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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다


정말 다행이다. 밤새도록 뒤척이며 과연 우리는, 우리를 대표하는 저 국회는, 자식 잃은 부모들의 작은 눈물 한 방울 닦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그 분들을 본회의장에 모셔다 놓고 그 앞에서 탄핵 소추안이 부결되는 참혹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었다. 그러면 진짜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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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좋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눈물 흘리는 그 분들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 가결 소식.


여기까지 오는데 3년 걸렸다. 그리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탄핵 소추안 가결의 의미


전체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서 1명은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고, 기권이 2명, 7표의 무효표가 나왔다. 찬성표가 234표, 반대가 56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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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숫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단순하게 야권과 무소속을 모두 합치면 172명이다. 공식적으로는 이들 모두 탄핵에 찬성했다. 거기에 소위 “비상시국회의” 소속이라고 했던 비박계 새누리당 의원들은 33명. 이들은 탄핵 찬성을 확실히 명시했으니 이들까지 합치면 모두 205명이 된다. 하지만 205라는 숫자는 234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최소 29명의 숨어있는 탄핵 찬성파가 더 있었던 것이다. 이 찬성파를 모두 합치면 반대파 56명 보다 많다. 즉, 탄핵 찬성 여부로만 새누리당을 갈라 보자면, 탄핵 찬성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는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계의 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탄핵 표결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많은 언론들은 220표를 하나의 분기점으로 간주했다. 탄핵 찬성표가 200표를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간당간당하게 통과되면 탄핵의 수순은 쉽지 않아진다는 것. 그러나 220표를 넘게 되면 탄력을 받게 되고 헌재에서도 인용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향후 새누리당 당내 주도권을 탄핵 찬성파가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이었다.


그 중심에는 유승민 등 탄핵 주도파가 자리잡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소위 친박계라 할 수 있는 계파는 붕괴의 길을 가게 된다. 실제로 친박계로 분류되던 사람들도 박근혜 탄핵안에 대거 찬성을 했다는 뜻이니 계파 붕괴는 투표 이전에 이미 진행된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기도 하다.


향후 정치구도의 재편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지난 총선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친박이라는 이름에 대한 반발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되고, 합리적 보수의 깃발 하에 정치적 생존을 도모하는 비박계의 움직임이 새누리당 내부의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쉬운 것은,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박근혜로부터 분리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박근혜와 함께 묻어 버려야 할 구시대의 잔재들로 만들어진 순장의 규모는 줄어들게 된 것이다.




헌재의 반응은?


이제 공은 절차적으로는 헌재로 넘어갔다.


국회에서 만들어진 탄핵 의결서는 한 부는 헌재로 보내지고, 또 한 부는 청와대로 송달이 된다. 청와대에 있는 박근혜는 이 의결서를 받아 드는 순간, 직무가 정지된다. 혹시... 이 문서의 송달을 거부하고 숨바꼭질이라도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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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에 의결서가 도착하면 그걸로 탄핵 심판의 절차가 개시된다. 과연 이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인가? 공식적으로는 의결서에 담겨있는 탄핵 소추 이유들이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헌법 정신과 합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은 법원에서 열리는 재판과는 달리 다분히 정치적인 심판이 된다. 전국민의 80%가 탄핵을 요구하고 있고, 거의 동일한 비율로 국회에서 통과된 탄핵소추안을 헌재가 거절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헌재는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는 만큼 또한 권력의 압박에도 취약한 기관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비록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그 이전, 즉 오늘까지 이미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헌재에 어떤 손을 써 뒀을지 모를 일이다. 객관적으로 전혀 터무니 없던 노무현의 탄핵 심판도 만장일치가 아닌 3:6이었을 뿐이다. 만약 탄핵 심판을 담당해야 할 헌법 재판관 9인 중 두세명 정도만 유고 상황을 당하게 된다면 정국은 다시 혼미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세 판사의 주장도, 국회에서 다수 의견으로 탄핵을 결의했다면, 헌재는 국회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었다는 점도 기억해 두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상식이다. 다수의 의견은 어지간한 경우에 상식을 따르게 되고, 이번 박근혜 탄핵에 관련해서는 범죄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명확하기 때문에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탄핵이 옳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 상식이 살아서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헌법재판관들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식의 영향력이 행사된다 하더라도 상식의 힘으로 그 검은 거래를 끊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촛불을 든 유권자 대중이 할 일만 더 늘어 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주인들에게 주어진 임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단한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시작


청와대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박근혜라는 기이한 인간을 끌어 내는 작업, 중요한 고비를 하나 넘어섰다. 남은 일은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완전 퇴거를 위해 헌재를 압박하는 촛불을 들면 될 뿐이다. 모두가 다 각오를 하고 계셨을 것이다.


더 큰 일거리는 박근혜의 머리 위에, 그 뒤에 더 크게 자리잡고 우리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를 끌어 내리기 위해 이 추운 날씨에 시내 한 복판에 나와 촛불과 횃불을 들어보신 분들은 이미 다들 눈치 채셨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검게 자리잡고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을 무겁게 짓누르던 부조리와의 싸움은 박근혜 하나 끝장 낸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저렇게 많으니 우리 모두 신발끈 동여매고 다시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처럼 쉬지 말고 달려가자는 식상한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그럴 줄 알았지?


더 큰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박근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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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들어왔을 것이다. 네가 집회 한 번 나간다고 무엇이 바뀌느냐, 이 추운 날에 길거리 나가 떨어봤자 너만 고생이다, 그러다가 채증 당해서 벌금이나 내고 빨간 줄이나 그어진다 등등.


이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내가 아닌 누군지 모를 다른 사람이 할 일이고 나는 내 앞가림이나 잘하면 된다는 제법 현명하고 실용적으로 보이는 생각들. 그런 생각으로 무장하고 나보다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며, 아니 은근슬쩍 짓밟고 올라 서는 것이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들.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이 공동체를 외면하고 헌법에 적혀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주인된 의무를 저버리며 살아왔다. 그 결과가 박근혜이며 최순실이고 정유라이며 차은택이 된 것이라는 점. 이제 우리 모두가 깨닫게 된 것이다.


나 하나 나간다고 뭐가 바뀌냐?


이렇게 바뀐다. 의기소침하던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여 백 만이 되고 이백삼십 만이 되어 탄핵 따위 생각도 안 하던 야당을 돌려 세우고, 4월 퇴진을 주장하던 비박계의 마음을 바꾸고, 오늘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234명의 찬성 표를 강요해 낸 것이다.


나 하나 움직여서 뭐가 바뀌냐?


대한민국 국회가 바뀌고 대한민국 대통령을 바꿀 수 있다. 이게 작아 보이시는가? 옳은 일을 위해 움직이는 나 하나는 절대 나 하나가 아니며 우리 모두가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는 고리타분해서 교과서에서도 안 가르쳐 주는 그런 정의가 현실에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눈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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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속으로 가라앉아 가는데, 구할 힘을 가진 대통령이 구할 생각을 안하고 멍때리며 시간을 보내 아이들의 생명을 잃어 버리게 만들면, 그 대통령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고 자리에서 쫓겨 나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구현이 되는지 몸으로 깨닫고 느끼고 마음속 깊이 알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는 이제부터 완전히 달라 질 것이다.


2016년 12월 9일, 오늘 새로 시작된 대한민국은 이전까지의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브렉시트가 벌어지고 트럼프가 당선되는 세상에서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는 말이다.


진짜 시작된 것은 바로 그 새로운 세상이다. 이것이 박근혜 하나 탄핵시키는 것 보다, 새누리당 하나 날려 버리는 것 보다 훨씬 더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축배를 들자.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위하여.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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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