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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4기와 말기는 다르다’고 했던 저번 글에서 ‘글리벡에 대해 써보겠다’고 했는데, 한 달이 넘어 버렸네요. 부담 없이 간단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글리벡에 대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으니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들은 실망하실 지도 몰라요)


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덩어리 형태의 ‘고형암’과 혈액을 돌아다니는 형태의 ‘혈액암’이 그것이죠. 고형암엔 대표적으로 위암, 대장암, 간암이 있고 혈액암엔 백혈병, 다발성 골수종 등이 있습니다. 고형암은 대개 작은 덩어리로 시작해서 크기가 커지면 주변 조직을 침범하고, 더 진행하면 멀리 있는 장기까지 전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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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발생한지 몇 개월 혹은 1년 정도 된 조기 위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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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위암은 위 내시경을 이용해서 제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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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점막하절제술(ESD)’ 후 밖으로 꺼낸 위 조직의 모습입니다.


보통 암 진단 후, 5년간 재발이 없어야 완치 판정을 내리지만, 이렇게 점막 층에만 국한된, 분화도 좋은 1cm 정도의 조기위암은 재발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진단이 좀 늦어지면 수술로 암을 치료합니다만, 요즘은 위내시경을 통해 초기 위암을 치료해버리니, 위암 수술 하는 외과의들 할 일이 없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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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암세포가 전신에 퍼지면 수술적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우리 몸 곳곳에 침투할 수 있는 항암제를 주 치료제로 사용합니다. 항암제 치료는 완치율이 낮고 부작용이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왜 항암제는 효과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많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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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충제입니다. 약국에서 파는 일반적인 구충제는 ‘알벤다졸’ 성분의 약제입니다. 한 알 먹는 것으로 회충이 싹 없어지는 이 약에 부작용을 경험한 분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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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많은 분들이 복용 중인 B형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입니다. 이 약제를 복용 중인 만성 B형 간염 환자 분들 모두 기대할 만한 바이러스 제거 효과(CVR)를 보고 있고 부작용은 거의 없습니다.


기생충을 제거하는 구충제, 세균을 제거하는 항생제,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항바이러스제는 치료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과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약제와 항암제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이들 약제가 제거하는 기생충, 세균, 바이러스와 암세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기생충, 세균, 바이러스는 외부에서 침입한 전혀 다른 생명체인 반면, 암세포는 원래 세포가 변형된 거라는 점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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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떠오르고 있는 C형 간염 치료제들의 작용 부위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경구용 C형 간염 치료제들은 노란색 네모 부위를 억제하는데, NS3/4A potease, NS5B polymerase, NS5A는 사람 세포에는 없고 C형 간염 바이러스만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저 물질들만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C형 간염을 완치할 수 있습니다. 소발디 같은 약제들은 몇 개월 복용만으로 100% 완치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암세포는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정상 세포와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암세포에만 있는 물질을 찾기 쉽지 않아 일반 세포는 놔두고 암세포만 공격하는 물질을 개발하기 쉽지 않습니다.


현재 개발되는 항암제의 대부분이 ‘표적 치료제(Targeted Therapy. 특정 타겟만을 골라서 공격한다는 개념의 치료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적 치료제는 ‘글리벡’이라는 약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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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명 'Imatinib'으로 스위스의 노바티스 사가 개발해서 판매하는 항암제입니다. 주로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지만 위장관 기저 종양(GIST) 같은 고형암 치료에도 사용됩니다.


고형암은 수술이 주가 되고 항암제는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 차선책으로 사용되어 왔던 반면, 혈액암은 애초에 수술이 아닌 항암제를 주 치료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혈액암 분야에서 항암제의 개발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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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불가능한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을 치료하던 초기에는 저렇게 독한 항암제를 사용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Imatinib의 개발이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에 가히 혁명이라고 할 변화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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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골수성백혈병은 성인백혈병의 10~20%를 차지하며, 국내엔 약 1000~1500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징적으로 95%에서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존재하며, BCR-ABL 유전자(만성골수성백혈병의 주요 병인인 필라델피아 염색체 유전자 부분) 확인을 통해 확진합니다. BCR-ABL 유전자에 ATP가 붙어서 혈액세포의 무한증식 및 암성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ATP가 들어갈 자리에 Imatinib이 들어가면 이 과정이 차단됩니다. ATP 열쇠를 넣어서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야 하는데 Imatinib이 쏘옥 들어가서 문을 못 열게 막아버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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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의 등장이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에 미친 영향은 이 그림 하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30년 전 Busulfan(부설판. 치료제의 하나)으로 치료받은 환자의 90%가 10년 후 고인이 된 반면, 글리벡으로 치료 받은 환자의 10년 생존율은 85%에 이릅니다.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을 때까지 생존할 수 있게 해줌으로서 완치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BCR-ABL에만 특이하게 작용하는 덕에 일반 세포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아 부작용도 일반 항암제에 비해서 훠얼씬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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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TKI(타이노신 키나아제 억제제. Tyrosine Kinase Inhibitor)인 Imatinib의 개발 이후, 수십에서 수백 배 강력한 2세대 TKI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일명 ‘슈퍼 글리벡’이라는 녀석들이죠. 


하지만 CML도 그냥 당하지 않고 약에 대한 내성을 만들어 내는데, 바로 ‘T315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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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BCR-ABL은 T315 아미노산을 가지지만,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315I 아미노산이 만들어져 Imatinib 같은 약제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열쇠가 들어 가지 못하게 열쇠 구멍을 바꿔 버리는 거죠.


그렇다고 포기할 과학자들이 아닙니다. Ponatinib 같은 3세대 TKI는 315I로 변환된 BCR-ABL 열쇠 구멍에도 쏘옥 들어갑니다. 환자를 살리려는 과학자들과 암세포들의 전투가 지금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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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tinib이 표적 치료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대표적인 항암제라면, 지금도 여러 암들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 치료제를 개발 중입니다. 물론 가격 문제는 해결해야 할 부분이겠죠. 


한때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천연두가 지금은 없어진 질병이 되었듯 언젠가는 암이라는 병도 역사서에만 나오는 병이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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