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9. 24. 업데이트
2013. 09. 13. 업데이트
2013. 09. 11. 수요일
독투불패 쫄깃한기타
편집부 주
독투불패 게시판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쫄깃한기타' 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 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겠습니다. '쫄깃한기타'님은 연락 가능한 이메일 주소 또는 전화 번호와 트위터 계정을(트위터를 사용하고 계실 경우) 딴지일보 대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딴지일보 대표 메일 : ddanzi.master@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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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는 예정된 일이었다
아래 기고문을 보시죠.
2006년 당시 '자유주의 교육 운동연합'이라는 단체에 몸 담고 있었던 이명희 교수는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 이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소극적 혹은 부정적으로 서술한 교과서'가 50% 이상의 학교에서 채택된 현실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교육 내용의 다양성과 교재의 창의성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전제한 위에서 추구'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2011년 8월 9일, 개정 역사 교육과정 각론이 고시(2009년에 고시된 것은 개정 교육과정 '총론'입니다.)된 이후 큰 논란이 일자 다음과 같은 칼럼을 싣습니다.
대구·경북자유교육연합 누리집에 실린 조선일보 2011년 8월 22일자 칼럼
칼럼의 소재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논란으로, 교육과정 초안에 있었던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최종 고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자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하였던 '역사교육과정 개발 정책연구위원회' 소속 위원 24명 중 21명이 비판 성명을 내는 등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명희 교수는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나 한국사 교과서가 '대부분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입장에서 서술'됐기 때문에,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인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의 정체성 제고'를 위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 등과 혼용 될 여지를 없애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더욱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가 벌어지기까지의 논란과 그 배경들을 모두 다루기엔 글이 너무 장황해질 뿐더러 그럴 능력도 없는지라 제 경험을 바탕으로 아는 만큼만 늘어놓아 보렵니다.
1. 뉴라이트의 세력 확장과 식민지 근대화론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들이 세를 불리기 시작합니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시장주의, 외교적 국제주의, 북한 민주화 등을 표방하였고, 기존 정부를 '좌편향'으로 몰아가며 노골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과거 주사파였다가 전향한 운동권 세력(물론 생방송을 폭탄주로 말아드신 PD 출신 신 모씨도 있습니다만...), 과거 운동권에 사상적 근거를 마련해주기도 했던 학자 등 눈에 익은 이들도 많았습니다. 자칭 타칭 뉴라이트라 불리는 이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사회를 주도하는 한 축으로 서기 위해서는 사상적·학문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고맙게도 그 작업을 과거 운동권 세력과 한때 진보적이었던 학자들이 성실하게 해줍니다. 이념에 골몰해야 자기 정체성이 유지되는 이들에게 전향이란 또 다른 투쟁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자칭 '경제 성장론' 타칭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이는 ‘하여간 일제가 빼앗아 갔다’로 요약되는 기존의 ‘원시적 수탈론’이나 일국사적 발전의 기본 동력을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계기에서 발견하고 그 전개 양태를 민족 해방운동에서 찾는다는 ‘내재적 발전론’과 대립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에 반해 식민지 근대화론은 ‘하여간 경제는 성장했고 그에 따라 제반 제도 및 생활 수준도 높아졌으며, 식민지기의 경험은 해방 후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의미로 요약되지요. 식민지 근대화론의 거두인 경제사학자 안병직 교수는 '학문과 이데올로기는 같이 가서는 안된다'는 기존의 입장을 버리고, 17대 대선이 있던 2007년에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당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직을 수락합니다. 그리고 그 의지는 현실이 됩니다.
2.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간과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사태
2005년에 '역사를 바로 세우기보다 역사를 바로 씀으로써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을 바로잡고 미래 세대를 올바르게 인도해야 해야 하겠다는 절박감'을 가진 이들이 모여 교과서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듭니다. 이들은 창립 선언문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각종 교과서를 분석·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실을 추구하는 학도로서의 성실성과 엄숙성 및 겸허함을 견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합니다. 그리고 2008년 3월에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를 출간하지요. 이 책의 저자이자 책임 편집자는 안병직 교수의 제자인 이영훈 교수이며 저자 중 한국사 전공자는 없었습니다.
이 책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뉴라이트 진영인 자유주의연대 등에서도 오류를 지적할 만큼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출판기념회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뜻 있는 이들이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고 축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한편, 출간 이래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대한상공회의소, 국방부, 교과서포럼 등에 이르기까지 이념 공세에 시달리던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과서 수정 문제는 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우 모두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 못박음으로써 수정을 피치 못하게 됩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뉴라이트 관련 단체들의 수정 요구에 대해 역사학계의 비판과 심의위원들의 반발을 이유로 서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데 그쳤으나, 교육부는 2008년 10월 14일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16일만인 10월 30일에 근·현대사 6종 55개 항목 수정권고안을 발표합니다. 당시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에 현대사 전문가는 극소수임이 드러났습니다.
논란이 커지고 저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11월 말 교육부는 수정'권고'를 수정'지시'로 강화하고, 금성 출판사는 저자 동의 없이 교과서를 수정하게 되지요. 저자들은 결국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수정명령 취소 소송,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게되고 긴 법정 공방 끝에 행정소송에서는 승소,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합니다.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간과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사태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같은 해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글이 길어집니다. 잠시 쉬어가는 코너로 잡담 하나 늘어놓도록 하지요.
이승만과 김구가 같이 찍은 사진입니다. 출판사 선배에게 들은 얘깁니다만, 이 사진을 교과서에 싣는 데 어떤 양반이 김구가 이승만보다 너무 커 보인다고 딴지를 걸었다더군요. 딴지도 딴지 나름이지, 김구가 이승만보다 풍채가 좋은 걸 어쩌라는 건지요. 북쪽마냥 이승만 동상을 김일성 동상만하게 키워서 세워놔야 만족을 할런지. 어쨌거나 저 사진은 무사히(?) 교과서에 실어져 있습니다. 하하.
3.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 고시 ~ 2011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안 확정 고시
이 부분은 앞서 올린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시간 순으로 정리하며 빠진 부분을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2009. 12. 23.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 고시
총론에서는 교육목표와 편제 및 단위 배당 기준, 교육과정 편성 유의점 등을 다룹니다. 이 총론에 대해서도 '역사교육 축소' 논란이 일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1. 2. 15. 역사 교육과정 개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발족
추진위는 교육부 장관이 교수와 교사, 교육부와 국편의 담당자에게 위촉하여 총 20명으로 구성되었고, 같은 해 12월까지 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선을 위한 검토 및 자문 역할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구의 위원장은 당시 대통령 직속 기관이었던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인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었습니다. 구성원 중에는 이후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는 최광식 문화재청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성원 상당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 이명희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현대사학회 회원이었죠.(당시에는 다른 저자인 권희영 교수가 회장을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현대사학회는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랍니다.) 게다가 추진위원회 회의를 국가브랜드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하였고, 한국현대사학회와 위원장실에서 만남을 갖기도 했으며 국편 위원장에게 그 자리에 출석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구린내가 납니다.
2011. 3. 15. 역사 교육과정 개발 정책 연구위원회(이하 정책위) 발족
위의 추진위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시죠? 정책위는 국사편찬위원장이 교수와 교사에게 위촉하여 총 24명으로 구성되었고, 같은 해 12월까지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 작성의 실무 연구를 수행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개정안 연구 및 작성 과정에서 교육부와 국편을 통해 전달되는 추진위의 방향 제시와 검토 내용을 반영하고, 교수들로 구성된 ‘역사 교육과정 개발 전공별 연구·협의진’의 검토 의견을 반영한 후 발족한 지 불과 3개월 만인 6월 30일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그 3개월 동안 정책위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교육과정의 외형적 문제인 분량 감축, 중학교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연계 방안 등에 대하여 추진위와 논쟁을 하였고, 특히 내용상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2011. 6. 30. 교육과정 개정안 공청회 개최
공청회장에서 개정안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합니다. 말이 좋아 수시 '부분' 개정이지 형식상으로나 내용상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그것들이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죠. 이 내용은 다음 칼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교과서를 개발하면서 주진오 교수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통사 구조가 반복되어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의 내용이 상당 부분 겹쳐버렸고, 줄어버린 수업시간과 집중이수제 덕분에 학생들에게 근현대사까지 가르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으며, 분량은 줄이라면서 내용 요소는 다 비집어 넣은 교육과정 덕분에 지지리도 재미없는 나열식 서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개발 기간이 굉장히 짧아서 저자, 편집자 할 것 없이 말도 안되는 일정 속에서 교과서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이러니 좋은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까요...
2011. 8. 9.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 고시
공청회에서 제시된 의견을 반영하여 교과부에 제출된 교육과정 개정안은 교과부 산하 상설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고시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고시된 개정안에는 정책위 위원들과 추진위 일부 위원들도 모르는 사이에 변경된 내용이 여러 군데 발견되지요. 그 중 가장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최종 심의 과정인 교육과정심의회의 심의 당시 통과했던 '민주주의' 개념이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변경된 것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자유민주주의'와 동의어임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을 교육부 자체적으로 끼워넣은 겁니다. 그렇게도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들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논란의 여지가 큰 용어를 넣어버렸으니, 이를 알 리 없었던 정책위와 추진위 위원들은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겠지요. 공청회에서 외부 인사들에게 치일대로 치여 꾸역꾸역 수정 반영해낸 개정안이 이번엔 외부의 세력과 연계된 내부 인사의 손에 의해 저들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어버렸으니 그 기분이야 '정말 못해먹겠네!'였을 겁니다. 이에 위원장을 포함한 정책위 위원 21명이 16일에 비판 성명을 냈고, 추진위 위원 9명이 9월 19일에 위원직에서 사퇴합니다.
2011. 12. 30.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확정 발표
논란은 계속되지만 국편은 고시된 교육과정에 따라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개발하기 위해 집필기준 개발 공동 연구진을 꾸립니다. 12월 16일에 열린 공청회에서도 쟁점이 되었던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으나 별다른 변화 없이 확정 발표됩니다. 굳이 변화를 주었다면 교육과정상의 '자유민주주의'를 집필기준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슬쩍 바꾸어놓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나 다수의 헌법학자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한다는 전제조건을 다는 식입니다. 이전에 확정된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제주 4.3 사건과 5.18 민주화 운동을 명시하지 않았다가 큰 논란이 일자, 국가적ㆍ사회적으로 인정된 주요 역사적 사실(제주 4.3 사건, 친일파 청산 노력, 4.19 혁명, 5.16 군사 정변,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은 충실히 반영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거나요. 이걸 생색이라고 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빠뜨린 내용들은 많지만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이번 한국사 교과서를 개발하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이 과정에 가장 충실하게 부응한 교과서입니다. 출판사만 거부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책이지요.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말입니다.
생방송 토론에 나와 세계화 시대에는 역사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소신있게 하며, 수십 년 전 냉전 논리를 가장 합리적이고 새로운 학문적 경향인 양 격양된 목소리로 내세우는 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대체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좌파, 종북, 빨갱이로 몰아가고 오점을 뚜렷하게 남긴 지도자를 신격화하려는 그들에게 역지사지의 자세는커녕 합리적 판단의 여지도 별로 없다는 건 알겠습니다.
이 사태를 미처 예상 못했는지 이제 와서 출간을 취소하겠다는 교학사의 대응을 보며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하네요. 이명희 교수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조직한 ‘근현대사 역사교실’ 모임에 연사로 나서 '좌파 진영이 출판계의 90%를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는데, 좌파 척결을 위해 교학사를 제물로 삼은걸까요.
헛소리만 나오네요. 졸립니다. 이만.
2013. 09. 13. 금요일
업데이트 및 애푸터 쏴비쑤
참고로 저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중등 교과서를 개발할 때 출판사에 들어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개발까지 마치고 퇴사했습니다. 현직 교과서 편집자는 아니란 말이죠.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교과서 개발 기간에 대한 댓글이 달려 우선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2009년 12월에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법령이 아니므로 '공포'가 아니라 '고시'가 맞네요. 수정합니다)되었고, 2011년 11월 9일에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마련, 같은 해 12월 30일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 집필기준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2013년부터 쓰이고 있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2014년부터 현장에서 쓰일 예정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거쳐야 한다는 겁니다. 이때 제출하는 검정심청본을 보통 '심사본'이라고 합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심사본 접수 기간은 2012년 4월 2일부터 4일까지였습니다. 집필기준이 마련되기 전에 저자를 구성하고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회의를 하기도 합니다만, 본격적으로 교과서를 개발할 기간은 불과 5개월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같은해 6월 26일에 검정 결과가 발표됩니다.
합격을 하면 검정 과정에서 지적된 내용상의 오류나 검토해야 할 부분, 표기나 표현이 잘못된 부분을 정리한 '수정 보완 권고서'라는 문서를 보냅니다. '권고'의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검정에 합격한 출판사 관계자들을 모아 개최하는 검정 본심사 결과 설명회에서 교육부 주무관은 수정 보완 권고서에 따라 수정하지 않으면 최종 검정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엄포를 놓습니다. 어쨌거나 이 수정 보완 권고서에 따라 수정 보완을 하고, 편집자와 저자가 자체적으로 찾아낸 오류들을 수정하는 자체 수정 보완을 하여 '수정 보완 대조표'라는 문서를 만든 후 8월 13일에서 14일까지 제출을 합니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심사본 접수 기간은 2013년 1월 9일에서 11일까지였습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심사본을 제출하기까지 엄청난 노동에 시달린 편집자들도 좀 쉬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만들어야지요. 숨 좀 돌리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발에 돌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과서를 개발하면 그에 따른 참고서, 평가 문제지, 교사용 지도서 등도 개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출판사도 기업입니다. 이 점을 놓치시면 안됩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거나 유지시킬 수 있는 부분은 확실하게 챙깁니다.
즉,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했으니 중학교 역사 참고서, 평가 문제지, 교사용 지도서, E-BOOK 등을 개발해야 합니다. 게다가 6월 말부터는 수정 보완 대조표도 작성해야 합니다. 일이 이중, 삼중도 아니고 오중, 육중으로 겹쳐있는 상태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개발한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개발 기간은 길게 잡아야 8개월입니다. 물론 편집자는 단 하루도 쉬지 않는다는 가정하의 얘기지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모두 개발했던 저의 경험에 따르면 이 기간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습니다.
저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모두 교과서 원고 집필에 쓸 수 있다면 몇 개월 만에도 책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들 역시 교사, 교수라는 직업이 있고 주 업무는 학생들 가르치는 겁니다. 남는 시간 쪼개어 원고를 씁니다. 제가 술을 좋아하는지라 그 바쁜 기간에도 없는 시간 쪼개가며 주신들을 영접했습니다만, 저자들도 쏘주 한 잔 해야합니다. 가족들도 챙겨야 합니다.
기존에 개발되었던 교과서들이 있다 해도 그건 단지 '참고용'일 뿐입니다. 바뀐 집필기준에 따라 새로 원고를 써야합니다. 오히려 기존에 교과서를 개발한 경우, 더 나아진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압박 때문에 원고를 쓰기가 더 힘들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기존에 개발한 교과서가 없는 경우야 말 할 필요도 없이 새로 원고를 써야겠지요. CTRL+C, CTRL+V로 대충 때웠다가는 교학사 교과서가 받고 있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에 간단한 일은 없습니다.
하물며 교과서 개발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2013. 09. 11. 수요일
교육과정과 교과서 출판의 현실
최근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뉴라이트 성향의 서술 내용, 내용 자체의 부실함, 위키피디아 표절 등 검색만 하면 뉴스가 줄줄이 뜨지요.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좌편향' 논란이 인 이래 교학사 한국사의 '우편향' 논란까지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면 초점은 저자와 출판사에 맞춰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렇게 단순하게 볼 사안이 아닙니다. 모든 논란 거리에는 그 논란을 불러일으킨 총체적 배경과 세세한 현실적 문제가 뒤섞여 있기 마련이죠. 역사 교과서 편집자 생활을 잠시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몇 마디 해보려 합니다.(혹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대 후반 이상의 연령이시라면 6차 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이란 명칭에 익숙하실 겁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꽤 긴 주기를 두고 전면적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방식이었죠. 그러나 2002년, 이러한 방식은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대응하는 데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수시 개정' 방침으로 바뀌게 됩니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95022
즉, 전면 개정이 아닌 수시 부분 개정으로 2~4년에 한 번씩 시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시 개정은 2007년 개정 교육과정부터 본격적으로 적용이 되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차 교육과정'에서 '○○○○년 개정 교육과정'으로 명칭도 변하였지요. 그리고 2년 뒤인 2009년 12월에 개정 된 교육과정이 고시됩니다.
수시 부분 개정의 취지가 '교육과정의 안정적 확보 차원에서 기존 교육과정의 기본 철학과 체제를 유지하되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개정의 범위를 최소화한다'는 것이지만, 교육과정이 바뀐다는 것이 대전제이기 때문에 결국 교과서는 새로 출판해야 합니다.
과거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에서 펴냈던 국정 교과서와는 달리 검정 제도를 바탕으로 일반 출판사에서 펴내는 역사 교과서의 경우엔 국편의 검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게다가 검정을 통과한 이후에도 채택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개정된 내용만 적당히 수정한다거나 체제와 디자인을 살짝 바꿔주는 정도로만 교과서를 수정하지는 않습니다.
기존 저자가 그대로 가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 새로이 저자를 구성해야 합니다. 다시 새 원고를 받아 편집 해야 하며, 면을 구성하는 요소와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각각의 출판사들은 시장 경제 속에 내던져진 경쟁자일 따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교육 부문 출판사의 매출 비중에서 교과서 매출액이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자를 면치 못하거나 체면치레할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교과서의 채택률은 그 출판사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 짓고, 교재나 공부방과 같은 교과서 출판 이외의 사업 부문 매출액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 직원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교과서 작업에 골몰하게 됩니다.
개정 교육과정이 공시되었다고 바로 교과서 제작에 돌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를 중심으로 약 2년 여의 기간을 거쳐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구체적 적용을 위한 각 교과목의 '집필기준'이라는 것을 마련하게 됩니다.
교육부의 정의에 따르면 '집필기준은 교육과정의 목적과 취지에 적합한 교과용 도서를 개발하기 위해 편향성이 우려되는 4개 교과목 [국어, 도덕, 역사, 경제]에 대하여 관점의 균형성과 내용 표현상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마련한 교과용 도서의 집필 지침'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첨부 : 12-30(금)즉시보도자료(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hwp)
역사 교과서의 경우 집필기준을 교육부가 국편에 의뢰하여 개발토록 하는데 이 집필기준이 최종 확정되면 저자와 편집자간 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집필 방향과 면 구성 방안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정리하자면 2009년 12월에 개정 교육과정이 공포되었고, 2011년 11월 9일에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마련, 같은 해 12월 30일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 집필기준이 마련된 겁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2013년부터 쓰이고 있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2014년부터 현장에서 쓰일 예정입니다.(적용 연도의 차이는 교육과정 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한 출판사에서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모두 개발하는 경우 개발 기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을 겁니다)
과정이 대충 이해되셨으면 의아해하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네. 교과서를 개발하는 기간이 턱없이 짧다는 것이죠. 교과서가 무슨 계간지도 아니고 '그까잇 거 대애충~!' 만들어 낸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만들어 내야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지요.
우선 저자 구성입니다.
이전부터 저자 관리를 잘 해 온 출판사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저자를 구성하는 것부터 난관입니다. 학문적 인지도, 집필 능력, 성격 등을 다 고려하여 좋은 저자를 뽑으면 금상첨화겠지요. 하지만 이조차도 경쟁입니다.
평판 좋은 저자들을 타 출판사에서 선점해 버리면 골머리를 앓게 됩니다. 시간도 없는데 말이죠.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저자를 영입하는 경우, 이러한 현실이 작용하였을 공산도 큽니다.
전공 분야에서 나름 인지도 있는 저자들을 섭외했다고 치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고심하며 내용을 집필할 시간이 충분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꼼꼼한 원고를 기대하는 건 길가다 받은 5만 원 모양 상품권이 알고보니 진짜 5만 원짜리일 가능성 만큼이나 희박합니다.
그나마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만다는 의지를 가진 분들은 꾸역꾸역 어떻게든 써 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집필 도중 유체 이탈을 경험한다거나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인식 못하는 멘붕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또 다른 분들은 참고 자료를 참고하는 데에 그치지 않기도 합니다.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정말 큰 문제는 편집자들입니다.
사실상 책을 만들어 내야 하는 편집자로서는 짧디 짧은 개발 기간 속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되고 이는 자연히 엄청난 노동 시간으로 귀결됩니다.
책을 만들어 내는 감성과 교양을 기를 시간 따위는 없습니다. 꾸역꾸역 만들어내야 합니다. 미진한 원고의 보완을 부탁하는 것도 한두 번입니다. 그렇게 꼼꼼히 원고를 검토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런데, 교과서는 만들어집니다. 검정 심사본 접수 기한 안에 어떻게든 만들어서 국편에 제출합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던 윤동주의 시구처럼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교과서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PS. 한 번에 글을 다 쓴다는 건 역시 제 주제에 무립니다. 오늘은 이정도에서 마치고 다음 번엔 좀 더 민감한 문제를 디벼보겠습니다.
독투불패 쫄깃한기타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