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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06. 금요일

raks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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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산모 중에는 외국인 산모들이 참 많습니다. 베트남, 태국, 중국, 일본, 미국,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네팔 기타 등등. 대개는 20대 초반인데 많이 안 됐습니다. 애기를 낳을 때 엄마가 정말 많이 생각 난다는데, 그 어린 나이에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시집을 와서 엄마도 없이 애기 낳는 것. 이거 쉬운 일 아닙니다.


게다가 대개는 시댁과 사이가 안 좋습니다. 스무살 정도면 자기 주장도 강해서 고집도 세고 남의 의견 잘 안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이해가 안 가시면 자기 스무살 때 생각해 보시면 압니다. 본인이 그 때 말 잘 듣고 이해심이 깊었다고 한다면야 할 말이 없으나 방금 말씀드린 외국인 산모의 경우는 우리와 문화도 다르고 참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외국인 산모들 알게 모르게 차별 많이 받습니다. 잘 해줍시다. 우리나라에 세금 내는 우리나라 국민입니다. 제 글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서 그냥 적어 보았습니다.


아무튼 진도 나갑니다.


결국 아침, 점심 다 못 먹고 거의 기절하기 직전까지 왔습니다. 수술방을 나가면 또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밖에 있는 윗년차 레지던트가 좀 해주면 좋겠지만 뭐 그럴 리 없습니다. 아마 그대로 일이 쌓여 있을 것입니다.


아침 회진 돌 때 이미 몇 개 빵꾸 내서 박살 나고 수술방에 들어왔는 데, 나가면 그 일들을 당장 마무리 해야겠지만 배가 고파서 정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는 식사 값이 100만 원이라도 사 먹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수술방 수간호사가 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수미 선생님 점심 못 드셨죠?"


그러면서 도시락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감격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점심도 못 먹은 것을 눈치 채시고 식당에 부탁하여 도시락을 하나 남겨 놓은 것이었습니다. 수술방에서 밥이야 5분이면 먹으니까 시간 걸릴 일도 없습니다.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씀 드리고 수술방 갱의실로 왔습니다. 원래 수술방에서 갱의실로 나오는 즉시 피 묻은 수술복을 갈아 입고  발에 묻은 피도 씻고 그러는데, 뭐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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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옷이 이 정도면 안 쪽 수술복도 피가 묻을 확률이 높습니다


우사인 볼트의 100미터 속도로 갱의실로 달려가서 도시락을 먹으려고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저를 쳐다 보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하고 보니 외과 1년차 동기였습니다.


"너 이거 혼자 다 먹을거야?"


"너도 점심 못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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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식은 것은 문제가 전혀 안 됩니다


외과나 산부인과나 1년차 주제에 점심도 못 먹었는데 아침 먹었을 리가 없습니다. 나무 젓가락을 반으로 잘랐습니다. 밥 먹으면서 정말 아무 말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 민망해 할 까바 눈을 피한 것 밖에 기억이 안 납니다.


수술방 손 씻기


수술방에서는 손을 열심히 씻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아니 왜 깨끗한 장갑을 끼는데 손을 열심히 씻어야 하지? 수술방 장갑은 손에 착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겨울에 끼는 그런 장갑과는 달리 맨 손과 큰 차이가 없이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장갑이 손을 보호해 주지는 못합니다. 당연히 잘 찢어지고, 만일 장갑이 찢어졌는 데 손을 씻지 않아 더럽다면 수술장에서 손의 균이 환자의 몸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술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환자 감염인데 정말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에는 많은 균이 있다는 것은 다 아실 것이고, 참고로 그래서 수술 할 때 장을 잘못 열어서 변이 나오거나 그러면 정말 초 대박 응급입니다. 가끔씩 수술자가 방귀를 뀌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수술이 잘못 되어 변이 밖으로 나와서 그런 줄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방귀 뀐 사람이 실토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매우 복잡해집니다.


아, 그리고 특별한 병이 없는 소변은 깨끗합니다. 수술중 방광에 구멍이 나서 소변이 수술장 내로 흘러도 소독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장갑이 찢어질 염려가 없는 수술을 하거나 처치를 할 때는 손을 안 씻을 때도 있습니다(분만, 소파술, 위 내시경 할 때 등등).


학생 때는 5분 정도 베타딘이라는 소독약으로 깨끗이 씻고 들어가라고 하는데 사실 5분 손 씻는 의사는 별로 없습니다. 


1분 정도 씻으면 많이 씻는다고 할 수 있고 손을 씻은 후에는 꼭 손 끝을 위로 올려서 혹시라도 씻지 않은 부위의 균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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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손가락을 들어 주어야 씻지 않은 팔꿈치에서 내려올 수 있는 균이 중력의 방향에 따라 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 수술방 실습을 나갈 때 정말 많이 듣는 잔소리가 바로 손을 씻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수술방 분위기


사실 의사와 간호사는 하는 일과 영역이 조금 다릅니다. 서로의 영역이 있어서 의외로 별로 안 부딪히는데 아무래도 의사고, 오더(order)를 내고 간호사가 수행을 하는 역할이라 말도 안 되는 오더를 내거나 혹은 중요한 오더를 빼 놓고 안 내거나 뭐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면 간호사가 의사에게 이야기 해서 오더를 바꾸거나 혹은 대신 내 달라고 그럽니다.


그러는 와중에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더를 안 냈으면 내 달라고 그러지 왜 그냥 말이 없으세요?"

(실제로 1년차들은 루틴 오더를 많이 빵꾸 내기 때문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이 막아줍니다)


"그냥 오더대로 하지 왜 이리 말이 많아요?"


그러다가 큰 소리로 언성이 오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는 서로 길들일려고 일부러 소리 지르고 챠트 집어 던지고 뭐 그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은 챠트가 없어져서 괜찮습니다. 아직(챠트 대신인) 컴퓨터를 던지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그러나 수술방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환자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대부분 간호사가 의사 오더대로 합니다. 사실 수술방에서는 일사분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조용히 이야기 하는 경우는 있지만 수술하는 도중에 간호사 선생님이 큰 소리로 의사에게 말하거나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참고로 간호사 선생님들 중 가장 안 바뀌는 곳이 수술방인 것 같습니다. 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성질 나쁜 몇몇 의사만 피하면 됩니다. 제가 1년에 한 번씩 모교 송년회를 가는데 거짓말처럼 수술방 간호사 선생님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외래, 혹은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은 그만 두시는 분이 많은 것을 보면 수술방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편, 레지던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방에서 잘못 하면 정말 혼납니다. 급박하므로 논리적으로 '너 이것 이것 잘못 했으니 혼나야 되겠다'가 아니라 그냥 스텝은 '빽' 소리를 지릅니다. 화가 나서 '너 나가고 다른 레지던트 들어오라고 해' 그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은 유명한 외과 선생님이 수술을 할 때 조금 졸았다나 어쨌다나.  암튼 그래서 수술방 기구로 가슴을 맞았는데 나중에 갱의실에서 보니 가슴에 멍이 든 것을 넘어서 피가 났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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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인자하게 나오시는 유명한 선생님들 중 수술방에서 난폭하신 분 의외로 많습니다. 제가 학생 때 정말 유명한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때 펠로우 선생님이 수술방에서 주먹으로 맞는 것도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 분 모교에서 교수님을 하고 계시지만 암튼 펠로우가 레지던트도 아니고 학생 나부랭이 앞에서 막 맞고 그러니 기분 정말 안 좋으셨을 것 같습니다.


수술방에서 수술을 할 때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음악에도 다 취향이 있어 제가 좋아 한다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게 아니고 또 시끄럽기도 해서 음악을 틀지 않습니다.


3년 전인가 병원에서 춤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 때 마취과 선생님 한 분도 공연 멤버였는데 '너는 많이 부족하니 일단 공연 음악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공연 음악을 수술하면서 들었습니다. 뭐 들으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 남들은 수술 시간에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1년차의 도피처


병원에는 교수실이 있고, 의국이 있고, 분국이 있습니다.


의국은 주로 고년차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주로  TV도 있고 chief 선생님의 각자 책상도 있고 침대도 있고 좋습니다. 의국 비서가 있어서 잡일도 해 줍니다.


분국은 주로 2-3년차가 씁니다. 의국 보다 훨씬 좁으며 주로 병동 옆에 붙어 있습니다. 정말 아주 잠깐 쉬는 곳입니다.


그러면 불쌍한 우리의 1년차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수술방 갱의실에 있습니다. 뭐 워낙 바빠서 자주는 못 가지만 시간 될 때 잠깐 커피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윗년차에게 부당하게 혼났을 때 가는 곳 역시 갱의실입니다. 큭큭거리고 구석에서 훌쩍이고 있으면 누군가 다른 1년차가 와서 위로해 주기도 하고 담배를 주기도 합니다.(내과 애들은 어디서 훌쩍이는지 모르겠네요)


또 간이 의자에 잠깐 누워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의국이나 분국에서 그렇게 퍼질러서 누워 있다가는 뭔가 꼬투리를 잡히겠죠. 1년차 때 그렇게 잠깐 누워 있다가 잠이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곤하게 자는 바람에 콜을 못 받은 적도 있습니다. 당연히 수술방으로 저를 찾으러 왔죠. 또 박살 나고. 개인적으로 저는 누우면 자는 타입이기 때문에 불면증 이런 사람들 잘 이해를 못합니다.


제 닉네임 '락슈미'는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인도의 여신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저희 교양 국어를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이 의대 졸업한다고 락슈미 신상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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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슈미'입니다. 어떤 분이 정부미 같은 쌀 이름이 아닌지 물어 보셔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인지 산부인과를 하게 되었고 또 산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때 실습을 돌다 보니 확실히 내과 보다는 외과 쪽 환자들이 담당 의사에게 더 깍듯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의국에 가 봐도 내과 보다는 외과 의국이(환자들이 보내주어서) 항상 먹을 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그렇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어도 시간이 없어서 과일 같은 것은 막 썩고 그렇습니다) 선물도 외과 쪽이 더 많이 받았습니다. 작은 마음(寸志)도 마찬가지로 외과가 많았습니다.


물론 몰골은 내과 쪽이 더 나아보이긴 했습니다.(1년 차는 비슷한데 윗년차들은 그렇게 보였음) 더구나 제 인물은 무척이나 좋은 편이긴 한데(쿨럭), 헤어 스타일이 좀 별로여서 수술방에서 모자를 쓰고 있으면 콤플렉스를 가릴 수 있다는 점 또한 외과 계통을 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의사들이 다 비슷한 것 같아도 내과 계열과 외과 계열이 정말 다릅니다. 시작은 비슷하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 아무래도 내과 계열은 약으로 고치는 것이니 조금 천천히 자세히 관찰하면서 지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외과 계열은 성격이 급하고 바로 결론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아 물론 내과 중에서도 시술이 많은 심장 내과와 외래 환자 위주인 내분비과 같은 곳은 또 전혀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수술이 엄청난 스트레스이지만 잘 되었을 때는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저에게 수술 받으신 분, 혹은 분만하신 분들을 병원에서 우연히 뵈었을 때도 제게 고마워 하시는 것을 보면 많은 보람을 느끼고 이 과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으로 수술방 이야기를 마치고 혹시 시간이 되면 응급실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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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ksumi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