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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기사에서 다룬 9월 OPEC의 감산합의가 발표되고 얼마되지 않아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9월달 합의는 어디까지나 OPEC전체가 감산이라는 큰 틀에 대한 합의를 이루었을 뿐, 정작 중요한 “누가, 얼마나” 감산을 할지에 대한 내용은 누락된 반 쪽짜리 합의란 점을 다뤘다.




지난 기사


원유 생산 치킨게임은 종결될 것인가




OPEC이 감산을 하는 이유는, 생산량을 조절하여 원유시장의 문제였던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원유가격을 상승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감산을 하게 되면 그만큼 수입은 줄게 되지만, 유가가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오른다면, 산유국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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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9월 합의에서 논의된 감산규모는 100만에서 150만배럴정도로, 이는 OPEC 산유국이 뽑아내는 생산량의 3~5% 수준이다. 반면, 발표직후 국제유가는 10%가량 늘었는데, 여기서 최소 5%이상의 추가 마진이 남게된다. 여기까지는 OPEC 그 누구도 나쁠 게 없는 장사니 별 탈없이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이렇게 기본적인 감산 기조마저도 합의가 몇 년째 이뤄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모두가 조금씩만 감산하면, 유가를 엄청 띄울 수 있는데, 왜 이런 상식적인 합의가 그동안 되지 않았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해, 우리는 석유감산 문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이는 비용과 효용의 문제이다. 감산합의가 이뤄졌을 때 얻게 되는 효용은, 국제유가의 상승이다. 석유를 생산하는 모든 기업과 국가가 이 가격상승에 따른 이익증가를 누릴수있다.


반면에, 그에 따른 비용, 즉 감산은, OPEC,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국가만이 부담을 해야되는 문제이다. 예를들어, OPEC에 포함되지않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제 에너지기업들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덕을보지만, 당연히 감산에 동참하지않고있다.  또한, OPEC내에서도 각종문제 때문에 생산량이 일시적으로 하락한 나이지리아와 알제리등은 감산에서 면제부를 얻고있다. 즉 이들은 감산회의에서 사실상 무임승차를하게된다.


결국 이렇게 여러국가가 빠져나가면, 실제 감산에 참여할 나라는 몇 남지 않게 되는데, 그 안에서도 누가 얼마나, 더욱 감산을 하는 문제가 또다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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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은, 사실 산유국입장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문제이다. 당장 대부분의 산유국이 조세수입의 상당부분을 석유생산에서 얻고 있다. 이 부분을 줄이다 보면, 당연히 그만큼 재정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원유생산이라는 게 한번 뽑아내기 시작하면 수도꼭지 잠그듯 잠시 줄일 수도 없는 문제인 데다가, 국영기업이라 노동자들 해고도 맘대로 못하니 감산을 한다고 비용이 감소하는 것도 아니다.


종합해보면 1) 감산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누리는 무임승차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2) 감산을 하게 되면 산유국은 수입이 감소하며, 3) 생산감소에 따른 비용감소 효과도 거의 없다.


산유국 입장에서 감산이라는 건 남 좋을 일만 하는 호구짓인 거고, 여기에 복잡한 중동의 국제 정치문제가 개입이되면 산유국 간의 합의는 더더더 어려운 문제인 거다.


이런 배경속에서 그동안 원유 감산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는데, 올 하반기부터 OPEC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우디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꾸면서부터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나갔고, 결국 9월 감산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사우디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1) 막대한 재정적자와, 2) 현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영 석유기업 Aramco의 기업공개(주식을 상장시켜 판매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낮아서 기업가치가 최근 많이 내려갔다는 점이다)와 이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산업구조 다변화(석유생산 중심에서 탈피, 다른 사업을 벌이려고 노력하고있다)라는 여러가지 내부 문제에 직면해 있었고,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높은 국제 유가가 필요했다.


문제는, 협상 마감시점인 11월이 되도록 산유국들이 합의안을 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OPEC 넘버 2, 3인 이라크와 이란이 사우디를 호구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먼저 이라크는, 온갖 죽는소리를 하면서 감산에 동참할 수 없음을 못 박았다. 처음엔, OPEC이 산정한 이라크쪽 원유생산량이 너무 낮게 잡혀있어서, OPEC 추정치에 동결만 해도 감산하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는 이례적으로 각 지역별로 얼마나 원유를 생산하는지와 같은 세부지표들을 공개했는데, OPEC과 차이가 있었던 부분은, 이라크정부 통제 밖에 있던 쿠르드자치지역에서의 통계였다.


이는 나중에 쿠르드 자치정부가 역시 이례적으로 이라크정부가 제시한 숫자가 훨씬 뻥튀기 되어 있다고 반박하는 뒷통수를 친 탓에 구라임이 밝혀졌지만, 이라크는 물러서지 않고 ISIS와의 전쟁을 이유로 감산에 참여할 수 없다고 앓는 소리를 이어갔다.


이란은 좀 더 강경했는데, 오랫동안 서방측의 제재로 인해 석유생산량이 감소해 있어서, 이를 복구하기 전까진 절대로 감산이나 동결에도 참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특히, 협상 시한 1주일 전에는 에너지장관이 국영신문에 원유생산은 국가의 자주적 권리이므로,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비장한 결의문을 게시하기까지 했다.


이란, 이라크의 입장을 결국 종합해보면, “우린 감산 못하겠으니까, 사우디 니네가 정 급하면, 우리몫까지 감산해라”이다.


여기에 사우디는 사우디 나름대로 열받아서, “우리도 급할 거 없다. 걍 합의하지말자 ㅅㅂ”와 같이 강경하게 돌아섰다.


이런 대치상황에서 가장 애가닳은 건 알제리, 베네수엘라와 같은 소규모 산유국이었다. 석유수출로 대부분의 수익을 얻지만, 그 규모가 작아 주도권 경쟁을 할 일이 없는 이들은, 강대국들이 감산에 합의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조율자로 열심히 활동했다. 특히 알제리는 협상마감시간 직전까지 빅3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서로에게 타협안을 제시, 차이를 줄여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카더라.


하지만, 협상 마감시한인 11월 30일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협상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국제 유가 전문가들의 약 70%가 11월 감산합의는 나가리라고 예측했고, 그에 따라 국제유가도 50불 대 초반에서 43불까지 떨어졌다.


협상의 평행선을 달리던 OPEC은, 사우디가 막판에 대폭 이란과 이라크의 입장을 받아들여 주면서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이란은 동결선에서, 이라크는 소규모 감산하는 식으로 서로의 체면을 세워졌고, 부족한 부분은 UAE와 사우디 등이 메꿔주었다.


그럼 사우디는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을까? 여기서 반전이 있는데, 블룸버그에 따르면 협상 전날 밤늦게까지 이란, 이라크와 싸웠던 사우디는 새벽2시에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러시아한테 전화를 걸었다고한다.


“우리 지금 협상 잘 안되는 거 들었지? 이대로 가면, 파토난다. 결국 내가 감산 더 해야할 것 같은데, 넌 나한테 뭘 해줄래ㅎㅎ.”


러시아는 여기서 사우디에게 하루 20만배럴의 생산량을 줄일 것을 약속했다. 기존 동결입장에서 대폭 나아진 조건이다. 비 OPEC 국가이지만, 국제유가에 절대적으로 민감한 러시아는 OPEC 회담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거다. 또 협상이 잘 안 되는 걸 보고, 초조했으리라. 감산합의가 안 되면, 국제유가는 또 다시 폭락할 테니까. 그리고 폭락하면, 산유국 모두가 고통받을 테니까. 결국 이번 회담의서 한발 뒤로 빠져있던 러시아가 사우디의 딜을 받음으로써, 사우디입장에서는 감산량이 늘어난 효과를 얻게 되었고, 이란과 이라크에게 네고를 쳐 줄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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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고가 이뤄진 직후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 회담이 길어져서 출출해진 사우디 장관이 땅콩을 집어먹으려고 일어섰는데, 협상 참가국 모두가 사우디가 파토내고 나가버릴까 쫄았다 카더라.

- 회담의 참가한 각국 장관들은 네고와 딜이 계속되자, 릴레이로 잠깐씩 빠져나가, 최고지도자에게 딜을 받을지 전화로 결제를 맡고 돌아왔다 카더라.


OPEC에서는 듣보잡 수준인 인도네시아가 자국정부로부터 결제를 못 받자, 화가난 사우디가 인도네시아를 축출시키고 서명에 들어갔다 카더라(네고도, 판돈이있을 때 가능한 거다).


결국 극적인 타결로 이번 OPEC 감산 회담은 끝났다. 곧이어 러시아와 사우디는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비 OPEC 산유국들을 불러 50만배럴에 달하는 추가 감산을 달성했고(이러한 비산유국의 감산은 16년만이다), 석유가격은 배럴당 50불 중반대까지 상승했다.


결과는 모두가 바라는 감산이란 결과를 얻어냈지만, 그 과정속에는 치열한 국가의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었고, 그 대립을 풀어낸 건 감산에 대한 공감대, 그리고 이를 지렛대로 러시아에게서 까지 양보를 얻어낸 산유국들의 외교적 승리라고 볼 수 있다. 협상과 외교는 이렇게 해야한다.






씻퐈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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