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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3.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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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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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출몰했던 오타쿠,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처음 [덕질 비기닝]을 구상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단지 '문화컨텐츠 장르를 소개해주고, 그걸 즐기는 기본 코드를 알려주고, 그걸 이미 즐기고 있는 덕후들과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단초를 열어준다' 는 것이 초기 구상의 로드맵이었다. 그런데 나의 덕질 분야를 다 소개해놓고 나자 욕심이 생겼다. 더 깊게 다루고 싶어졌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덕질 비기닝]을 통해서 각 분야에 입문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사람들에겐 입문 레벨을 벗어나 숙련 레벨로 올라갈 계단참이 필요하다. 그게 과연 몇 명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예고대로 [덕질 익스퍼트] 시리즈를 시작한다. 너님들을 나와 같은 레벨로 끌어올려주기 위한 프로젝트 되겠다.


이 시리즈는 [덕질 비기닝]이 훑고 지나갔던 분야를 그대로 따라가며 심화 레벨을 다루게 된다. 따라서, [덕질 익스퍼트]의 첫 회는 [덕질 비기닝]의 첫 회였던 수퍼 히어로 장르다. 단 분량 조절에 실패했던 비기닝 버전과 달리 이번엔 제대로 회차를 나눠주겠다.


따라서 이 글은 반드시 전 회차인 [덕질 비기닝 - 수퍼 히어로를 디벼주마]를 읽어야 독해 가능하다. 덤으로 '더 딴지 9호'의 별책부록으로 있는 [DC vs Marvel]과 여기서 잘려나간 분량을 재편집해 마빡에 게재한 [덕질 비기닝 - DC vs Marvel]까지 읽었다면 금상첨화다.






수퍼히어로 장르는 미국 만화 장르의 하위 장르이며, 미국 사회를 가장 잘 반영한 장르다. 스토리에서부터 형식과 창작 시스템까지. 당연히 중급자들은 다 아는 얘기인, 장르의 역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역사의 굽이굽이가 끼친 영향이 현재의 캐릭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수십 년 전의 작품과 작가를 열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만, 최소한 흐름은 봐야 한다. 간략하게라도.


학자들은 수퍼히어로 장르를, 사회의 역사적 맥락과 시장의 흐름에 따라 골든에이지-실버에이지-모던에이지로 시대 구분을 한다. 골든에이지가 장르의 태동 직후이고, 현재는 모던에이지에 속한다. 일부 학자와 덕후들은 실버/모던 사이에 과도기인 브론즈에이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각각의 시대 흐름은 현대사와 연관이 있다. 사회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동시에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했다. 어려워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중급 레벨로 올라가 다른 덕후들이 제공해주는 정보를 소화할 수 있으려면 이 역사적 맥락와 거기서 파생된 용어들을 알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오늘은 간략히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없는 커리큘럼을 진행하기로 하고, 다음 주부터 양대 산맥인 DC와 마블의 특징을 비교해보면서 놀아보도록 하자.



1. 골든에이지 : 수퍼맨, 네이머,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등의 탄생


1938년, 인류의 20세기 문화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수퍼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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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맨이 처음 등장한 <액션 코믹스 #1>이다. 지금 이 책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된다.


조 슈스터와 제리 시겔은 오랜 친구였고, 어릴 때부터 함께 꿈꿨던 캐릭터가 있었다. 만화 작가가 된 두 사람은 여러 번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 수퍼맨을 내놓았고 이 캐릭터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수퍼맨 이전에도 공권력을 대신해 범죄자를 잡거나 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구출한다는 식의 영웅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수퍼맨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초능력을 갖고 도덕률에 의해 행동하며 일견 촌스러운 코스튬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캐릭터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캐릭터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수퍼맨의 이름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수퍼히어로(Superhero).


때는 2차대전 시기였다. 미국은 세계대전의 한 축에 있었다.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보기에 아주 적격인 시대였다. 수퍼맨의 뒤를 이어 타임리 코믹스라는 회사에서 네이머(Namor)라는 아틀란티스의 왕을 만들어 내놨다. 이후 타임리 코믹스는 마블(Marvel)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해 미국 만화계의 한 축이 되었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는 2차대전의 분위기를 이용해 캡틴 아메리카라는 지나치게 적절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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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상적인 민주주의 선인인 캡틴도 처음에는 국수주의적인 전쟁영웅으로 기획되었다.

아래쪽에 캡틴의 사이드킥인 버키가 보인다.


배트맨도 이때 만들어졌다. 밥 케인과 빌 핑거는 초능력이 없이 신체 능력과 장비를 이용해 활동하는 영웅을 만들었다. 배트맨이 처음 데뷔한 지면은 <디텍티브 코믹스 #27>이었다. 디텍티브 코믹스의 약자를 따서 회사 이름이 만들어졌다. DC 코믹스. 수퍼맨의 저작권도 이 회사로 들어갔다.


좋은 시절이었다. 잘 팔렸고, 더 잘 팔리게 할 여러 가지 방법도 시도되었다. 특히 DC의 약진이 눈부셨다. 원더우먼과 같은 여성 히어로도 만들었고, 배트맨에게 로빈이라는 소년 사이드킥(Sidekick, 조수)을 만들어주어 청소년 독자들이 감정이입할 대상을 선보였다. 로빈 캐릭터의 성공을 바라본 마블은 곧바로 캡틴 아메리카에게 버키라는 사이드킥을 대동시켰다.


수퍼맨의 히트로 인해 아류작들이 쏟아졌고 DC는 표절을 통한 법정 공방으로 나아갔다. 수퍼맨 아류작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캐릭터였던 캡틴 마블(Captain Marvel)을 만들어냈던 포셋 코믹스는 결국 문을 닫고 캡틴 마블의 저작권을 DC에 넘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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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마법을 통해 수퍼맨으로 변신하는 설정의 캡틴 마블.

포셋에서 DC로 적을 옮긴 후에는 경쟁사인 마블 코믹스의 이름 때문에

변신시 주문인 '샤잠'으로 통칭 된다.


이 골든에이지 시기에 우리가 현재 접하게 되는 인기 캐릭터의 상당수가 창작되었으며, 후일 양대 산맥이 되는 DC와 마블 중에서 DC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DC가 이 시기에 내놓은 캐릭터는 어마어마하다. 조커, 그린 애로우, 그린 랜턴, 블랙 카나리, 닥터 페이트, 스펙터, 아쿠아맨 등 현재도 통용되는 DC의 인기 캐릭터 중 상당수가 이때 만들어졌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였다.


수퍼히어로 만화라는 장르는 이제 막 꽃을 피웠고, 성숙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기 때문에 양적으로만 성장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세상을 이분법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기게 되자 이 단순한 장르가 인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때문에 잠시 수퍼히어로 대신 호러나 범죄물, 판타지 등이 출시되었다. 만화 회사들은 이런 장르 속에서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타이틀로 돌파구를 삼으려 했다. 그러자 당연한 반응이 나왔다. '이 유해매체를 척살하자!' 정치권이 나서서 만화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구도다. 미국은 아예 상원의회가 나서서 법을 제정했다. 법은 자율성이 강한 쪽이었으나 배급사들은 모두 법을 따르기로 한다. 마블의 스탠 리 같은 일부 작가들만이 법에 저항했을 뿐이었다. 만화 회사들은 스스로 검열을 시작했다.


이 검열 기준은 매우 강했다. 작품의 내용을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규정지어 놓았고, 금지어도 제정했다. 작품 내에 horror나 terror 같은 단어를 써서는 안 되었다. 성적 묘사는 당연히 금지되었다. 표현 방식도 규정했다. 범죄는 반드시 찌질하게 표현해야 했다. 유혈 장면이나 난투극 장면도 괴물도 나와서는 안 됐다. 덕분에 희대의 악당이라는 조커는 애들 성적표나 훔치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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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를 조커에게 빼앗긴 소년의 이름이 존 블레이크.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조셉 고든 래빗에게 맡긴 역의 이름이다.


종전으로 인해 침체 되었다가 검열로 인해 치명타를 맞으며, 50년대 초반이 되었다. 수퍼히어로 장르의 골든에이지(황금기)가 끝났다.



2. 실버에이지 : 플래시,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그리고 멀티버스


제약이 서게 되면 작가들은 거기에 나름 순응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낸다. 그 첫 돌파구는 골든에이지 시절의 캐릭터를 재포장하는 것이었다. 실버에이지의 문을 연 회사는 DC였다. DC는 이전에 만들었던 캐릭터인 플래시(Flash)를 새롭게 만들어내면서 신선함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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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플래시가 처음 등장한 <쇼케이스 #4>


DC는 제이 개릭이라는 이름의 1대 플래시는 일단 놔두고, 새로운 기원과 이름과 코스튬의 2대 플래시를 내보냈다. 바로 이 2대 플래시가 현재 30대 이상의 사람들이 TV 드라마로 기억할 플래시, 배리 앨런이다. 2대 플래시는 성공적이었고, 그래서 DC는 그린 랜턴도 2대를 만든다. 기존의 그린 랜턴은 놔두고 할 조던이라는 공군 비행사를 그린 랜턴으로 만든 것이다. 마법 반지를 사용하던 1대와 달리 2대 그린 랜턴은 은하계 저편에서 초능력 반지를 받은 우주 경찰이 되었다. 캐릭터의 기본 컨셉인 능력과 이름은 같지만 나머지 부분은 모두 바꿔버린 것이다.


이러다 보니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여기서 평행우주 아이디어가 도입된다. 지구-1의 플래시는 배리 앨런이고 지구-2의 플래시는 제이 개릭이라는 식이다. 이때가 1960년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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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무수한 사람들을 복잡함의 지옥에 몰아넣을 멀티버스의 시작이다.


DC가 고군분투하면서 실버에이지를 열어 독자들을 다시 수퍼히어로 장르로 끌어오자, 그 열매는 마블이 더 많이 따먹게 되었다. 마블에는 스탠 리를 필두로 한, 검열을 반대하며 검열에 엿을 먹이던 작가들이 다수 있었다. 마블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돌아온 독자들에게 차례차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모두 골든에이지 때보다 훨씬 깊이를 확보한 스토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DC가 돌파구로써 리메이크를 선택했다면 마블의 선택은 질적 향상이었다.


그 필두는 스탠 리가 <어메이징 판타지 #15>에서 선보인 스파이더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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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의 성공 요인은 서민성이었다.


독자들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철학에도 지지를 보냈지만 그 이상으로 스파이더맨의 가난함에 열광했다. 서민적인 초능력자에서 '서민적'이라는 부분에 사람들이 공감한 것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질적 향상을 꾀하는 마블의 전략은 곧바로 아이언맨과 토르의 발매, 그리고 이상주의자로 변신한 캡틴 아메리카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특히 아이언맨은 60년대 당시의 베트남전과 매카시즘을 배경으로 하는 반공 분위기가 만들어낸 캐릭터였다. 수퍼히어로 장르가 사회상을 반영해낼 정도의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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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아이언맨 디자인. 진짜 아이언하다.


3. 브론즈에이지? : 이야기의 한계를 실험하다.


70년대부터 80년대 정도까지를 아우르는 이 시기를 일부의 주장처럼 브론즈에이지라 부를지 아니면 실버에이지 말기로 간주할지는 자유다. 나는 전자를 선호한다. 따로이 과도기로 떼어놓고 봐도 될 정도로 흐름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첫 번째 문제는 베트남전이 도통 끝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반전 운동, 히피즘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미국 내의 마약 문제도 사회적 수준으로 번져갔다. 70년대 중반이 되어 간신히 베트남전을 끝냈는데, 그건 사실 패배한 전쟁이었다. 자연히, 2차 대전 이후로 미국인들이 갖고 있던 자기네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금이 갔다. 아메리칸 드림에 상당히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흐름을 반영하면서 수퍼히어로의 캐릭터들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완벽한 콤비 같았던 배트맨과 로빈은 서로의 의견 차로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언맨은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 아쿠아맨은 자신의 적인 블랙 만타에게 아들을 잃었다. 그린애로우의 사이드킥인 스피디는 마약중독자가 되었다. 스파이더맨의 애인인 그웬 스테이시는 적인 그린 고블린에게 살해 당했다. 주인공 내지는 주인공의 측근 캐릭터가 망가지고 죽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기가 별로 없었던 X-멘이 부활했다. 유전적으로 진화했으나 소수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다는, 정치적인 이야기의 X-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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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초능력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기원을 일일이 설정하기 귀찮아서

돌연변이 설정을 했던 X-멘.

그 설정이 70년대에는 소수에 대한 차별이라는 정치적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그림의 스타일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필두는 닐 애덤스였다. 기존의 그림체를 벗어나 사실적인 그림을 선호한 애덤스 이후부터는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림체의 스타일이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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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단순한 그림체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상황이 많이 바뀌니 검열 기준도 약화 되었다. 슬픈 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4. 모던에이지 : 혼돈의 시대?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모던에이지라고도 부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코퍼에이지(;;)니 아이언에이지니 다크에이지니 하는 식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뭐 그런 건 상관없고, 중요한 건 그 사조다. 모던에이지는 브론즈에이지 시기보다 더욱더 어두워지고 캐릭터들이 따르는 도덕률이 혼란스러워졌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반영하기 시작했달까.


걸출한 작가 프랭크 밀러가 쓴 <왓치멘>의 한 장면이 상징이 될 만하다. 주인공들 중 하나인 아울맨과 코미디언은 수퍼히어로들의 활동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진압하러 나선다. 코미디언이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진압하는 동안 아울맨은 자신들의 위상 변화와 쓰러지는 시민들을 보며 슬프게 묻는다. "아메리칸 드림은 어떻게 된 거지?" 코미디언이 한 시민의 등에 고무탄환을 쏘고서는 시니컬하게 대꾸한다. "이루어졌어. 지금 보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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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왓치멘>은 묻는다.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수퍼히어로 장르와 미국 특유의 자경주의, 나아가 미국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모던에이지를 열어제낀 작품다운 성찰이라 영화로도 나왔다.


또한 브론즈에이지와 모던에이지에는 작가들의 자유도가 크게 상승했다. 창작의 자유가 상승하려면 검열 제도도 약화되어야 하지만 계약 관계도 영향을 미친다. 군소 만화 제작사를 집어삼키면서 성장해온 DC와 마블 외에, 큰 히트를 친 새로운 독립 만화사들이 생겨났다. 자연히 작가들은 한 회사에만 소속되거나 하는 일이 적어졌다. 이미 70년에 마블의 1급 작가인 잭 커비가 DC로 옮겼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이런 군소 회사들 중에는 DC/마블의 산하로 들어간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완전 흡수가 아니라 산하 프로덕션의 형태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인 버티고(Vertigo) 사는 수퍼히어로 장르가 아닌 만화를 내면서 일종의 대안 취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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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의 <Y: 더 라스트 맨>은 한 명만 제외한 모든 남자와 수컷이 죽었을 때를 가정한 이야기다.

에로만화의 설정 같지만 이 작품은 진지한 내용이다.


작가들은 다양한 작품을 창작해내고 그 세계는 일취월장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시장의 성장은 둔화되고 있었다. 수퍼히어로 장르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그 설정과 이야기가 복잡해진 탓도 있었다. 새로이 유입되는 독자가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만화의 공습이었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다양한 장르와 문법을 보유한 일본 만화가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여갔다. 그런데 버티고를 비롯한 몇몇 회사를 제외하면 미국 만화의 주류는 여전히 수퍼히어로 장르 하나였다. 그 하나의 장르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장르 하나의 다양성으로 경쟁하기엔 역부족인 것이 당연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었다. 억지로라도 장르를 개척해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장르를 더 다양화할 것인가. DC와 마블의 선택은 후자였다. 장르의 전파 경로를 다양화하는 쪽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가 보고 즐기는 영화와 게임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여기서 DC와 마블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바로 그 이야기, 다음 편에서 해보도록 하자. 힘겨운 역사 얘기 따라오느라 수고들 하셨다.