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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편집장 주


일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소추안 가결 등에 대해
연일 톱으로 한국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의 정치적 맥락과 제도가 다르기에 
일본의 보도나 반응이 역으로 한국에 소개될 경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거나
한일 양국의 독자가 서로 오해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에 평소 한일언론의 보도 행태와 본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일본인 필자에게 관련 글을 기고받아 게재합니다.








최순실 사태가 한국사회를 시끌벅적하게 만들면서 일본에서도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보도를 통해서 서울 도심을 가득 채우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인파를 본 일본인들 눈에도 한국 정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다 나온 제3차대국민담화. 


일본의 신문사들은 담화 익일 1면 머리기사로 “박 대통령 ‘임기내에 퇴진’ ”(요미우리), “박 대통령 ‘임기전에 사임’”(마이니치),“박 대통령 사임을 표명”(아사히), “박 대통령이 사의”(도쿄), “박 대통령 사의표명”(산케이), “박 대통령, 임기에 앞서 사임”(니혼케이자이) 등등 마치 박 대통령이 금방 자진퇴진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제목을 붙였다. 한국의 신문들이 붙인 제목은 박 대통령이 스스로 사퇴할 의향이 없는 쪽으로 제목을 붙인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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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일본 주요 신문들은 예외 없이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위에 든 6곳 신문사 다 같음). 그런데 국회가 가결한 것은 탄핵"소추"안이지 "탄핵"안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제목이 난무한 상황이 됐는데 일본 신문사들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박 대통령 제3차대국민담화)라든가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소추안은 가결됐”다(정세균 국회의장에 의한 탄핵소추 선포)는 구절은, 일본인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이나 일본의 헌법상 제도를 감안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제목이 날아다니는 현상을 조성한 것이니 무작정 비난하는 것도 가혹할지 모르겠다. 한 마디로 일본에서는 경험상, 행정부 수령의 사퇴가 그리 드물지 않고 사퇴를 직접 언급하는 순간 사퇴가 기성사실화 되는 점. 그리고 헌법상 제도 차원에서도 집권중에 있는 정권이라도 민심과 너무 괴리돼 버리면 존립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제2차대전 후 수상의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제46대 가타야마 테츠(片山哲) 내각부터 제97대(현직) 아베 신죠(安倍晋三) 내각까지 모두 52대(내각의 대수는 국회에서 수상으로 지명될 때마다 바뀜), 1대당 평균 488일(1.34년)이 된다. 수상을 역임한 인수로 따져도 총 31명으로 평균 재임기간은 819일(2.24년)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장기정권을 유지한 수상도 있다. 사토오 에시사쿠(佐藤栄作) 수상의 2,798일(7.67년)을 비롯해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나카소네 야수히로(中曽根康弘) 등은 5년을 넘거나 5년 가까이 장기정권을 유지했다. 현직 아베 수상도 1,800일(4.9년)을 넘게 정권을 유지하고 있고(제1차 내각의 임기 포함), 역대 최장기 정권이 될 수 있다는 소리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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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면 일본 수상의 직위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하고 그만큼 일본인에게는 수상의 사퇴는 잦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제3차대국민담화에서 사퇴를 직접 언급한 것도 강한 인상을 주었을 거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라를 불문하고 정치계에서 통용되는 코드가 있고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 정치인이 말하는 “검토하겠다”라는 구절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런데 할 생각이 없다”로 바꿔 읽어야 정답이다. 수상이 사퇴의 각오를 굳힌 경우도 마찬가지.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됐다”라든지 “민심에 성실히 응하도록 처신하겠다” 정도면 “아아, 사퇴하려는구나”라고 독해해야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사퇴 언급 펀치"가 일본 기자들의 뇌를 흔든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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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이번 탄핵 정국을 잘못 알기 쉬운 또 하나의 요인으로 일본식 삼권분립 체제, 현재 정국의 경우에는 행정부와 다른 국가기관 간 관계에 큰 차이가 있다는 부분에 대한 무자각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용하고 있다. 수상(내각총리대신)은 국회의 지명에 기초해서 취임하고 재임중에도 중의원의 신임을 잃게 되면 내각총사퇴를 하거나 중의원을 해산시키게 된다(해산 후 총선거로 중의원 의원이 새로 선출되고 임시국회가 열리면 내각은 총사퇴함). 또한 관례상 국회에서 수상후보로 입후보하려면 소속 정당 내 경선을 이겨 당수(당대표)가 될 필요가 있다.


현직 아베 수상 역시 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 총재라는 직함으로 같은 당 당수이기도 하다(자민당 소속 수상을 “총리총재”라고 칭할 때가 있는바 그 중 “총재” 부분은 자민당 총재라는 뜻이다. 헌법상 수상직의 임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음에도 “수상의 임기”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정확하게는 수상의 소속 정당 당수로서의 임기를 뜻한다). 수상의 직위에는 그런 제도적 배경이 따르기 때문에 지지율이 30%를 하회하면 “위험영역”, 20%를 하회하면 “퇴진영역”이라고 불리며 보도기관들이 자진사퇴를 부추기기도 한다. 세간이 수상의 자진사퇴를 기성사실화 하는 가운데 수상 본인의 심정이 어떤지 용이하게 추측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일본인이 지금 한국의 정국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와닿지 않거나 오해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일본에는 행정부 수령에 대한 탄핵제도가 없다는 점이 있다. 한국 헌법상 대통령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퇴하게 하는(파면하는) 제도적 장치로써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이 있다. 이것은 대통령이 그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는지, 심판하는 사법기관으로서의 권능이다.


반면 일본에서 수상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퇴하게 하는 수단으로 중의원의 내각불신임결의가 있을 뿐이며 그 결의는 수상이나 각료에 의한 권한행사의 위법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순수 정치적으로 정권운영상 하자가 있거나 정권과 민심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등의 이유로 중의원이 내각에 대한 신념을 부결하면 그만이다(물론 중의원 내 과반수의 지지가 있어야 수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내각불신임이 가결되는 사태는 아주 드물기는 하다). 의회 내 지지는 커녕 소속 정당내 지지까지 흔들리는 정권을 퇴진시키는데 사법기관의 판단을 기다려야 된다는 점은 일본인에게는 좀처럼 와닿지 않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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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필자가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한, 일련의 한국 정국에 관한 일본의 보도가 적절치 않다는 부분에 역점을 둔 까닭은 일본의 경험과 제도가 한국과 다르다는 일본의 '자각부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도를 접하는 우리 일반 일본인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라가 다르면 역사도, 제도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있지 말고 한국(인)이 당연한 전제로 여기는 부분까지 자각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재 정국과 관련해서는 적어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자진사퇴한 사례가 없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자진사퇴할 의향이 아예 없어 보이는 점, 그리고 대통령제로 대표되듯이 한국 헌법상 삼권분리는 일본과 전혀 다르다는 점만이라도 자각한다면, 신문을 보면서 조금 더 정확한 인식을 가질 실마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같은 사리분별이 한국이나 한국인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 


가정의 이야기지만 나중에라도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일본의 헌법도 참고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때 역시 특정 논점에 관한 조문이나 판례를 참고할 것이 아니라 일본 헌정의 역사와 헌법전 및 그 운용을 총체적으로 짚어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든, 본인의 욕망을 관철시키시 위해 다른 나라의 법 조항이나 제도를 입맞에 맞게 발췌인용하는 건 만국 공통이기에, 한일 국민들이 공부해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누레 히요코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