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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 A의 이야기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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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규의 이마에 땀이 알알이 맺힌 것을 보고 나는 녹차는 더 건네지 않기로 했다. 기운이 넘치는 만큼 당도 금방금방 떨어지는 나이일 테다. “주스 줄까요?” 사무실 한켠에 놓인 미니 냉장고에서 포도주스를 따라 건넸다. 목이 탔던 듯 그는 종이컵을 받아 맥주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더 드릴까요?” 약간 부끄럽다는 듯 한은규는 초등학생처럼 고개를 꾸벅 하고는 컵을 내밀었다. 나는 종이컵을 한켠에 밀어 놓고 목이 긴 유리잔에 주스를 가득 부었다. 반절 가까이나 단숨에 들이킨 한은규는 진분홍빛으로 물든 입술을 살짝 혀로 닦았다. 저 입술이 그 입술인가. 평생을 단정하게 살아온 노시인이 기록해 놓았던, 입술. 주스가 마치 포도주처럼 그의 턱에 한 방울 떨어져 나는 손가락으로 톡톡 내 얼굴의 그 부위를 두드려 보이자 그는 얼른 턱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하얀 피부에 번진 포도 주스가 마치 핏방울 같았다. 입술이 머금은 술인가. 이요란에게 그 포도주는 그저 술이 아니라 독주였을 것이다. 목을 축이자 긴장이 풀린 듯 한은규는 갑자기 빙긋 웃었다. “이 건물 형님... 아니 중개사님 거예요? 할무니가 그러던데.” 매각과 구입을 되풀이하며 차익을 셈하는 눈빛들에 익숙한 나의 레이더에 그의 물음에서 탐욕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는데 그 또한 드문 느낌이었다. “아, 제 거 아니고 어머니 거.” 나도 어정쩡하게 말을 놓았다. “에이, 엄마 거면 형 거잖아요.” “저는 일단 관리만 하고 있는 거고.” 그는 방긋 웃었다. “저도 나중에 이런 건물에서 장사하고 싶어요.” “어떤 장사?” “음... 멀티방 하면 제가 잘할 것 같고... 아, 근데 멀티방에서 제가 알바를 했거든요. 뒷정리 하고 그러는 거 으, 진짜 더러워요!” 한은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으며 질색 팔색을 했다. “그런데 제가 하면 그런 거 다 알바들 시키면 되잖아요!” 벌써 멀티방 업주가 된 듯 들뜬 표정이었다. “장사 해 보면, 알바가 할 것 같아도 결국 본인이 다 해야 되는 걸. 나도 이 건물 화장실 청소 늘 내가 다시 하니까.”


“아 진짜요?” 한은규는 정말이지 억울한 표정이었다. “나는 지인짜 깨끗하게 하는데! 그러면요, 퓨전 치킨집 같은 거 하고 싶어요. 저 떡볶이 되게 잘 만들거든요. 여자애들이 다 만들어 달라고 그래요. 치킨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할무니랑 누나도 제가 만든 떡볶이 되게 좋아했어요.” 그의 목소리가 꺼져 들어가더니 아직 본격적으로 면도는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단정한 턱에는 뽀얀 솜털만이 가득한 턱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런 인연이 있으니까 월세를 남기셨을 텐데 왜... ” 다시 한은규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하여튼 저는 빼주세요! 그거 모아서 치킨집 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릴 수 있어도 그 돈으로 안 차릴 거예요.” 이요란은 어른들이 흔히 말하듯 ‘새털처럼’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 그의 미래에 지나쳐간 사소한 과거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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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에 숨을 거둔 이요란도 남들 못지않은 시간을 가졌었지만 그녀의 날들은 단 한 순간도 새털처럼 허랑한 적이 없었다. 밀도 높게 꽉꽉 눌러 채워진 시간들을, 자신의 바람과 상관없이 요란하게 살아야 했던 날들을 치열하게 살아낸 어른이었다. 이십대 때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권력욕 없이 정계에 얼씬거리지 않고 남성으로 가득한 운동판에 한 그루 소나무처럼 도도히 서 있던 그녀는 삼십 대를 독재와 담대히 싸우다 감옥에서 보냈고, 그 전에 남편을 잃었으며 사십대부터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꼿꼿한 삶을 산 시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성 시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교과서에서 여러 차례 시가 등장할 정도로 존경받는, 가히 위인의 반열에 들겠다할 만큼 필명을 떨친 이요란은 결벽한 사생활과 인터뷰나 잡문 등에 철저하리만큼 말을 아끼는 금욕적인 처신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고루 존경을 받는 드문 인물이었다.


끝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한다면 그 후보로 가장 유력하리라고, 매년 노벨상 발표 철이면 언론이 유난을 떠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세상을 떠난 지 일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요란이라는 이름은 각종 신문이나 문예지 등에 끊임없이 호명되었고 사람들은 마치 그를 추억하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될세라 겁이 나는 것처럼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호출했다. ‘여류문학’이라는 단어가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유효한 오늘날에도 그런 단어에 단 한 번도 얽매인 바 없이 펜 한 자루와 시구로 문단과 사회를 뒤흔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전무후무한 문인. ‘여성’이라는 성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상징이 되어 버린 그 사람이 남긴 노트에 남겨진 문장들은 내 평범한 가슴의 용량으로는 차마 소화해내기가 벅찼다.


나의 은규.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너는 왜 알게 하였느냐, 나의 은규.


생전의 품위는 간데없이 이처럼 삿되기까지 한 문장을 주스 잔을 핥고 있는 저 소년이 대체 무엇이길래, 선생은 그랬을까. 그랬다. 시대의 선생이라고까지 불린 이요란. 그러나 내 손에 들린 노트에서 선생은 외치고 있는 거였다. 나는 그저 여인이었노라고. 한 마리 짐승 같은, 그러한 여인이었노라고. 다시 한은규의 특별할 것 없는 옆얼굴을 훔쳐본 나는 어떤 마성도 느끼지 못했고, 도대체 이 노트를 어째야 할지 알지 못하고 하릴없이 휴대폰을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노트’라 불리는 휴대폰이 생전 이요란이 지니고 다니던 것이었다. 경이적이게도 피처폰만 6-7년을 쭉 쓰다가 끝내 욕탕에서 물에 빠뜨려 그 생명이 다한 다음 새로운 핸드폰을 마련해 오는 임무는 당연히 서지숙에게 하달되었다. 서지숙이 사온 최신형 스마트폰에 책을 잡는 이요란을 나는 커피콩을 볶아 가져다주던 참에 보았다. “지숙, 만드는 회사가 많을 텐데 왜 하필 삼성인가. 시민의 고혈을 빨다 못해 착취하고 권력에는 굽신거리는 이런 재벌에 귀한 돈을 내주는 것은 강도에게 다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선생님, 핸드폰 만드는 회사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혜택도 제일 많고... 그리고 지금 선생님이 쓰시는 노트북의 부품만 해도 삼성에서 안 만든 게 없을 걸요. 그냥 쓰셔요. 죄는 제가 지었으니.” 눈썹을 잔뜩 찌푸린 이요란은 그랬음에도 고왔고, 나를 보더니 특유의 비꼬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케냐 AA를 로스팅한 건데, 신선할 때 드셔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비타민 양반이 오셨구만. 이 친구가 나를 재벌의 공범으로 만들려 하니 어쩌면 좋나.” 나는 조심스럽게 어물거리며 대답했었다. “그래도 갤럭시가 어르신들 쓰시는 스마트폰으로는 인터페이스가, 그러니까 사용하기가 직관적이라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 갤노트가 내 손에 있고, 휴대폰 안의 사진 갤러리에 이요란이 꾹꾹 눌러쓴 글씨가 담긴 종이가 촬영되어 있었다. 이요란은 그 종이들을 자신을 화장할 때 함께 태워 달라고 했으니 결국 원본은 소실된 셈이고 이것만이 시인이 유일하게 남긴 사후의 기록인 것이다. 그것을 봉투에 담아서 그저 복덕방 총각에 불과한 나에게 건넨 선생의 뜻에 최대한 응해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공기계가 된 휴대폰을 꼭 쥐었다. 그 때 한은규가 알은 척을 했다. “응? 그거 할무니 폰 아니에요?”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PS

저의 첫 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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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 때문에 출판시장은 더 망해간답니다. 문화계를 다 쑤셔놓은 최순실도 딱 하나, 출판계 만은 건드리지 않았지요? 왜 그랬게요? 아 눈에 땀이 날라 그래... 광화문 가셨다가 서점에 들르시게 된다면, 관심 가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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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