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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탄핵이 가결되고 또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제 시작이다. 대한민국은 곧 다가올 내년 한 해를 무너진 정치를 세우는 데 소비하게 됐다. 갈 길이 멀다. 쾌적한 길도 아니다. 탄핵의 산을 넘고 나니 국가정상화의 강물을 헤쳐야 한다. 그래도 시민들이 최고 권력자의 권한을 중지시킨 사건은 자축해 마땅하다.


팟캐스트 방송을 위해 레너드 코헨의 곡들을 번역했는데, 하나가 마침 <Democracy 민주주의>다.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념 삼아 이 독특한 노래를 감상해보자고 기사를 쓴다.


캐나다 유대인인 코헨의 눈에 비친 미국식 민주주의는 난삽하고 모순적이다. 노래 가사는 냉소적이면서도 장렬하다. 내가 전달받은 정조대로 번역을 하고 나니 속도감이 더 붙었음을 감안해주기 바란다. 의도적인 비문과 길게 풀어쓰기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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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U-RuR-qO4Y


민주주의(Democracy)

- 레너드 코헨(1992)


It's coming through a hole in the air,

from those nights in Tiananmen Square.

It's coming from the feel

that this ain't exactly real,

or it's real, but it ain't exactly there.

From the wars against disorder,

from the sirens night and day,

from the fires of the homeless,

from the ashes of the gay:

Democracy is coming to the U.S.A.

하늘에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내려와

천안문 광장의 그 밤들을 지새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으로

범죄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요부의 노래에 실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숙자와 동성애자를

불태우고 남은 재를 휘날리며

민주주의가 미국에 강림하신다


It's coming through a crack in the wall;

on a visionary flood of alcohol;

from the staggering account

of the Sermon on the Mount

which I don't pretend to understand at all.

It's coming from the silence

on the dock of the bay,

from the brave, the bold, the battered

heart of Chevrolet:

Democracy is coming to the U.S.A.

갈라진 벽 틈 사이로 밀려들어와

환상의 홍수처럼 넘치는 술잔에 떨어지네

애써 이해한 척 해보지 않은

산상수훈의 비틀거리는 말귀로

부두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겁 없고, 번쩍이고, 성능 좋은

쉐보레 엔진을 달고

민주주의가 미국에 쳐들어온다


It's coming from the sorrow in the street,

the holy places where the races meet;

from the homicidal bitchin'

that goes down in every kitchen

to determine who will serve and who will eat.

From the wells of disappointment

where the women kneel to pray

for the grace of God in the desert here

and the desert far away:

Democracy is coming to the U.S.A.

신성한 인종의 용광로인 거리에

깃든 슬픔으로부터

바치는 사람은 누구이고 먹는 사람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부엌을 뒤지는

천재적인 살인광을 거쳐

실망의 우물에서, 샘솟듯

여인들이 무릎 꿇고 신의 영광을 기도하는 여기,

아니 멀리 떨어진 사막에서

민주주의가 미국에 강림하신다


Sail on, sail on

O mighty Ship of State!

To the Shores of Need

Past the Reefs of Greed

Through the Squalls of Hate

Sail on, sail on, sail on, sail on.

항해하라, 항해하라

오 국가라는 전능한 함선이여!

필요의 해안을 향해

탐욕의 암초를 넘어

증오의 질풍노도를 거쳐

항해하라, 항해하라, 항해하라


It's coming to America first,

the cradle of the best and of the worst.

It's here they got the range

and the machinery for change

and it's here they got the spiritual thirst.

It's here the family's broken

and it's here the lonely say

that the heart has got to open

in a fundamental way:

Democracy is coming to the U.S.A.

최선과 최악의 요람인 미국에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오신다

이곳이 미국인들이 쟁취한 서식지

진보적인 정부를 세우고

정신세계를 상실한 곳이네

가족이 해체되는 곳

외로움쟁이들이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앞으로도 변치 말자고 떠드는 이곳

미국으로, 민주주의는 내려오신다


It's coming from the women and the men.

O baby, we'll be making love again.

We'll be going down so deep

the river's going to weep,

and the mountain's going to shout Amen!

It's coming like the tidal flood

beneath the lunar sway,

imperial, mysterious,

in amorous array:

Democracy is coming to the U.S.A.

여자로부터, 남자로부터 다가와

말 나온 김에 자기, 우리 전처럼 잠깐 사랑이나 나눌까?

난 아주 깊게 들어갈 거야

넌 아주 깊게 올라갈 거야

강이 강물을 눈물로 흘리고

산맥은 부르짖을 거야 “아멘!”

달의 인력에 끌린 밀물처럼

장엄하고, 신비롭게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병들의 군홧발 소리에 실려

민주주의가 미국에 떠밀려온다


Sail on, sail on ...

항해하라, 항해하라

오 국가라는 전능한 함선이여!

필요의 해안을 향해

탐욕의 암초를 넘어

증오의 질풍노도를 거쳐

항해하라, 항해하라, 항해하라


I'm sentimental, if you know what I mean

I love the country but I can't stand the scene.

And I'm neither left or right

I'm just staying home tonight,

getting lost in that hopeless little screen.

But I'm stubborn as those garbage bags

that Time cannot decay,

I'm junk but I'm still holding up

this little wild bouquet:

Democracy is coming to the U.S.A.

내 말뜻을 알아들으셨다면 글쎄, 내가 좀 예민해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은 못 봐주겠네

난 좌파도 우파도 아니야

그냥 오늘밤 집에서 꿈도 희망도 없는 TV화면을 보다가

그 안에서 패배했을 뿐이야

하지만 난 절대 썩지 않는 쓰레기봉투처럼 고집불통이지

인간말종이지만, 원한다면 대충 아첨해 줄 수는 있어

민주주의가 미국에 왕림하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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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에 영국 여왕의 얼굴이 있는 캐나다는 진보를 추동하는 실험에 도전해본 적이 없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레너드 코헨은 수천 년 된 유대교 커뮤니티의 영향권 아래 자랐다. 천성이 시인인 레너드 코헨에게 옆 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산 세계표준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었다. 민주주의 실험의 결과는 천박한 욕망이 뒤엉켜 굴러가는 섬뜩하고 우스꽝스러운 괴물이었다.


코헨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과 여러모로, 특히 문학성에서 쌍벽을 이룬다. 딜런의 수상 소식 직후 영어권 시민들의 자동적인 반응은 ‘레너드 코헨은?’이었다. 두 사람의 가사 모두 기본적으로 시로써, 공통점이 있다. 일단 몹시 중의적이다. 그리고 영어의 전형적인 표현은 물론이고 문법에서도 이탈한다. 차이가 있다면 밥 딜런은 자주 동사의 끝을 <ing>로 처리해 현장감 있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반면 코헨은 시제를 뒤섞는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수렴되어 인간사의 비극이 숙명으로 치환되는 것이 코헨 가사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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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cy>의 가사는 시제가 의외로 깔끔하다. 코헨은 정치적 인간의 숙명성을 가사의 시제 대신 뮤직비디오 연출로 전달한다. 노래 가사가 중세 고문서의 활자처럼 보인다. 미국의 역사를 암시하는 그림들 역시 관람자의 시선에서 중세의 삽화를 돋보기로 연구하는 듯한 프레임으로 처리된다(아예 진짜 중세화도 하나 지나간다). 레너드 코헨은 그대로 고고학자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가 쓸쓸히 걷는 미국의 해변은 마치 오래된 유적지 같다.


<Democracy>에 따르면 ‘애초에 이렇게 될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체제에서 민주주의란 것이 나왔다. 그 민주주의도 모순덩어리다. 반복되는 인간사가 그렇다. 개인도 사회도 결국 타락한다. 그런데 비극과 허무 속에서 진보가 자라나 어떻게든 앞으로 굴러간다. 전능한 함선처럼 경이로운 광경이다.


노래 속에서 코헨은 민주주의를 깊이 긍정하고 있다. 엉망으로 갈라진 틈에서 빛이 틈입해 아비규환을 비춘다. 탐욕과 혐오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문제제기와 해결로 전이된다. 갈지자로 지저분하게 항해하지만 웬만해선 침몰하지 않는다.


국가는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거주민이 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벽이 갈라지면 빛이 들어오고 시멘트를 이겨 발라야 한다. 촛불의 빛이 탄핵을 이끌어냈다. 위대하지 못한 개인들이 여럿이서 간혹 위대해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모순이다.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럽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미래에도 지금처럼 속물일 것이다. 우리의 욕망이 체제를 지탱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닌 것보다는 좋다. 노래 속에서 계속해서 미국에 강림하고 상륙하는 민주주의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정국도 4.19와 6.10의 연장선상에 있다.


레너드 코헨은 올해 11월 7일에 82세로 사망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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