공개해선 안 될 사실의 독단적 공개 등이 발견됐다.


그 와중에 이석기 의원 압수 수색 사건이 터졌고(혹은 터뜨렸고), 그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당사자가 바로 국정원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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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으로 이 사태를 다시 보자.


앞서 게재했던 기사 [국정원의 반격이 심상치 않은 이유]를 통해 거론했듯이 이 사태는 국정원이 다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막 던진 게 아니라 계획과 목적이 명확한 행위의 결과로 볼 수 있으며, 발발 이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은 이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 앞서 살펴본 흐름을 깔면 이렇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이 있다. 그 녹취록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이므로 일단 차치하자. 염두에 둬야 하는 점은 국정원이 외교적 불이익과 조직의 책무를 위배하면서까지 일반에 공개한 NLL 요약 문건이 상당 부분 왜곡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태가 국정원에 가져다 준 순기능을 고려할 때 이석기 의원과 그 모임 참가자들이 아무리 빡센 발언을 했다 한들 국정원이 그 수위를 그대로 공개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는 없다.


일단 공개된 녹취록을 바탕으로 해당 회동에 대한 판단을 할 때, 부분적인 표현이 NLL 문건 공개 당시 왜곡된 정도는 역시 왜곡이 돼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되도록 전체적 흐름을 바탕으로 그 심각성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컨대 이석기 의원이 미국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있어도 ‘미국놈이라 표현한 것만으로 그의 태도를 판단하는 것은 유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나를 ‘저로 바꾸는 정도의 실수 감각이면 미국을 미국놈으로 바꾸는 정도의 실수는 현재의 국정원 요원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으므로.


쉽게 말하면 그 녹취록에서 단어 선택이나 문장 구성 같은 ‘뉘앙스를 판단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디테일을 파고들지 말자는 얘기.


이 태도를 유지한 상태로 이 사태를 대하면 극도로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벗어나는데 꽤 도움이 된다. 예컨대 디테일로 파고들었을 때 이석기 의원이 ‘총을 갖고 다니지 말라고 한 말이 총기 확보로 왜곡됐다는 말을 하면 한 번 더 혼란스러워지겠지만, 애초에 ‘현직 국회의원이 전쟁 발발 시 자국 군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태도 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저런 디테일은 중요치 않다. 보도 연맹 사건 등의 전례를 볼 때 전쟁 발발시 본인들의 생사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전제를 한 상태로 자국 군에 ‘대항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그 태도 자체는 한 번도 반박된 적이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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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국정원의 큰 그림을 바라봤듯, 이석기 의원의 큰 그림을 바라보고 그 흐름을 접목시키면 본 사태에 대한 혼란을 훨씬 더 줄일 수 있겠다. 우선 이석기 의원은 숱한 종북 논란에 대해 나름대로 일관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사상의 자유’. 이 얘기는 종북 논란에 대한 반박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의 쟁점인 그 회동에서의 발언 수위가 ‘구체적 계획’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려 노력하는 것이지, ‘유사시 자국군에 대항하겠다는 태도는 진위 여부를 밝힐 의도 자체가 없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파악할 수 있는 건 그는 사상적 자유는 완전히 보장돼야 한다는 전제 하에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정서가 급진NL적 사상을 지닌 국회의원이 존재함을 크게 우려하더라도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상의 자유는 보장이 돼야 하고, 자신은 정당한 과정을 통해 의원직을 맡게 됐으므로 사퇴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식.


이 두 점을 접목하고 사태를 다시 한번 보자.


국정원은 디테일을 왜곡 했을 것으로 보이는 녹취록을 근거로 이석기 의원 측을 압박한다. 이석기 의원은 바로 그 디테일을 반박하지만, 전체적 대화의 흐름은 반박하지 않는다.


국정원과 검찰은 국가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2가지를 걸고 있지만, 공개된 내용을 그대로 봐도 국가 내란 음모로 보기에 무리인 부분이 있으며, 만일 공개된 내용 중 왜곡된 부분을 제거하게 된다면 국가 내란 음모로는 전혀 볼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이 법이 지니는 역사적 특성상 갖다 붙이면 붙기 때문에 왜곡된 부분을 제거하든 안하든 이석기 의원은 이를 위반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국가보안법.JPG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보자


바로 이 지점에서 이석기 의원 측은 디테일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주장하고, 동시에 사상의 자유를 주장한다. 이 얘기는 위의 구도에서 볼 때 국가 내란 음모는 절대 아니며,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위반 여부 판단 자체를 회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사태 전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입장은 매우 복합적이다. 각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 자체를 부정선거라고 보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게 다 물타기이고, 계속 언급되는 자체가 싫을 것이다. 그리고 통진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국정원의 얕은 수에 휘둘리는 대중 여론이 야속할 것이다. 반면 NL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내란 음모든 국보법 위반이든 허위든 간에 이석기와 그 일당이 없어져 버렸으면 할 것이고, 국정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이참에 야권 전체가 무력화되길 기대할 지 모른다.


독자들 각각이 수많은 태도들 중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이것 만큼은 분명히 하자. 일련의 사실들을 바탕으로 할 때 이 사태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중 정서에 의거한 대립이 아니다. 본연의 책무보다 정치가 더 중요한 국정원과 졸라게 극단적인 사상을 지닌 채 그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세력이 의석수를 지닌 야당으로서 벌이는 대립이다. 참으로 기묘한 대립이다.


몇 주 전 썼던 기사인 [이 모든 사태와 논란에 대하여]의 마무리를 이렇게 한 적이 있다. 이 모든 사태와 논란이 극도로 복잡다단하고 우리에게 피로감을 주는 근본적 원인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데에 기인할 수 있다고. 민주주의는 효율적이기 때문에 지지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정당하게 돈 주고 구매하는 것 보다 훔치고 빼앗는 게 쉬울 때도 있지만, 우리는 단지 쉬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주고 물건을 산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자. 이 거대한 국정원 신드롬의 절정에서 니들이 틀렸고 내가 옳다거나 니들은 없어져야 하고 내가 남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진 않은지. 혹시 그렇다면 그 말의 깊숙한 곳에 이 모든 게 다 피로하고 그냥 좀 편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그 욕망이 민주주의의 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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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쉬고 싶다


앞서 정리한 이 기묘한 대립은 그 기묘함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그 복잡함 때문에 바라보는 것 자체가 매우 피로한 일이다. 뭐 어쩌겠는가.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원래 피로한데.


두 세력의 최근 행보를 바탕으로 한 이 관전법이 그 피로함을 조금 덜어주길 바라본다.


끝.







춘심애비

트위터 : @miiruu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